Esquire Korea, 2014년 1월
글/최태형 사진/tvN
여기는 2014, 응답했다
지난해 팬덤을 넘어 이슈 형성에 성공한 드라마를 꼽자면 단연 〈응답하라 1994〉이다. 뜻밖의 대성공을 거둔 전작 〈응답하라 1997〉의 그늘 때문에 고전하진 않을까? 하는 의문부호들을 묶어 ‘하트’로 만들었다. 10퍼센트대를 넘긴 시청률은 케이블TV 드라마에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시청률이다. 기록적이다. 예능을 통틀어도 〈슈퍼스타K〉 외에는 시청률로 마땅히 대적할 프로그램이 없다. 불과 1년 만에 재등장한 ‘응답하라’ 시리즈에는 소포모어 징크스 따윈 없었다. 오히려 1년 사이에 1997년과 1994년 이야기를 연달아 흥행시키며 사회 전반에 1990년대 바람을 일으키는 촉매제가 됐다. 세시봉 열풍으로 불었던 한때의 ‘7080’ 바람에 비교할 바가 아니다. 1990년대 바람은 음악, 패션, 놀이할 것 없이 흥행 중이다.
〈응답하라 1994〉의 성공에는 다양한 요소와 요인이 숨어 있다. 드라마의 제작 구성원만 놓고 보더라도 독특한 면이 많다. ‘응답하라’ 시리즈의 연출을 맡은 신원호 PD는 KBS 〈남자의 자격〉을 연출했던 예능 PD다. 이우정 작가 역시 나영석 PD와 함께 〈1박 2일〉을 국민 예능 프로그램 반열에 올려놨던 예능 작가다. 독특하게도 ‘응답하라’ 팀은 이런 두 예능 전문가로 구성된 드라마 연출 팀이다. 이는 PD들 사이에서도 이슈였다. 공중파에서 종편으로 이직한 한 PD가 PD들이 바라보는 ‘응답하라’ 팀에 대해 말했다.
“기존의 예능 PD나 드라마 PD들이 보기에 ‘응답하라’ 시리즈의 구성원은 독특했어요. 드라마를 전문으로 했던 구성원이 아니었죠. 일하는 방법도 달랐어요. 임성한, 김수현 작가처럼 스타 작가를 모셔놓고 마치 하늘의 계시를 받는 것처럼 이야기를 받아다 영상으로 만든 게 아니었거든요. ‘응답하라’ 팀은 굉장히 많은 리서치를 했어요. 드라마의 소재들을 찾기 위해 1990년대에 대한 많은 자료를 가져다 놓고 최대한 현실적으로 반영해 이야기를 만든 거죠. 그걸 보면서 PD들 사이에서는 그동안 분야가 다르다는 생각으로 벽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는 반성도 많았어요.” 〈1박 2일〉로 이우정 작가와 함께 예능 바람을 일으킨 나영석 PD마저도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며 경력에 오점을 남길 수 있다고 조언했던 ‘응답하라’였다.
독특한 구성원들의 방식은 드라마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낯선 출연진들도 신선함을 자극했다. 극을 이끌 아이콘으로 고아라를 설정하긴 했으나 나머지 등장인물은 무명이나 다름없는 인물들이다. 극의 전개 또한 어느 한 명의 스타에 의존하지 않는다. 각각의 인물이 처음부터 끝까지 궁금증을 유지하고 극의 최종 주인공이 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그 시절 소품들도 그렇다. 음악, 전자 기기, 시대적 에피소드 할 것 없이 전 방위로 쏟아내는 철저한 리서치를 통해 선정한 아이템은 상당한 폭발력을 보여준다. 조선 시대의 한복이나 짚신 등을 고증을 통해 보여주는 것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드라마 속 1990년대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요소들은 아직도 작은 방구석 진열장 위에 꽂혀 있거나 창고 속 박스를 열면 들어 있을 것 같은 것들이다. 잠시 잊고 있었지만 아직도 손 뻗으면 닿을 것 같은 추억들이 〈응답하라 1994〉에는 녹아 있다. 〈응답하라 1994〉는 그렇게 어느 집에나 있는 먼지 쌓인 서랍을 열 듯 ‘척척’ 추억을 열어젖힌다. 그 시대를 살았기 때문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교실 이데아〉 테이프를 거꾸로 돌린다거나 삐삐 연결음을 녹음하는 모습 등 디테일을 살려 리얼리티를 표현하는 데도 능숙했다. 실제로 문경은, 우지원 등의 은퇴한 선수들이 연세대학교 농구단의 모습으로 등장할 땐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지만 얼마나 리얼리티에 집착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미드에 익숙한 세대들은 더 이상 억지 설정에 속아주고 싶어 하지 않는다. 점 하나만 찍는 것으로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등장하는 설정이라든지 실소를 자아내는 극의 흐름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최근 김수현, 임성한 작가의 드라마들이 호응받지 못하고 있는 모습도 이를 증명한다.
〈응답하라 1994〉가 1990년대 바람을 일으킨 이유는 1990년대가 전례 없는 크로스 오버의 시대였기에 가능하기도 했다. 그 시절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넘어가는 정점에 있었다. 초기 디지털 기술에는 아날로그의 감성이 깃들어 있다. 사회 전반의 감성도 그랬다. 지금처럼 스마트폰 하나에 의존하는 세상에서 맛보기 힘든 감성을 낯설지 않게 다뤘다.
〈응답하라 1994〉의 인기가 시사하는 바는 단순히 드라마에 멈추지 않는다. 지방에서 올라와 서울에서 대학 생활을 하는 대학생들이 바로 예능에서 드라마로 바닥을 옮긴 그들의 모습이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넘어가는 모습이기도 하고 청춘에서 장년이 된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응답하라 1994〉를 읽으면 그래서 방송을 보는 시청자의 요구도, 시대가 원하는 유행의 바람도, 과장을 보태자면 세대의 흐름도 읽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