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éro Homme · interview p.110

《누메로 옴므》가 남자에 대한 얘기를 나누려 맡을 첫 인물은 타이거 JK다. 음악과 편견, 그리고 병마와의 싸움에서 늘 높은 싸움꾼이었던 그는 지금 먼저 악수를 청하는 멋진 남자가 되어 있기에.

—예전과 분위기가 많이 달라요.
—많은 변화가 있었죠. 가정도, 아이도 저를 생각하게 만들어요. 요즘 가장 책임감이 커졌을 것 같아요. 힙합 1세대로서의 책임감도 그렇지만 개인적으로도 가장, 아버지가 됐잖아요. 거칠고 직설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피부에 와닿는 건 시간적·정신적 자유가 많이 없어졌다는 사실이에요. 그 전에 비해 실질적으로 많은 변화가 생긴 건 아니에요. 그런데 결혼이라는 게 사람을 이렇게 미치는지 몰랐어요. 하나가 된 듯해요. 따로 떨어진 거리가 매우 다르고 음악적으로도 그런 점이 많죠. 가족을 책임지고 보살핀다는 위치에 있다는 점이 저에게 깊은 감동을 준다고 생각하니 매우 조심스러워요.

—힙합 본연의 모습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서운해할 수도 있을 텐데요?
—위험한 선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게 힙합 문화의 한 부분이에요. 음악 안에서 마음에 안 들면 때려 부수고 욕하고 감정을 표출하는 거죠. 사람들은 거기에서 대리 만족을 느끼기도 하고요. 저도 그래왔지만 사람들은 음악이라는 방법으로 표출하는 것 같아요. 힙합 하면 다른 방향을 제시하는 거죠. 그러면서 스펙트럼을 넓히기도 하고요. 제가 또 다른 방향으로 힙합의 영역을 넓히는 동안 다른 젊은 친구들의 활동 무대가 넓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도 자유로운 모습, 진정 자유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게 아버지가 된 힙합 뮤지션이고요.

—분위기뿐 아니라 실제로도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3년 전쯤 쌈지사운드 페스티벌에서 보았을 때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은 매치가 잘 안 되거든요.
—그 당시에는 내일이 보이지 않았어요. 이것이 나의 마지막 무대고 나의 장례식이라고 생각했어요. 100명 중 20~30명만이 굽힌 사람들을 위해서, 20명만을 위해 공연하고 살았어요. 그때는 지금과 다르게 아주 불안정해 보였어요. ‘It never rains but it pours’라는 속담이 있잖아요. 나쁜 일은 겹쳐서 온다는 거죠. 가족이 쓰러지고 박이 있으면 미친놈처럼 이마로 깨서 피를 흘리면서도 겨우 걸을 수 있게 되었을 즈음 광고 일이 줄줄이 취소됐어요. 저를 위해서가 아니라 회사를 위해서 그런 수입은 필요하거든요. 그러나 아픈 저의 이미지가 광고주에게 좋게 비칠 리 없었죠. 음악도 줄줄이 금지곡이 되었어요. 인터뷰에서 제가 한 말들이 다 왜곡되어 전달되고. 안 그래도 상처투성이에 약해진 시기에 열등감에 빠져 더 약해지고 독기만 남았죠.

쌈지 사운드 페스티벌은 록 페스티벌이고, 록 음악의 정서에서 마이크를 휘두르고 기타도 집어 던지는 모습이 어느 정도 허용되는 분위기였고, 그 안에서 마이크를 부수고 거칠게 표현했죠. 그때는 많은 사람들이 무대에 호응하고 공감했어요. 이런 마음이었어요. “내가 하지도 않은 일들이 기사화되어서 욕을 먹을 거니까 아예 내가 제공할 테니 마음껏 기사화해라….” 그러던 차에 기적이 일어났어요. 마지막이구나, 이제 다 끝이구나 포기하고 노래를 하는데 영화처럼 비가 내리기 시작했어요. 앞에선 사람들이 비를 맞으며 떼창을 따라 부르더라고요. 그때 저는 ‘할머니께서 나에게 사인을 주시는구나, 할머니가 저를 보며 울어주시는구나’ 하고 느꼈어요.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전율을 느꼈죠. 그리고 굉장히 평온한 마음으로 무대에서 내려왔어요. 지금 돌이켜보면 도박이 필요한 순간이었어요.

—’두현도전!’에 출연한 것 때문일지 모르지만 절 모를 것 같은 아이들에서부터 할아버지까지 제 노래를 좋아한다고 말하더라고요.
—저도 깜짝 놀라죠. 음악 외적으로요. 책임이 늘면서 사람도 많이 달라졌을 것 같아요. 예전에는 누가 떼어 치는 게 남자였어요. 가족을 위해 싸울 때라도 굽혀야 하는…. 지금은 먼저 손을 내미는 게 멋진 남자라고 생각해요. 눈에는 눈, 이에는 이가 아니라 약하게 인사하는 거죠. 시시한가요(웃음)? 그보다 나이에 대한 선입견을 스스로 풀어내는 게 멋진 남자인 것 같아요. 내 아이를 생각하면 모두가 바른 길로 갔으면 좋겠어요. 사실 한 번쯤 휘둘러질 수도 있을 나이에 너무 수험생처럼 공부에 둘러싸여 있잖아요. 젊은 시기에 표출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관대하게 배려하고 받아주고 있어야 하는데 우리 사회는 제한하기만 해요. 그러면서 나이에 대한 편견도 많죠.

—그래서 드렁큰 타이거를 따르는 후배 뮤지션들이 많은 거군요.
—드렁큰 타이거에 대한 오해도 많고 곱지 않은 시선도 많지만 인복은 참 많아 보여요. 돈복은 없지만 인복이 많은 건 사실인 것 같아요. 그런데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처럼 제가 후배들한테 “너 내 밑으로 들어와서 이렇게 해!” 하고 말하거나 이리저리 다니면서 형님 노릇을 한 적은 없어요. 개인주의라고 말할 정도로 존재감 없이 있었죠. 집도 동두천이에요. 강남이나 홍대와는 거리가 멀어요. 어딜 막 돌아다니는 성격도 아니죠. 후배들을 동생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서로 존중했어요. 사람들이 저를 리더고 큰형이라 하지만 오히려 제가 동생처럼 행동할 때가 많았죠. 그래서 서로 잘 통하는 것 같아요.

—윤미래 씨와도 참 잘 어울려요.
—그녀는 빛나는 보석이에요. 저에게뿐 아니라 음악계에서도요. 크레이그 데이비드도 그렇고 라킴도 그렇고 외국 뮤지션이 한국에 오면 첫 번째로 미래를 찾아요. 또 자신들 한국 공연의 마지막을 미래와 함께하고 싶다고 했어요. 미래 덕분에 저도 해외 뮤지션과 직접 소통하는 기회를 얻기도 하죠. 서로 많은 영향을 주고받을 것 같아요. KMA(한국음악평론가협회) 두오의 최자 씨는 한국의 모든 래퍼가 미래에게 열등감을 느낄 거라고 했어요. 아무리 잘해도 그녀를 따라갈 수 없으니까요. 그러면서 제가 제일 직접적으로 느낄 거라고 하던데요.

—맞아요. 나갈 수 없죠. 너무 잘하니까 사람들이 얼마나 잘하는지 몰라요. 흔한 일로 생각하는 거죠.
—그래서 더 아쉬워요. 본인도 몰라요. 자신이 얼마나 잘하는지. 얼마나 소중한 선물을 받은 건지. 그래서 저는 더 화가 나요. 나는 노력해도 될까 말까인데 이 친구는 얼마나 천부적으로 잘하는지, 그게 어려운 건지도 모르니까요. 그래서 더 노력하게 돼요. 아내에게 으스대고 싶거든요. 그리고 그녀는 매우 솔직한 사람이에요. 그런 거에서도 많이 영향 받아요. 미처 신경 쓰지 못한 영역에 귀 기울이게 되고요. 쑥스럽지만 미래도 제가 공연할 때 영향을 받는다고 하더라고요.

—음악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도 러브콜을 받고 있다고 들었어요.
—영화 쪽에서 이런저런 제의가 들어왔는데, 언젠가 적절한 시점에 제대로 해보고 싶어요. 제대로라는 건 조연이라도 진짜 연기를 한다 싶게 하는 거죠. 섣불리 해서는 안 될 것 같아요. 〈Inglourious Basterds〉의 일라이 로스처럼 완벽하게 소화해내고 싶어요. 음악에 충실하고 시간이 지나다 보면 제게 맞는 역할을 만나겠죠. 그리고 또 하나의 꿈은 작가예요. 그걸 음악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단편소설도 내고 싶어요. 책으로 책을 내고 싶어요. 그런데 아직 작품이라 할 수는 없지만 제 이야기를 책으로 내고 싶은 것은 사실이에요. 책으로 단축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싶어요.

—그런 것들을 언제쯤 만날 수 있을까요? 벌써 또 한번 어른이 된 타이거 JK가 기다려지는데요.
—저에게 청개구리 근성이 있어요. 그래서 아직 사춘기라고 말하는 것이기도 하고(웃음) 유행처럼 연예인들이 책을 내고 있을 때는 책을 내고 싶지 않아요. 잠잠해지고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때 즈음 제 책이 불쑥 다시 나오게 될 거 같아요(웃음).

에디터·최태형 사진·박지혁 스타일리스트·오장·메이크업·박은영 어시스턴트·이영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