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영은 스스로 안다. 그녀의 성격이 외향적이지 못하단 것도, 언변이 좋지 않은 것도 잘 안다. 대신 좋아하는 것과 잘하고 싶은 것도 알고 있다. 배우로 밝게 빛나며 정점에 설 때가 언제인지도….
Esquire Korea, 2014년
글/최태형 스타일리스트/원세영 헤어&메이크업/구현미 촬영 협조/꽃밭(www.kottbatt.co.kr) / Photographs by KIM TAESUN
유인영은 조용했다. 촬영이 진행된 플라워 스튜디오에 들어서 메이크업을 받을 때도 별말이 없었다. 스튜디오를 가득 채운 꽃을 보고도 그랬다. 예쁘다고 호들갑을 떨던 여자 스태프들처럼 좋아하길 내심 기대했었는데…. 그녀는 말이 없었다.
촬영장에는 따로 드레싱 룸이 없었다. 사진 촬영용 스튜디오가 아니라서였다. 그녀가 메이크업을 받고 옷을 갈아입을 곳은 급하게 천을 둘러 만든 작은 공간이었다. 불편한 티를 내는 건 아닌가 불안했다.
최고의 시나리오는 ‘꽃을 보며 좋아하다가 불편함을 깨닫지 못한다’였다. 내가 기대한 것이기도 했다. 그런데 스튜디오가 불편해 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 같았다. 그녀가 촬영에 입을 옷을 보고 싶다고 할 땐 그래서 올 것이 왔구나 싶기도 했다. 무턱대고 맘에 안 든다고 하면 어쩌나 싶어서였다. 〈별에서 온 그대〉(이하 〈별그대〉)에서 천송이를 쏘아붙이듯 한마디 할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옷을 보면서도 확인만 할 뿐 별다른 얘기가 없었다. 무뚝뚝한 건지 화가 난 건지 모를 느낌이었다. 그녀의 첫 느낌은 그랬다.
“제가 낯을 많이 가려요. 옛날에는 정말 말도 못 할 정도였어요. 인터뷰할 때도 ‘네’ 하고 대답하곤 그다음에 무슨 말을 해야 될지 몰랐을 정도로요. 가끔 제가 이 일을 어떻게 하는지 아이러니할 때가 있어요. 연기나 일 외의 다른 부분에서 주목받는 게 되게 불편해요. 그래서 제가 못됐다는 오해도 많이 받았어요.”
정확히 우리가 한 오해였다. 유인영은 그냥 조용했을 뿐이다. 사실 유인영의 그동안의 이미지는 〈별그대〉의 한유라에 가까웠다. 부잣집 막내딸, 얄미운 시누이 같은 존재가 그녀였다. 혹은 도도하고 섹시하다 못해 거만한 이미지. 그래서 보통 그녀에게 주어지는 역할이 그랬다.
“드라마는 모험을 안 하려고 해요. 고정된 이미지를 계속 쓰길 원해요. 제 다른 모습을 끄집어내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죠. 전 화장만 지워도 완전히 다른 얼굴이 되는데도요. 언젠간 화장 안 하는 역을 할 거예요. 이해는 돼요. 드라마는 시간이 촉박하니까요. 그래서 비슷한 역할들만 해왔던 거 같아요. 고정된 이미지는 싫어요. 그래서 롤모델도 없어요. 배우가 어느 정도 위치에 오르면 한 가지 이미지로만 쭉 가는 경우가 많잖아요. 저는 그게 싫어요. 그래서 〈기황후〉는 제게 고마운 배역이었어요. 요즘 가장 기분 좋은 말이 뭔지 아세요? 쟤가 한유라였어?”
유인영은 드라마 〈별그대〉에서 극 초반 의문의 죽음을 맞는 여배우로 특별 출연했다. 〈기황후〉의 연비수 역시 처음에는 길지 않은 출연이 예정됐었다. 사실 정식 배역이 아닌 특별 출연을 그녀가 탐탁지 않아 할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였다.
“20대였으면 안 했을 것 같아요. 사극에 대한 공포증도 있었고요. 극 중간에 등장해 짧게 출연했다 빠지는 게 과연 내게 좋을까 하고 생각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서른 살이 넘으니까 그게 중요한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조금 여유가 생겼어요.”
짧은 출연이었지만 그녀는 드라마에서 도드라져 각인됐다. 〈별그대〉에선 극의 흐름을 만드는 역할을 했고 〈기황후〉에서는 출연 분이 늘었다. 주진모와 애틋한 감정 신들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데뷔 초반부터 신인으로서 과분한 역할들을 맡았어요. 단막극의 주인공부터 시작했죠. 미니 시리즈에 출연한 것도 연기를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고요. 인지도를 올린다거나 쇼 프로에 나가 저를 알릴 기회는 많았던 거 같아요. 그런데 전 그런 걸 별로 원치 않아요. 그런 인지도나 인기는 금방 사그라질 것 같아요. 중간에 살짝 후회했던 적도 있었어요. 연기보다 예능에 치중한 배우들이 인지도만으로 배역을 딸 때요. 그런데 잘해왔다고 생각해요. 남들보다 느려도 꾸준히 차근차근 내 일을 해왔으니까요.”
유인영의 말을 처음 들으니 욕심이 없는 건가 싶었다. 다시 곰곰이 생각하니 원하는 게 너무 명확해 다른 건 별로 눈에 들어오지 않다는 게 더 유력했다. 단도진입적으로 물었다. ‘유명해지고 싶어요?’ 그녀가 담백하게 대답했다. “네.” 실은 연기를 하며 원하는 게 뭐냐는 질문이었다. 사람들에게 관심받는 게 싫어 SNS도 안 한다는 그녀에게 던진 커브였다. 그녀는 뭐 대수냐는 식으로 받았다.
“그래야지 제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더라고요. 더 많이 찾아주고 저에 대한 다른 부분도 봐 주시더라고요.” 그녀가 바라는 건 유명인은 아니었다. 배우의 이미지를 더욱 단단히 만들고 싶은 욕심이었다. “마음이 급하지는 않아요. 〈기황후〉나 〈별그대〉가 인기가 많았기에 짧게 나와도 관심을 갖는 거잖아요. 운도 따라야 하니까요. 저는 제 일을 하면 되죠. 유명인보다 유명 배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유인영은 개인적으로 주목받기보다 배우로서 연기를 봐주길 원했다. 하지만 그걸 위해서 운을 기다릴 때도 돌아갈 때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조급해하진 않는 것 같았다.
“지금부터 3년 보고 있어요. 남자들이 보는 여자 나이로는 모르겠지만 배우로서는 그때가 정점일 것 같아요. 얼굴에서 나오는 연륜이나 성숙하고 깊은 아름다움, 그때가 가장 예쁠 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