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정재형이 경계 위에 있다고 했다. 프랑스와 한국, 뮤지션과 대중 가수 그리고 작가라는 타이틀은 또다시 그를 ‘경계’라는 도마에 올려놓았다. 그러나 그는 선을 그은 적이 없다. 예술성과 대중성을 놓고 저울질한 적도 없다.

Numéro
에디터 | 최태형

Q. [Numéro] 1집은 베이시스 때부터 만들어온 클래식 베이스 뮤지션의 느낌이 강했는데 2집에서는 그냥 ‘대중가요’ 같았어요. 그러다 3집은 일렉트릭 음악이고요.

[정재형] 2집은 할 말이 많아요. 1집 ‘클래식’에서 2집 ‘가요’ 그리고 갑자기 3집 ‘일렉트로닉’이 아니고 사실 일렉트로닉으로 이어지는 선상의 음악들이었어요. 그런데 음반을 위해 곡을 만들고 선곡을 마쳤을 때 기획사에서 이렇게는 절대 발매할 수 없다고 했어요. 그래서 기획사의 입맛에 맞게 몇 곡의 발라드를 끼워 발매하게 된 거죠. 그러다 보니 색깔이 없어져버린 거예요. 제가 표현하는 음악의 문법에 몇 단어가 의미 없이 덧붙여져서 저에게도 뜻이 없는 앨범이 돼버린 거죠. 2집에 수록된 ‘편린’이나 ‘진주귀걸이를 한 처녀’ 같은 곡은 제가 할 수 있는 일렉트로닉 느낌을 가미한 곡들이었어요. 변화의 과정을 보여준 거죠. 3집에서 그게 정의된 것이고요. 그래서 그때는 오히려 영화음악을 통해 제가 하고 싶었던 것들을 표출했어요. 그렇다고 지금 한국에서 유행처럼 말하는 시부야케이 장르와는 달라요. 지금 우리가 말하는 시부야케이는 본토에서 이미 과거에 들려줬던 것을 가지고 온 ‘가요’인 거고, 저는 이들과 다른 길을 간다고 말하고 싶기보다 다른 개념으로서의 작업을 했어요.

Q. 그럼 이전까지 보여준 정재형의 ‘클래식적 대중음악’은 앞으로 없나요?

1집, 2집 그리고 영화음악 모두 스케일이 거대했어요. ‘나는 이런 사람이다’를 한 앨범에서 다 말하고 싶었죠. 정재형의 색을 담으려 하니 오케스트라 나오고, 클래식 나오고…. 그런데 2002년 이후에 영화음악, 클래식 앨범 작업을 하면서 생각하게 된 것이 대중음악의 중요성에 대한 거예요. 이 앨범을 만들면서 대중음악가로서의 중요함, 소통의 중요함에 대해 생각했어요. 또 아티스트로서 나의 역할이 뭘까도 생각하게 됐어요. 답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보여주는 거죠. 유럽에서 미니멀한 일렉트로닉 음악을 하는 사람들보다 더 아방가르드한 음악을 만들었어요. 그들도 이런 작업은 처음이라고 할 정도로요. 극히 미니멀하면서도 그 안에 코드라든가 대중적 요소가 모두 들어 있죠.

Q. 노래를 잘 못하면서 음반을 내는 아이돌 가수를 보면 어때요?

제가 평가할 부분이 아닌 것 같아요. 전 그냥 현상만 파악할 뿐이에요. 그게 문제가 아니고 파리의 경우 어떤 ‘현상’이 있어요. ‘유행’하고는 달라요. 여러 다양한 문화적 배경이 있고 그에 따른 현상들이 있죠. 한국은 그게 너무나 좁아서 그냥 ‘유행’이 돼요. 나이 든 사람도 젊게 살고 싶은데 그런 유행을 소비해야만 젊어지는 거 같은 기분이 드는 거죠. 아이돌 가수도 유행만을 좇는 한국 시장이 만들어낸 거죠. ‘경향’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게 아니에요. 한국은 너무 똑같이 살아가요. 결혼하고 아기 낳고, 부지런해야 하고…. 결혼 안 하고 잘 살 수 있으면 안 해도 돼요. 게을러도 잘 살 수 있는 사람은 게을러도 돼구요. 파리의 경우 그들을 만족시킬 만한 다양함이 존재하고 그런 다양한 ‘경향’들이 많죠. 제가 한국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바로 그런 거예요.

Q. 원래부터 글 쓰는 것을 좋아했어요?

하하.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건지 알 것 같아요. 아이돌의 음반처럼 정재형의 책이 아이러니라는 거죠? 이것도 제가 평가하지 않겠어요. 책은 항상 로망이었어요. 책을 많이 읽고 자란 세대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로망은 아마도 글을 쓰는 것일 거예요. 저도 책을 너무나 좋아해요. 제가 당장 작가라고 불러달라 그러면 웃기죠. 하지만 최대한 선을 지키려 했어요. 그 누구보다 책에 쏟은 노력은 적지 않을 거예요. 물론 노력한만큼 항상 좋은 결과가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쉽게 만든 책은 아니라는 거죠. 스스로는 아직 작가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누군가가 ‘정재형은 작가가 아니다’라고 한다면 “한국은 자기 계발서가 베스트셀러 10위 안에 몇 권씩 들어 있는 나라예요”라고 말할 수도 있겠어요. 그런 책들보다 훨씬 더 진솔하게 제 얘기를 쓰기 위해 노력했어요. 뭐 이 정도 변명은 할 수 있겠죠?

Q. 처음에는 여행서나 사진집 같을 줄 알았는데 글이 많아서 놀랐어요.

글은 아직 서툴러요. 하지만 꿈은 원대하죠. 책을 내려고 마음먹었을 때 쉽게 작업할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어요. 시작하기 전부터 힘들 거라는 걸 예상했죠. 그리고 제 책에 남들이 들이대는 잣대보다 스스로의 잣대가 더 컸어요. 모 아나운서의 대필 사실이 큰 논란이 되었을 때 그녀가 잘못한 것은 당연하지, 논란이 된 것은 대중이 그녀에게 기대한 게 있었기 때문이에요. 마찬가지로 저 스스로도 제게 기대하는 게 많았죠. 저 자신에게도 의미 있는 책을 만들고 싶은 거예요. 뭐 다음 책은 더 잘 써야죠.

Q. 두 번째 책은 시집이었으면 좋겠어요. 작사가 곧 시니까요.

저는 소설을 참 좋아해서 소설책을 내고 싶어요. 물론 어떤 ‘기획’에 의한 책을 낼 수도 있어요. ‘기획’이라기보다 지금 어떤 아이디어가 있는데 그 아이디어와 엮어서 책을 낼 수 있을 것 같아요. 일본 작가들의 책을 한국에 와 있으면서 보게 돼요. 프랑스 작가들의 책은 문학적으로 원론적인 것을 잘 지켜가면서 쓰이는 데 반해 일본 소설은 매우 간결해요. 만화야? 소설이야? 싶을 정도로요. 그런데 재미가 있더라는 거죠. 아무리 스파게티가 좋아도 세 끼를 모두 스파게티를 먹을 수 없는 것처럼 가끔은 김치전을 먹어줘야 하는 거예요.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찾기 위해 쉬운 단계부터 걸어가야 하는 게 아닌가 해요. 당장 존경받는 작가가 될 수는 없겠죠. 이미 마흔 살이 가까우니까요. 그러나 제 나름대로의 꿈을 꾸고 있는 거죠. 여전히 꿈이 있는 거예요. 파리가 이런 생각을 하게 해준 것 같아요. 편협하지 않게요.

Q. 경계 위에 있는 것 같아요. 파리와 한국, 뮤지션과 대중가수, 또 작가도요.

맞아요. 왜냐하면 방송에서는 굉장히 가벼워 보이니까요. 고민이 있었어요. 처음 활동할 때 몇 가지 프로그램들은 제가 하지 않겠다고 했어요. ‘오락 프로에서 그러고 있는 거 웃겨. 내가 이러려고 고생했어?’라는 거였죠. 반면에 파리에서 균형 잡힌 시선을 갖게 됐어요. ‘그렇다고 폼 잡는 건 더 웃겨~’라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굳이 촌스럽게 엄숙한 아티스트의 모습을 보여줄 필요도 없다는 거예요. ‘여유를 보여주자’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가진 어떤 ‘리미트’를 침범하지 않는다면 자연스럽게 풀어주자. 사람들이 볼 때 “쟤는 파리에서 공부하고 와서 ‘척’한다”가 아니라 여유로워 보였으면 하는 거예요. 제가 할 것은 열심히 철저히 하되, 그걸 드러내려고 하기보다는 여유롭게 넘어가는 거죠. 제가 그 경계에 있다는 것도 의식하지 않으려고 해요. ‘클래식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도 그것을 부각시켰기 때문일 수 있어요. 더 클래식적인 음반들도 많았으니까요. 그냥 클래식 공부, 영화음악을 할 정도로 제 안의 실력을 키워나가면 되고, 그런 사람이 대중음악을 한다는 것 자체가 행복한 일이잖아요. 자신감일 수도 있고요.

Q. 파리에서 지내는 것이 외롭지는 않아요?

외롭죠. 결혼을 해도 외롭다고 하는데요. 사랑을 해도 외로운 거고…. 물론 뼈저리게 외로울 때도 있죠. 그런데 이겨내는 방법을 알아낸 것 같아요. 전 독신이 편해요. 혼자 사는 게 좋아요. 물론 애인이 없는 건 싫지만 사는 건 혼자가 훨씬 좋아요. 저한테 맞는 것 같아요. 제가 아닌 누가 집에서 ‘꼼지락’대는 게 싫어요. 동물은 좋아하는데 사람이 말 하기 싫을 때 말 걸거나 하면 당혹스러워요.

Q. 그런 생활이 작업에 도움이 되나요?

한국에 있으면 시간이 없어서 쩔쩔매요. 일을 할 때도 제가 하고 싶고 정확하게 제가 이해할 수 있는 일이어야 해요. 그렇지 못할 경우 제가 사람이 아니게 돼요(하하). 거의 발광 수준이 되죠. 제 성격이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 있으면 이런저런 신경을 많이 쓰다가 파리에 가면 완전히 혼자가 되는 거예요. 그곳에서는 정말 절대적으로 혼자만의 시간이 주어져요. 그럼 저는 또 ‘한국에서 사람들이 기다리니까 빨리 해서 보여줘야겠다’라는 생각보다 ‘정말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잘 해야겠다’라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 거기에 집중할 수 있게 돼죠. 방해받지 않고요.

Q. 파리 사람들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을 것 같아요.

혼자 있다 보면 파리 친구들과 어울리게 되요. 그곳도 저처럼 혼자 사는 친구들이 있어요. 나이가 어린 친구도 있고 나이가 많은 사람도 있죠. 꼭 다 결혼하고 한국에서처럼 ‘이 나이 때는 이렇게, 저 나이 때는 저렇게 해야 해’ 하면서 사는 게 아니기 때문에 이런저런 친구들을 만나게 돼요. 음악을 하는 친구도 있고, 그림을 그리는 친구도 있어요. 여러 다른 생각, 다른 작업을 하는 친구의 생각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죠.

Q. 파리의 시인 보들레르는 참다운 예술가들이 대중에게 외면당하는 풍조를 바라보며, 자본주의사회를 살아가는 시인에 대해 비관적으로 말하기도 했어요. 대중과 예술은 자본을 중심으로 할 때 그 괴리가 커진다는 거죠. 당신이 지향하는 예술성은 뭔가요?

균형. 특히 팝 아티스트에게 예술과 대중성은 줄타기예요. 작품적으로 지켜야 할 완성도와 양보하지 못할 제한선을 제 안에 두고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No’라고 말해야 해요. 또 현명하게 ‘No’를 할 줄 아는 것도 중요하고요. 세상을 봐야 해요. 의도가 폄하되거나 훼손되지 않게 적당히 유지해야 하는 거죠. 그렇다고 벽 보고 혼자 ‘예술이야’ 하는 것은 ‘후지’죠. 항상 하는 생각이 ‘자극은 마이너처럼, 생각은 메이저처럼’이에요. 메이저로 활동할지언정 나의 가슴에 마이너적인 생각을 가지고 가자는 거죠. 그리고 아티스트로서만 살 수 있는 시장도 없어요. 대중 가수로서 봤을 때 그들이 어떻게 생활을 할 수 있는지 궁금할 정도로요. 아이러니하게도 아티스트를 만들 수 있는 건 결국 돈이라는 거예요. ‘나쁘다, 좋다’식의 판단이 아니고 제가 생각하는 아티스트의 길을 가겠다는 거예요. 유연하게 대처해야 하는 거죠. 거창할지 몰라도 ‘롤’이 될 수 있었으면 해요. 다른 삶의 방식도 존재한다는 걸 보여줄 수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