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형도는 영영 떠나갔지만 그가 부럽다. 우리에게 그는 여전히 청춘으로 살아 있기 때문이다.
Numéro, 2009년 3월
에디터│최태형 포토그래퍼│이상엽
“침묵을 달아나게 하느라 나는 거의 고통스러웠다 /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중지시킬 수 없었다 / 나는 그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창밖에서 떠나지 못했다.” 차분한 목소리로 작가 한강이 시를 읽어 내려간다. 그녀는 기형도의 시가 앙상한 느낌의 러시아 소설을 읽는듯 하다며 ‘기억할 만한 지나침’을 담담히 낭독했다. 오늘은 기형도의 20주기 ‘제삿날’이고, 이곳은 그를 추억하는 지인들로 가득하다. 저마다 입을 움직여 한강의 목소리를, 기형도의 시를 따라간다. 기형도는 여전히 스물아홉의 청년이고, 청춘의 열병을 품은 채 노래한다. 이렇게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입을 통해….
20년이라는 긴 시간에도 시인 조병준은 아직도 욱신욱신 아프다고 했다. 성석제는 그와 문학의 붉은 피도, 젊음의 푸른 피도 나누었다고 했다. 그의 시로 청춘의 열병을 견뎌낸 이 시대의 중년들은 그를 일컬어 죽었어도 영원히 사는 시인이라고 말한다.
“오늘 아침에 지하철을 타고 학교에 오는데 갑자기 살기를 느꼈다. 내가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던 것이다. 갑자기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기형도의 산문집 <짧은 여행의 기록> 전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그는 알고 있었다. 아니,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떠나고 있다”로 글을 시작한다. 인생의 비밀을 일찍이 눈치 채고 서둘러 떠나버린 기형도. 그는 남겨진 미망인들, 죽지 못해 살고 있는 청춘들, 혹은 청춘이었던 이들을 비웃는 듯하다. 남겨진 이들은 하릴없이 중얼거릴 수밖에…. “그는 어디로 갔을까 / 너희 흘러가버린 기쁨이여 / 한때 내 육체를 사용했던 이별들이여 (중략) 어둠 속에서 중얼거린다 / 나를 찾지 말라……무책임한 탄식들이여 / 길 위에서 일생을 그르치고 있는 희망이여.” 결국 또 우리는 그의 시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로 자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