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듯한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출장길에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패션 피플 3인의 마음을 단번에 빼앗은 ‘머스트 해브’ 아이템.
Numéro, 2009년 5월
에디터 | 최태형 포토그래퍼 | 김태선
누군가의 취향을 극명히 드러내는 것은 바로 쇼핑 리스트이다. 게다가 짧은 해외 출장에서 구입한 물건은 단시간에 마음을 사로잡고 지갑을 열게 만든 만큼 그 사람의 취향이 강하게 묻어난다. 아주 사소한 생활용품에서부터 화려한 패션 아이템까지 고르고 골라 구입한 제품들, 해외에 나갈 때마다 잊지 않고 챙기는 아이템을 3인의 패션 피플이 공개했다. 독특한 취향 혹은 흥미로운 심미안을 갖춘 그들의 쇼핑 리스트와 각 아이템에 얽힌 히스토리는 당신에게도 영감을 제공할 것이다.
[ 푸쉬버튼 박승건 ]
1. ‘Super Lover’ 트로피
방콕 엠포리엄 백화점에서 구입한 제품인데 ‘Super Lover’라고 쓰여 있는 트로피다. 이외에도 ‘Super mother’, ‘Super friend’ 등 다양한 ‘Super’들에게 수여하는 트로피가 있었다. 하나씩 사서 친한 친구에게 나눠주고 싶었는데 생각보다 비싼 가격에 내 스스로에게 주는 ‘Super Lover’만 구입했다. 나는 재미있고 위트 있는 소품을 모으고 선물하는 것을 좋아한다. 생활에 작은 활력소가 되기 때문이다. 또 인형 등 귀여운 아이콘과 ‘sexy’라는 키워드가 합쳐져 만들어내는 감성을 좋아한다. 귀여운 것에서 파생되는 매혹적인 감각들. 내 숍의 마스코트이자 나의 사랑스러운 강아지 ‘푸쉬’도 이렇게 인형처럼 귀엽고 사랑스럽다.
2. 음악 CD
방콕 거리의 숍에서 구입한 음악 CD다. 나이트 바자 주변에서 구입했는데 숍은 주인의 음악 작업실로도 쓰이는 듯했다. 어떻게 보면 불법 음반으로 볼 수도 있는 CD를 판매하는데 일렉트로닉 음악과 주인이 디제잉한 음악 CD도 구입할 수 있다. 컬렉션에 사용할 음악을 고르기 위해 다양한 음악을 들으려고 구입했다. 이 숍의 주인이 자신을 한국에 초대하면 쇼의 음악을 담당하겠노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젊은 사장이라 농담도 하고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던 기억이 있다. 역시 음악의 힘은 대단하다. 다음 시즌 컬렉션에는 음악을 하는 나의 친구들과 즐겁고 예쁜 컬래버레이션을 하고 싶다. 나는 쇼를 만들고 그들은 내 쇼에 쓰일 음악을 담당하고…. 좋은 친구들과 함께하는 작업은 언제나 즐겁다.
3. 플로킹 소재 해골 저금통
바이어와의 미팅 때문에 홍콩에 갔다가 짬을 내 들른 방콕에서 묵었던 부티크 호텔 리플렉션스 룸(reflections room)에서 구입한 물건이다. 이 호텔은 모든 방이 각기 다른 콘셉트로 꾸며진 호텔로 이곳의 주인 역시 아티스트였다. 게다가 1층에 있는 그의 숍에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재미있는 소품이 많았다. 전시장 개념으로 운영하는 숍에서 발견한 플로킹 원단의 해골 저금통. 과거에 런던에 갔을 때 같은 소재로 된 마리아 상과 마오쩌둥 상, 불상 등을 샀는데 알고 보니 모두 이곳에서 수출한 상품이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소재이기도 하고 이런 아이템을 너무 좋아해서 구입했다.
4. 서점 ‘Sauce’
오로지 최용빈, 최보원의 책 <러브홀릭 방콕>을 보고 찾아간 서점 ‘Sauce’에서 집어 든 책이다. 그곳은 너무나 멋진 서점이었다. 나는 해외에 나가면 왠지 모르게 책을 꼭 사야 마음이 편하다. 멋진 작품들을 모아놓은 책은 당장 보지 않더라도 구입하지 않을 수 없는 아이템이다. 게다가 성격상 내 것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으면 집중해서 볼 수 없기에 더더욱 구입하게 된다. 빌려 보는 책은 마치 영감을 공유하는 느낌이라 싫다. 그래서 책은 어떻게든 많이 사려고 한다. 나의 쇼핑 노하우는 ‘후회 없는 충동구매’이다. 되도록 많이 고르고 사지 말 것들을 하나씩 내려놓는다. 사실 이 책도 서점의 분위기와 책을 안 사면 불안한 나의 심적 두려움으로 구입한 것일 수도 있다.
5. <Cinema 16> DVD
팀 버튼, 구스 반 산트, 아담 데이비슨 등 유명 감독의 단편을 모아놓은 DVD다. 영화와 뮤직비디오 등 아름다운 영상은 그 어느 잡지나 쇼보다도 강한 영감을 제공한다. 이런저런 CD와 DVD를 파는 매장에 플레이되어 있던 DVD인데, 정말 멋진 영상으로 10분 이상 넋을 놓고 보았다. 하나는 판매용이었고 다른 하나는 매장에서 플레이할 거라 팔지 않는다고 했는데, 두 개 모두 가지고 싶은 욕심에 한참을 실랑이했다. 결국 내가 이겼고(?) 반값에 사기까지 했다. 너무 고마워 주인에게 음료를 대접하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던 기억이 있다. 나는 워낙 음악을 좋아했고 마돈나를 사랑했다. 내게는 쇼의 모델들이 입은 의상보다 마돈나가 입은 의상이 더욱 멋지게 느껴졌다. 슈퍼스타와 멋진 의상의 만남은 어느 캣워크의 모델보다 환상적인 시너지 효과를 낸다. 최근 박찬욱 감독의 <박쥐> 역시 너무 멋졌다. 그는 한국 최고의 감독이다.
[ 포토그래퍼 오중석 ]
1. 빈티지 안경
약 2년 전 파리에 화보 촬영차 들렀다가 벼룩시장에서 구입한 안경이다. 파리의 벼룩시장은 빈티지하고 앤티크한 물건들이 많아 파리에 갈 때마다 꼭 들르곤 한다. 이 안경을 구입할 당시에는 눈이 좋아서 안경을 살 일이 없었는데 막연히 가지고 싶다는 생각에 충동적으로 구입했다. 그 전까지는 안경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이 안경을 만나면서 안경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너무 튀지 않게 멋을 낼 수 있는 안경이다. 이 안경을 쓰고 싶은 마음 때문인지 요즘 점점 눈이 나빠지고 있는 느낌이다. 사진을 찍을 때 안경을 쓰면 불편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 안경이라면 기꺼이 감수할 수 있을 것 같다.
2. 분가루 & DAX 헤어 왁스
그냥 아기들에게 발라주는 분가루랑 똑같은 제품이다. 한번 사면 2~3년 정도 쓰는데 바쁜 아침 샤워 후 물기를 대충 닦아낸 몸에 바르면 보송보송해져 기분이 좋다. 출근을 서두르느라 물기를 꼼꼼하게 말리지 못할 때 꼭 이 분을 발라준다. 분가루 말고도 다 쓸 때마다 꼭 외국에서 사오는 제품이 있는데 바로 ‘DAX’라는 이름의 헤어 왁스다. 흑인들의 곱슬머리를 세팅할 때 사용하는 왁스인데 나처럼 머리카락이 가는 사람에게도 잘 맞는다. 세팅력이 강해 얇은 머리를 세울 때나 다양한 모양을 연출할 때 좋다. 요즘에는 머리를 내리고 다니지만 머리를 세워야 할 땐 이 왁스만 한 것이 없다.
3. Typhoon Shelter Cuisine 명함
홍콩에 가면 꼭 먹어야 하는, 세상에서 가장 맵고 맛있다는 게 요릿집의 명함이다. 홍콩에 갈 때마다 들르는 곳인데 명함을 챙겨놓지 않아 꼭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찾아가곤 했다. 명함만 있으면 단번에 찾을 수 있을 텐데 이름도 잊어버리고 위치도 잘 기억나지 않으니 어쩔 수 없었다. 이름을 모르니 택시도 못 타고 음식점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랜드마크에서 내려 기억을 더듬으며 찾아가야 했다. 다시 들르면 꼭 명함을 챙겨 오리라 다짐하고 있다가 올해 초 방문했을 때 드디어 잊지 않고 가져온 명함이다. 다음 홍콩 방문 때에는 편하게 찾아 요리를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주소를 잘 외워두었다가 홍콩에 가게 되면 꼭 들르길 바란다. 왜 30분씩 고생해서 찾아갔는지 알게 될 것이다.
4. 데이비드 해밀턴의 누드 사진집
1960년대 말에 출간한 포토그래퍼 데이비드 해밀턴(David Hamilton)의 누드 사진집이다. 그는 원래 건축가였는데 짧은 기간 포토그래퍼로 활동하기도 했다. 젊은 여성의 누드에 판타지를 가지고 있었던 데이비드 해밀턴은 총 3권의 누드집을 선보였다. 그런데 운 좋게도 파리 벼룩시장의 포르노를 파는 노인에게서 그 3권의 책을 모두 구입할 수 있었다. 아마 한 권당 1만원 정도의 아주 저렴한 가격에 샀던 것으로 기억한다. 중고품은 정해진 가격이 없기 때문에 이 책을 싸게 사기 위해 나름 작전을 썼다. 스티븐 마이젤의 <Sex>라는 사진집에 관심을 보이며 물어보니 300유로 정도로 매우 비싼 가격을 불렀다. 그 할아버지가 과연 스티븐 마이젤 사진집의 가치를 알고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관심을 보일수록 비싼 가격을 부르는 게 벼룩시장의 특징이다. 너무 비싸 아쉬워하며 갖고 있는 돈이 얼마 없으니 옆에 있는 데이비드 해밀턴의 책이라도 싸게 달라고 하니 떠넘기듯 내게 판 기억이 있다.
5. 나비 패치워크 야전 점퍼
런던 컬렉션을 보러 갔다가 들른 포토벨로 마켓(Portobello Market)에서 구입한 구제 야전 점퍼다. 그런데 단순한 점퍼가 아니라 디자이너의 손을 거친 아름다운 나비가 패치워크되어 있다. 나비가 나를 끌어당겨 보자마자 구입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30만원 정도였는데 구제치고 매우 비싼 건 사실이지만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평상시에도 이 점퍼를 즐겨 입지만 특히 야외 촬영 때에는 더없이 좋다. 명색이 군용 점퍼이기 때문에 활동이 편하고 따뜻하며, 주머니가 많아 실용적이기까지 하다. 거기에 가미한 나비 패치워크는 딱딱하고 답답해 보이는 점퍼를 세련돼 보이게 한다.
[ 패션모델 지현정 ]
1. 불법 DVD들
촬영차 태국에 갔다가 구입한 것들이다. 태국에 가면 거리에서 쉽게 이런 아이템을 볼 수 있어 재미있다. 이것은 해적판 DVD다. 불법이라는 것은 알지만 그 매력에서 헤어 나올 수 없다. 또 낯선 타지를 여행할 때 지루한 밤 시간을 함께해줄 좋은 친구가 된다. 솔직히 자막이 없어 반 이상은 알아듣지 못하지만 한국에서는 상영하지 않은 영화들도 쉽고 싸게 볼 수 있어 흥미롭다. 코코넛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침대 위에서 밤새워 이 영화들을 봤던 기억이 생생하다.
2. 책 <The Balloon>
이것도 영국에서 구입한 책이다. 대영박물관 근처에 있는 작은 서점에 들어갔다가 우연히 발견했다. 책의 내용은 잘 알려져 있어 이미 알고 있긴 했지만 책 속에 삽입된 소년의 사진들이 나의 마음을 움직였다. 아기자기하고 귀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가슴이 저려오는 사진들이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내내 읽었는데, 뻔한 소설이 아니라 나의 동심과 판타지를 자극하는 내용이라 지루한 시간을 신선하게 만들었다. 개인적으로 현실적인 내용의 에세이나 지극히 뻔한 어른들의 소설보다는 동화가 좋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되살릴 수 있고, 현실에 찌들어가는 나를 도피시켜주는 하나의 문이 되기 때문이다.
3. Siwy Hannah 크롭트 스키니 진
최근 데미지가 잔뜩 간 진을 사고 싶었다. 개인적으로 펑키한 느낌이 조금씩 가미된 아이템을 좋아하는데, 키가 크고 마른 편이어서 국내 브랜드의 진은 체형에 잘 안 맞는다. 그러다 보니 주로 수입 진을 입는데 국내에서는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싼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뉴욕에 가면 꼭 진을 사고야 말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얼마 전 뉴욕으로 여행을 갔다가 크롭트 스키니 진을 하나 샀다. 친구와 함께 진을 찾아 헤매다가 마음에 쏙 드는 것을 발견한 것이 바로 Siwy의 한나 크롭트 진이다. 케이트 모스가 입어 유명해진 브랜드로 알고 있다. 데미지가 거친 편이지만 부드럽게 스트레치되는 느낌이 매우 편안하면서도 오묘해서 좋다. 국내에 정식 매장이 없어 편집 매장을 뒤져야만 찾을 수 있는 브랜드이다. 그래서 더 자주 입는 옷.
4. 빈티지 레이스업 부츠
영국의 빈티지 매장에서 구입한 제품. 개인적으로 매우 사고 싶은 아이템이었다. 클래식한 느낌의 은은한 브라운 컬러가 마음에 들었다. 또 거의 새 제품이나 다름없이 굽도 닳지 않았고 빈티지 특유의 오래된 냄새도 나지 않아 좋았다. 사실 개인적으로 빈티지 제품을 선호하지는 않는다. 빈티지 제품의 독특함은 좋지만 그 냄새와 찝찝함까지 견디지는 못하겠다. 그래서 항상 빈티지 숍에 가면 많은 갈등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 부츠는 꼭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츠를 사온 후 얼마 되지 않아 우리 집 강아지가 뒷부분을 물어뜯었는데, 영국에서는 강아지가 물어뜯은 신발은 재수가 좋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부츠를 신을 때마다 좋은 일이 생겼던 것 같다. 오래도록 신고 싶다.
5. Comme des Garçons 지갑
재작년 영국에 갔다가 구입했다. 개인적으로 뱀가죽도 좋아하고 악어가죽도 좋아한다. 하지만 모두 너무 비싸고 자칫 나이 들어 보일 수 있는 소재이다. 그런데 도버 스트리트 마켓에서 이 지갑을 보는 순간 첫눈에 반해버렸다. 홀로그램으로 되어 있어 각도에 따라 뱀가죽이나 악어가죽으로 보이는데, 바로 이 점이 나의 욕심을 모두 충족시켰다. 또 개인적으로 미묘한 베이지 컬러를 좋아하는데(베이지 컬러가 소화하기 어려운 컬러라는 것은 누구나 알 것이다), 지갑 내부의 베이지 컬러가 매우 섬세한 색상이라 나의 마음을 순식간에 사로잡았다. 꼼데가르송답게 중성적인 느낌도 마음에 쏙 든다. 한국에서는 이 제품의 다른 버전인 지브라와 젖소 무늬의 지갑만 구입할 수 있어 더욱 애착이 간다. 아마 누구나 다 들고 다녔다면 다른 지갑으로 대체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지갑만큼은 다른 사람과 같은 제품을 들고 다니고 싶지 않다. 자연스럽게 나만의 취향을 드러낼 수 있는 아이템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