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나리자를 그렸다.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 역시 그의 그림이다. 그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얀 반 에이크(Jan Van Eyck)도 아니다. 그림들은 누가 봐도 보테로의 그림이다.

Numéro, 2009년 6월
에디터│최태형

보테로는 그를 감싸고 있는 일상을 그린다. 캔버스에는 라틴아메리카 사람들의 보편적 삶이 펼쳐져 있다. 축구장, 투우, 춤추는 사람들…. 그러나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이런 장면들은 모두 비정상적인 형태감과 화려한 색감으로 실제보다 부풀려져 묘사된다. 그는 작품 속 상황에 상관없이 그림 자체를 다른 차원으로 승화시키는 견고한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 스타일은 작품에 힘과 의미를 부여한다. 단순히 풍자와 위트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보테로는 ‘보테로’를 그린다. 그의 그림은 확연히 기억되며 명확하게 알아볼 수 있다. 확고한 그림을 통해 그는 꼭 기억해야 할 것을 상기시킨다. 지금도 ‘영원한 고발’을 실행 중인 보테로에게 <누메로 코리아>가 질문을 던졌다.

[ Numéro ] 볼륨감과 인물의 표정 등 모든 작품을 관통하는 당신만의 스타일이 있다.

[ Fernando Botro ] 스타일이란 확신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작가가 스타일을 바꿔야 한다는 것은 웃긴 생각이다. 만약 스타일을 바꾼다면 작가의 사상이 확고하지 않거나 아직 말하고자 하는 것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위대한 작가들의 스타일은 하나뿐이다. 보티첼리(Boticelli)는 항상 보티첼리를 그렸고, 벨라스케스, 루벤스, 페르메이르 모두 마찬가지였다. 유일하게 예외적 인물이 피카소인데, 그의 작품은 아주 최근작이라 시대의 검증을 거쳐야 한다. 참고로 예술적 혁명 중 기억할 만한 것은 조토(Giotto)가 공간과 부피를 표현할 수 있는 평면을 재발견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스타일에서 탈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나? 혹은 그것이 당신을 구속할 때는 없는가?

나는 매 시즌 새로운 컬렉션을 만들어내야 하는 여성복 디자이너가 아니다. 예술 작품은 우수성을 반영하는 것이지 변덕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내 작품을 알아본다면, 그건 내 입장이 분명하기 때문일 것이다.

당신의 그림은 항상 현실과 맞닿아 있다. 가족, 투우, 탱고 등 일상을 작품에 반영하는 듯하다. 주로 어떤 것에서 영감을 얻는가?

일상에서 발견할 수 있는 매력적인 테마가 많다. 그중에서도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는 것은 라틴아메리카다. 그 외에도 풍경, 죽어버린 자연, 누드 등은 그림에 있어 변하지 않는 테마다. 예술이란 똑같은 것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예술가는 그 어떤 것도, 혹은 그 누구도 완벽하게 찬양할 수 없다. 왜냐하면 다른 이를 따라가는 것은 예술가에게는 ‘끝’과도 같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위대한 작품 앞에서도 비판적 입장을 취할 줄 알아야 한다. 예술이란 ‘끝없는 혁명’이니까.

당신의 그림 속 인물은 이를 드러내고 웃지 않는다. 무표정한 모습이거나 절제된 표정을 보인다. 어떤 의미나 이유가 있는가?

나는 이집트의 그림이나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Piero Della Francesca), 세잔(Cezanne) 등에서 볼 수 있는 무감각한 것들을 좋아한다. 얼굴은 최고의 대상이다. 그림은 그림일 뿐, 정신분석학적 문제와는 관련이 없다고 생각한다.

당신이 작품 속에서 찾고 싶은 아름다움은 무엇인가?

아름다움이란 사상과의 연관성, 기본적 입장, 스타일과의 연관성을 통해 나타나는 것이다.

그림을 시작했을 때와 지금의 작품을 비교했을 때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

내 작품은 달라진 게 아니라 40~50년 동안 진화해온 거다. 나는 늘 강하고 직접적인 방식으로 나를 표현하려 노력했다. 동시에 그림의 테크닉에 대한 지식을 배우려고 노력하기도 했는데, 이런 것들은 요즘에는 잊혀가고 있지만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스스로의 작품에 항상 만족하는가?

늘 나의 작품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유지하려 애쓴다. 그런 자기비판이 작업을 발전시키고 나 스스로를 자극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물론 가장 중요한 자극은 예술에 대한 사랑이다.

보통 작가들은 작품 활동 외에 정치, 경제 등 사회 이슈에는 둔감할 것 같다는 편견이 있다. 하지만 당신은 좀 다른 듯하다. 몇 년 전 이라크 포로들에 대한 학대를 폭로하는 당신의 그림을 보았다. 예술가로서 사회 부조리에 대한 책임감을 지녀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늘 정치에 관심을 두고 있다. 1970년대에는 그 시대 내내 존재했던 라틴아메리카의 군부 독재에 대한 풍자적 작품 시리즈를 만들기도 했다. 또 조국인 콜롬비아에서 일어난 폭력, 납치, 마약 사건 등에 대한 시리즈를 만들기도 했다. 아부그라이브 감옥에서 행해진 미국의 정치적 고문에 대한 시리즈도 있다. 이상한 건 그 일에 관련된 작품을 발표한 중남미 예술가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다. 예술가가 인류의 모든 불행, 불평등에 대해 언급할 수는 없겠지만 이라크 감옥의 경우처럼 외면하지 말아야 할 것들도 있다고 생각한다.

예술로서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예술은 사회를 바꿀 수 없다. 다만 언론이 침묵하거나, 사람들이 더 이상 기억하지 않는 순간들을 영원히 기억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영원한 고발’이라 할까. 만약 피카소의 ‘게르니카’가 없었다면, 독일이 평화로운 바스크 마을에 가한 무차별 폭격을 벌써 잊어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림을 통해 가장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

메시지라기보다는 예술적 즐거움을 통해 작품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통해 어떤 ‘울림’을 전달하고 싶다.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당신을 그토록 활발히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예술에 대한 열정 혹은 무엇을 성취하고 싶은지를 알아내려는 나의 호기심이다. 아직 그림을 그리는 것 외에는 내게 즐거움을 주는 것을 만나지 못해서인지 쉬지 않고 작업하고 있다. 또 작품의 양도 중요하다고 확신하기 때문에 즐거운 마음으로 실천하는 중이다.

당신이 원하는 예술적 목표를 이루었다고 생각하나?

그런 목표는 위대한 거장에게 해당되는 것이다. 한 번도 그림을 배운 적이 없는 나에게는 도달하기 힘든 것이다.

오랫동안 작품 활동을 해왔다. 인생의 후반부를 보내고 있는 지금 당신의 관심을 끄는 것은 무엇인가?

여전히 작업이다. 난 그림과 조각에 완전히 미쳤다. 독서나 음악 같은 것을 약간씩 즐기는 걸 좋아하지만, 취미라고 부를 만한 것은 없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당신의 하루 일과를 알고 싶다.

보통 오전 11시에 작업실에 와서 오후 2시에 점심 식사를 위해 잠시 쉬는 것을 제외하곤 종일 작업에 몰두한다. 매일 오후 9시에 일을 끝내고 저녁밥은 주로 식당에서 먹는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외롭고 과묵한 작업이기 때문에 시끌벅적한 삶을 느끼며 하루를 끝내는 것을 좋아한다.

Beautiful pig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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