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배우의 변신을 홍보하는 단골 수식어는 보통 ‘섹시’, ‘파격’이다. 그런데 만약 그것이 ‘뚱보’라면 어떨까?

Numéro, 2009년 6월
에디터│최태형 스타일 에디터│오충환 포토그래퍼│장원석 헤어 & 메이크업│이꽃잎

영화 <킹콩을 들다>에서 역도 선수를 꿈꾸는 시골 소녀로 변신한 조안. 스틸 사진으로 먼저 만난 그녀는 그야말로 참담했다. 새까만 얼굴에 군데군데 허옇게 핀 버짐, 10kg 가까이 늘렸다는 몸무게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몸매는 보는 사람이 민망할 정도였다. ‘여배우’라는 단어에 내재된 묘한 환상에는 관심 없다는 듯 배역을 택하는 조안. 연기의 어떤 매력이 그녀를 이렇게 망가지게 했을까. 더불어 그녀가 진정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인터뷰를 위해 스튜디오에 도착한 그녀의 금세 날씬해진 모습에 한 번, 헤어와 메이크업, 의상을 꼼꼼히 챙기는 모습에 또 한 번 궁금증이 커졌다.

[ Numéro ] 영화 얘기부터 할게요. 영화를 위해 몸무게를 늘린 게 주목받고 있어요.

[조안] 그래요? 사실 제가 신경성 장염이 있어요. 스트레스를 받거나 예민해지면 배가 아파서 화장실에 가죠. 그런데 10일 안에 살을 찌워야 하는 스케줄인 거예요. 그게 또 스트레스였죠. 먹긴 먹는데 스트레스 받으니 살은 더 안 찌고…. 건강하게 살을 찌우고 싶었는데 시간이 너무 촉박해서 ‘나쁘게’ 몸을 불렸어요. 밤에 라면 먹고, 과자며 케이크며 초콜릿 같은 거 많이 먹었죠.

그래도 여배우인데 예쁘기는커녕 망가진 모습을 보인다는 게 속상하진 않았어요? 또 살이 안 빠지면 어쩌나 불안하기도 했을 거 같은데….

솔직히 살이 안 빠질까 봐 걱정도 됐죠. 그런데 정식 계약도 하기 전에 기사가 나온 거예요. ‘조안, 영화를 위해 몸무게 10kg 증량 목표’ 이런 식으로요. 갑자기 대중과의 약속이 되어버린 거죠. 게다가 또 ‘여배우가 영화를 위해 살을 찌우다니 멋지다’, ‘예쁜 척 안 해서 좋다’ 이런 댓글들이 달리니까 책임감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예쁜 거고 뭐고 일단은 ‘살을 찌워야겠다!’ 했죠. 5kg만 찌워도 된다고 했는데 10kg 가까이 찌웠어요.

약간 등 떠밀린 기분이었겠군요.

이렇게 해놓고 살 안 찌면 관객을 속이는 일명 ‘낚시’구나 하는 생각이 든 거죠(웃음).

아무리 연기 때문이라도 입던 옷을 못 입을 정도로 살이 찌면 속상할 것 같아요.

제가 부족한 게 그거예요. 연기가 좋고 연기자가 천직이라고 생각하는데 패션에 관심이 도통 없어요. 좋아하는 옷도 고작 모자 달린 티셔츠거든요. 주변에서 좀 없어 보인대요(웃음). 저는 제가 좋아하는 것에만 집착하거든요. 좋아하지 않는 것에는 심각할 정도로 무관심해요.

보통 어떤 시나리오에 관심이 가던가요?

다른 연기자들을 보고 깜짝 놀란 게 출연을 결정할 때 참 다각도로 생각한다는 점이었어요. 캐릭터, 흥행, 이슈 등 두루두루 생각하더라고요. 저는 참 단순해요. 그냥 캐릭터만 봐요. 재미있겠다 싶으면 하는 거죠. 그렇다 보니 친구들이 그러면 안 된다면서 시나리오를 자기들한테 가지고 오래요(웃음).

그렇게 조안 씨를 고생시킨 이번 캐릭터의 매력은 뭔가요?

우선 제가 연기한 영자는 소처럼 순하면서도 강한 매력을 가진 아이예요. 그리고 영화 전체로 보면 영화를 최고조에 올려놓는 인물이기도 하고요. 관객에게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배역이에요. 관객이 영화에 몰입해 저를 통해 최고조에 달하는 거죠. 그것 하나로도 충분하더라고요. ‘잘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도 있었지만 배우로서 욕심이 났어요.

배우로서는 어떤 목표를 세우고 있나요?

전 그냥 계속 배우를 한다면 바랄 게 없을 것 같아요. 사실 글 쓰는 걸 좋아해서 동화책이나 만화책을 내고 싶기도 하지만, 연기가 아닌 다른 일을 한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어요. 저의 연기를 보고 사람들이 기뻐한다면 더 좋겠죠.

연기 외에 요즘 관심 있는 건 뭐예요?

음…. 사랑. 아, 되도록이면 연애 얘기는 안 하고 싶었는데 거짓말할 순 없으니….

조안 씨가 생각하는 이상형의 남자는 어떤 사람인가요?

전 눈가에 자연스럽게 주름이 진 사람이 좋아요. 내 눈에 있는 주름은 너무 싫은데 남자 눈가의 주름은 멋져 보이더라고요. 주름진 눈에 소년 같은 눈망울이 제 이상형이었어요. 그런데 오빠(박용우)가 많이 흡사해요. 아직도 꿈꾸는 눈이죠. 나이를 먹을수록 그런 눈을 갖기 힘들어요. 다들 삶에 시달리다 보니까…. 그런데 오빠는 그런 눈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좋았어요.

참 좋아 보여요.

감사합니다. 자꾸 오빠 얘기를 하게 되네요. 제게 요즘 가장 많은 영향을 주는 사람이라…. 저는 되게 냉소적인 사람이었어요. 사람들의 선행도 다 스스로의 만족을 위해서라고 생각했죠. 성악설, 인간은 원래 다 이기적이라고 믿거든요. 그런데 오빠를 통해서 ‘그래도 사랑해야 한다’는 걸 배웠어요. 오빠가 저에게 “배우는 인간에 대한 연민을 가져야 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덕분에 참 많은 걸 생각하게 됐어요. 연기에 있어서도, 내면적인 마음가짐에 있어서도. 본성이 추악한 인간이라 할지라도 사랑하려고 노력하는 밝은 부분을 보게 된 거죠.

이제 연기한 지 10년이 됐어요. 카메라 앞에서 조금은 편해지셨나요?

아뇨, 죽을 때까지 편해지지 않을 걸요? 20년, 30년간 연기하신 선배님도 카메라 앞에서는 긴장하시더라고요. 그냥 돈벌이로 배우를 한다면 일이 숙련되면서 편안해지겠지만 그런 분은 거의 없어요. 프라이드를 가지고 배역을 더 잘 표현하려고 하기 때문에 경력에 상관없이 긴장하는 거죠. 10년 동안 활동하면서 빨리 대중에게 어필해야겠다는 조급함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떨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