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유행가 한 구절에서 흘러간 추억을 꺼내기도 하고 지나간 계절의 향기를 다시 맡기도 한다. 음악은 많은 것을 담고 있다. 그 시절 패션을 꺼냈다.

Numéro, 2009년 8월
에디터 | 최태형 포토그래퍼 | 안지훈

엄정화, 이효리, 손담비. 그녀들의 노래는 몰라도 패션만은 눈에 선하다. 엄정화의 커다란 헤드폰, 이효리의 탱크톱, 손담비의 선글라스…. 새로 나온 앨범은 귀에 설지만 패션만은 지나간 콘셉트까지 술술 나온다. 그렇다. ‘월남에서 돌아온 새까만 김상사’가 유행시킨 것도 월남치마였고, ‘그렇게 내게 남겨둔 인형처럼 쉽게 웃으며 떠나간’ 그가 유행시킨 것도 인디언 추장 헤어스타일이었다.

1970년대 섹시 스타

섹시 스타라는 단어에 이효리나 손담비를 떠올렸다면 조금은 어리다는 증거다. 1970년대 유신 정권 시절에도 섹시 스타는 존재했다. 지금 생각하면 어쩜 저랬을까? 싶을 정도로 맹랑하다. 김추자는 ‘잠자는 돌부처도 돌려세웠다’고 할 만큼 섹시하기로 유명했다. 그녀의 노래 ‘님은 먼 곳에’는 ‘마음 주고, 눈물 주고, 꿈도 주고 멀어져 갔네’를 ‘꿈’ 대신 ‘몸’으로 바꿔 부르는 게 유행일 정도였고, 그 부분에 맞추어 골반을 휙 트는 동작에서는 옷이 날려 속살이 비치기도 했다. 그녀는 노래마다 그 시절 유행하던 히피 스타일의 레이어드 룩, 나팔바지, 월남치마를 특유의 섹시함으로 소화했고 유행시켰다. 패션에서 지금의 할리우드 스타만큼이나 앞서간 그녀의 발언은 지금 들어도 놀라운 패션 리더답다. “나는 브래지어를 하면 소화가 안 돼요. 속에 무엇을 걸치는 건 딱 질색이에요.”

1980년대 롤리팝

발목까지 올라오는 하이톱, 캔디 컬러의 레깅스, 어깨가 도드라지는 파워 숄더 재킷까지. 빅뱅과 2NE1의 얘기가 아니다. 1980년대는 다양한 개방 정책에 앞서 패션에서도 크로스오버가 이루어졌다. 그중에서도 댄싱 퀸 나미와 김완선을 빼놓을 수 없다. 한국적 신스 팝의 장을 연 나미는 ‘빙글빙글’을 부를 때 화려한 색감의 레깅스와 어깨가 과장된 재킷을 입고 흐느적거렸고, ‘인디언 인형처럼’을 부를 땐 인디언 추장 같은 자글자글한 파마 머리가 토끼춤을 출 때마다 찰랑거렸다. 김완선은 88올림픽을 앞두고 한창 출시되기 시작한 스포츠웨어를 입고 애크러배틱한 춤을 선사했다. 오늘 밤은 어둠이 무섭다는 가사가 나올 때면 사람들은 “니 눈이 더 무섭다”라는 말로 화답했다.

1990년대 X세대

오렌지족, 미시족, X세대 등 1990년대에는 참으로 세분화된(?) 세대들이 다양하게 나타났다.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로 다양한 문화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리고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의 등장은 ‘쇼킹’했다. 그 당시에는 말 그대로 ‘쇼킹’한 게 유행이었다. 옷에 붙은 태그를 떼지 않은 채 입기도 하고 스노보드복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기도 했다. 모두 다 서태지의 영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