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스미디어를 장식하는 연예인을 보며 대중이 기대하는 건 대개 이런 것들이다. 사과도 깎을 듯 날카롭게 뻗은 콧날, 술자리에서조차 조신할 것 같은 발레리나의 ‘애티튜드’…. 그러나 우리가 하정우에게 기대해야 할 것은 그런 게 아니다.

Numéro, 2008년
Photographed by Bolee / 에디터 | 최태형 헤어 | 태석(내함) 메이크업 | 오희진(순수) 세트 | 슈가홈

하정우는 모처럼 만나는 ‘불친절한’ 배우다. 그는 대중들로 하여금 그를 편하게 받아들이게 하지 않았다. 자신의 매력을 부담 없이 보여줄 수 있는 역할은 교묘히 피해갔다. 해외 영화제에서 먼저 주목한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 김기덕 감독과 작업한 <시간>과 <숨>을 통해 하정우는 배우로 자리 잡았지만 대중은 그를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드라마 <히트>로 조금 친숙해지긴 했지만 그마저도 잠시뿐이었다. 종잡을 수 없는 배역과 이미지로 결국 대중이 그에게 다가서게 만든 이 남자. <추격자>를 통해 모두를 자신 앞에 멈춰 세운 하정우는 참 이기적인 배우다. 그래서 더 매력적이지만 말이다.

[Numéro] 새로운 이미지로 인터뷰 화보를 찍고 싶었는데 멋진 사진도, 웃긴 사진도 많이 봐와서 어떻게 찍어야 새로울지 모르겠어요.

[하정우] 벌써 그렇게 식상해졌어요? 식상해졌다기보다 고정된 이미지가 없어서 그래요. 사실 어떠한 이미지로 기억되고 싶지 않아요. 고정된 이미지가 없었으면 좋겠어요. 그냥 배역에 쓱 묻어갔다가 묻어온다면 그걸로 족해요.

Q. 그래도 ‘멋지다’ 혹은 ‘웃기다’ 같은 완벽한 이미지 하나면 훨씬 수월하게 활동할 수 있잖아요. CF도 찍고, 돈도 벌고요….

그렇죠. 그런데 재미없잖아요. 돈 적당히 가지고 하고 싶은 거 하고, 적당히 쓸 데 쓸 수 있을 때가 가장 좋은 거죠. 거기에 둘러싸여서, 그 이미지에 갇혀서 하고 싶은 거 못한다는 건 진짜 비극 아닌가요? 이미지로 포장하고 그걸 의식하는 거, 별로 안 좋아해요. 재미라는 단어 자체가 좀 상투적이고 어감이 주는 느낌이 별거 아닌 듯 얕아 보이지만, 재미는 정말 제일 중요한 거예요. 살면서, 생활하면서 무엇을 하든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시간을 보낸다는 건 이 일하고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럼 때려치워야죠. 뭐 하러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으면서까지 이미지라는 성 안에 갇혀서 이 일을 하겠어요. 그 목적이 뭘까요? 연기가 ‘주’가 되면 그럴 필요 없어요.

순간 “당신이 행복하지 않다면 집과 돈과 이름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리고 당신이 이미 행복하다면 그것들이 또한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라고 했던 벵갈의 성자 라마크리슈나가 묘하게 오버랩됐다. 도덕적·인격적인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그에게 ‘재미’는 성자의 행복론처럼 신성한 배우의 존재론이었다. 쉽게 생각하면 아주 쉽지만 어려운 것.

아버지와의 연관도 그런 맥락이에요. 사람들은 제가 나타났을 때 저의 이미지를 쉽게 정의하고 싶어 했어요. 지금도 한 줄의 제목으로 저를 말하고 싶어 해요. 가장 쉬운 제목은 ‘누구의 아들’이죠. 한번은 인터뷰와 상관없는 아버지 얘기를 하기에 다른 얘기를 하자고 했죠. 그랬더니 ‘하정우는 아버지 얘기를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라고 나온 거예요. 또 집에서 아버지가 연기 지도를 해주냐고 묻더군요. 생각해보세요. 밖에서는 배우 김용건이지만 집에서는 그냥 아버지예요. 그냥 열심히 잘해라 정도죠. 아버지 얘기가 하기 싫은 게 아니라 아버지 얘기를 할 자리가 아니었던 거죠.

 

Q. 작품 선택이 조금 남달라요. 편안한 인물이 없어요. 또 <추격자>를 통해 관심을 많이 받았으니 바로 반응이 오는 영화를 선택할 거라 예상했는데, <비스티 보이즈>는 그렇다 쳐도 <멋진 하루>는 의외예요.

<추격자> 이후, 아니, 사실 <용서받지 못한 자>부터 왜 작품 선택을 그렇게 해왔냐고 묻는다면, 정답은 말했듯이 그게 재미있었어요. 어떻게 보면 저는 배우로서 관객들에게 불친절할 수 있어요. 왜냐하면 제가 하고 싶은 작품들만 했으니까요. 물론 드라마 <히트>는 대중에게 좀 더 다가서고 하정우라는 배우의 인지도 면에서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선택한 부분은 있어요.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하고 싶은 작품을 더욱 힘 받아 할 수 있기 위한 선택이었어요.

Q. 빨리 이름을 알리고 주목받고 싶은 생각은 없었어요?

연기는 1996년 말부터 시작했어요. 고등학교 때 매니지먼트에 들어가서 입시 준비를 하며 오디션을 보러 다녔죠. 대학 생활을 돌아보면, 연극 연습실에만 있었어요. ‘캠퍼스의 낭만’이니 ‘소개팅’이니, 그런 거 몰랐어요. 연기만 생각했죠. 그러다 사회에 나와서 보니 그게 아니더라고요. 전 길게 연기하고 싶고 70세 넘도록 살고 싶어요. 그런데 ‘뭐 하러 그렇게 발버둥치면서 살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전 당장 인기를 끌 수 있는 배역보다 ‘내가 뭔가 새로운 걸 대입할 수 있는 배역이다’ 싶으면 해요.

Q. 배역에 새로운 걸 대입하기 위해 개인적으로도 새로운 일을 많이 하세요?

그림도 그리고, 화초도 기르고, 운동도 좋아해요. 피아노도 그렇고, 술도 좋아하고요. 그런 취미들을 다 즐겨가면서, 하고 싶은 것들을 다 하면서 하나씩 대중에게 보여주는 거죠. 단순히 보면 노는 거지만, 느껴봐야 더 잘 전달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의도적으로 많이 접하려 하는 점도 있어요. 그것을 작품 안에서 배역을 통해 하나하나 보여주고 싶어요. 그리고 앞으로 보여줄 것도 많고요. 그럼 제가 연기하는 작품을 접하면서 보는 사람들이 제 이름 앞에 수식어를 붙여주겠죠. 보는 사람마다 입맛대로 붙여주면 좋겠어요. <비스티 보이즈>를 두고 시각에 따라 재미있다고 혹은 비열하다고 말하는 것처럼요.

Q. 연기 이외에도 다른 방면에 욕심이 있는 것 같아요. 그림, 사진, 피아노…. 당신의 취미들은 하나의 큰 맥을 가지고 있고, 구성도 가지고 있잖아요. 혹시 연출자가 되고 싶은 건가요?

맞아요. 연출을 해보고 싶어요. 전체를 다 컨트롤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나중에 할 거예요. 윤종빈 감독과 스타일이 비슷할지도 모르겠어요. 우디 앨런, 팀 버튼 감독도 좋아해요. 이것저것 많은 경험을, 취미를 갖는 이유도 언젠가 그것들에서 뭔가를 뽑아낼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해요.

Q.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에서 조연 ‘맞선 남’ 역으로 나왔을 때, 사실 우정 출연이었는데 크래딧에 ‘맞선 남’으로만 써달라고 했다면서요?

우정 출연이라는 말 자체가 너무 애쓰는 듯 보여요. ‘나 귀한 사람이다. 하찮게 나올 사람 아니다’라는. 자기는 큰 배역만 맡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우정 출연이라고 쓰는 건 그저 연기도 ‘우정’상 하는 것과 같아요. 전 어떤 역할을 하든 그 인물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캐릭터를 설정해요. 그리고 그것을 스스로 받아들여 그 인물이 되려고 하죠. 큰 역이건 작은 역이건 다를 게 없어요. 배역의 비중보다 먼저 생각할 게 연기잖아요.

Q. <추격자> 이후 바뀐 건 없나요?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영화가 잘돼서 좋지만 이렇다 할 변화는 없어요. 제가 하는 작업에 대해 대중이 집중하는 게 좋지만 연기에 임하는 자세는 같아요. 시나리오 보고 배역을 결정할 때도 예전과 같고요. 외적으로는 주변에서 조금 더 집요해졌다는 정도?

Q. 요즘 나오는 스캔들 기사 때문이군요?

사람들 만나는 거 좋아해요. 남자니까 여자 만나는 것도 당연하고요. 최근 스캔들 기사도 사실이라면 문제가 없어요. 여자를 만날 수도 있고 안 만날 수도 있는 거죠. 지금은 그렇지 않은데 그렇다고 하면 그건 잘못된 거고요. 여자 친구가 있으면 숨어서 만날 필요도 없고 그러지도 않을 거예요. 물론 제가 알려진 사람이다 보니 여자 친구가 대중에 노출되어 피해를 입는다면 다시 생각해보겠지만, 생활까지 인기나 대중을 의식한 행동에 갇히지는 않을 거예요.

Q. 연극을 하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고 했죠. 그럼 인기뿐 아니라 연기를 위해서 연극으로 돌아갈 수도 있나요?

<오델로>를 연기한 것이 저에겐 터닝포인트가 됐어요. ‘어떤 게 좋은 연기냐’의 문제죠. 내가 감정을 느껴야 하는 ‘자기중심적인 연기’냐, 아니면 대중이 느껴야 하는 ‘관객 중심적인 연기’냐 하는 거예요. 왜 ‘자기 감정에 취한다’는 말 있잖아요. 자기만의 감정에 빠져서 대사 전달이 안 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우는 건 알겠는데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다, 이건 아닌 거죠. 이땐 기술적 표현도 필요해요. 평소에 잘 관찰해서 연기로 대중이 알아보기 쉽게 전달하는 거죠. 이런 걸 연극에서는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어요. 이것이 연극의 매력이고, 그래서 당연히 할 생각이 있어요. 외국 배우들은 둘 다 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영화냐 연극이냐의 장벽을 두고 싶지는 않아요.

Q. 그래서 아까 말한 것처럼 대상을 연구하고 캐릭터를 설정한 다음에 그걸 몸에 익힌다는 건가요? 기술적으로나 감정적으로 표현하려고?

맞아요. 그렇게 해야 제가 가지고 있는 연기력만으로 연기하지 않게 돼요. 즉 하정우가 가지고 있는 것은 한정되어 있어요. 제 안에 있는 연기 말고도 외부에서 받아들여 한 캐릭터를 만들어야 해요. 그리고 그것만으로는 부족해요. 외워서 하는 연기가 아니라 그걸 몸에 배게 해야 하니까요.

Q. 그럼 그 연기가 끝나고 배역에서 빠져나오기가 힘들지 않아요?

물론 힘들죠. 그래서 바로 다음 작품을 생각하면서 감정을 스위치시켜요. 두 작품의 촬영이 겹칠 때도 있지만 서로 분리시키려고 노력해요. <추격자>와 <비스티 보이즈>를 촬영할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비스티 보이즈>의 재현은 왠지 왼손잡이일 것 같았어요. 그럼 거기서부터 달라지고 분리가 되는 거예요. 두 인물에 따로 빠져드는 게 어렵긴 하지만, 학교 다닐 때 시험 봤었잖아요. 하루에 두 과목 봐도 국어 시험지에 영어 답을 쓰진 않잖아요.

Q. 그렇게 빠져든 배역이기에 애정이 있을 거 같아요. 그래서 <추격자>의 지영민이나 <비스티 보이즈>의 재현에 대해 생각이 달라지거나 동정이 간다거나, 변론하고 싶은 거 없어요?

글쎄요. 애초에 그들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바라보지는 않아요. 그냥 다 똑같은 사람으로 보고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도 있구나 하고 생각할 뿐이에요. 그걸 다른 측면에서 바라보고 편견을 가지고 연기한다는 것은 재미없잖아요. 제가 경찰이거나 혹은 사회적인 입장에서 바라봐야 할 사람이라면 얘기가 틀리겠지만, 배우이기 때문에 그들의 생각에서 연기를 하지 선입견을 깔고 연기하지는 않아요.

Q. 이제 서른이에요. 대중에게 하정우를 배우로서 알린 해이기도 하고요. 본인 스스로 느끼는 서른이라는 나이는 어떤가요?

서른이 되면서 좀 더 배려하고 친절해진 듯해요. 그리고 유연성 있게 사람을 보려고 하는 점이 달라진 것 같아요. 배경이나 위치를 보고 사람을 판단하지 않고 유연하게 어울릴 수 있는 것. 인간적인 교감을 굳이 외부적 요인에 방해 받을 필요 없어요. 그리고 이렇게 하면 거기에서 또 매우 풍부한 감정들을 얻을 수 있죠. 나머지는 똑같아요. 저도 29에서 30으로 넘어가는 숫자가 뭔가 다를 줄 알았는데 아니네요. 숫자는 의미 없는 것 같아요.

Q. 서른이 되면서 활동이 많아진 것도 사실이잖아요. 해외 진출이나 계획은 없나요?

있어요. 아직 확실하게 밝힐 단계는 아니지만 일본과의 합작 영화도 준비 중이에요. 그래서 지금 일본어 과외 선생님도 구하고 있고요. 미국 진출도 준비하고 있는데, 언제가 될지는 좀 더 두고 봐야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Q. 마지막으로 제일 좋아하는 숫자는 뭐예요?

3요. 이유는 없어요. 그냥 3이 좋아요. 그리고 9도 좋아요. 그냥 아무 의미 없어요. 초등학교 때 3번을 많이 했었고, 3반이었던 적도 있고. 그런데… 그냥 모르겠어요. 다 좋아요. 1번도, 2번도, 17번도, 33번도 그냥 의미 없이 다 좋아요. 저는 정말 예전부터 누가 뭐 좋아하냐고 물으면 그냥 다 좋았어요. 먹는 것도, 음악도 그냥 딱 하나 말고 다 좋아요. 그래서 제 친구들이 하는 말이 지금까지 제가 만났던 여자 친구들의 공통점을 찾을 수가 없대요. 전 이것 하나라고 딱 정해놓은 게 없어요. 중요한 것은 그거예요. 그냥 좋은 점을 보려고 해요. 이건 이래서 좋고 저건 저래서 좋고 그래요. 모든 것에 이걸 적용시키면 음악도, 그림도, 모두 다 받아들일 준비가 되는 거예요.

하정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