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quire Korea, 2014년 2월
글/최태형 사진/KBS, SBS, JTBC

종합편성채널(이하 종편)이 처음 등장했을 때 정치적 특혜 시비보다 더욱 흥미를 유발했던 건 PD들의 이직이었다. 방송가에서 흘러나오는 PD들의 거취 관련 가십은 마치 프로스포츠의 선수 영입 전쟁을 연상시키기도 했다. 결국 스타 PD로 호칭되던 적잖은 인물들이 케이블이나 종편 방송국 품에 안겼다. 과연 한 사람이 방송을 바꿀 수 있을까? 기본적인 시청률을 보장받는 공중파라는 거대 이점 없이도 과연 PD가 힘을 쓸 수 있을까에 대한 궁금증이 앞섰다.

케이블로 자리를 옮긴 나영석 PD가 새 프로그램을 시작한다고 하자 시청자의 관심이 쏠렸다. KBS 주말 예능 프로그램인 〈1박 2일〉을 통해 스타 PD 대열에 올라선 당사자이기 때문에 그랬다. 종편행 이슈의 정점에 섰던 때문이기도 했고, 국민 예능의 수장으로 시청자에게 얼굴이 알려진 이유도 있었다.

결론은 아는 바와 같다. 나영석 PD가 케이블로 적을 옮기고 처음 연출한 프로그램 〈꽃보다 할배〉는 소위 ‘대박’이 났다. 〈1박 2일〉과 비슷하게 여행을 주제로 한 포맷이라 식상하다는 비판도 이겨냈다. 할아버지로 예능 프로그램의 소비자인 젊은 세대의 눈을 잡아끌지 못할 거란 우려도 이겨냈다. 자기 복제라는 비아냥도 넘어섰다. 뚜껑을 열자 새로웠다. 흔한 예능 버라이어티에서, 비슷한 여행 포맷을 가지고, 그저 그런 출연진을 내세워 전혀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어냈다. 거기엔 나영석 PD가 프로그램을 요리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장치가 있었다. 배우 이서진이 그 역할을 했다. 이서진은 대선배들과 여행을 하면서 다양한 ‘케미(chemistry)’를 만들어냈다. ‘엄친아’를 대표하는 그가 대선배를 대하면서 보여주는 반전 매력은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뿐만 아니라 이서진을 통해서 이순재, 신구, 박근형, 백일섭이 자신만의 캐릭터를 서슴없이 드러내도록 만들었다. 이는 우연히 얻어걸린 것도, 치밀하게 계산된 대본의 힘도 아니다.

예능 프로그램이 기획되어 방송에 들어갈 때까지 PD들은 출연진을 구성하기 위해 회의를 거듭한다. 현재 〈1박 2일〉를 연출하고 있는 유호진 PD는 출연진 구성의 중요 요소를 이렇게 말했다. “인물의 성격을 기준으로 출연진을 섭외하기도 하지만 우선 고려하는 것은 인물의 구성이다. 소동과 사달이 나면 날수록 재미 요소가 생긴다. 그러려면 첫째, ‘소동’을 제공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둘째는 그것을 ‘사건’이라고 인식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론 그 사건을 크게 부풀려줄 수 있는 인물이 필요하다. 그래서 가장 처음 찾는 인물은 문제를 일으킬 만한 출연자다.” 지금의 〈1박 2일〉 구성에서는 정준영이다. 모두가 쇠고기가 좋다고 해도 혼자서 김밥을 먹겠다고 얘기할 수 있는 인물이다. 그래야만 갈등 즉 ‘소동’이 일어나는 것이다.

SBS 〈런닝맨〉을 연출하고 있는 조효진 PD가 출연진을 결정할 때 중요하게 여기는 캐릭터 구성도 크게 다르지 않다. “좋은 캐릭터가 있으면 나쁜 캐릭터가 있어야 한다. 힘이 센 사람이 있으면 그에게 괴롭힘당할 사람도 필요하다. 이렇게 반대 성격의 사람이 만났을 때 스파크를 낼 수 있다.” 〈런닝맨〉에서 힘으로 게임의 흐름을 비트는 인물은 김종국이다. 김종국은 힘이 세면서도 센스가 있어 분란의 포인트를 잘 이끌어낸다. 물론 방송가에서 ‘깔깔이’라고 부르는, 내내 ‘깔깔깔’ 웃겨줄 수 있는 사람은 기본이다. 캐릭터에 맞는 인물을 찾기 위해서 PD들은 다양한 검증 과정을 거친다. 거창하게 말해서 ‘검증’이지만 인맥을 통해 성격을 파악하거나 직접 만난다. 조효진 PD는 주변 사람들의 추천을 받아 사적인 자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유호진 PD는 주변인들의 인력 풀을 적극 이용했다. 섭외 리스트에 오른 인물의 사전 정보를 세세하게 파악하는 식이다.

하지만 미리 출연진을 파악한다고 출연진들의 성격이 PD가 원한 캐릭터대로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대본 없이 큐시트만으로 진행하는 예능이기에 그렇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들이 황금 캐릭터 구성대로 자리 잡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MBC에서 여운혁 CP와 〈우리 결혼했어요〉의 연출을 함께했던 방현영 PD(현 JTBC)는 말한다. “출연진의 캐릭터를 예측하고 조합하는 것 자체가 프로그램 기획의 시작이다. 그러나 대본을 가지고 연기를 시키는 게 아니기 때문에 처음부터 원하는 대로 캐릭터가 드러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시약을 섞듯 녹화를 해봐야만 알 수 있다.”

시청자와 방송국의 인내심은 그리 길게 가지 않는다. 특히나 예능에는 더욱 냉정하다. 재미가 없으면 바로 없어질 수 있다. 조효진 PD는 프로그램이 살아남을 수 있는 마지노선을 시청률 10퍼센트 정도로 봤다. 그 안에서 출연자들이 빨리 캐릭터를 드러내고 ‘케미’를 일으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 PD들 각각의 노하우가 발현된다. PD 각각의 노하우가 어떻게 적용되느냐에 따라 스타 PD냐 아니냐로 갈라진다. 노하우는 다시 말하자면 연출력이다.

어떤 PD는 예능 안에 장치를 마련한다. 출연자들끼리 짝을 지어 산에 올려 보내기도 하고, 먹을 것을 다 빼앗기도 한다. 미션을 시켜 서로 속고 속이게도 만든다. 또 다른 PD는 자막을 이용해 적극적으로 캐릭터를 만드는 경우도 있다. 그중에서도 편집은 PD의 연출력을 드러내는 큰 항목이다. 출연자들이 자기만의 캐릭터를 뽑아내지 못할 경우 PD는 각 출연자들에게서 같은 양의 갈등을 만들어 촬영을 한다. 이런 식이다. 웃고, 춤추고, 노래하고 우는 모습을 인물 A, B, C에게 동시에 뽑아내고 A에게서는 웃는 모습만, B에게서는 춤추는 모습만, C에게서는 노래하는 모습만 뽑아 편집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되면 출연자는 시청자의 피드백을 받고 자신의 모습을 모니터링하면서 자연스럽게 시청자가 기대하는 캐릭터로 발전해간다.

여기서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너무 작위적인 상황을 만들면 시청자들이 피로를 느끼게 된다. 또 출연진들에게 어떤 캐릭터를 요구하거나 부추기면 안 된다. 출연진도 연예인이기 전에 사람이기 때문이다. 인위적으로 캐릭터를 요구받는다고 느끼면 부자연스러워지고 한정적이 될 수밖에 없다. 그건 캐릭터가 죽는 것과 같다. 돌발 상황에서 재미가 배가되는 예능이기에 그렇다.

방송 PD와 작가들은 하나같이 ‘스타 PD’는 있다고 말한다. 프로그램의 ‘케미’는 섞어보기 전에는 모른다. 같은 환경에서도 자신만의 재료를 찾고, 얼마를 섞을지 결정한 후 언제 쏟아 부을지 그 미묘한 판단에서 승리하는 사람이 있다. 그가 바로 시청률을 건져 올리는 스타 PD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