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quire Korea, 2015년 11월
글/최태형 사진/박남규 스타일리스트/이잎새 헤어&메이크업/이소연

드라마나 영화를 보다 보면 이상하게 눈길이 가는 배우가 있다. 비중이 크거나 특출나게 잘생긴 것도 아닌데(사실 이마저도 실제로 보면 잘생겼다) 은근하게 궁금한 배우다. 소위 신 스틸러라 불리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의 뒤를 캐보면 열에 아홉은 연극 무대 출신이다. 대학로에선 툭툭 발에 차일 정도로 많은 게 ‘좋은 배우’다. 좋은 연극을 찾는 건 까다로울지 몰라도 좋은 배우를 찾는 건 어렵지 않단다. 한두 편 정도의 연극을 정성껏 골라 감상하면 그중 두어 명의 좋은 배우는 꼭 건진다. 그럼에도 여전히 연극배우들이 낯선 건 그만큼 연극이 접하기 쉽지 않다는 방증이다.

〈미생〉에서 대중과 처음(제대로) 만난 전석호는 이미 연극 무대에서 잔뼈가 굵은 배우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이상하게 눈길을 끄는 배우고, 잘생긴 것 같진 않았지만 실제로 잘생겼으며, 오만상을 찌푸리는 얼굴(드라마 속)에도 은근하게 궁금했다. 그런데 지금 그 역시 익숙한 인물은 아니다. 〈미생〉이 연달아 상종가를 갱신한 후 지겹도록 〈미생〉의 배우들을 만날 수 있었지만 전석호는 달랐다.

“스물네 살에 제대한 후부터 공연을 쉬어본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미생〉 끝나고 처음 쉬었어요. 거품이 빠지기를 기다렸거든요. 〈미생〉 안의 하 대리를 알아봐주신 거라고 생각해야 하는데 제가 겉멋이 들 것 같아서요. 마음도 좀 붕 뜬 것 같아서. 〈미생〉 끝나고 한 8개월 만에 지금 대학로에서 하는 연극 〈트루웨스트〉가 처음으로 인사 드리는 거예요.”

스테이지 기사를 위해 대학로 연극을 보다 보면 좋은 배우를 찾는 것보다 그들이 거기 있다는 걸 알리는 게 더 어렵다고 느껴진다. 〈미생〉이라는 좋은 파도를 만나고도 올라타지 않다니, 전석호의 의도가 궁금했다.

“처음 연기를 시작했을 땐 돈 때문이었어요. 방송 여기저기 기웃거렸죠. 그런데 재미 없더라고요. 그리고 이걸로 돈을 벌 수는 없겠다 싶었어요. 그러다 공연하는 선배들을 만난 거예요. 자연스럽게 연극영화과에 들어가게 되고 연극을 시작하게 됐어요. 일찌감치 연기로 돈을 벌 수 없다는 걸 알았기에 급하진 않았어요. 돈도 인기도 아니면 내가 이걸 왜 하고 있나?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건, 전 진실을 얘기하고 싶다는 거예요. 사람들이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여준다든가, 혹은 듣고 싶은 얘기를 해주는 거죠. 여과 없이 보여주고 싶은 게 제 연기 철학이에요. 지금의 감정 상태, 서른의 나, 서른한 살의 나를 그대로 담아 사람들한테 보여주고 싶어요.”

이해가 안 갔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대중 앞에 서는 사람이 대중의 관심을 피해 자기 안으로 들어가버리는 게 답답했다. 나보다 더 답답할 전석호의 소속사 식구들을 대신해 물었다. 왜냐고.

“저는 동시대 사람들과 공감하고 싶어요. 그런데 꾸민 게 아닌 진짜 내 모습으로 공감하고 싶은 거죠. 예전에 선보인 연극 〈인디아 블로그〉나 〈터키블루스〉는 정말 무작정 여행을 가서 경험한 얘기를 연극으로 만든 거예요. 연출가와 직접 떠나고, 제가 제 대본을 쓰기도 하고요. ‘여행이 좋다’는 메시지를 강요하는 게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를 그대로 보여주고 느끼게 하는 거죠. 지금 하는 〈트루웨스트〉를 본 한 아주머니가 가슴을 두드리며 껄끄러운 이야기가 답답해서 싫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전 그걸 원해요. 〈트루웨스트〉는 가족 이야기예요. 껄끄러운 가족의 단면이죠. 그대로 보여주고 싶어요. 사람들이 진짜의 감정을 하나씩 받아 가면 좋겠어요.”

나 역시 가슴이 답답했다. 〈트루웨스트〉 때문은 아니다. 그의 연극은 이미 두어 번 본 적이 있고 그게 아니라도 마주 앉아 급변하는 그의 표정만 봐도, 연기관만 들어도 좋은 배우라는 걸 알 것 같은데 연극 무대 더 깊이 내려가겠다니 일종의 도피가 아닐까?

“TV나 영화를 하지 않겠다는 건 아니에요. 그런데 어떤 시선에서 보느냐는 달라요. 연극인이 자부심을 가져야 해요. TV와 라디오가 다르잖아요. TV가 라디오 스타를 죽였다곤 했지만 보는 음악과 듣는 음악이 같을 수는 없어요. 여전히 듣는 음악만의 매력이 있는 거죠. 연극도 그래요. 이곳에선 일 년에도 수십 번의 오디션을 보는 것과 같아요. 아무리 오래된 배우라도 마찬가지예요. 어떤 사람이 보러 올지 모르고 매번 새롭게 감정을 잡으니까요. 그 자체가 오디션이에요. 아직은 스스로를 더 다듬고 있어요. 그러면서 매일 연극하며 오디션을 보는 중이죠. 꼭 가서 오디션을 보지 않아도 말이에요. 하지만 연극에 대한 자부심이 있어요. 지금 제가 하는 공연이 전 세계에서 저만 하는 공연이잖아요. 영화는 하루에 동시다발로 여기저기서 보여주지만 연극은 달라요. 유일무이하거든요.”

〈미생〉이라는 주류에서 스스로 비주류로 향하는 전석호. 물론 대중이 그를 가만히 두진 않겠지만 마음이 좀 급해졌다. 좀 더 빠르게 세상에 나왔으면 하고….

“저는 비주류예요. 유명하고 안 하고 문제는 아니고요. 제가 하는 방식이 그래요. 열 번 공연하면 열 번 다 새로워요. 매번 새롭게 부딪쳐야 연극을 만들 수 있으니까요. 가본 길이 없죠. 그래서 비주류예요. 어쩌면 안정적인 걸 추구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죠.”

안정을 피한다니…. 전석호를 어쩌나 싶었다. 물론 아티스트가 안정을 피해 매번 새롭게 창조한다는 건 어쩌면 매번 새로운 동력을 받는 일이다. 그가 잠깐의 등장만으로도 눈을 잡아끄는 연기를 보일 수 있는 이유일 테다. 그럼에도 여전히 쉽지 않은 곳을 향하는 그가 안타까웠다. 좋은 배우 전석호를 어떻게 해야 하나…. 이제 막 물이 들어왔는데 우선 젓고 봐야하지 않나? 그래야 오래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이다. 이 친구를 어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