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quire Korea, 2016년 1월
에디터_최태형

이제 더 이상 4K(4096×2160픽셀) 해상도가 낯설지 않다. 당연히 1670만 색 이상을 표현하는 트루 컬러가 보편적인 시대가 됐다. 그런데 고작 가로세로 500여 픽셀, 256색상만을 담을 수 있는 조악한 GIF 파일이 2016년 온라인의 대세다.

움짤이라고 부르는 온라인 콘텐츠 얘기다. ‘움짤’은 ‘움직이는 짤방’을 줄여서 부르는 말이다. 짤방이 ‘짤림 방지'(사진 사이트에서 사진이 없는 글은 삭제되는 규정을 피하기 위한 용도)용 사진을 말하는 줄임말이었으니 움짤은 줄인 말을 또 줄여 만든 신조어다. 이름만 듣고도 알 수 있듯 움짤은 인터넷 세대에 최적화된 콘텐츠다. 그리고 어쩌면 올해부턴 인터넷 시대에 가장 완벽한 예술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사실 GIF 포맷은 1987년에 첫선을 보인 구닥다리 이미지 포맷이다. 그 시대로서는 이미지의 퀄리티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용량을 40퍼센트나 줄인 획기적인 압축 포맷이었다. 한 장의 사진에 여러 장의 이미지를 순환시킬 수도 있어 짧은 애니메이션 효과를 낼 수 있는 장점도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장점은 데이터 이동 속도와 용량, 이미지 퀄리티가 낮았던 30년 전의 얘기다. 윈도 95가 표현하는 색상이 256컬러였으니 딱 윈도 95 수준의 기술이라는 뜻이다.

그런데도 어떻게 움짤은 30년을 살아남아 대세가 됐을까? 사진을 이어 붙여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대신 4K 영상을 찍고, 트루 컬러 이미지를 누구나 만들어내는 시대에 말이다. 한시가 멀다 하고 새롭고 빠른 것으로 대체되는 온라인 공간에선 더더욱 믿기 힘든 생명력이다.

정답은 기술 영역 밖에 있다. 움짤은 기술 면에선 논할 가치가 없는 구닥다리지만 온라인 플랫폼과 콘텐츠 소비 패턴을 고려하면 가장 뜨겁게 소비되는 콘텐츠이기 때문이다.

온라인 전반에 자리 잡은 스낵 컬처를 가장 잘 표현하는 게 움짤이다. 스낵 컬처는 마치 간식처럼 간단하게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을 말한다. 온라인의 흐름이 PC에서 모바일로 넘어오면서 언제든 콘텐츠 소비를 위한 플랫폼을 들고 다니게 됐다. 이제 더 이상 콘텐츠를 보기 위해 의자에 앉아 모니터를 켜거나 책장을 들추지 않는다. 콘텐츠는 집중해 취득하는 게 아닌 몇 초, 몇 분의 짬을 채우기 위한 요소다. 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콘텐츠는 잘게 부서질 수밖에 없어졌다. 한 권 단위의 책에서 140자 글자로, 2시간 분량의 영상에서 3초짜리 짤방으로 바뀌어버린 것이다. 가장 보수적인 편집 매체인 신문 역시 스낵 컬처에 최적화한 카드 뉴스를 만들고 있을 정도다.

사실 스낵 컬처는 그동안 일종의 B급 문화로 치부됐다. 전통적인 콘텐츠 제작자 사이에선 온전하지 못한 낚시 콘텐츠로 인식되기도 했다. 짧고 강렬하게 시선을 끌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특성이 온라인 낚시 콘텐츠와 맥락을 같이하기 때문이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스낵 컬처의 자극적이고 휘발적인 콘텐츠가 단순히 소비를 목적으로 만들어지고 있으니.

그러나 B급 저질 콘텐츠로 치부하기에는 그 세가 막강하다. 어쩌면 기술 발전의 방향을 스낵 컬처라는 문화의 힘으로 바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정하긴 싫지만 어쩌면 콘텐츠의 힘으로 기술 마저 바꾼 사례가 될 수도 있다.

2015년은 트위터를 비롯해 텀블러, 페이스북에 이르기까지 온라인과 모바일을 통해 움짤을 볼 수 있도록 사이트를 개선한 한 해다. 30년 전 포맷을 위해 가장 최신의 웹 서비스가 코드를 수정한 거다. 얼마 전에는 요즘 가장 각광받고 있는 SNS 서비스, 인스타그램이 움짤을 만들 수 있는 새로운 앱을 출시했다. ‘부메랑’이라 이름 붙인 이 최신 앱은 그저 셔터를 누르면 움짤을 만드는 기능뿐이다. 가장 최신의 앱이 가장 단순해진 거다.

움짤의 전성시대를 예견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애플 때문이다. 아이폰은 카메라 전문 업체인 캐논에서 만든 주력 모델보다 더 많은 사진을 찍는 카메라다. 애플이 가장 최근에 선보인 아이폰6S에 라이브 포토라 이름 붙은 움짤 촬영 기능이 추가됐다. 라이브 포토를 이용하면 3초 분량의 움짤을 촬영할 수 있다. 또한 잠금 화면의 배경으로 움짤을 설정할 수도 있다.

가장 강력한 콘텐츠 유통 플랫폼으로 부상한 페이스북도 움짤 전성시대에 한몫하는 중이다. 페이스북은 아이폰으로 촬영한 움짤을 모바일 앱에 표시할 수 있도록 개발 가이드를 수정 배포할 예정이다. 이미 프로필 사진으로 7초 분량의 움짤을 설정할 수 있도록 해 프로필에서 움직이는 사진을 볼 수 있게 한 상태다(미국 계정부터 적용). 미국 온라인 TV 스트리밍 업체 훌루는 움짤 전문 검색엔진을 출시하기도 했다. 이로서 IT의 최전선에 있는 서비스가 모두 움짤을 최신 기능으로 추대했다. 구닥다리 사진 포맷과 B급 마이너 정서로 만든 콘텐츠가 모바일 시대와 만나 가장 핫한 메이저 콘텐츠로 인정받게 된 거다.

그러나 여전히 짧고 선정적이 되어가는 콘텐츠가 반갑지는 않다. 나 역시 짤방을 필두로 한 스낵 컬처가 익숙하지만 콘텐츠 시장 전체를 지배한다는 것에 대해선 부정적이다. 그럼에도 생활과 미디어 환경의 변화에 따른 또 다른 문화라는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아니 인정하지 못해도 이미 대세임을 알아야 한다.

‘움짤은 온라인에 적합한 가장 완벽한 예술’이라고 말한 어느 외국 IT 전문지의 말이 어쩌면 현실일지 모른다. 아마도 올해는 온라인의 가장 완벽한 예술이 가장 맹위를 떨치는 해가 될 것이다. 바야흐로 짤방 전성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