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quire Korea, 2015년 10월
글/최태형
지금 한국의 스타트업 생태계는 매우 비뚤어져 있다. 혁신의 가장 일선에 있어야 할 IT 업체들의 행보가 보수적이고 탐욕스러운 대기업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철학보다는 시장점유율을 높이는 데 혈안이 돼 있기 때문이다. 발 빠르게 다른 서비스를 베끼는 전략을 상대를 가리지 않고 쓰고 있는 실정이다. 이미 대기업이 되어버린 포털들의 서비스가 창의적이거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지 못하는 이유다. 지금 포털들의 전략을 보자면 고민해볼 필요도 없이 패스트 세컨드 전략이다. 누구든 괜찮은 서비스를 만들면 따라 만든다. 막대한 자본과 홍보력을 이용해 시장을 장악하고 선점하면 그만인 것이다. 그사이 시간과 돈, 열정을 들여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어낸 스타트업은 문을 닫는다. 이런 선례는 수도 없이 많다. 잠깐 앱스토어를 열어봐도 트위터, 인스타그램, 페이스북을 따라 만든 대형 IT업체의 앱을 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사실 이마저도 서비스의 본질은 제쳐두고 이익의 극대화만을 노리는 경우가 많다. 최근 시장을 장악한 카카오택시가 대표적이다.
카카오택시가 벤치마킹한 우버는 기존 사업자를 위한 게 아니었다. 놀고 있는 잉여 자원을 소비자와 연결시키기 위한 서비스였다. 가치는 있지만 사용되지 않는 자원을 꼭 필요한 곳에 연결시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거다. 카카오택시는 우버의 형식은 빌렸지만 잉여 자원의 활용이라는 본질은 차용하지 않았다. 결과는 단순 매칭 서비스로의 전락이다.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지 못하는 매칭 서비스는 수수료 싸움으로 전락한다. 이득을 위해선 매칭 당사자들에게 수수료를 받아야 한다는 말이다. 또한 기존에 존재하는 영세 매칭업체들의 일자리를 뺏을 뿐이다. 대기업의 인력을 이용해 서비스를 베끼고 치킨 싸움을 통해 시장을 잠식하는 거다. 우버와 카카오의 차이는 본질을 잃은 서비스가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카카오택시는 물론 좋은 점도 있다. 카카오톡과 연동해 서비스 사용자의 편의를 극대화한 점이다. 이만큼의 가치도 창출하지 않고 그저 기생하는 앱이 한국에는 너무 많다. 대표적인 것이 배달 앱이다. 배달 앱은 전화를 걸어 음식을 주문하는 방법을 앱을 통해 자동화했을 뿐이다. 이 때문에 단순 중계업자로 포지셔닝된다. 앱을 만들었다는 것만으로 힘 하나 들이지 않고 음식점주의 지갑에 손을 대는 거다. 이마저도 수많은 업체가 난립 중이며 수수료를 낮춰 시장을 장악하려는 치킨 게임에 들어간 상태다.
기존에 존재하던 것들을 단순히 모바일로 옮겨오는 일은 IT업체가 할 일이 아니다. 이제 단순히 플랫폼을 이동하는 것보다 더욱 진보한 무엇인가를 보여줘야 할 때다. 모바일만이 줄 수 있는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는 뜻이다. 좋은 스타트업을 발굴해 투자하는 레드우드의 대표 제이 박(Jay Park)은 그 해답이 잉여력에 있다고 말한다. 단순히 유통이나 매칭을 통해 수수료를 받아 기생하는 것이 아닌 유휴 자원에 가치를 부여해야 한다는 말이다. 모바일을 플랫폼으로 하기 때문이다. 개인 모두가 가지고 다니는 모바일은 가치를 인정받지 못해 숨어 있는 에너지를 끌어모을 수 있는 최적의 장치다. 기존의 사업자를 매칭할 것이 아니라 유휴 자원을 활용해 가치를 낭비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비어 있는 자동차의 한 좌석을 모바일을 통해 공유하는 일, 쉬고 있는 인력을 실시간으로 끌어모아 일자리를 제공하는 일 등이 그렇다. 모바일을 통해 잉여력을 에너지로 바꾸는 일, 그게 지금 스타트업이 해야 할 일이다.
[박스] 잉여력 활용 서비스 예
페달링(Pedaling)
새로운 세차 습관을 제시하는 일명 세차 배달 서비스다. 모바일 앱을 통해 세차를 원하는 사람과 여유 시간에 세차 서비스를 제공해 돈을 벌고자 하는 사람(페달러)을 연결해준다. 마치 우버처럼 세차를 원하는 차의 위치와 가장 가까운 페달러를 연결시킨다. 세차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을 페달러라 부르는 건 자전거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페달링 서비스는 단순히 차량 소유자만을 위한 서비스가 아니다. 오히려 페달러라 부르는 유휴 인력에 집중한다. 그들이 원하는 시간에 필요한 만큼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에 맞는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게 목적이기 때문이다. 잉여력을 에너지로 치환하기 위한 노력이다.
리프트(Lyft)
미국에서 우버와 함께 업계를 선도하는 리프트는 카셰어링 서비스다. 운전자와 탑승자를 모바일 앱을 통해 연결하며 일반 택시보다 낮은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다. 리프트 라인(lyft line) 개념을 활용하여 운전자가 움직이는 방향과 비슷한 손님이 매칭되면 운전자가 잉여 좌석을 활용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카풀과 택시의 장점을 채용한 서비스다.
블라블라카(BlablaCar)
유럽의 온라인 카풀 서비스로 도시 간 이동을 하는 차량의 잉여 좌석을 공유할 수 있도록 돕는다. 드라이버의 일정 중 남는 빈자리를 공유하는 모델로, 서비스 수수료를 받지만 수익 창출보다 잉여 자원을 활용한다는 평가다. 그 덕에 우버와 달리 규제를 심하게 받지 않고 있다. 서비스 사용자의 편의와 비용 절감뿐만 아니라, 혼자 타고 이동해서 생기는 에너지 낭비를 줄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