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quire Korea
글/최태형

No.24 돈으로 여자 꾀기

다섯 장이 맞았다. 그래도 다시 셌다. 이번엔 엄지에 침을 묻혔다. 총 세 번이었다. 아줌마는 핀잔을 줬다. 한눈에도 다섯 장이라고 했다. 뭘 또 세어보느냐고도 말했다. 웃었다. 욕을 했어도 웃었을 거다. 못 미더운 건 몇 장인지가 아니었다. 내 돈이란 사실이었다. 천만원짜리 수표 다섯 장을 든 26살은 나밖에 없을 것 같았다. 기뻤다. 부자가 된 것 같았다. 아니 부자였다. 실감이 안 났다. 수중에 모은 돈으로 만든 카페가 1년 만에 5000만원이 됐다. 쉽게 번 돈 같았다. 쉽게 벌면 쉽게 나간다고 했다. 그래서 쓰기로 했다. 사는 게 남는 거라고 해서다. 우선 술을 샀다. 사람이 남는다고 해서다. 카페를 도와준 친구들과 자축했다. 오늘은 내가 쏜다고 했다. 양주라고 덧붙였다. 10명 불렀는데 20명이 왔다. 20대 때는 누가 쏘면 우선 모였다. 영동대교 앞 나이트였다. 룸을 잡았다. 생일 같았다.

따라온 애 중 예쁜 애가 있었다. 나는 티를 냈다. 친구들은 우리 둘을 엮었다. 물주가 나라서 비위를 맞춘 거다. 20명이 돌아가면서 추켜세웠다. 신났다. 오늘은 내가 쏜다며 생색도 냈다. 친구들은 나를 카페를 운영하는 친구로 소개했다. 방금 막 처분한 건 말하지 않았다. 카페가 유행일 때였다. 여자애는 나를 ‘귀한 집’ 자식으로 여겼다. 집에서 카페를 차려준 우아한 20대였다. 나는 한술 더 떴다. 주머니에서 수표를 꺼냈다. 오는 길에 입금하려다 실패한 돈이다. 발행한 은행에서만 입금할 수 있는 건 몰랐다. 어쨌든 꺼냈다. 대수롭지 않은 척했다. 아빠가 차 사라고 줬다고 했다. 드라마에서 본 거다. 먹혔다. 여자애는 순진했다. 드라마 같다고 했다. 내가 본 드라마를 그 애도 봤었나 보다. 어떤 차를 살 것인지는 여자애한테 위탁했다. 벤츠를 원했다. 고민했다. 난 포르쉐를 원했다. 선심 썼다. 그녀가 원하니 그렇게 하자고 했다. 둘 다 얼마인지는 몰랐다. 상관도 없었다. 살 것도 아니니까. 이미 그녀에게 난 26살 벤츠 타는 카페 사장이었다. 돈이 좋았다.

눈을 떴다.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다. 엄마였다. 그땐 아직 보고 없는 외박은 불가였다. 여자애를 깨워 보냈다. 엄마 때문에 벤츠는 다음에 사러 가기로 했다. 엄마 비위를 못 맞추면 십원도 없다고 했다. 사실이었다. 집에 갔다. 빗자루가 날아오는 속도보다 빠르게 돈을 꺼냈다. 술 먹고 남은 돈이었다. 엄마는 좋아했다. 나도 좋았다. 돈으로 하루아침에 두 명의 여자를 꾀였다.

No.25 가족의 임종 지키기

이별은 많다. 서른 즈음이면 매일 이별하며 산다. 3년을 만나도 3분이면 남이 된다. 이해한다. 3분 만에 연인이 되기도 하니까. 힘든 이별은 기대로 잊는다. 다시 만날 수도 있다는 기대다. 다시 만나면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잊힌다. 다 그런 거다. 진짜 이별은 영영 볼 수 없는 이별이다. 죽음이 그렇다. 가족이라면 억장이 무너진다. 사랑했다면 힘들다. 미워했다면 괴롭다. 짧은 순간 풀어야 할 숙제가 많아서 그렇다. 가장 견디기 힘든 건 죽음의 순간이다. 손 내밀면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매달리면 맘을 바꿀 것도 같다. 내 가족은 내가 잘 아니까. 허사다. 천의는 단호하다. 지켜줄 도리가 없다. 바라만 봐야 한다. 숨이 턱까지 차는 모습도 맥박이 약해지는 모습도…. 지켜보는 것만 허용된다. 가슴이 저민다. 어찌할 수 없는 답답함과 이유 모를 서운함이다. 죽음은 외롭다. 누구는 남기고, 누구는 떠나보낸다. 사람 사이에 할 수 있는 가장 잔인한 이별이다. 피할 수 없어 버티는 것이다. 그렇게 순응하는 것을 배운다. 떨쳐낸다. 그러면 인생의 큰 해답이 남는다. 망각이다.

No.26 자신만의 웹사이트 만들기

웹사이트는 소통의 범위를 확장시킨다. 책을 내는 것과 비슷하다. 하고 싶은 말을 적어 타인에게 전달할 수 있다. 물리적 거리도 무시한다. 그래서 웹에 사이트를 업로드하는 것을 ‘출판’이라고 말한다. taihyoung.com을 만들었다. 뭔가 있어 보인다는 평가다. 그럴 수밖에 없다. 내 칭찬뿐인 사이트다. 내가 만들었으니, 내 맘이다.

No.27 사랑하는 사람과 언쟁 중에 헤어지자고 말하기

사랑했다. 결혼하고 싶었다. 내 맘은 그랬다. 그녀도 사랑한다고 했다. 결혼하고 싶다고도 말했다. 그러나 관계는 힘들었다. 구속이 심했다. 불만도 많았다. 그녀는 내게 어떻게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사느냐고 했다. 그때 이직을 했다. 그녀는 안정적인 직장을 버리고 이기적인 선택을 했다고 말했다. 슬펐다. 솔직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함께 행복하고 싶어서 그랬다. 그녀에게 말했다. “나는 네가 원하는 삶을 살 생각도, 살 수도 없어. 너와 함께여서 행복했는데 지금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건 너야.” 말하면서도 슬펐다. 하지만 덧붙였다. “너는 나를 나로 살 수 없게 해. 내가 불만이라면 헤어지자.” 이런 식이라면 그녀가 불행할 것 같아서 그랬다. 우린 헤어졌다. 영화처럼 나도 사랑해서 헤어져 봤다.

No.28~32 (항목명만)

No.28 우상 만나기 / No.29 우상에게 실망하기 / No.30 비행기, 기차, 배 등 이동 수단을 아슬아슬하게 놓치기 / No.31 아무에게도 묻지 않고 인생에 중요한 결정하기 / No.32 남들과 다른 선택하고 후회하지 않기

No.33 다니는 회사의 몰락을 지켜보기

사장이 자기가 사업의 신인 줄 알 땐 그나마 괜찮았다. 자신을 악마라고 생각할 때가 진짜 최악이었다. 금수저를 물고 사장이 된 인간이 자기개발서를 읽는다면 위험하다.

No.34 연애가 달콤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연인에게 차이기

슬프지만 사실이다. 감정은 정당한 이유 없이 사라질 수 있다. 그것도 자주 흔적도 남기지 않고 그런다. 물어도 소용없고 울어도 마찬가지다. 연락이 닿는다면 그것만으로도 사치다. 종종 이유도 모르는 끝이 있다. 닿지 않아 질문도 할 수도 없는 끝. 연애가 그런 거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외워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No.35 노래의 주인공이 되어보기

그녀는 뮤지션이었다. 한 시간 정도의 인터뷰를 마치고 우린 사랑에 빠졌다. 비약해서 요약하자면 그렇다는 말이다. 좋아한 건 언제나처럼 내가 먼저였다. 매번 퇴근하는 길에 자연스럽게 그녀의 집에 들렀다. ‘지나가는 길’이라는 핑계만큼 자연스러운 건 없다. 회사는 강남, 그녀의 집은 홍대, 우리 집은 성북동이었다. 사랑의 트라이앵글이었다. 고백은 그녀가 먼저였다. 그녀는 눈치가 빨랐다. 뮤지션답게 사랑 노래로 러브레터를 대신했다. 내가 귀에 속삭인 말들은 노래가 돼 그녀의 입으로 흘러나왔다. 좋았다. 내가 좋아하는 뮤지션이자 사랑하는 사람의 노래에 등장하다니. 신기했다. 그러다 헤어졌다. 어느 가을에 우린 나란히 서 있었다. 유난히도 차가운 바람이 불었다. 거침없이 내뱉던 나의 불만들이 그대로 가사가 됐다. 약이 올랐다. 우리의 이야기가 발가벗겨지는구나 싶었다. 기쁨도 불행도 고작 악보 몇 장 차이다.

No.36 자신만의 노래 가사 쓰기

노래를 하는 건 좋다. 그게 자신의 이야기라면 더더욱. 기쁠 때도 슬플 때도 노래할 수 있게 된다.

No.37 누군가의 우상이 되기

우상이 된다는 건 주목받는다는 뜻이다. 행동을 바꿀 필요는 없겠지만 행동에 대한 책임은 감수하게 된다. 책임질 일을 다 책임지는 어른은 흔치 않다. 우상이 되면 자의든 타의든 그렇게 된다. 나에게도 남에게도 괜찮은 일이다.

No.38 외국 사람과 주먹다짐하기

대학 때였다. 영국으로 연수를 갔다. 밖에서 먹는 밥이 질릴 때쯤 여자 친구가 생겼다. 여자 친구 집에서 밥을 해먹기로 했다. 큰일이었다. 주방엔 아무것도 없었다. 함께 마트에 갔다. 부부 같았다. 부부는 아니었다. 계산이 똑 부러지는 아이였다. 여자 친구가 식재료를 사는 대신 난 주방용품을 사주기로 했다. 짠순이였다. 콩깍지가 씌어서 살림은 잘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비명이 들렸다. ‘엄마야!’였다. ‘오 마이 갓!’인가 싶었다. 아니었다. 엄마를 불렀지만 날 부르는 소리였다. 달려갔다. 여자 친구는 울었다. 무슨 일인가 싶었다. 한국 식재료를 보고 엄마가 떠올랐나? 그럴 리 없다. 비싸서라면 또 모를까?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여자 친구가 손가락으로 누군가를 지목했다. 백인 남자였다. 손가락질은 실례인 것 같아서 제지했다. 여자 친구는 짜증을 버럭 냈다. “저놈이 키스하고 싶다며 입술을 내밀었다고!” 내게 소리도 질렀다. 상전이었다. 화가 났다. 감히 내 여자 친구에게…. 그놈을 불러 유창한 영어로 물었다. “왓 더 퍽 디쥬 세이 투 마이 걸프렌드?” 화를 내야 할 것 같아서 욕을 좀 섞었다. 백인은 순진한 얼굴로 말했다. “왓?” 나는 한 번 더 말했다. 백인 남자는 또 물었다. “왓?” 나는 답답했다. 또박또박 끊어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왓, 디드, 유, 세이…” 하는데 여자 친구가 다시 짜증을 냈다. “바보야! 못 알아들은 척 하잖아!” 아! 그런 거였구나 싶었다. 화가 났다. 왜 내 여자 친구를 못살게 굴어서 날 이리 힘들게 하나. 그건 아니다. 내 여자 친구를 희롱한 놈을 혼내줘야지 싶었다. 순간 욱했다. 이러나저러나 못 알아들을 거 한국 욕을 했다. 된소리 사자후를 날렸다. ‘놈’보단 ‘년’이 더 무서울 것 같아 욕은 죄다 ‘년’으로 끝냈다. 녀석이 움찔했다. 백인이 주눅 든 모습이라니 신기했다. 나는 기세등등했다. 멱살도 잡았다. 이때다 싶어 흔들기도 했고 발로 다리를 걷어차기도 했다. 백인은 사과했다. 미안하다고 했다. 나는 사과는 여자 친구에게 하라고 했다. 욕을 알아들은 것도 여자 친구뿐이니까…. 백인은 말을 잘 들었다. 한국말도 통했던 것 같다. 그때 언어에 자신감이 붙었다. 당당하면 세계 무대에서도 통한다는 교훈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