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카메라의 스펙 싸움이 새롭게 정의되고 있다. 좋은 디지털카메라의 조건이 바뀌었다는 얘기다.

Esquire Korea, 2013년
글/최태형 사진/우창원

이제 셔터는 ‘일단 누르고 보는 것’이 되었다. 역순으로 21방의 필름을 세던 것도, 기다림 끝에 신중히 셔터를 누르던 기억도 다 옛날 얘기다. 한때나마 필름 카메라 마니아였던 나로선 인정하기 쉽지 않지만 벼르고 별러 찍는 사진의 미덕은 아날로그의 쇠퇴와 함께 막을 내렸다.

좋은 디지털카메라는 쉽게 꺼내 빨리 찍고, 많이 찍어서 고를 수 있는 것이다. 사진 전문가가 아니라면 더더욱 그렇다. 남는 건 사진뿐인 세상에 그래야 많이 건진다.

한동안 DSLR 카메라를 들고 조작감을 음미할 때도 있었다. 필름 카메라의 장점을 따지던 체크리스트로 디지털카메라까지 채점하던 시절. 있어도 안 쓰는 기능은 괜찮지만 없어서 못 쓴다면 큰일이었다. 렌즈도 바꿀 수 있어야 하고 수동 모드도 완벽해야 했다. 과도기 시장에서 전형적인 스펙 싸움이 극에 달했다.

모두가 디지털카메라 하나씩은 가지고 있는 요즘엔 딱 필요한 기능만 모은 카메라가 시장을 재편하고 있다. 렌즈 교환 대신 가장 많이 사용하는 표준 화각의 렌즈를 달아 보디 사이즈를 줄이고 효율은 높였다. DSLR만큼 이미지 센서를 키운 것도 높아진 눈높이를 만족시킨다. 불필요한 기능을 버리면서 얻은 장점은 또 있다. 1초대의 빠른 반응 속도는 순간을 빠르게 캐치할 수 있게 한다. 스펙 싸움을 넘어 새로운 시장을 연 카메라를 모았다.

1 RICHO GR

현재 APC-S 센서를 내장한 카메라 중 가장 작은 카메라. 아이폰5에 가릴 정도의 포켓 사이즈를 자랑한다. 카메라 전원을 넣고 촬영까지 걸리는 시간은 1초로 스냅 사진에 최적화되어 있다. 작고 빠른 고화질 카메라의 대표 주자. 99만9000원.

2 NIKON COOLPIX A

굳이 표현하자면 리코 GR과 라이벌을 이루는 관계. 리코 GR과 같은 APC-S 센서를 사용하며 크기 또한 거의 같다. 작은 보디에 빠른 기동, 흠잡을 데 없는 완성도를 자랑한다. 아쉽다면 리코 GR에 비해 높은 가격과 1/2000로 느린 셔터 스피드. 144만8000원.

3 SIGMA DP2 MERRILL

메릴 모델은 시그마만의 개선된 포베온 센서를 사용한다. DP2M은 환산 화각(35mm 필름을 기준으로 했을 때 실제 찍히는 화각) 45mm의 단렌즈를 내장했으며 화각만 다른 DP1M(환산 28mm), DP3M(환산 75mm)도 있어 원하는 화각을 고를 수 있다. 99만원.

4 SONY RX1
풀 프레임 카메라마저도 소형화가 주세다. Rx1은 풀 프레임 CMOS 센서를 갖추었으면서도 크기는 미러리스 카메라 정도다. 35mm F2 칼자이즈 렌즈와의 궁합도 좋다. 한 손으로 들고 촬영할 수 있는 풀 프레임 센서의 시대가 온 것이다. 349만원.

5 FUJIFILM X100S
클래식한 외형에 APS-C 센서를 품고 있다. 환산 화각 35mm의 단렌즈를 달고 0.5초 만에 촬영 준비를 마친다. 초당 여섯 장의 연사 성능을 가지고 있어 빠른 스냅 촬영이 장점이다. 159만9000원.

6 LEICA X-VARIO
출시 전부터 라이카 미니 M으로 기대감을 높였던 X-바리오. 세계 최초로 렌즈 고정식 줌렌즈를 달고 APS-C 센서를 채용했다. 환산 화각 28~70mm의 줌렌즈는 고정 렌즈의 단점을 완벽하게 보완한다. 375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