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quire Korea, 2014년 3월
글/최태형 사진/BBC 제공

런던에서 1년간 자유로운 시간을 보낸 적이 있다. 물론 어학연수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다를 건 없었다. 살던 곳은 2존에 위치한 세인트 존스우드 역 근처였는데 한마디로 놀기 딱 좋은 곳이다. 버스나 지하철 한 번이면 영국 문화의 중심지에 닿을 수 있었다. 날이 좋으면 걸어서 런던 시내를 헤매기도 했다. 그때 캠튼 타운부터 웨스트 앤드까지 이 잡듯 훑고 다녔다. 떨이 표를 기다려 원 없이 뮤지컬을 봤고 클럽 문화의 성지에서 만취하고 만개했다. 꿈같은 시절이었다.

221B번지 베이커 스트리트. 셜록 홈스의 하숙집인 동시에 집무실이다. 집에서 시내로 나가는 13번 버스를 타면 언제나 지나는 곳이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추리나 판타지 소설에 몰입할 수 없는 성격이라 흘려보냈던 곳이다. 날씨 좋은 날 걷다 기대하지 않고 들어간 그곳에서 조금 놀랐던 기억이 있다. 실존하지 않은 인물의 공간을 마치 아직도 살아 숨 쉬고 있는 듯 재현해놓았다. 좋은 클럽이나 뮤지컬을 봤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셜록 홈스는 영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캐릭터다. 지금으로 말하면 과열 팬덤, 오덕후, 사생팬 등을 몰고 다닌 빅 스타이기도 하다. 코난 도일의 소설 〈셜록 홈스〉가 〈스트리트 매거진〉에 연재될 때 셜록 홈스는 실존 인물과 다름없는 인기를 누렸다. 작가 코난 도일도 셜록 홈스의 인기를 감당하지 못했을 정도다. 그가 더는 셜록 홈스를 작품에 등장시키지 않기 위해 ‘마지막 사건’에서 그를 죽게 했지만 그래 오래가진 못했다. 독자의 항의가 빗발쳤기 때문이다. 코난 도일이 거리를 걷다 검은 리본을 맨 할머니에게 얻어맞은 이야기는 이미 유명한 에피소드다. 맞은 이유는 물론 셜록을 죽게 했기 때문이다. “내가 진짜 사람을 죽였어도 이러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코난 도일이 불평했을 정도다. 어쨌든 셜록은 다시 살아나게 됐다. 죽은 척했을 뿐이라는 막장 시나리오지만 환영받는 반전이 됐다. 얼굴에 점 하나 찍고 나타났대도 쌍수를 들고 환영했을 것이다.

2010년 셜록이 다시 살아났다. 창조주인 작가마저 그의 운명을 어쩌지 못했으니 21세기라고 해도 그가 살아난 건 이상할 게 없는 일이다. 하지만 다른 점은 셜록 홈스가 완벽히 동시대에 살고 있다는 거다. 19세기 〈셜록 홈스〉를 들추는 게 아니다. BBC가 제작해 2010년 처음 방영한 드라마 〈셜록〉 얘기다. 21세기 런던에 사는 셜록과 그의 조력자 왓슨은 홈페이지와 블로그를 운영하는 스마트폰 유저다. 마차 대신 택시를 타고 마약과 담배 대신 니코틴 패치를 붙인다. 여전히 명쾌한 추리력과 불같은 추진력을 보인다. 넥타이와 엄지손가락만 보고도 프로그래머인지 파일럿인지 안다. 얼굴과 다리만 보고도 군 복무 여부를 알아맞히고 휴대전화 상태를 유추해 형제의 술버릇을 알아맞히기도 한다. 현실에는 존재할 것 같지 않은, 논리적으로 완벽한 인물이다. 또한 사실적 인간관계는 몰입을 높인다. 과거의 셜록은 괴팍했지만 주변의 존경을 받는 인물이었다. 21세기를 사는 베네딕트의 셜록은 존경은커녕 사회적 상호 작용에 어려움을 겪는 인물로 묘사된다. 극단적으로 셜록을 싫어하는 도너반 형사만 봐도 알 수 있다. 옷매무새를 보고 지난밤 일을 세세히 들춰내는 남자를 좋아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모두의 사랑을 받는 셜록 홈스보다 훨씬 진솔하고 사실적이다. 이 사실성이 밤마다 인터넷 브라우저를 켜고 홈스의 홈페이지(thescienceofdeduction.co.uk)와 왓슨 블로그(johnwatsonblog.co.uk)를 찾게 하는 힘이다.

그러나 그와 동시대를 사는 것 같은 환상은 지금의 〈셜록〉 신드롬의 주요 골자는 아니다. 그저 팬덤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할 뿐. 〈셜록〉에 빠질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그가 이성을 통해 모든 걸 컨트롤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사건 해결을 위해서라면 연애와 사랑마저 철저히 계산해 활용하는 현실적 인물. 이성은 근대 모더니즘의 가장 고차원적인 경지를 상징한다. 셜록 홈스에 몰입하는 것은 그래서 대리만족을 선사한다. 그가 문제를 해결할 땐 진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사실 우리 모두는 현실에서 왓슨 박사에 가깝기 때문이다. 모두가 셜록이 되길 원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모범생인 왓슨 박사가 온갖 구박을 받으면서도 셜록을 따라다니는 이유가 당신이나 내가 TV를 켜고 〈셜록〉 시리즈를 보는 것과 같다. 셜록의 그녀 아이린 애들러의 한마디는 〈셜록〉의 신드롬을 가장 명확히 정의한다. ‘brainy is the new sexy(똑똑함이 새로운 섹시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