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quire Korea, 2015년 7월
글/최태형
‘모든 게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요. 너무나 어둡고 상처 입고 길을 잃어버린….’
‘스피킹 인 텅스’를 우리말로 번역하면 ‘방언’이라는 뜻이다. 종교적으로는 신자들이 이해할 수 없는 말로 기도하며 황홀경에 빠져드는 것을 의미한다. 호주 극작가 앤드루 보벨은 인간의 행동 양식의 옳고 그름을 같은 언어지만 표현 방법이 다른 방언에 빗대어 이야기한다. 자신만의 언어로 자기 감정에 빠져드는 것과도 같다.
연극의 1막은 싸구려 모텔에서 시작한다. 불이 켜진 무대의 가운데는 커다란 침대가 자리 잡고 있다. 침대를 사이에 두고 서로를 낯설어하는 두 커플의 대화가 시작된다. 익숙하지 않은 곳에서 나누는 어색한 대화. 대화는 이들이 보통 커플이 아니라는 것을 짐작케 한다.
레온과 쏘냐, 피트와 제인은 부부다. 그러나 모텔 방에 마주 선 건 레온과 제인, 피트와 쏘냐다. 레온은 술집에서 제인을 만나 싸구려 모텔 방을 찾았다. 피트 역시 술집에서 쏘냐를 만났고 허름한 모텔 방에 들어왔다. 동시에 이루어지는 불륜. 같은 상황에 놓인 두 커플의 대화는 사람만 다를 뿐 똑같다.
연극은 별다를 것 없는 싸구려 대화를 독특한 연출을 통해 부각시킨다. 한 공간에서 같은 언어를 공유하며 두 개의 상황이 동시에 벌어진다. 배우는 동시에 입을 맞춰 같은 대사를 뱉는다. 레온과 피트, 쏘냐와 제인은 마치 데칼코마니처럼 말하지만 둘의 상황은 다르다. 말은 같지만 맥락은 정반대다. 같은 언어지만 무대 위에서의 해석은 정반대의 뜻으로 뻗어간다. 이제 언어는 무엇을 얘기하는지, 누가 누구에게 전하는 말인지 알 수 없이 공중으로 흩어진다.
같은 말로 상대를 달래고 같은 말로 위로를 받지만 결국 위로받거나 달래준 사람은 없다. 낯선 사람과 깊은 유대를 나누는 사이 진정한 관계는 부서진다. 잘 안다고 생각하는 말이지만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처럼 소통은 결국 단절된다. 배우의 연기와 스토리가 극의 주제를 전달하는 요소라면 〈스피킹 인 텅스〉는 독특한 연출이 주제 전달에 깊게 개입된 연극이다.
극은 의도적으로 혼란스럽다. 관객은 집중해서 네 배우의 표정과 움직임을 쫓아야 한다. 자칫 상황을 놓치면 듣고 보고도 이해하지 못한다. 극 중에서 길을 잃은 배우처럼 관객도 길을 잃는다. 두 쌍의 커플이 수없이 많은 말을 주고받으면서도 결국 외로움에 사무치는 것처럼 그렇다. 어쩌면 연출 자체가 관객을 극 중으로 끌어들이는 무대의 주인공이다.
연극은 총 3막으로 구성된다. 모두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오는 단절을 이야기한다. 같은 상황을 다르게 이해하는 인물들이 1막부터 3막까지 얽히고설킨다. 한 가지 사건을 놓고 배우와 배우, 배우와 관객이 모두 다른 생각에 빠진다. 그러면서 자신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결과를 보게 된다. 소통의 단절과 상처 입고 방황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다 결국 소외된 사람은 관객 자신임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소통과 위로 대신 좌절을 맛본 사람이 나인 걸 눈치챌 때 연극이 끝난다. 퍼즐처럼 이어지는 이야기를 쫓으려 애쓰다 극 한가운데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 여운은 커진다. 극이 끝나도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하는 이유다.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는 주인공 레온의 말이 귓전을 맴돈다. 소통의 부재와 오해 속에서 고민하는 게 바로 우리 자신이기 때문이다.
[박스] 〈베어 더 뮤지컬〉
지난 14년 동안 미국, 캐나다, 영국, 호주 등 전 세계 관객들을 열광시킨 브로드웨이의 뮤지컬 〈베어 더 뮤지컬〉이 한국에 상륙했다. 청소년들의 고민, 방황, 불안을 강렬한 록 비트에 담아 수면 위로 꺼냈다. 8월 23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공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