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quire Korea, 2014년 6월 (추정)
글/최태형
대안언론, 무엇의 대안이 될 것인가
기자를 쓰레기 취급했다. 그래서 기자는 ‘기레기’가 됐다. 기자와 쓰레기를 합성해 부르는 말이다. 언론과 기자의 위상은 땅에 떨어졌다. 동시에 불신과 반감은 하늘을 찔렀다. 재난 사고의 현장에서 언론이 만족시킬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방송 내부에서 문제를 찾자면 공중파 언론은 사안을 중립적으로 보도하지 못했다. 취재 현장에서 기자는 스스로 무력감을 토로했다. 급기야 KBS 기자 40여 명이 자신들의 보도에 대한 자성과 사측의 사과를 촉구하기에 이르렀다. 비단 KBS뿐만의 얘기는 아니다. 공중파 기자들은 취재 현장에서 신분을 숨기기 바빴다. 그렇지 않으면 쫓겨나야만 했다. 한 MBC 기자는 말했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 열패감만 남았다.” 자의든 타의든 기자는 스스로 기레기가 된 것을 통감했다.
‘공영방송’은 방송의 목적을 영리에 두지 않고 오직 공공의 복지를 위해서 행하는 방송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공중파에서 공영방송 타이틀이 어울리는 언론은 없다.
불신에 가득 찬 시청자에게는 대안이 필요했다. 대안언론의 등장이다. 대안언론이란 주류 언론에 대항하는 새로운 개념의 언론을 말한다. 한국에서 대안언론의 탄생은 정치적 이유에 의해서였다. 1970년대 〈동아일보〉에서 유신반대 시위 보도로 해직된 기자들을 중심으로 〈한겨레신문〉이 만들어졌다. ‘진보’와 ‘신뢰’를 표방하며 특정 자본으로부터 제도적 독립을 이루었다. 우편향적인 언론 사이에 균형을 맞추는 임무가 주어졌다.
다시 대안언론이 주목받고 있다. 신문의 형태였던 것에서 영상의 형태로 진화했다. 2010년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이었던 김재철이 MBC 사장으로 취임하면서부터 시작한 노조 파업은 KBS, YTN, 연합뉴스 등 언론계 전반을 뒤덮었다. 이때 많은 기자들이 해직했다. 그들은 직장을 잃으면서까지 정론직필을 논했다. 논’했’었다.
위기는 기회다. 이 말의 주체가 언론이 되면 ‘위기’ 대신 ‘이슈’를 쓸 수 있다. 언론에게 이슈는 기회다. 돈이다. 사건 사고, 재난은 언론에겐 보너스 이슈다. 특집을 구성하고 르포 기사를 만드는 것 모두가 시청자를 잡아끈다. 그곳에 광고를 쓸어담는다. 물론 표정 관리가 필요하다. 저마다 합당한 언론의 역할을 수행하는 걸 제일의 목표로 외친다.
MBC에서 해고된 이상호 기자는 인터넷으로 생중계되는 대안언론의 생방송 중 분을 삭이지 못했다. 〈팩트TV〉와 〈고발뉴스〉가 합동으로 생방송을 진행한 팽목항에서였다. “〈연합뉴스〉 이 개새끼야, 그게 기사야?” 그가 생방송으로 방송되는 카메라 앞에서 던진 말이다. 〈연합뉴스〉의 기사는 지지부진한 현장 상황과 달리 정부의 입장을 고스란히 받아적은 기사였다. 사상 최대 규모의 수색이 진행 중이라고 썼다. 추후 〈연합뉴스〉 총편집국장은 저널리즘 측면에서 문제가 있는 기사라며 잘못을 인정한 바 있다. 그러나 명백히 이상호 기자의 발언은 감정적이었다. 다이빙벨 등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감정을 앞세워 보도한 것은 더욱 문제였다. 다이빙벨을 아비의 마음에 빗대 감성에 호소했다. JTBC도 다를 바 없었다. 더 이상 다이빙벨의 실효성을 논하는 건 무의미했다. 그사이 모두가 갈팡질팡했다. 냉정한 판단보다 현란한 언어의 슬픔이 자리했다. 누군가는 카메라 앞에서 울먹이고 성토했다. 대안언론이 기존 언론의 반대에 선 또 다른 한쪽의 얘기를 나르는 사이 현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대안언론은 그저 한쪽의 목소리를 대신 전달하는 데 목적이 있지 않다. 이상호 기자와 JTBC 손석희 앵커는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한 인물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이 냉철함을 유지하기란 어렵다는 말이다. 감정에 휘말리면 누구라도 기레기가 될 수 있다. ‘진짜’ 기자에 대한 사명감은 의지와 반대로 빗나갈 수도 있다.
대안언론은 무엇을 대신할 언론이어야 할까? 안타까운 상처가 승화돼 약이 되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보다 언론의 자유가 보장된 미국의 경우에도 대안언론은 주목받고 있다.
온라인 언론 최초로 퓰리처상을 받았다. 미국 최고 권위의 언론상이다. 미국의 비영리 탐사보도 매체 〈프로퍼블리카〉의 얘기다. ‘사실은 진실이 아니다’라는 명제하에 사건의 이면을 파헤친다. 기자가 1년 동안 쓰는 기사는 평균 3개다. 기사의 분량은 중편소설에 달한다. 시간과 돈이 많이 든다. 이들은 대부분 언론이 기피하는 정치와 기업의 비리에 집중한다. 몇 년간에 달하는 끈질긴 탐사다. 한국에는 〈뉴스타파〉의 방향이 이에 가깝다. MBC PD, KBS, YTN, CBS 기자 등 해직 언론인과 전·현직 저널리스트가 뜻을 합쳐 만들었다. 지난해는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와 조세피난처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전두환 차남 전재국 씨 등 비자금을 빼돌린 이들을 공개해 사회적 이슈를 만들기도 했다. 끊임없는 취재와 시간의 투자가 속보를 빗댄 자극보다 빛을 발했다. 기존 언론이 하지 않거나 할 수 없는 것을 묵묵히 파헤쳤다. 끊임없는 크로스체크로 신뢰를 만들었다. 대안언론이 무엇을 대신해야 할지에 대해 밑그림을 그렸다.
“선동은 가장 거세고 호전적인 쓰레기다.” 미국의 시인 위스터 오든의 말이다. 대안언론은 더 이상 잃을 게 없어 하는 방송이 되어선 안 된다. 대안 방송은 또 다른 한쪽의 말을 대신 전달하기만 하는 방송이 되어선 안 된다. 기자를 호전적인 쓰레기로 만들어선 안 된다. 위기감을 느껴야 한다. 무엇의 대안이 될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