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발을 땅에 대고 서 있어도 불안했다. 내가 뒤뚱거리는 게 아닐까? 내가 아니라 세상이 그러면 어쩌나? 기울어지다 결국 넘어져버리면 어쩌지? 삶의 밸런스가 무너지는 것을 느낄 땐 더욱 심했다. 그래도 버티는 것만이 옳다고 믿었다. 세상이 이미 정해놓은 남자들의 매뉴얼에는 그렇게 써 있었으니까. 그러나 답은 다른 곳에 있었다.
Esquire Korea
글/최태형 사진/이혜련
언젠가부터 한밤중에 잠에서 불쑥 깨기를 반복했다. 마치 15년 전 군대 신병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내무반 불이 켜지기 직전, 몸이 용수철처럼 튕겨 올랐던 그때. 깊이를 알 수 없는 불안감으로 신경이 온통 곤두서던 순간이 뒤늦게 다시 찾아왔다. 그러곤 매일 반복됐다. 몸은 침대라는 무겁고 축축한 늪에 빠져 있는데 정신만은 온통 바늘 위에 올라 있었다. 어떤 때는 깊은 물속에 잠기는 것 같았다. 잠 속에서 차고 무거운 바닷물이 정수리까지 차오르면 꿈속에서 잠을 깼다. 숨을 쉴 수 없었다. 커다란 응어리가 목구멍을 틀어막아 얼굴이 사색이 되어야만 숨이 터져 나왔다. 몸이 움직이는 것도 그제서다. 누군가 목을 조르는 것도 정말 물속에 빠진 것도 아닌데 온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 잠을 깨면 언제나 똑같은 물음이 머리를 맴돌았다.
‘어떻게 살지?’
‘어떻게 살까?’가 아니라 ‘어떻게 살지?’였다. 비슷하게 보이지만 발망의 화이트 티셔츠와 BYC ‘난닝구’만큼의 차이가 있다. 무엇을 어떻게 하며 살고 싶은지에 대한 고민이 아니다. 내가 이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에 대한 원론적인 고민이었다. ‘오늘은 뭘 먹지?’가 아니라 ‘오늘도 먹을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커졌다.
이런 고민은 사실 ‘될 대로 되라’보다 더욱 비생산적이라는 걸 안다. 건설적이거나 미래지향적이지도 못한 데다 해답도 없다. 당장 닥치지 않은 일을 걱정하고 있기 때문에 해결할 방도가 없는 거다. 하지만 생각처럼 쉽게 멈출 수 없었다. 여전히 꿈속에서 숨이 막혀 눈을 떴고, 바늘을 피해 스프링처럼 튕기듯 침대를 벗어났다. 꿈속에서 꾸는 꿈은 꿈을 깨도 멈추지 않았다. 허우적대는 늪을 벗어났다고 안도하면 다시 더 깊고 끔찍한 늪이 펼쳐졌다. 그리곤 반복했다.
누군가는 네가 무슨 고민이냐고 되물었다. 친구는 너 정도면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고도 했다. 부정할 순 없지만 인정할 수도 없었다. 마땅히 고민의 실체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만족을 모르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또 다른 친구는 욕심을 버리라는 해답을 제시했다. 만족해도 또 다른 욕심이 생기니까 문제라고 했다. 욕심이 많으면 결국 스스로를 괴롭힐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런데 역시 인정할 수 없었다. 아니, 오히려 위로 올라가고 싶어 힘들어하는 거라면 참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건 반대였다. 목표가 높아서가 아니라 그저 끝 모를 열패감이 문제였다. 총체적 문제였다. 자존감은 높은데 열패감은 더 깊었다. 걱정은 앞서는데 문제를 몰라 해결할 수도 없었다. 이미 살고 있으면서 사는 것부터 걱정하니 이건 걱정이라기보단 억지였다. 그래도 당장 내 문제는 힘든 법이다.
물론 친구들의 말을 들으면서 잠시나마 안도감을 갖기도 했다. ‘문제는 내 안에 있구나’ 하며 답을 찾았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내 마음만 다스려서 깨끗하게 해결될 문제라면 그대로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또 더 큰 혼란이 찾아왔다. 내 안에 있는 문제를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 알 길이 없었다. 내 마음에 닿는 길이 어디에 있는지, 그 길이 맞는 건지 알 길이 없었다.
다음 단계는 예민이었다. 몸을 찌르는 검은 바늘과 숨을 막는 차가운 바닷물은 사람을 예민하게 만들었다. 잠을 깊게 자지 못한다는 것도 악순환을 부추겼다. 걱정이 많은 것, 걱정 때문에 잠을 자지 못하는 것 모두 반복적으로 예민을 배가시켰다. 그땐 몰랐다. 내가 주변을 향해 가시를 세우고 있었다는 걸.
집은 공사가 한창이었다. 새로 살 곳을 마련했고 이제는 깨끗하고 예쁘게 꾸미면 되는 공사였다. 집 안 곳곳을 원하는 대로 바꾸면서도 무엇 때문인지 마음이 편치 않았다. 처음에는 편히 쉬어야 하는 공간이 공사 때문에 엉망이 되어 있어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집 전체를 부수고 새로 만드는 모습을 보는 터라 편치 않은 거라 생각했다. 제자리에 있어야 할 것들이 부주의하고 무관심한 시공 업자 탓에 제자리를 찾지 못한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집이 점차 안정을 찾아가도 마음은 안정되지 않았다. 시공 업자를 대신해 인테리어 실장이 길 잃은 액세서리들에게 제자리를 찾아주었는데도 기분은 도통 나아지지 않았다. 그사이 더욱 예민해졌다. 일은 바쁘고 처리해야 할 것은 많았다. 그러다 보니 일하고 있는 중간에도 또 다른 일로 불안했다. 일하면서도 다른 일을 생각하느라 온전히 집중하지 못했다. 머릿속에선 감정에 따라 일의 우선순위가 계속 뒤바뀌었다. 결국 뭐가 더 중요한 일인지에 대한 생각 전체를 믿지 못하게 됐다. 그래서 급한 일은 미뤄두고 힘을 빼거나 쉽게 처리할 수 있는 일을 쌓아뒀다. 그때마다 더욱 예민해져 주변의 조언에 짜증으로 답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여자 친구에게 짜증을 냈다. 결혼을 약속한 여자 친구다. 짜증을 낼수록 더 큰 짜증을 불렀다. 어쩔 땐 이 모든 문제가 관계
ESQUIRE DARING MAN SPECIAL
세상의 모든 게 걱정이었고 싫었다. 그중에서도 부모님은 나를 더욱 삐뚤어지게 했다. 먹을 것 안 먹고 쓸 것 안 쓰면서 내게 퍼주는 엄마를 보면 그게 싫어서 화가 났다. 잘 먹고 다니며 피둥피둥 살이 찐 아들에게 입안에 있는 것까지도 꺼내주는 모습이 고맙기보다 싫었다.
결혼 준비를 하면서 이런 감정은 폭발했다. 정말 폭발이었다. 그만 좀 하시라고 소리를 질렀다. 부모님 얼굴을 보는 게 너무 힘들어서 그랬다.
처음 결혼을 결심하곤 이내 아찔한 생각에 마음을 주체하기 힘들었다. 만약 내가 부모님 도움 없이 결혼해야 했다면 과연 한 발이라도 내디딜 수 있었을까? 한편으로 들었던 든든하다는 생각은 다른 한편에서 밀려온 자괴감에 휩쓸려 부서졌다. 그러다 결국 못난 나만 덩그러니 남겨졌다. 결국 그만큼 내가 싫어졌다.
처음 여자 친구와 결혼을 말할 땐 둘이 모은 돈으로만 진행하기로 약속했었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았다. 해야 할 것과 했으면 하는 것, 부모님이 챙겨주시는 것과 꼭 주고 싶다고 하시는 것들 사이에서 결혼은 더 이상 내 의지대로 나가지 못했다. 결국은 받을 것을 다 받으면서도 필요 없다고, 됐다고 인상만 쓰는 아들이 되어 있는 날 발견했다.
그날도 자다가 숨이 막혀 눈을 떴다. 잠이 깨 몸을 일으켜 세우고서도 한동안 숨을 쉬지 못했다. 목에 커다란 돌덩이가 걸려 있는 것 같았다. 잠결에 삼킬까 뱉을까 한참을 고민하는 사이 숨이 끊어질 것 같은 느낌이었다. 겨우 숨통이 트이고 나선 멍하니 앉아 있었다. 목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말끔했지만 정신은 그렇지 못했다.
그때 내 삶의 밸런스가 모두 깨져버렸다고 생각했다. 곧고 바르게 앞으로 달리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한 발도 내딛지 못하는 날 발견했다. 바보같이 뒤뚱거리는 내 손을 여자 친구와 부모님이 거들고 있는 게 보였다. 그리고 못난 얼굴로 그 손을 뿌리치고 있는 내가 나타났다. 금방이라도 넘어질 것 같은데 뛰려고 발버둥치며 주변 모두를 불편하게 만드는 모습이었다. 그러면서도 떠나거나 주저앉지 못하고 그저 힘만 빼는 내가 있었다.
밸런스가 무너져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나를 봤다. 왼쪽으로 기울 것 같아 오른발에 힘을 주면 발라당 오른쪽으로 넘어가버리는 내가 거기 있었다. 잠시라도 멈추는 게 겁이 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버텨야 한다고 생각하는 무능력한 모습이 있었다.
모든 걸 내려놓고 싶어졌다. 내가 무엇 때문에 이러고 있나.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것들을 옆에 두면 과연 내게 무슨 필요가 있나.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내 것이라 이름 붙이고 나면 지키고 싶어 안달 날 것들. 결국 나보다 더 무거워 어깨에 질 수 없는 것들을 지고 평생 균형을 맞출 수 있을까 싶었다.
결국 또다시 반복될 불안과 짜증을 벗어나야 했다. 나만 생각하고 싶었다. 내 것을 보호할 커다란 울타리를 치기 위해 끙끙대고 사람들의 기대를 짊어진 채 대체 어디를 가려고 했던 걸까? 아니, 어디를 갈 수나 있을까 싶었다.
무작정 집을 나왔다. 어디든 떠날 생각이었다.
(발췌 인용) 아차 싶은 생각이 들었다. 뭐가 그리 급해서 이렇게 카약과 씨름 중인가? 뭐가 두려워서 나는 내리지 못하나. 고작 카약일 뿐인데, 고작 물에 빠지는 것뿐인데 뭐가 무섭다고 이럴까? 언제든 다시 올라타면 될 걸 말이야.
분에 넘치는 것과 끝없는 욕심과 안녕을 고하고 싶었다. 어떻게든 살겠다고 고군분투하며 엉망이 된 나와도 이별하고 싶었다. 아무것도 없이 고요하게 사라지고 싶은 마음이 컸다.
꿈이 없으면 고통스럽지도 않겠지? 강신주 박사의 강의가 떠올랐다. 산이 있기에 올라도 힘들고 오르지 못해도 힘들다. 꿈을 버리기로 했다. 하고 싶은 것도, 해야만 하는 것도 모두 내려놓고 싶었다.
1인용 카약에 올랐다. 스트레스를 풀려고 생각했다면 굉음을 내는 바이크나 번개처럼 빠른 자동차에 올랐겠지만 카약이었다. 모든 걸 잊고 싶었다면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하는 산악 바이크나 힘들어서 다른 생각을 할 수 없는 격투 스포츠를 했겠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냥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었다. 정신과 육체, 우주와 내가 한 주파수로 맞춰져 고요하고 스며들고 싶었다.
내가 선택한 투어링 카약은 특별히 대단한 체력을 요하지 않는다. 빠르게 물살을 헤쳐 나가야 한다거나 힘들게 강을 거슬러야 하는 스포츠가 아니다. 그저 노를 젓는 간단한 행위면 가늘고 긴 카약이 천천히 물살을 가르고 앞으로 나아간다. 40킬로그램 정도 되는 1인용 카약을 물에 띄웠다. 강은 잔잔했고 카약은 가늘고 길었다. 카약에 실을 수 있는 건 없었다. 고형 카약은 가늘고 길어 자칫하면 뒤집힐 수 있었다. 휴대전화도 짐도 모두 내리고 구명조끼 하나만 걸쳤다. 좁은 카약 몸통에 두 발을 얹자 좌우로 심하게 흔들렸다. 마치 밸런스를 잃고 흔들거리는 나를 약 올리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왼쪽으로 기울어질 것 같아 오른쪽으로 몸을 기울이면 이내 오른쪽으로 모든 밸런스가 쏠렸다. 다시 왼쪽에 힘을 주면 맞춰질까 싶었지만 아니었다. 밸런스를 잡는 일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왼쪽으로 한 번 오른쪽으로 한 번 카약은 넘어갔다. 나는 양 발끝에 힘을 주고 무게중심을 맞추려 노를 이리저리 움직였다. 벌써 카약 안에는 물이 가득 들어온 상태였지만 여전히 온몸은 경직돼 있었다.
그때 ‘카야킹’을 전수해주던 친구가 말했다.
“밸런스가 무너지면 카약에서 내려서 다시 시작해. 한 번 균형감을 잃으면 좌우로 계속 흔들릴 뿐이야. 뭐가 그리 급해서 온몸이 젖는 것도 몰라?”
아차 싶은 생각이 들었다. 뭐가 그리 급해서 이렇게 카약과 씨름 중인가? 뭐가 두려워서 나는 내리지 못하나. 고작 카약일 뿐인데, 고작 물에 빠지는 것뿐인데 뭐가 무섭다고 이럴까? 언제든 다시 올라타면 될 걸 말이야.
나는 나를 만족시키고 싶었던 걸지 모른다. 내가 싸우고 있는 건 카약이 아니라 내 스스로의 밸런스였던 걸지도. 카약에 올라 어서 강 한가운데로 나가고 싶은 마음은 사실 내 삶이 못마땅해 발버둥치고 있었던 걸지도. 당장 한 발도 나가지 못하는 모습은 그래서 영영 강으로 한 발도 못 나가는 게 아닐까 걱정하게 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이미 강 위에 있으면서 한 번도 강에 오지 못했던 사람 같은 걱정을 했던 이유가….
카약에 올라 두 발을 넣고 균형을 잡는 사이 불안과 조바심으로 몸은 이미 다 젖었다. 이때부턴 친구의 조언도 나의 걱정도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다. 그저 담담히 내 방식대로 카약에 오르면 될 뿐이었다. 무너진 밸런스는 잠시 쉬는 것으로 되찾았다. 친구는 노를 잡고 균형을 맞추라고 조언했다. 그리고 저어 나가면 된다고 했다. 그 말이 맞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노를 내려놨다. 카약 앞에 노를 묶어두고 양손을 좌우로 뻗었다. 물 위에 두 손을 평행하게 두고 잔잔하고 고요하게 균형을 맞췄다. 강물을 어루만지듯이 손목을 움직여 간질이듯 나아갔다. 카약은 그래도 앞으로 나아갔다. 전혀 움직이지 않는 것 같았는데 벌써 뭍이 작게 보였다. 고개를 돌려 더 먼 곳을 바라봤다. 강물의 수평선과 카약이 마치 같은 선상에 있었다. 잔잔하고 고요한 강과 내가 동일 선상에서 한 주파수로 맞춰지는 느낌이었다. 그곳엔 부모님의 걱정도, 여자 친구의 위로도 없었다. 그러나 부족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저 아무에게도 기대거나 의지하지 않고 물과 하나 되어 고요한 상태의 나만 존재했다. 숨이 막히지도 않았고, 불안하거나 조바심이 나지도 않았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해도 그저 이렇게 시간이 흐르는 것도 좋겠다 싶었다. 다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다. 마치 강 위에 누워서 구름과 보조를 맞추는 느낌이었다. 구름과 같은 방향으로 카약은 흘렀다. 어쩌면 나와 구름을 두고 지구가 도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저 세상의 중심은 나였다. 시간도 내가 원하는 빠르기로 흘렀다. 더 이상 카약 위에서 밸런스를 놓치는 일은 없었다. 그렇게 한동안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무슨 걱정이 있었던가 싶었다. 내가 아닌 무엇을 위해 살 수도 없는 내가 괜한 걱정과 스트레스를 받고 있진 않았나 싶었다. 내가 결혼으로 나 스스로를 바꾸겠다고? 말도 안 되는 욕심이었다. 나를 바꿔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는 착각이 모두를 힘들게만 할 뿐이었다.
노를 저어 배를 물가로 몰았다. 마음이 제법 고요해져서 그런지 배는 마치 민물고기가 수초를 가르는 것처럼 흐르듯이 물가에 닿았다. 카약은 타고 내리는 일이 가장 불안정하고 힘들다. 금방 밸런스가 무너져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이까짓 옷쯤 젖으면 어때. 밸런스가 무너지면 넘어지면 되지.
시간은 어느새 반나절이 지나 있었다. 휴대전화에 가득한 부재중 전화는 배터리마저 닳게 했다. 그러나 어느 한 곳에도 전화를 걸지 않았다. 그저 내 밸런스대로 내 시간대로 움직이기로 했다. 누구를 만족시켜야 한다는 생각은 접어두기 위해서다. 내가 밸런스를 잡아야 남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서다. 불친절할 수 있지만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진 않을 수 있었다.
카약은 잠시 잃었던 내 밸런스를 찾게 했다. 아니 ‘밸런스를 잃으면 어때? 나만의 밸런스를 찾으면 그만이지’ 생각하게 만들었다. 물가를 벗어나니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선사했다. 남자는 그렇다. 세상이 정해놓은 매뉴얼은 내 매뉴얼이 아니다. 가끔은 모두를 실망시키고 나만을 만족시켜야 할 때도 있다. 그러려면 떠나야 한다. 카약도 버기카도 요트도 좋다. 잠시 세상을 내 주파수에 맞추면 그만이다. 밸런스가 흔들릴 땐 손을 짚어도 된다. 잠시 내려서 앉으면 또 어떻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