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quire Korea, 2013년 12월
글/최태형 사진/JTBC

불가능한, 적과의 동침

TV쇼를 얼마 전까진 버라이어티 쇼라고 불렀다. 시청률이 높아 소위 황금 시간이라고 부르는 저녁 시간대에 연예인들이 출연해 다양한 노래와 춤을 선보였다. 그중에서도 주말 버라이어티 쇼는 ‘잘나가는’ 연예인들의 전유물이었다. 컬러 TV가 보급되고 방송국들의 경쟁이 본격화된 1980년대는 〈젊음의 행진〉, 〈일요일 밤의 대행진〉 등이 대표적인 버라이어티 쇼였다. 이런 쇼들은 대부분 외국 프로그램에서 일정한 포맷을 빌려와 만들었는데 연예인이 출연해 춤, 음악, 콩트, 풍자 등을 사회자의 진행에 맞춰 코너로 선보이는 식이었다. MC는 프로그램 전체의 포맷을 유지하고 호흡을 고르며 연예인들을 띄워주기도, 망가뜨리기도 하는 막중한 역할을 했고 연예인들도 과감히 포맷에 몸을 던졌다.

〈무한도전〉을 필두로 황금 시간대에 선보이는 요즘 버라이어티 쇼는 일정한 포맷이 사라진 지 오래다. 버라이어티라는 말도 점점 사라지고 뭉뚱그려져 ‘예능’으로 통칭되고 있다. 예능의 사전적 의미는 분야를 막론하고 예술적 능력을 말한다. 그러나 TV 프로그램에서의 예능은 모든 오락적 프로그램을 지칭하는 말로 변질됐다. 이제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이거나 흥미를 유발하는 모든 방송을 예능이라 부른다. 예능감은 남을 재미있게 하는 능력을 나타내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출연진 역시 연예인으로 한정되던 것이 연예인의 가족, 친구, 일반인으로 확장되었다. 예능까지도 그렇다. 아니 그 누구라도 예능감이 뛰어나면 이제 예비 예능인이다. 이런 분류는 방송국에서 왔다. “공중파의 부서가 보도국, 교양국, 예능국 등으로 나뉘어 있어 거기에서 영향받은 것 같아요. 뉴스나 정치, 교육을 제외하고 웃기는 것은 다 예능인 거죠.” 한 공중파 예능국 PD의 말이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이제 정치인들까지 예능에 등장하고 있으니….

예능에는 격이 없다. 흐름을 정리하며 MC 역할을 ‘자처’하는 사람이 있지만 그마저도 서로 누가 1인자인지 다투기 바쁘다. 격이 없으니 웃기기만 하면 된다. 웃기는 게 목적이니 지킬 것도 없고 지킬 게 없으니 적도 편도 없다. 스스로를 버리며 망가지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예능감을 위해서는 ‘감성 발라드 황제’도 ‘감성 변태’가 되는 세상이다. 그렇다고 한들 문제될 건 없다. 예능을 ‘다큐’로 받는다고 핀잔을 주면 되니까(방송에서 다큐는 요즘 예능의 반대 의미로 쓰인다). 예능을 곧이곧대로 믿는 건 촌스러운 일이다. ‘그래도 어떻게 방송에서…’라는 생각도 ‘꼰대’ 같은 마인드다. 요즘 ‘예능’에선 그렇다.

TV에 정치인이 등장했다. 방송에 나오는 정치인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정치인이 TV에 출연해 이득을 보는 건 케네디의 TV 토론 이후 당연한 전략이니까. JTBC는 조금 달랐다. 정치인을 모아 예능을 만들었다. 〈적과의 동침〉이다.

‘국민들에게는 통쾌함을, 국회의원들에게는 맷집을!’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외치며 〈적과의 동침〉은 시작한다. 연출 총괄을 맡은 여운혁 PD는 제작발표회에서 “국회의원 옷을 다 벗기고 무장해제시켜 날것 그대로를 보여줄 것”이라고 했다. 국회의원을 요즘 ‘예능’의 사각 링 위에 올리겠다는 말이다. 바꿔 말하자면 격을 내려놓고 속을 드러내게 하겠다는 거다. 정치인들끼리 지지고 볶다가 망가질 사람은 망가지고 흥할 사람은 흥하게 하겠다는 속내다. 그럼 보는 사람도 재미있는 예능이 되니까. 여기엔 완벽한 롤 모델도 있다. 전 국회의원 강용석이다. 그는 막말과 무고 등을 통해 대표적 막장 정치인으로 낙인찍혔었다. 강용석은 예능에서 모든 걸 내려놨다. 〈슈퍼스타K〉 예선에 출연해 노래를 하기도 했고 ‘고소의 아이콘’이라며 자처해서 자신을 희화했다. 그가 진행하는 방송 타이틀 〈고소한 19〉만 봐도 그렇다. 예능을 통해, ‘요즘 예능’의 방식을 통해 그는 이제 호감형 인물이 됐다. 덩달아 방송도 잘됐다. 사람들은 방송을 통해 강용석이 이미지 세탁을 했다며 걱정하고 견제할 정도다.

공중파에서 종편으로 이직한 예능국 PD는 말했다. “공중파와 종편은 분위기가 달라요. 공중파에서 공익성이라는 가치는 성역이에요. 시청률이 높은 방송일지라도 공익성이 없다면 PD들끼리는 ‘쌈마이’ 취급을 하죠. 일종의 자기검열이죠. 그런데 종편은 달라요. 무플보다는 악플이 나아요. 공익적 칭찬보다 악플이라도 이슈를 바라죠. 그렇기 때문에 기획하는 콘텐츠 수위의 시작점이 달라요.”

〈적과의 동침〉은 정확히 그 시작점에서 출발했다. 프로그램의 연출자인 방현영 PD는 말한다. ‘방송국이 미리 시청자의 권리를 재단해야 하나? 싶은 의문이 들어요. 공익이라는 검열로 제한을 두는 게 맞나 하는 거죠. 시청자가 판단할 수 있게 맡길 때도 된 것 같아요.”

강용석의 경우를 본 시청자는 〈적과의 동침〉이 시작하기도 전에 프로그램을 몰아세웠다. 여기저기서 우려를 드러냈고 반감을 표출했다. 정치인의 본질을 보여주는 방송보다 웃고 떠들며 이미지 관리를 하는 세탁용 방송이 될 거라고 걱정했다. 언론도 거들었다. 국회는 파행인데 예능에서는 성실하다며 국회의원을 꼬집었다.

‘무플보다 낫다는 악플’은 효과가 있었다. 2회 만에 〈적과의 동침〉은 2퍼센트대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편성된 프로그램이 존재의 가치를 증명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시청률이다. 종편에서는 2퍼센트대 시청률을 내면 지속 가능하다고 본다. 2.5퍼센트를 넘기면 안정권이다.

그러나 오래가진 못했다. 이슈로 모은 악플도 반짝했을 뿐이었다. 방현영 PD는 말한다. “문제는 다른 예상치 못한 곳에서 터지더라고요. 처음 우려했던 건 국회의원들의 언어가 재미없을지도 모른다는 거였어요. 게다가 모두가 유명한 국회의원이 아니고 개중에는 인지도를 높이려고 출연하시는 분들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국회의원들이 워낙 생존 본능과 적응력이 좋은 분들이니까 방송의 언어로 센스 있게 풀어가더라고요. 인지도를 높이려고 한다는 것조차 재미있는 요소로 이용하고요. 하지만 중요한 순간 유권자를 의식해요. 완전히 내려놓지 못하는 거죠. 그게 패인이었죠. 〈썰전〉이나 〈나꼼수〉와는 다르더라고요. 〈썰전〉처럼 강 건너 불 구경하듯 비당사자인 평론가나 전문가가 루머면 루머 의혹이면 의혹을 던지고, ‘치고 빠지는 것’에서 흥미를 유발하는데 현직 당사자인 경우에는 자유롭지 못해요. 당사자가 나와서 몸을 사리는 꼴이 되니까 더 보기 싫죠. 〈나꼼수〉야 뭐 다 내려놓고 ‘적이다 때려잡자’ 했으니까 재미있었던 거고요.”

성공적이지 못한 결과에도 TV는 여전히 정치인을 예능인으로 만들려고 시도 중이다. 공중파 SBS는 국회의원과 함께 시대가 원하는 권력을 찾아 나서는 다큐멘터리 〈최후의 권력〉을 만들었다. TV는 꾸준히 새로운 사람을 끌어들여 예능인을 만들려 한다. 지금은 정치인이다. 과연 예능과 정치가 ‘동침’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