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quire Korea, 2015년 7월 (추정)
글/최태형 · Photograph by PARK NAMKYU
요리를 통해 인간을 보는 이욱정
PD, 서울 | INTERVIEWED JUNE 1, 2015
음식과 요리를 전문으로 다루는 PD가 되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다. 자석처럼 나도 모르게 끌렸다. 어려서부터 좋아했던 것이다. 학교라는 제도 안에 들어가기 전부터 요리하는 모습을 보는 게 좋았다. 생각해보면 인류학을 공부할 때도 음식을 테마로 한 연구를 했다. 방송국에 입사해 〈추적 60분〉 팀에 있을 때에도 ‘학교 급식’에 관한 것을 만들었다. 〈누들로드〉도 그렇고 휴직하고 ‘르 코르동 블루’ 요리 학교에 간 것도 그렇다. 〈요리인류〉 그리고 지금 〈요리인류 키친〉 진행이라는 새로운 일을 맡아서 하는 것 모두 어린 시절 내 속에 만들어진 것들을 본능적으로 쫓아가는 것 같다.
휴직하고 외국으로 요리 유학을 떠났을 때 주변에서 나를 두고 ‘강남에 집이 몇 채 있다’, ‘부모님이 부자다’라는 소문이 있었다. 내가 직접 방송에 출연하는 것도 속된 말로 ‘끗발’ 좀 있어서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내게 있는 끗발이라면 헝그리 정신뿐이다.
휴직하고 내 시야가 많이 바뀌었다. 방송국이라는 온실 속에만 있다가 온실 밖 생활을 경험한 거다. 예전엔 PD로서 프로그램만 잘 만들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이 바뀌었다.
PD에게 중요한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기획이고 두 번째는 펀딩이다. 결국 내가 원하는 프로그램을 제작하기 위해 현실적으로 중요한 건 얼마만큼 펀딩해오느냐에 달린 거다. 방송국 환경이 급변했다. 지금은 돈이 많이 드는 대형 기획은 외부 제작 지원을 끌어오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사실 PD가 외부에 가서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제작 지원을 얻고 하는 게 자기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많다. 그런데 나는 내가 원하는, 하고 싶은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지난 3년간 펀딩한 게 32억원이다. 끗발이 헝그리 정신이라고 한 말은 이런 뜻이다.
PD가 방송에 직접 나오는 것을 당사자나 회사가 좋아하지 않는 분위기도 있는 게 사실이다. 내가 직접 회사를 설득했다. 아무리 친한 사람, 선배라도 다큐멘터리 만든다고 제작비 달라면 단돈 1000만원도 못 준다. 회사에 아무리 친한 국장이 있어도 몇 억원 제작 지원은커녕 편성도 안 된다. 내가 꿈꾸는 것을 다른 사람이 공감할 수 있게 해주는 과정이 필요하다. 내가 직접 출연하는 것도 그런 과정 중 하나다.
다큐멘터리 PD는 스토리텔러라고 생각한다. 외국에서는 다큐멘터리 PD가 방송 진행까지 하는 경우도 많다. 어떤 테마의 방송을 만든 사람만큼 그 테마를 방송에서 잘 이해하고 설명해줄 사람은 많지 않으니까. 직접 가보고 촬영해온 것이기에 그렇다. 다큐멘터리는 스토리텔러가 본 세상이다. 그런 면에서 다큐멘터리 PD가 직접 진행을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내가 스타 PD가 되고 싶어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대체 스타 PD라는 게 뭘까? 세상에서 가장 불편한 것은 적당히 유명해지는 것이다. 드라마도 아니고 예능도 아니니까 나 같은 사람이 바로 적당히 유명한 사람이다. 일부 주변 사람들이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걱정하기엔 인생은 짧다.
내가 원하는 방송을 만드는 것과 시청자들이 그것을 얼마나 좋아하는지가 중요하다. 참고로 〈요리인류〉가 얼마 전 ‘백상예술대상’에서 교양작품상을 수상했다.
다른 프로는 잘 안 본다(웃음). 인기가 많다는 프로를 보면 거기서 뭐가 어필하고 있구나 하고 자세히 보게 된다. 그러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모방하거나 나쁜 질투심이 생긴다. 그걸 피해 가는 방법은 남의 콘텐츠를 안 보는 것이다. 내 것 하기도 바쁘다.
요리를 주제로 한 미식 열풍이다. 본능 중에 TV에서 극한으로 허용할 수 있는 본능이 먹는 것이다. 하루에도 세 번 이상 충족시켜야 하는 본능. 게다가 TV라는 포맷은 다른 어떤 매체보다 음식을 다루기 좋은 매체다.
음식이라는 것에 관심을 갖는 것은 남자가 옷에 관심을 두는 것과 비슷하다. 옷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싶은 욕망은 남자나 여자나 다 있다. 그런데 예전 사회에서는 남자가 옷에 대한 열망을 표현하면 흠이었다. 속된 말로 ‘계집애’ 같다고 했다. 하지만 이제는 남자도 옷을 잘 입어야 하는 시대가 왔다. 마찬가지다. 욕망에 정직하고 자기를 표현하는 것에 능한 그리고 또 놀이로 삼는 지금 세대의 흐름에 지극히 자연스러운 거다.
음식을 다루는 프로그램이 없다가 갑자기 늘어나니까 ‘너무 넘치는 거 아냐?’라고 생각하지만 내 생각에는 앞으로 더 확대되고 다양화될 것 같다.
한국 사람은 혼자 밥 먹는 민족이 아니다. 혼자 밥 먹으면 어색하고 그렇지 않나. 그래서 자기가 먹는 음식을 SNS 등을 통해 남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게 꼭 자랑뿐 아니라 공유하고 싶은 몸부림인 것 같다.
우리가 욕망에 대해 너그러워질 필요가 있다. 요리라는 것은 그런 면에서 굉장히 긍정적이다. 누군가를 위해 음식을 만드는 것은 오래전부터 누군가와 함께 만들어 먹는다는 전제가 깔려 있었다. 어쩌면 요리는 가장 생산적인 활동이 아닐까 싶다.
TV를 통해 음식 얘기를 할 때의 고충은 ‘어떻게 보여줄까?’가 아니라 음식으로부터 ‘어떤 이야기를 끄집어 낼까?’ 하는 문제다.
궁극적으로 음식을 통해 던지는 질문은 ‘어떤 음식이 우리의 삶을 바꿨을까?’ 하는 것이다. 세상이 요리라는 행위를 시작한 후에 셀 수 없이 많은 레시피가 생겨나고 사라졌을 것이다. 그중 극소수의 음식은 지속되고 번창했고 우리의 삶을 바꿨다. 음식을 통해 인간을 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