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희가 앞으로 어떤 모습을 더 보여줄지에 대한 섣부른 예상은 금물이다. 이제껏 당신이 본 것은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에 불과하니까. 그는 번쩍하고 꺼지는 혜성이 아니라 오래 두고 볼 수 있는 보석이다.
Numéro, 2009년
에디터 | 최태형 포토그래퍼 | 보리 스타일리스트 | 윤인영 헤어 | 강현진 메이크업 | 이준성 at am
SBS 예능 프로그램 〈일요일이 좋다〉의 ‘패밀리가 떴다’에서 소탈하고 친근한 모습을 보여주며 한창 주가를 올리던 이천희. 그는 절정의 인기 프로그램을 떠났다. 그가 떠나는 걸 아쉬워한 것은 제작진과 팬들만은 아니었다. 그 스스로도 좋은 인연과 새로운 기회를 아쉬워했지만 결국 떠나기로 결심했다. 스스로를 숨기고 싶은 마음에서가 아니라 더욱 보여줄 것이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나의 이미지로 고착되는 것보다 연기를 통해 더 많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기에. 드라마 〈그대, 웃어요〉를 앞두고 또 다른 모습을 준비 중인 이천희를 만났다.
[Numéro] 오전 9시부터 촬영했는데 출출하지 않나요?
[이천희] 조금 출출하긴 한데. 피자 하나 시켜놓고 커피 마실까요? 크림치즈 피자를 먹을까, 사루비아 피자를 먹을까….
Q. 그런데 아침도 못 먹고, 이렇게 일찍 촬영을 시작한 걸 보면 원래 부지런한가 봐요.
아뇨. 이렇게 일찍 일어나지는 않아요. 요즘은 조금 일찍 일어나려고 하지만 마감 일정이 빠듯하다고 하기에 일찍 해야 하는 줄 알았죠. 지금 거의 자고 있을 시간에 사진을 찍은 거예요.
Q. 우리 둘 다 지금 잠결이군요(웃음). 잘 시간에 찍은 사진인데도 포즈는 근사하던데요.
오랜만에 촬영을 해서 재미있었어요. 콘셉트도 의상이나 시안을 봤을 때는 ‘그냥 그렇구나’ 했는데 연극 무대에 선 배우 같은 느낌의 설정이라고 들으니 ‘재미있겠다’ 싶더라고요. 연극 무대라고 생각하면서 촬영하니까 색달랐어요.
Q. 모델로 시작했으니 이쯤이야….
모델은 잠깐 했을 뿐인데요 뭐.
Q. 그러고 보니 이것저것 하는 것도 많고 취미도 참 많아요. 마임, 하키, 발레, 최근에는 사진, 가구 만들기까지 하고…. 뭐가 이렇게 부지런하죠?
부지런해서 그런 건 아니에요. 남들은 하고 싶은데 못하는 것일 수도 있고, 또 내가 할 만한 건 아니라고 지레 짐작하는 것일 수도 있죠. 저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바로 시작을 하는 것이고요. 스노보드도 처음에 잘 알려지지 않아서 타는 사람이 별로 없을 때 시작했다가 대중화될 때쯤에는 다른 걸 했어요. 사진도, 가구도 마찬가지예요. 유행하기 전에 시작했다가 관심 갖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또 다른 분야로 눈을 돌리죠. 고등학교 때는 인라인 하키도 하고 팀도 만들었어요.
Q. 한마디로 얼리어답터군요.
그런데 그렇게 깊이 파고들지는 않아요. 예를 들어 장난감을 모은다고 하면 보통 수백 개씩 수집하잖아요. 그런데 전 뭘 하나 모으다가도 어느 정도에 이르면 많다고 생각하고 다른 걸 모으다 또 금세 다른 대상을 찾는 성격이에요. 그렇게 아주 깊이 빠져들지는 않더라고요.
Q. 그럼 한 번에 여러 가지 일을 벌이는 스타일인가 보죠?
그렇죠. 그런 스타일이기는 한데, 한 번에 여러 개를 다 하는 건 아니고 어떤 하나에 딱 ‘꽂혔다’가 쉽게 싫증 내고 또 다른 것에 꽂히곤 해요. 관심 대상이 시즌마다 달라요. 겨울에는 보드 타고, 가을에는 가구 만들고, 여름에는 웨이크보드를 시도하고, 또 날씨에 따라서 사진도 찍으러 다니고.
Q. 그럼 요즘 가장 즐기는 건 뭔가요?
요즘 제일 즐겨 하는 건 한강에서 제트스키 타는 거예요(웃음). 1인승 제트스키요. 2인승이나 3인승은 많이 타는데 1인용 제트스키는 묘기를 하는 거라고 생각해서 사람들이 잘 안 타더라고요. 저도 처음엔 그런 줄 알았는데 너무 재미있어요. 물 위를 마음대로 다닐 수 있다는 게.
Q. 제가 이천희 씨 매니저의 명함을 봤더니 ‘천희 공작소’라고 쓰여 있더라고요. “가구가 좋아서 회사 이름도 이렇게 지었나 보다” 했어요.
가구 만드는 일은 깊게 생각하진 않는데, 대신 나이 먹어서도 오랫동안 할 거 같다는 생각은 하고 있어요.
Q. 요즘 가구에 관심 갖는 사람이 많은가 봐요. 강동원 씨도 가구 만드는 걸 좋아한다고 예전에 〈누메로 옴므〉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는데….
그 친구와 제가 만드는 가구는 아주 달라요. 동원이는 정말 장인 수준의 퀄리티 높은 가구를 만들고 저는 그냥 흔히 쓰는 가구를 만들죠. 그냥 제 마음 가는 대로 만드는 편이에요. 만드는 재미를 좋아하는 거죠. 가구에 대해 많이 알지도 못해요. 그냥 ‘어떤 공간에 놓을 선반이 필요하다’ 싶으면 만드는 거예요.
Q. 어떤 가구 디자이너가 삶이 어느 정도 윤택해지면 가구에 관심을 갖게 된다고 하더라고요. 좀 윤택해졌나요?
음… 그런 편이죠. 제 또래 친구들은 먹고살 거, 아이 키울 거 걱정하고 있는데 저는 10년 후, 20년 후에도 가구를 만들 거라 생각하고 있는 걸 보면요. 어린 것일 수도 있고요.
Q. 어느 프로그램에선가 말하거나 대사를 외우는 것보다 차라리 공구 만드는 게 쉽다고 이야기하는 걸 봤어요. 연기 활동은 적성에 맞나요?
말을 하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정확히 외워서 뭔가를 말하는 건 어려워요. 그런데 그 안에서 캐릭터를 만들고 한 장면 한 장면 찍어나가면서 내가 이해한 대로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참 재미있더라고요. 가구를 디자인하고 자르고 붙이고 하는 것처럼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조금씩 만들어가는 과정 말이에요. 그런데 그건 가구와는 또 다른 재미가 있어요. 가구는 눈에 보이는 것을 만드는 거지만 캐릭터는 추상적인 것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니까요.
Q. 전공은 연극인데 모델로 데뷔했어요. 모델 일을 하면서도 연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나요?
제가 연극할 때 들은 말은 대부분 제 단점들에 대한 것이었어요. “넌 연극하기에 너무 키가 커” 같은 말이었죠. 그런데 그게 모델로서는 장점이 되었어요. 주변에서 “모델 해볼래?” 하는 얘기가 나온 거예요. 그런데 전 “연극배우 할 거지 모델 할 거 아니에요”라면서 거절했죠. 그러다 돈이 너무 없으니까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그렇다고 어디서 막노동을 하거나 서빙을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연기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거든요. 딱 그 타이밍에 모델 제의를 받은 거죠. 그때 제 용돈이 30만원이면 20만원은 연기를 위해서 발레를 배우고, 트레이닝을 받는 데도 썼거든요. 10만원으로 살다가 모델 하면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아서 시작한 거죠. 그러다 보니 재미있더라고요. 어린 마음에 멋진 모델들과 일하는 것도, 좋은 옷 입어보고 친구들한테 자랑하는 것도 좋고요. 제 주변에는 다 연극하면서 저처럼 10만원밖에 없는 애들이 태반이었으니까요. 그때는 제가 비싼 옷을 입어봤다는 것만으로 친구들한테 자랑거리가 되고 그랬어요(웃음).
Q. 모델로 활발하게 활동하다가 다시 연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뭐예요?
연기는 계속하고 싶었어요. 모델 일을 하면서 함께요. 그러다가 제 화보를 보고 한 장면 정도 나오는 작은 배역이 들어왔어요. 주변에서는 그렇게 조금 나오는데 왜 하느냐고 그랬지만 저는 꼭 하고 싶었어요. 연극할 때는 영화에 엑스트라로라도 출연하는 게 꿈이었거든요. “나 할래, 나 할래” 하면서 정말 좋아서 했죠. 그러면서 조금씩 작품이 늘고 배역의 무게도 커졌어요.
Q. 원래 연기를 하고 싶었는데 모델 출신이라는 것 때문에 손해 본 건 없나요?
이런 건 있어요. 처음에는 모델의 이미지 때문인지 멋진 역할만 맡았어요. 제가 생각해도 멋진 역할은 동원이 같은 멋진 배우가 맡으면 딱인데, 왜 이렇게 무게 잡는 멋진 역할만 들어올까 하고요. 그래서 오히려 자신감 없이 연기했던 적이 있죠. 전 좀 어리바리하거나 코믹한 캐릭터가 잘 어울릴 것 같은데 말이에요. 그런데 이민기 씨는 또 멋진 역할보다 항상 어리바리한 역할만 들어온다며 제가 부럽다고 하더라고요.
Q. ‘패밀리가 떴다’에서 자연스러운 모습을 많이 보여줬는데 이제 좀 달라졌을 것 같아요.
맞아요. 예전에는 “천희는 좀 무겁고 진지하잖아?” 그랬는데 이제는 “저런 면이 있었어?” 그래요. 좀 편안하고 애드리브가 강한 역할도 들어오고요. 대신 예전처럼 멋진 역할을 맡아달라는 제의는 끊겼지만(웃음).
Q. 그럼 요즘 사람들이 갖고 있는 ‘이천희’에 대한 생각에 본인도 동의하나요?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어요. 그전에 비해서 편하게 생각해주는 건 너무 고마운데 제가 그렇게 엉성하지만은 않거든요. 저도 방송을 보고 있으면 “내가 저렇게 어리바리한가? 어떻게 저럴 수 있지?” 하거든요. 물론 그런 모습도 있지만 설마 매번 그렇게 엉성하겠어요(웃음)?
Q. 그런 점에서 겁이 나는 부분이 있을 것 같아요. 한 가지 면만 부각되다 보면 오해가 생길 수도 있으니까.
예전에는 그냥 “연예인 아니야?” 하는 정도였어요. 그런데 요즘에는 “천데렐라 이천희다” 하고 알아보시는 분들이 많아졌어요. 그러다 보니 조금 조심스러워지더라고요. 또 내가 아닌 것 같고. TV에서는 방송이니까 삐딱하게 앉아 있지 않잖아요. 그런데 카페에 앉아서 커피를 마신다거나 할 때는 소파에 기대서 삐딱하게 앉기도 하고 담배를 피우기도 하는데 “천데렐라, 거만하게 앉아 있네”, “담배도 피우네” 하는 경우도 있으니까. ‘패밀리가 떴다’에서 보여준 모습하고 매치되지 않으면 안 좋게 보시는 경우도 있더라고요. 그런 점이 조심스럽죠.
Q. ‘패밀리가 떴다’를 통해서 대중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으니 하차할 때 많이 아쉬웠을 것 같아요.
주변에서 다들 말렸어요. 그래도 하차하기로 결정했죠. 어떻게 보면 ‘패밀리가 떴다’를 계속하는 게 저한테 더 좋을 수도 있어요. 사실 저도 뭐가 좋은지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배우 입장에서 볼 때 하나의 이미지로 고착되는 건 독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달콤한 유혹이긴 하죠. 그래서 더 단호히 결정했어요. 그런데 팬들도 그렇고 출연진과 헤어지는 게 참 아쉽더라고요. 프로그램에 피해를 주는 게 아닌가 싶어 미안하기도 하고요. 한창 잘나갈 때 제가 빠져서 분위기 달라진다고 절대 안 된다고 했으면 계속했을지도 몰라요. 미안하니까. 그런데 다행히 출연진이 제 생각을 잘 이해해줬어요. 넌 연기자니까 드라마가 잘돼서 게스트로 또 놀러 오면 된다고 말해줬죠. 제 입장에서 이해해줘서 너무 고마워요.
Q. 대체 아쉬운 이별을 하게 만든 그 작품은 뭔가요?
〈그대, 웃어요〉라는 드라마를 촬영하고 있어요. 예전에는 하지 않았던 약간 코믹하기도 한 역할이라 너무 재미있어요. 물론 재미있기만 한 건 아니에요. 예전에 맡은 인물들이 캐릭터에 변화가 없는 경우였다면 이번에 맡은 성준이라는 인물은 성장하는 캐릭터예요. 처음에는 가볍지만 나중에는 몰락한 집안을 책임지는 강한 역할로 바뀌어요. 지금까지 한 번도 성격이 바뀌는 캐릭터를 해본 적이 없어서 기대돼요. 이 작품으로 좀 다른 모습을 보여드리고 잘되면 다음에는 더 다양한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Q. 연기로 보여주고 싶은 것이 많군요.
…(웃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