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quire Korea, 2015년 12월
글/최태형 (158) / 글/김진호 사진/방송 화면 캡처 (159)

BEST NEW RESTAURANTS IN JEJU

제주도 좋다, 흑돼지 묵은지찜

한동안 질리도록 제주행 비행기에 올랐다. 제주도에 본사가 있는 포털 사이트에 다닐 때 일이다. 매주 화요일, 미디어 이슈에 대응하기 위해 조직된 TF 회의 때문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비행기 타는 건 질렸는지 몰라도 제주도는 만족스러웠다.

매주 월요일은 제주도 출장 근무로 시작했다. 공들여 준비 중인 프로젝트에 회의 준비도 허투루 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회의 하루 전 담당자들과 만나 분위기 파악과 사전 조율이 필요하다 말했다. 물론 표면적으론 그랬다.

비행기는 금요일 저녁에 탔다. 금요일 퇴근을 마치곤 공항으로 향했다. 월요일 제주 출장 근무를 신청한 덕에 주말을 휴가처럼 보내고도 화요일 오전 회의에 늦지 않을 수 있게 됐으니까. 짐을 쌀 땐 마치 해외 어딘가로 여행하는 것처럼 설렜다. 지금까지도 출장길이 그렇게 즐거웠던 적은 없다. 자전거로 10분만 달리면 바다를 볼 수 있다는 게 마음을 들뜨게 했고, 어느 식당이든 횟감이 싱싱하다는 건 엉덩이를 무겁게 했다. 제주 출장의 진짜 목적이 식도락 탐방과 해안 도로 라이딩이 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제주도니까.

제주도는 섬이라는 지리적 특성 덕에 육지와는 모든 것이 다르다. 다르다는 것은 불편함을 초래하지만 남다른 제주의 음식은 언제나 기분 좋게 느껴진다.

처음에는 제주를 찾을 때마다 해산물을 찾아다녔다. 제주도가 섬인 까닭에 제주 음식이라고 하면 갈치나 오분자기 뚝배기 혹은 횟감 등 해산물이 먼저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면목을 발견한 건 고작 싱싱함을 무기로 한 횟감에서가 아니다. 제주도는 농촌, 어촌, 산촌이 고루 뒤섞여 있는데 거기서 나오는 생산물이 다양하기 때문에 해산물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 물론 나 역시 바다로 둘러싸인 제주에 내리면 으레 해산물을 떠올렸던 게 사실이다. 자전거를 타고 해안 도로를 달리다 죽 늘어선 횟집 아무 곳에나 들어가도 싱싱한 회를 먹을 수 있으니까.

그러나 해안 도로의 횟집 영수증이 늘어날수록 싱싱함을 넘는 제주의 다른 맛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그리고 그걸 찾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돼지고기야 뭐 어디서든 맛있지.’

사실 서울 촌놈에게 해산물은 귀한 음식이다. 제아무리 제주도 흑돼지가 맛있다고 해도 돼지고기야 언제든 먹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기어이 또 해산물을 먹었다. 며칠을 갈치조림과 오분자기 뚝배기, 전복죽과 방어회로 식단을 채웠다. 어느 순간 입속에서 비릿한 바다 맛이 나는 것 같았다. 기분 좋은 제주의 바다 내음도 그날만은 입속을 온통 짭짤하게 만들 뿐이었다. 김치를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켄싱턴 제주 호텔의 제주 한식 퀴진 ‘돌미롱’을 찾았다. 돌미롱은 제주 한식을 현대적으로 풀어낸 한식 퀴진이다. 돌미롱은 달큰함을 뜻하는 제주도 방언으로, 이곳에서는 제주산 제철 식자재만을 사용한다. 농어촌과 산촌이 뒤섞인 제주인지라 이 지역에서 나는 식자재만으로도 충분히 맛을 낼 수 있다. 한라산의 표고버섯, 산채, 꿩 등은 특징적인 제주의 맛을 내는 훌륭한 식자재다. 특히 제주 흑돼지는 유교식 제례뿐 아니라 무속 제의에 쓸 정도로 제주 지역을 대표하는 음식이다. 추운 지방에서 자란 돼지는 지방이 많고 두꺼운 반면 따듯한 제주의 돼지는 육질이 부드럽고 지방이 고루 분포되어 훨씬 고소한 맛이 난다. 일반 돼지와 비교해 단백질 함량이 높고 열량이 낮기 때문이다. 돌미롱에서 정성스레 숙성시킨 포기김치와 마치 카스텔라처럼 부드럽게 부서지는 흑돼지고기. 고기가 입안에서 한라산의 눈처럼 녹는 듯 부서지다가 짭짤하고 칼칼하게 익은 묵은지 김치와 만난다. 이때 돌미롱에서 직접 만든 손두부를 입에 넣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입안에서 다양한 맛이 안정된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다. 바다의 맛을 담은 김치와 고소한 돼지고기가 담백한 두부와 만났을 때의 조화는 어디에서도 맛보기 힘든 균형 잡힌 감칠맛을 낸다. 입속에 가득 밴 감칠맛은 접시의 바닥이 드러날 때까지 수저를 움직이게 만든다. 그동안 제주의 맛이라고 생각했던 풍부한 바다의 맛과 싱싱한 식감과는 또 다른 맛이다. 제주 해산물의 청량함에 비견할 색다른 형태의 깊은 맛을 흑돼지 묵은지찜은 가지고 있다. 어쩌면 바다만 있으면 맛볼 수 있는 해산물보다 더욱 제주의 특색을 나타내는 맛이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제주를 찾으며 해산물에 집착했던 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돼지고기야 어디서든 맛있겠지만, 어느 곳보다 맛있는 돼지고기는 제주에 있다.

글/최태형

BEST COOKING SHOW ON TELEVISION

〈냉장고를 부탁해〉

〈냉장고를 부탁해〉 〈오늘 뭐 먹지?〉 〈집밥 백선생〉 〈올리브쇼〉 〈비법〉 〈삼시세끼〉 〈3대 천왕〉 〈강호대결 중화대반점〉 등등. 나열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쿡방’이 넘쳐난다. 이런 프로그램 외에도 예능 프로그램 내에서 요리하는 모습을 보여주거나 셰프가 등장하는 일이 허다하다. 요리를 소재로 한 프로그램이 아무리 많아도 그중 최고는 존재하기 마련이다. 〈에스콰이어〉의 ‘독단’과 ‘편견’으로 선정한 최고의 쿡방은 바로 〈냉장고를 부탁해〉다.

〈냉장고를 부탁해〉는 오락적 요소가 상당히 강하다. 방송을 시작한 이래 매주 발표되는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TV 프로그램’ 조사에서 꾸준하게 10위 안에 들면서 인기를 증명하고 있다. 일단 포맷부터 다른 프로그램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한다. 흔한 요리 대결을 예능 프로그램으로 완벽하게 승화시켰다. 출연자의 냉장고를 통째로 스튜디오로 옮겨 셰프들이 요리 대결을 펼친다. 냉장고는 한 사람 혹은 한 가족의 생활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를 엿보는 것만으로도 시청자들은 재미를 느끼게 된다. 제한된 재료로 승부를 보는 것, 철저하게 냉장고 주인의 주관적 판단으로 승자를 가리는 방식 등도 충분히 흥미를 유발할 만한 요소다.

단 15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요리를 완성해야 해 박진감이 배가된다. 시간제한이 〈냉장고를 부탁해〉가 이토록 인기를 끌게 된 결정적인 재미 요소다. 촉박한 시간 내에 요리를 완성하기 위해 칼 쓰는 기술부터 불을 다루는 기술까지 셰프의 실력이 만천하에 드러난다.

김성주, 정형돈 두 MC의 역할도 상당히 중요하다. 요리를 마치 스포츠 중계처럼 실시간으로 중계하면서 프로그램의 분위기를 이끈다. 김성주가 지금의 자리에 있게 된 것은 바로 월드컵 중계 캐스터를 맡으면서부터다. 특유의 캐스터 톤 진행과 정형돈의 익살이 합해져 엄청난 시너지를 발휘한다.

요리와 셰프를 방송으로 소비하는 지금의 행태에 방점을 찍은 것이 바로 〈냉장고를 부탁해〉다. 잔인하리만큼 셰프의 진을 모두 빼먹으면서 방송의 재미를 뽑아낸다. 어설픈 아류작이 되느니 차라리 극으로 치닫는 것이 훨씬 현명한 방법이다. 곧 셰프와 쿡방의 거품이 꺼질 것이다. 많은 수의 쿡방이 종영될 것이다. 일부 셰프는 거품 인기가 사그라진 것에 허탈감을 느낄 것이고 대부분은 제자리를 찾아 주방에서 요리에 전념할 것이다. 〈냉장고를 부탁해〉는 살아남을 가능성이 크다. 혹시 사라진다 해도 쿡방 열풍 후에도 기억되고 방송 활동을 이어가게 될 셰프는 대부분 〈냉장고를 부탁해〉에 출연한 이들일 것이다.

글/김진호 사진/방송 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