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메로 옴므〉가 남자에 대한 얘기를 나누려 말을 건넨 인물은 타이거 JK다. 음악과 편견 그리고 병마와의 싸움에서 승률 높은 싸움꾼이었던 그는 지금 먼저 악수를 청하는 멋진 남자가 되어 있기에….
Numéro Homme, 2009년
에디터 | 최태형 스타일 에디터 | 오종환 포토그래퍼 | 박승갑 헤어 & 메이크업 | 예원상 어시스턴트 | 이영표
# Big man
〈누메로 옴므〉가 남자에 대한 얘기를 나누려 말을 건넨 인물은 타이거 JK다. 음악과 편견 그리고 병마와의 싸움에서 승률 높은 싸움꾼이었던 그는 지금 먼저 악수를 청하는 멋진 남자가 되어 있기에….
[Numéro] 예전과 분위기가 많이 달라요.
[타이거 JK] 많은 변화가 있었죠. 가정도, 아이도 저를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들어요.
Q. 요즘 부쩍 책임감이 커졌을 것 같아요. 힙합 1세대로서 책임감도 그렇지만 개인적으로도 가장, 아버지가 됐잖아요.
피부에 와 닿는 건 시간적·정신적 자유가 많이 없어졌다는 사실이에요. 결혼 전에 비해 실질적으로 많은 변화가 생긴 건 아니에요. 그런데 ‘결혼’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큰 영향을 미치는지 몰랐어요. 하나가 된 거잖아요. 각자 추구하는 바가 매우 다르고 음악적으로도 다른 점이 많은데 결혼을 통해 하나로 묶였어요. 제 행동이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니 매우 조심스러워요. 예전 같으면 막 뱉었을 만한 말을 혼자 소처럼 씹어 먹는 거죠. 아내나 아이가 영향을 받을 수 있으니까요.
Q. 그런 면에서 힙합 문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서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당신의 욕설과 일탈은 일종의 대리 만족이었으니까요.
분명히 그럴 것 같아요. 저 스스로도 서운할 때가 있으니까요. 그렇다고 제가 어른스러워진 것 같진 않아요. 그래서 혼란스럽기도 하죠. 어른스러워져야 하는데 자꾸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게 돼요. 조심스러워진다는 것은 음악 활동 외의 생활에서 그런 거고요.
Q. 음악적으로 어떻게 어른이 되어가고 있나요?
저는 제가 맞든 틀리든 제멋대로, 제 고집대로 밀어붙이곤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생각을 두 번 세 번 하게 돼요. 그러다 보니 “내가 누구지?” 하는 상투적인 질문도 많이 하게 되죠. 많은 면에서 매우 혼란스럽더라고요. 다시 사춘기를 겪는 느낌이에요. 위험한 선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게 힙합 문화의 한 부분이에요. 음악 안에서 마음에 안 들면 때려 부수고 욕하고 감정을 표출하는 거죠. 사람들은 거기에서 대리 만족을 느끼기도 하고요. 저도 그래왔지만 지금은 약간 다른 방법으로 표출하는 것 같아요. 힙합 하면 거칠고 직설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다른 방향을 제시하는 거죠. 그러면서 스펙트럼을 넓히기도 하고요. 제가 또 다른 방향으로 힙합의 영역을 넓히는 동안 다른 젊은 친구들의 활동 무대가 넓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도 괜찮은 듯해요.
Q. 그런 면에서 또 책임감을 느낄 듯해요. 힙합 뮤지션은 자유로운 모습, 흐트러진 모습도 여과 없이 보여주는데 아버지가 된 힙합 뮤지션이라….
다른 식으로 더 강해진 것 같아요. 직설적으로 내뱉던 것들을 돌려 말할 수 있게 된 거죠. 내용이 바뀌는 게 아니라 방법이 유연해진 거라고 할 수 있죠. 예전에는 벽이 있으면 미친놈처럼 이마로 깨서 피를 흘리면서도 무너뜨려야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돌아간다든가 사다리를 타고 넘어간다든가 하죠. 약한 모습도 보여줄 수 있어야 진짜로 강하다고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자신감이 없는 사람들은 잘못을 인정할 수 없어요. 감당할 수 없으니까. 그리고 음악으로 하는 말들이 바로 현실에 반영되는 것은 아니에요. 음악이기에 허용되는 부분이 있죠. 상상 속의 인물이 돼서 음악으로 말할 수도 있는 거고요.
Q. 상황에 맞는 행동이 필요하다는 거군요?
음악으로 한 말들을 반드시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는 건 아니에요. 예전과는 행동이나 말이 달라질 수도 있고요. 강함을 포기하고 내려놓는 게 아니라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는 법을 알게 된 거죠. 씨름에서 상대의 힘을 유연하게 역이용하는 것처럼요. 이를테면 제가 외국에서 인터뷰하면 조금 더 거칠게 행동할 수도 있어요. 외국 공연에서는 한국에서보다 더 공격적일 수도 있고요. 그런데 그게 가식적이거나 계산적인 게 아니라 서로 이해 가능한 언어로 소통하는 거죠. 약간 더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다는 뜻이에요. 하지만 공연할 때면 음악에 미치는 건 매한가지예요.
Q. 분위기뿐 아니라 실제로도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3년 전쯤 ‘쌈지 사운드 페스티벌’에서 보았을 때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은 매치가 잘 안 되거든요.
그 당시 저에게는 내일이 보이지 않았어요. ‘이것이 나의 마지막 무대고 나의 장례식이다’라고 생각했죠. 100명 중 20명이 저의 팬이고 80명은 그냥 대중이라면 전 20명만을 위해 공연하고 싶었어요.
Q. 그때는 지금과 다르게 아주 불안정해 보였어요.
‘It never rains but it pours’라는 속담이 있잖아요. 나쁜 일은 겹쳐서 온다는 거죠. 척수염으로 쓰러지고 겨우 걸을 수 있게 되었을 즈음 광고 계약이 줄줄이 취소됐어요. 저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회사를 위해서 그런 수입은 필요하거든요. 그러나 아픈 저의 이미지가 광고주에게 좋게 비칠 리 없었죠. 당시 할머니도 돌아가시고 제 음악도 줄줄이 금지곡이 되었어요. 인터뷰에서 제가 한 말들이 다 왜곡되어 전달되고…. 안 그래도 상처투성이에 어려운 상황으로 열등감에 휩싸여 있었는데…. 더 악해지고 독기만 남았죠. 쌈지 사운드 페스티벌은 록 페스티벌이고, 록 음악의 퍼포먼스는 드럼도 부수고 기타도 집어 던지는 행동이 어느 정도 허용되는 무대잖아요. 그래서 마이크 스탠드도 부수고 욕도 하고 일종의 퍼포먼스를 한 거죠.
Q.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이 무대에 호응하고 공감했어요.
이런 마음이었어요. ‘내가 하지도 않은 말들이 기사화되어서 욕을 먹을 바에야 아예 내가 제공할 테니 마음껏 기사화해라….’ 그런데 제게 기적이 일어났어요. 마지막이구나, 이제 다 끝이구나 포기하고 노래를 하는데 영화처럼 비가 내리기 시작했지요. 앞에 선 사람들이 저랑 같이 울면서 제 곡을 따라 부르더라고요. 그때 저는 할머니께서 나에게 사인을 주시는구나, 할머니가 저를 보며 울어주시는구나 하고 느꼈어요.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전율을 느꼈죠. 그리고 굉장히 평온한 마음으로 무대에서 내려왔어요. 지금 돌이켜보면 도박이 필요한 순간이었어요. 스스로 왜 음악을 하는지 몰랐는데 그때 깨달은 거죠.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순간이었던 것 같아요. 물론 과격한 행동에 언짢아한 분들도 있었겠지만 이해해주신 분들이 많았어요. 그러고 나서 상황이 좋아지고 더 많은 사람들이 저에 대해 알게 됐죠. 〈무한도전〉에 출연한 것 때문일지 모르지만 절 모를 것 같은 아이에서부터 할아버지까지 제 노래를 좋아한다고 말하더라고요. 그래서 이제는 함부로 행동하면 안 되겠구나 생각했죠. 음악 외적으로요.
Q. 책임이 늘면서 추구하는 남성상도 달라졌을 것 같아요.
예전에는 누가 덤비면 치는 게 남자였어요. 가족을 위해서라면 상대를 때려눕혀야 하는…. 지금은 먼저 손을 내미는 게 멋진 남자라고 생각해요. ‘눈에는 눈, 이에는 이’가 아니라 따뜻하게 받아주는 거죠. 시시한가요(웃음)? 그보다 나이에 대한 선입견을 스스로 갖지 않는 게 멋진 남자인 것 같아요. 내 아이를 생각하면 모두가 바른길로 자랐으면 좋겠지만 사실 한 번쯤 삐뚤어져볼 수도 있을 나이에 너무 수행하듯이 공부에 묶여 살잖아요. 젊은 시기에 표출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관대하게 배려하고 용서할 수도 있어야 하는데 우리 사회는 제한하기만 해요. 그러면서 나이에 대한 편견도 많죠. 나이에 따라 꼭 해야 할 것들과 나이가 들면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는데 말이에요. 정작 성숙한 뒤 더 잘할 수 있을 때 자신을 잃어버리죠. 제가 추구하는 남성상은 그런 것에서 벗어나 영원한 청춘을 누리는 것이에요.
Q. 그래서 드렁큰 타이거를 따르는 후배 뮤지션들이 많은 거군요. 드렁큰 타이거에 대한 오해도 많고 곱지 않은 시선도 많지만 인복은 참 많아 보여요.
돈복은 없지만 인복이 많은 건 사실인 것 같아요. 그런데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처럼 제가 후배들한테 “너 내 밑으로 들어와서 이렇게 해라” 하고 말하거나 이리저리 다니면서 형님 노릇을 한 적은 없어요. 개인주의라고 말할 정도로 존재감 없이 있었죠. 집도 동두천이에요. 강남이나 홍대와는 거리가 멀어요. 어딜 막 돌아다니는 성격도 아니죠. 후배들을 동생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서로 존중했어요. 사람들이 저를 리더고 맏형이라 하지만 오히려 제가 동생처럼 하고 싶은 대로 할 때가 많았죠. 그래서 서로 잘 통하는 것 같아요.
Q. 윤미래 씨와도 참 잘 어울려요.
그녀는 보물이고 보석이에요. 저에게뿐 아니라 힙합 음악계에서도요. 크레이그 데이비드도 그렇고 라킴도 그렇고 외국 뮤지션이 한국에 오면 첫 번째로 미래를 찾아요. 존 레전드도 한국 공연의 마지막을 미래와 함께하고 싶다고 했어요. 미래 덕분에 저도 해외 뮤지션과 직접 소통하는 기회를 갖기도 하죠.
Q. 서로 많은 영향을 주고받을 것 같아요. 특히 다이나믹 듀오의 최자 씨는 한국의 모든 래퍼가 미래에게 열등감을 느낄 거라고 했어요. 아무리 잘해도 그녀를 따라갈 수 없으니까요. 그러면서 제가 제일 직접적으로 느낄 거라고 하던데요.
맞아요. 넘을 수 없죠. 너무 잘하니까 사람들이 얼마나 잘하는지 몰라요. 흔한 일로 생각하는 거죠. 그래서 아쉬워요. 본인도 몰라요. 자신이 얼마나 잘하는지, 얼마나 소중한 선물을 받은 건지. 그래서 저는 더 화가 나요. 나는 노력해도 될까 말까인데 이 친구는 얼마나 천부적으로 잘하니까요. 그게 어려운 건지도 모르니까요. 그래서 더 노력하게 돼요. 아내에게 욕먹기는 싫거든요. 그리고 그녀는 매우 ‘솔풀’한 사람이에요. 그런 점에서 영향을 많이 받아요. 미처 생각지 못한 영역에 귀 기울이게 되고요. 쑥스럽지만 미래도 제가 공연할 때 영향을 받는다고 하더라고요.
Q. 음악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도 러브콜을 받고 있다고 들었어요.
영화 쪽에서 이런저런 제의가 들어왔는데, 언젠가 적절한 시점에 제대로 해보고 싶어요. 제대로라는 건 조연이라도 진짜 연기를 한다 싶게 하는 거죠. 섣불리 해서는 안 될 것 같아요. 〈이탈리안 잡〉에 출연한 모스 데프처럼 완벽하게 소화해내고 싶어요. 음악에 충실하고 열정을 좇다 보면 제게 맞는 역할을 찾겠죠. 그리고 또 하나의 꿈은 작가예요. 그걸 랩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단편소설도 내고 싶어요. 개인적으로 꾸준히 글을 쓰고 있어요. 아직 좋은 작품이라 할 수는 없지만 제 이야기를 책으로 내고 싶은 것은 사실이에요. 랩으로 단축한 이야기를 풀어서 쓰고 있어요.
Q. 그런 것들을 언제쯤 만나볼 수 있을까요? 벌써 또 한 번 어른이 된 타이거 JK가 기다려지는데요.
청개구리 근성이 있어요. 그래서 아직 사춘기라고 말하는 것이기도 하고(웃음). 유행처럼 연예인들이 책을 내고 있어서 당장은 내고 싶지 않아요. 잠잠해지고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때쯤 제 책이 휴게소에 꽂혀 있으면 좋을 거 같아요(웃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