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quire Korea
글/최태형 사진/우창원

사표가 수리되고 훌쩍 날아간 곳은 핀란드였다. 헬싱키 공항에 도착했을 때 비는 날리듯 내리고 있었다. 문득, 오늘 밤 잘 곳이 없다는 게 떠올랐다. 이직의 텀에는 쉬어야 한다는 강박과 인수인계 사이에서 서두른 결과였다. 호텔 예약일보다 도착 일정이 하루 빨랐다. 서울에선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낯선 타국에선 체감이 달랐다. 우울해졌다. 파란색 검색창에 ‘핀란드’만 쳐 넣어도 감자 줄기처럼 날씨, 언어, 환율, 호텔 정보까지 떠먹여주는 세상에서 게으름을 피운 벌이다. 뒤늦게 타이핑했다.

‘핀란드, 우울하다.’ [전송]

예약한 호텔에서 가장 가깝고 싼 호텔을 찾을 심산으로 인포메이션 센터로 향했다. 그 와중에 스마트폰이 연신 알람을 울려댔다. 사진과 위치 태그, 짜낸 우울함까지 더해 업로드한 페이스북 아이콘에 알람 배지가 달려 있었다. 자기 전에 자일리톨 껌을 씹는지 따위의 질문 몇 개, ‘좋아요’ 몇 개.

좀처럼 우울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허접스러운 지도와 한 시간여 씨름한 끝에 호텔에 도착할 수 있었다. 로밍도 잊은 탓이다. 순간, 잠잠했던 스마트폰이 다시 요란하게 울렸다. 호텔 무료 와이파이를 잡아 힘겹게 뱉어내는 알람 배지가 이번엔 유독 빨갛게 보였다. 왠지 설렜다.

“나도 지금 헬싱키 멀지 않네….”

익숙한 듯 낯선 여자 이름 뒤엔 반가운 코멘트가 달려 있었다. 여행의 다음 목적지인 파리 정도에 누군가가 있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핀란드에서라니! 비현실적이었다.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떤 위로든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까맣게 잊고 있던 그녀는 1년 전 만난 ‘소개팅녀’였다. 우리는 기억에 남지 않는 섹스 한 번과 몇 번의 속 빈 만남을 가졌던 사이다. 그 후 그녀가 대학원에 진학한다며 영국으로 떠났고 그렇게 잊고 지낸 게 반년이었다. 지금은 방학을 맞아 헬싱키에 머무르고 있다고 했다. 북유럽 디자인을 보러 왔는데 청어 맛에 흠뻑 빠졌다고도 했다.

그녀와의 사건은 대학로의 한 이자카야에서 일어났다. 식사에 술을 덧붙이기에 이만한 곳이 없다는 나의 속내가 있었다. ‘연애의 목적’ 달성에 술이 빠질 순 없으니까. 그녀는 메로구이를 주문했다. 내내 깨죽대던 그녀가 사케 몇 잔에 얼굴이 벌게져 실은 초밥을 먹고 싶었다고 했다.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입을 벌리고 볼을 부풀리기엔 부끄러워 대신 똑똑 잘리는 메로구이를 먹었다는 것이다. 벌겋게 상기된 그녀가 귀여워 보였다. 그녀의 바람대로 볼을 부풀려주고 싶었고, ‘날것’도 넣어주고 싶었다. 오늘이 날임을 느낀 건 본능이었다. 사케 두 팩을 조르듯 더 비우고 몇 번의 택시 잡는 시늉과 거짓 공약을 마친 후 모텔에 ‘입성’할 수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첫 섹스는 딱 메로구이 같았다. 사케로 제법 그녀의 긴장을 풀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원점이었던 것이다. 퍽퍽하고 뚝뚝 끊어졌다. 어색했고 그게 끝이었다.

타지에 있다는 동질감 때문인지 만남은 수월했다. 본능적인 기대감이 발동했다. 남자는 본래 낯선 곳에서 움츠러들지만 여자는 다르다. 주변의 시선에서도, 도덕관념에서도 오히려 해외에서는 자유롭다. 다시 그녀와의 섹스가 궁금해졌다.

카우파토리라고 부르는 노천 재래시장은 꼭 청어 축제가 아니어도 청어가 흔하다. 우리는 아무렇게나 제 모양 그대로 튀긴 청어를 먹었다. 그녀는 한껏 볼을 부풀리며 청어 한 마리를 모두 입에 털어 넣었다. 입을 가리는 것도 잊고 오물오물거렸다. 비린 맛이 하나도 남지 않은 청어는 고소했다. 그녀는 진짜 맛있는 청어는 따로 있다며 꼭 맛보여주고 싶은 것이 있다고 했다. 나도 맛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그녀는 이전과는 사뭇 달랐다. 유학생의 일상은 제법 건강하다. 서울에선 매일 타던 택시도 살인적인 요금 탓에 탈 일이 없고 걷는 시간도 그만큼 많다. 또한 시한부 시티즌이라는 생각은 몸을 분주하게 만든다. 그 때문인지 그녀의 피부는 제법 구릿빛을 띠었고 몸매도 탄력 있어 보였다. 잰 몸동작에 옷매무새도 대범했다.

그녀는 내 손을 당겨 식료품점으로 들어갔다. 거기서 유리병에 든 청어 통조림 두 개와 화이트 와인 한 병을 샀다. 통조림 하나는 하얀 액체에 살만 발린 청어가 둥둥 떠다녔고 다른 하나는 노란색 카레에 청어 살점이 숨어 있었다. 사케도, 택시 잡는 시늉도 없이 우리는 내가 묵는 호텔로 향했다.

‘빵’ 하고 통조림 뚜껑 열리는 소리가 야릇했다. 달짝지근하면서도 시큼한 맛에 코끝이 시렸다. 와인 한 잔에 부쩍 가까워진 코끝이 그녀의 목덜미에 닿을 때 맡은 바로 그 냄새다. 싫지 않은 건강한 냄새. 시큼하고 야한 냄새. 한 마리를 반으로 갈라 가시를 빼고 돌돌 말아 절인 청어는 마치 혓바닥 같았다. 불쑥 그녀의 혀가 입으로 들어왔다. 비늘처럼 미끈하고 뼈를 바른 살처럼 까슬하게 밀어 넣었다. 고불대고 돌돌 말렸다. 도톰하고 단단하기도 했다. 그녀는 식초 물에 담긴 청어처럼 젖었다. 속살은 씹으면 물컹거렸고 비려지면서 또 달달해졌다. 그러다 꿀꺽 삼키면 결국 아무 맛도 남지 않았다. 와인을 새로 따르고 다시 시작했다. 다음은 카레에 절인 통조림을 땄다. 걸쭉한 느낌의 노란 카레 사이에 핑크색 청어 속살이 보였다. 그녀의 그곳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불쑥 손을 가져다 댔다. 끈적하고 축축했다. 순간 힘껏 몸을 비트는 청어처럼 손끝에서 빠져나갔다. 부끄럽지 않았다. 떨어진 건 떨어진 대로 두고 다시 손가락을 넣었다. 검지와 중지를 밀어 넣고 엄지로 살짝 잡았다. 이번엔 부드럽고 천천히…. 빠져 나가지 못하게 살며시 달래듯 어르며 입으로 가져갔다. 색다른 맛이 났다. 한국에서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맛이었다. 질척하면서 끈적했고 매콤하면서도 단 카레. 처음부터 끝까지 짙은 향. 우리는 그렇게 밤새 청어를 먹었다. 배가 부른 줄도 몰랐고 해가 지지도 않았다.

청어 통조림은 메로구이와 달랐다. 우리는 밤인지 낮인지 분간되지 않는 백야에 그렇게 솔직했다. 문득 무엇을 먹는지가 너를 말해준다는 말이 생각났다. 그리고 무엇을 먹는지가 어떻게 하는지를 더욱 잘 설명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 킥킥댔다. 핀란드에서의 섹스는 청어 맛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