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승맞던 겨울 바다는 잊어라.

Esquire Korea, 2014년 2월

바다는 여름에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름은 바다의 계절이고, 바다는 여름의 마스코트니까. 여름에는 산, 들, 강 모두 바다만 못하다. 작열하는 태양이 그렇고 눈부시게 부서지는 모래사장이 그렇다. 무엇보다 비키니가 있으니 다른 곳은 바다의 상대가 될 수 없다.

겨울에 바다를 찾는 건 청승이고 낭비였다. 스키장이며 설산이며 겨울엔 겨울 나름대로 가야 할 곳이 많은데 황량한 바다라니…. 바닷가에서 찬바람이나 맞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새해 일출을 보겠다며 정동진으로 향하는 인파를 이해할 수 없었다. 첫 해돋이든 뭐든 겨울과 바다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으니까.

눈발이 날리고 겨울 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1월, 자동차 내비게이션에 ‘기사문 해변’을 입력했다. 서울에서부터 세 시간을 내달렸다. 비키니를 입은 여자도 구릿빛으로 태닝 중인 젊음도 없다는 걸 알지만 바다로 향했다.

그곳에 파도가 있다고 했다. 3미터 넘는 높은 파도를 한국에서도 만날 수 있다고 했다. 힘차게 말리는 배럴(파도의 경사가 급할 때 파도 안쪽에 동굴 같은 공간이 생기는 것)도, 그 속으로 서퍼가 들어가는 광경도 종종 볼 수 있다고 했다. 파도 하나만 생각했다.

서핑에 맛을 들인 죄다. 언제부터인가 바다에 가면 비키니보다 파도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몇 년 전 하와이에서 시작한 ‘서핑 허세’ 탓이기도 하고 작년 겨울 발리에서 맛본 파도 때문이기도 했다. 제주를 들락거리며 여름 파도를 즐긴 것도 한몫했는데 서울에 있다 보니 파도에 목이 말랐던 게다.

‘동해의 겨울 파도가 좋다’는 말이 머릿속에 숙제처럼 남아 있었다. 지긋지긋하게 추위를 싫어하는 탓에 ‘내가 그렇게까지 서핑을 좋아하나?’ 자문하며 참았는데 기사를 핑계로 도전해보기로 했다.

양양 기사문 해변에 다다랐을 때 차창 너머 바다에는 이미 열댓 개의 검은 점이 떠 있었다. 서퍼들이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방한 슈트를 입고 힘차게 파도를 잡고 있었다. 한 무리의 해녀들 같기도 했다. 추워 보이기는커녕 힘차 보였다. 서퍼들 덕에 겨울 바다도 생각만큼 처량하진 않은 듯했다. 파도를 보니 설레기까지 했다.

생각이 바뀌는 건 순간이었다. 주차를 완료하고 차문을 열자마자 온몸에 겨울 바다의 칼바람이 스며들었다. 사람이 간사하다고 느껴졌다. 이런 추위라면 바닷가 근처에 얼씬도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점령했다. 한겨울에 물속에 들어간다니, 괜한 짓을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정말 들어갈 거야? 그건 좀 아니지 않아?’

‘죽지 마 ㅋㅋㅋ’

겨울 서핑을 한다는 말에 친구들이 키득대며 보낸 카톡 농담이 진한 걱정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물에 들어가기 싫어서 그런 것인지도 몰랐다.

두꺼운 서핑 슈트를 입으면 추위를 느낄 수 없다는 말을 믿어보기로 했다. 두께 4밀리미터짜리 슈트를 입었다. 숨 쉴 틈도 없이 온몸을 꽉 죄는 드라이 슈트다. 장갑과 신발까지 착용하니 정말 추위가 느껴지지 않았다. 제법 따뜻한 기분도 들었다. 무엇보다 서핑 슈트에는 마력이 있었다. 몸에 딱 밀착되는 통에 온몸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얼른 바다로 뛰어 들어가고 싶게 만드는 재주다. ‘서귀포시에 거주하는 40대 해녀’…

라고 해도 믿을 것 같았다. 두꺼운 허벅지와 뽈록 나온 뱃살의 몸매가 여지없이 드러났다. 민망한 마음에 보드를 들고 물로 내달렸다. 창피해서였는지 물속에 들어가니 오히려 편했다. 물은 슈트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고 눈앞의 파도는 여름에 보던 ‘장판’같이 낮은 파도가 아니었다. 겨울 동해에는 여름과 비교할 수 없는 높고 큰 파도가 있었다.

파도를 고르는 라인업에 서기 위해 물살을 거슬러 나가는데 갑자기 정신이 혼미했다. 물이 얼굴에 닿자마자 눈, 코, 입이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입술은 파래졌고 코, 귀, 광대는 촉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머리카락이 물에 젖어 쓸어올리면 뻑뻑하게 얼어 머리가 다 뽑힐 것만 같았다. 코앞에서 넘실대는 파도만 아니었어도 그대로 돌아 나왔을 것 같다. 제법 좋은 파도가 눈앞에 있으니 한 번은 파도를 타야 겠다는 생각이 앞섰다. ‘어차피 버린 몸’ 파도라도 타보자 하는 심산도 있었다. 그래도 추위는 매서웠다. 파도를 기다리는 라인업에 나가기까지 1초 단위로 마음이 오락가락했다. 돌아가자는 마음과 참자는 생각이 싸웠다. 그런데 라인업에서 넘실대는 파도를 지켜보다 보니 신기하게도 머리가 고요해졌다. 오로지 ‘좋은 파도’ 생각뿐이었다. 좌우의 사람들이 커다란 파도를 골라 테이크오프를 하는 모습을 보니 더욱 그랬다.

겨울 서핑은 확실히 매력 있었다. 동해의 겨울은 ‘오프쇼어’라 부르는 육풍이 분다. 육풍은 육지에서 바다로 부는 바람을 뜻한다. 육풍이 불면 파도가 한쪽부터 부서져 내리는데 이때 파도에는 길이 생긴다. 그럼 길이 생기는 쪽으로 보드 머리를 돌려 라이딩 할 수 있다. 이를 사이드 라이딩이라고 한다. 서퍼들이 좋아하는 ‘이국적’ 파도다. 게다가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이 없어 사고의 위험도 적다. 바다를 온통 서퍼들이 독차지해도 뭐라는 사람이 없다. 양양서프의 강한수 사장은 라인업에 서서 눈 덮인 해변을 바라보는 게 좋다고 했다. 그게 겨울 서핑에서만 느낄 수 있는 진짜 매력이라고 했다. 3미터가 넘는 파도를 만나 넘어지고 쓸리다 보면 자연 앞의 겸손함도 느껴진다고 했다.

그날 눈은 오지 않았다. 다행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너무 높은 파도는 타려고 하지도 않았고, 쓸려 넘어지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너무 추웠으니까. 그래도 겨울 서핑의 매력에는 동의했다. 추위를 완전히 이길 순 없었지만 감수할 마음은 들었으니까. 하긴 알래스카의 강추위에서도 서핑을 하는데 매력이 없으면 그럴 수 있겠나 싶다.

누군가는 이 글을 보고 동해로 향했으면 좋겠다. 이 좋은 겨울 바다를 혼자만 독차지하긴 미안해서다.

[박스] 겨울 서핑의 필수 아이템

1 서프보드 보드의 크기로 좋고 나쁨을 따지지 않는다. 자신의 실력과 파도의 컨디션에 따라 선택한다. 초보라면 크고 부력이 좋은 롱보드로 시작하자. 2 서핑 슈트 겨울 슈트는 4밀리미터 이상의 두께를 가진 것으로 선택한다. 몸에 꽉 끼게 입는다. 3 리쉬코드 서프보드와 서퍼를 연결해준다. 4 후드 마치 해녀 같아 보일 순 있지만 창피한 건 잠깐이다. 얼굴의 추위를 막을 수 있다. 5 왁스 보드 위에 칠해 미끄러짐을 방지한다. 겨울용을 선택한다. 6 글러브 손을 보호하고 체온이 떨어지는 것을 막아주는 장갑. 7 부츠 산호초 등에 발이 다치지 않도록 보호해주고 체온이 떨어지는 것도 방지한다.

[박스] 서핑의 기본

서핑의 기본동작은 어렵지 않다. 어려운 점이라면 파도를 잡는 것과 자신의 몸과 보드의 무게중심을 찾는 것이다. 단순히 알아서 될 게 아니다. 습관처럼 몸에 익히는 게 중요하다.

1 패들링 서핑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다. 보드의 끝부분이 물에 잠기지 않도록 유지한다. 상체를 꼿꼿하게 세우고 시선은 정면을 향한 후 양팔을 힘차게 젓는다. 2 푸시 업 파도가 밀어주는 힘이 느껴지면 보드에서 몸을 일으킨다. 3 테이크 오프 보드 위에서 몸을 일으켜 세운다. 4 라이딩 시선을 진행 방향으로 유지하며 파도를 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