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추고 싶은 것을 굳이 들춰내야 속이 편한 양익준. 독립 영화 <똥파리>로 대중의 아픈 곳을 건드린 그가 스스로의 치료법을 들려줬다.
Numéro, 2009년 5월
에디터│최태형 스타일 에디터│오충환 포토그래퍼│김형식 헤어 & 메이크업│예원상
첫 장편영화로 갑작스럽게 주목받고 있다.
처음 영화를 만들기 시작할 땐 어떤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뚜렷한 목적의식도 없었다. 그냥 내가 뱉어내고 싶은 것을 영화로 분출한 것뿐이다. 창작자가 아니었다면 내 안에 분으로 안고 살았을 것들이다.
성장 과정, 영화인으로서의 과정 모두 일종의 ‘마이너’였다.
외부의 기준에 따라 등급을 나눈다면 ‘마이너’가 맞다. 그런데 내 주변에는 그런 ‘B급’들이 너무 많았다. 중학생 때부터 담배 피우고 본드 흡입하고, 정상적이지 않은 성에 관심을 두고…. 욕망을 주체할 수 없어서 그런 게 아니라 가족의 관심을 받지 못했고 사회에 스며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열에 아홉은 그랬다. 그냥 덮어두었기 때문에 모르는 거지 그런 사람이 많았다. 지금이나 다음 세대도 마찬가지다.
해외 영화제 수상으로 갑작스럽게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약자’에서 일약 ‘강자’가 된 셈이다.
내 마음대로 만든 영화다. 달라진 것은 없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 입장에서는 ‘상을 받았으니’ 달라 보이는 것일 수도 있다. 방송에도 나오고, 장관도 만나니까 양익준이 달라 보이고 대하는 게 달라지는 거다. 그냥 웃기다. 누구나 ‘경제’나 ‘사회’ 등 많은 것을 알지는 못해도 본능적인 ‘분별력’을 가지고 살아간다. 맞는 것과 틀린 것에 대한 내 안의 확실한 분별력을 가지고 있는데, 세상이 소외된 사람들의 분별력을 믿지 못한다. 이 세계는 영화 속 ‘가족’의 확대 판이다. 다음 영화에서는 성기를 그대로 노출하고 싶은 생각이 있다. 작게 보면 대중의 분별력을 무시하는 ‘영상물등급위원회’에 대한 ‘fuck you’일 수도 있고 세상에 대한 것일 수도 있다.
대중으로서는 폭력, 욕설이 가족이라는 대상과 만나는 게 부담스럽지 않을까?
‘관객과의 대화’를 열 번 이상 했는데, 그게 영화를 이해하는 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분명히 불편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도 영화 속 상황이 진실이라는 걸 안다.
모르는 게 약인 경우도 있지 않나?
힘든 과정이 없으면 어떻게 성숙할 수 있을까? 사람도 성장하려면 성장통을 겪어야 한다. 그게 무서워서 덮고 넘어가면 겉보기에는 안전한 듯하지만 사실 더 큰 불안감을 유발한다. 구더기가 들끓는 곳을 보자기로 덮어놓으면 눈에 보이지는 않겠지만 그 밑에 무엇인가 있을 거라는 불안감이 존재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럴 바에는 당장은 꺼림칙하더라도 들춰내고 다 씻어내버려야 한다. 그래야 진짜 편해진다.
아버지는 영화를 보셨나?
보셨다. “불편하셨죠?” 하고 물으니 그냥 아니라고 대답하셨다. 내가 피를 흥건히 흘리는 장면이 있는데 그 부분에서는 기분이 이상하셨다고 했다. 좀 더 말을 잘하는 분이었더라면 섬세하게 표현하셨겠지만 그게 지금까지 가족의 표현 방법이었으니 어쩔 수 없는 거다. 안타까운 거지.
가정과 폭력이 새로운 소재는 아니다. 양익준만의 화법은 무엇인가?
‘뻔한 이야기로 훌륭한 영화를 만들겠다’고 시작한 게 아니다. 그냥 35년간 밀린 일기를 쓰고 싶었다. 하고 싶은 이야기, 해왔던 고민들. ‘영화적 스킬로 훌륭하게 포장해야지’가 아니라 진심을 담아 찍은 영화이기에 그렇지 않을까 싶다. 여러 번 겪어도 적응이 안 되고 힘들고 아픈 일이 있다. 덮고 살아도 결국 누수가 생기는 일, 그게 가족의 문제다.
‘독립 영화’나 ‘배우’라는 키워드 말고 ‘감독’ 양익준이 궁금하다.
아직 스스로 감독이라는 개념에 대한 정립이 안 되어 있다. 이런 말도 했다. 앞으로 10년 동안 영화 안 만들어도 괜찮다고. 원래 감독 일을 하고 싶었던 사람도 아니었고, 그렇기 때문에 감독이라는 타이틀이 부담스럽기도 하다. 그저 내 안의 분을 배출할 통로를 찾고 싶었던 거고, 내가 10년여 동안 소위 ‘영화 판’에 있다 보니까 영화로 풀게 된 거다.
어떤 분야든 소포모어 콤플렉스가 있다. 다음 영화가 중요할 것 같다.
나는 부담이 없다. 이뤄놓은 것도 없다. 상으로 받은 트로피를 남들에게 줘도 상관없다. 물론 좀 아깝긴 하겠지만(웃음). 영화보다 내가 더 중요하니까 오래 쉴 거다. 지금의 상황을 다 소화하지 못한 상태에서 다른 일을 할 수는 없다. 일단 ‘팬덤(fandom)’이 사그라지길 기다릴 것이다. 아마 수염이 덥수룩하게 자라면 그때 가서 뭔가를 시작하지 않을까 싶다. 영화 말고 소설도 쓰고 싶고, 영어 공부도 하고 싶다. 내 인생에 영화는 1순위가 아니다. 아마 8순위쯤 될 거다. <똥파리>가 개봉해 좋은 평가를 받는 건 사실이지만 이제 나를 떠났다. 이제 <똥파리>는 극장에서 소비되어야 한다.
몇몇 다른 감독들과 비교하는 것은 어떤가?
그건 정말 내 관심 밖이다. 나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다. 오히려 사람들이 자꾸 그러니까 ‘나도 그렇게 해야 되는 건가?’라는 이상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래서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제도권(상업) 영화에 수긍하지 않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아’ 다르고 ‘어’ 다른 건데, 악동이 되고 싶다는 것이 아니다. 투자자, 배급사 등 그들이 원하는 걸 모두 수용하면 그 안에서 내 영화를 만들지 못한다는 거다. 그래서 그런 부분에서는 악동이 되어야 한다는 얘기다.
당신이 바라보는 세상은 어떤가?
살아갈 만하다. 염세적이지 않다. 어렵다고 얘기하다가 영화가 잘돼서 살 만한 곳이라고 하는 게 아니다. ‘희망을 갖자’가 아니라 밝게 살고 싶다. 그러다 보면 희망은 온다. 걱정 근심 없이 사는 사람들은 행복할까? 어려움이 있어야 행복도 알 수 있다. 내 영화도 마찬가지다. 내가 힘들 때 기쁜 얘기를 해주는 친구보다 자신도 힘들었던 얘기를 해주는 친구가 더욱 위로가 되듯이 말이다. 영화 속에 아픔을 드러내는 것은 밝음을 찾기 위해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