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미경을 통해서만 모습을 드러내는 생물학에서 지니 서는 거대한 작품을 꺼내어 펼쳤다. 선으로 이루어진 장대한 스케일의 작은 세상.

Numéro, 2009년 7월
에디터 | 최태형 포토그래퍼 | 고윤지

열두 살때 미국으로 건너가 마주한 캘리포니아는 지니 서에게 수평선이 펼쳐진 광활한 공간을 선사했다. 그곳에서 그녀는 누구에게도 침해받지 않고 활동할 수 있는 물리적 공간의 풍요로움을 경험한다. 하루 종일 아무도 스치지 않을 정도의 거대한 스케일로 할당된 사적 공간. 그러나 의식하지 못하고 만끽한 공간감은 한참의 시간이 지나 뉴욕에서의 대학 생활 중에야 깨어난다. 뉴욕은 캘리포니아와 반대로 수직적인 도시다. 높은 인구밀도와 촘촘히 뻗어 있는 고층 건물. 그 속에 작게 자리 잡은 그녀의 공간. 전혀 다른 두 공간의 이질적 차이로 지니 서는 스스로의 공간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이는 공간에 대한 민감한 감각을 일깨우는 계기가 됐다. 처음 뉴욕에서 전공한 생물학은 현미경을 통해 보이지 않던 작은 세상을 보여주었고, 대학원에서 공부한 미술은 그녀에게 그 세상을 눈앞으로 꺼내게 했다. 민감한 감각들로 현미경 밖으로 꺼낸 그녀만의 세상은 결국 그녀의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기조를 이룬다. 세상은 수많은 레이어로 촘촘히 이루어져 있다. 현미경을 통해 바라본 인체가 피부와 근육과 뼈 외에 수많은 층을 이루며 하나의 완성체를 이루듯이. 지니 서는 공간과 그 공간을 채우는 빛, 작품을 이루는 선과 면, 작품 속에서 움직이는 관람객 등 각각의 모든 레이어를 연결해 거대한 설치 작품을 탄생시킨다. 작품은 자연스럽게 공간과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관람객의 동선을 만들며 주변과 하나가 된다.

작년 싱가포르 국립미술관에서 선보인 개인전 <Storm>은 시트지를 이용해 아트리움의 거대한 유리 벽면을 화려한 색상의 선과 면으로 변화시킨 작품이다. 시간에 따라 움직이는 태양빛은 색색으로 채워진 창을 타고 들어와 인공 조명과 만나며 내부를 화려한 빛의 폭풍으로 감싸고 관람객을 폭풍 한가운데로 초대했다. 빛과 그림자가 만들어낸 장관은 매 순간 변하며 자연과 사람, 공간과 함께 끊임없이 상호작용을 한다. 이 작품은 지니 서의 작업 전반에 걸쳐 지속되어온 관심사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녀의 최근 작품 <end of Rainbow>는 ‘선’이라는 그녀의 조형 언어를 유지하며 새로운 시도를 한 결과물이다. ‘들여다보기’로 시작해 평면인 회화로, 그리고 입체 공간으로 자신의 생각을 확장시켜온 그녀가 새로운 오브제인 강철과 만나 또다시 생각의 증폭, 스케일의 확장을 이루어냈다. ‘플랫폼 2009’에서 기무사의 공간을 배경으로 다시 <end of Rainbow>전을 준비하고 있는 지니 서를 성북동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Numéro] 원래는 생물학을 전공했다고 들었다. 현미경을 통해서 작은 것을 들여다보고 더 작게 나누는 작업을 하는…. 반면 아이러니하게도 보여주는 작업들은 스케일이 굉장히 크다.

[지니 서] 생물학을 공부하는 동안 현미경을 통해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것을 접하면서 그 공간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아주 작은 마이크로 세상이 너무 싱그럽고 넓어 보였다. 일종의 스케일에 대한 생각이다. 내가 현존하는 세상과 현미경으로 보는 그 세상이 다른 것은 다른 차원의 스케일을 구현한다는 것이다. 지금 내가 하는 큰 스케일이 큰 작품을 창작하는 것은 다른 맥락에서 보면 다른 비율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난 처음 평면 작업에서 시작해 설치 작품을 하고 이제는 좀 더 오브젝트에 매력을 느끼고 있는데, 어떤 곳이든 그 공간을 읽는 게 중요하고 그 공간의 스케일을 아는 것, 그리고 그 비율을 생각하는 게 중요하다. 공간을 염두에 두고 비율과 주변을 유기적으로 해석해 작업이 이뤄진다. 생물학이 준 영향이 있다면, 그건 바로 시점에 관한 것이다. 대학교에서 시체를 해부할 땐 피부부터 들어가 나중엔 뼈까지 도달한다. 이처럼 여러 층위와 측면에서 보는 감각이 생겼다.

캘리포니아에서 생활하다가 뉴욕에서 미술 공부를 했다. 어찌 보면 넓고 광활한 곳에서 복잡하고 정신없는 곳으로 갔다. 그 또한 작품에 영향을 줬을 듯하다.

희한하게도 요새 그런 생각을 많이 한다. 열두 살 때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자란 곳이 캘리포니아다. 바닷가 앞에서 자랐는데, 이곳이 굉장히 ‘수평적인’ 곳이다. 바다와 하늘의 만남과 거대함을 만끽할 수 있는. 반면에 대학에 다니던 시절 경험한 뉴욕은 굉장히 ‘수직적인’ 도시다. 밀도가 높은 도시이고. 지금 생각해보면 거기서부터 공간에 대해 민감했다고 생각한다. 공간에 굶주렸던 것 같다. 어느 공간을 가든지, 교실이든지, 기숙사든지 공간을 먼저 보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생활하면서도 또 한 번의 일종의 스케일 변화를 겪었을 텐데.

언제나 만남과 그 관계의 ‘사이’에 대해 고민한다. 주어진 어떤 공간이든, 미술적이든 상업적이든 그 공간 안의 맥을 읽는다. 아이디어가 공간과 만나 유기적으로 작용한다. 이번 작품 <end of the rainbow> 또한 몽인아트센터에서 전시했고 ‘플랫폼 2009’에서는 기무사에서 전시를 하게 되는데, 기무사 건물은 일종의 한국 국방, 보안에 관련된 장소였고 따라서 아무나 갈 수 없는 폐쇄된 공간이었다. 그 자체가 참 흥미로운 것 같다. 단순히 물리적 공간에서가 아니라 그 공간의 의미까지 작품에서 서로 유기적으로 작용해 몽인아트센터에서의 전시와는 또 다른 작품이 된다. 하나의 공간이 따로 보이는 게 아니라 일종의 관계라고 생각한다.

작품 자체보다 공간과의 유기적인 소통으로 의미를 만들어낸다는 것인가?

그런 셈이다. 내가 사용하는 언어는 ‘선’이다. 선의 반복으로 공간을 만들어낸다. 예를 들면 평면 작업을 할 땐 캔버스 안에서 선을 그리며 2차원적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현실적인 공간 안에선 철 밴드로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기무사의 경우 더 매력적으로 느껴진 것은 1969년에 설계한 바 하우스 스타일의 곡선이 많은 공간이었고. 또 공간 자체가 가로로 굉장히 길게 퍼지면서 복도를 통해 방이 규칙적으로 배열되어 있다. 시각적으로 내 작품과 더 잘 맞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 작품의 중요한 요소는 관람객의 동선이다. 그게 굉장히 중요하다. 내 작품을 보는 게 아니라 ‘경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공간을 중시하는 거다. 따라서 몽인아트센터에서의 전시와 재료 자체는 동일하더라도 다른 작품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빛의 움직임도 중시한다. 그래서 공간 자체의 그림자가 없는 곳을 계속 원했다. 그런데 기무사의 테니스 코트가 딱 그렇더라. 햇빛이 움직이며 작품 자체에 자연스러운 그림자를 드리우는데, 이 그림자가 만들어낸 회화적 요소들이 좋았다. 이전 작업 <Shadow of Line>에서도 빛을 이용한, 흡사 라이트 쇼와 같은 시도를 하기도 했다. 테니스 코트에 전시하는 작품의 요소인 철조망은 굉장히 상징적인 요소다. 어떤 의미에서 보느냐에 따라 안에 있을 수도, 바깥에 있을 수도 있는. 그래서 가운데 있는 것이기도 하고. 기무사의 철조망과 나의 철조망 그리고 테니스 코트의 철조망이 소유한 서로 다른 의미에 대한 흥미로운 맥을 형성할 듯싶다.

그렇다면 선 하나하나의 의미는 무엇인가? 굳이 선을 택하는 것이라면 이유가 있을 텐데.

작가들마다 가지고 있는 시각적인 언어가 있을 것이다. 그게 나에겐 선이다. 난 페인팅을 하지만 그것은 선을 그리는 드로잉이라고 생각하고, 설치는 3D 드로잉이라고 생각한다. 그건 작가 개개인의 나름대로 해석하는 부분이다.

기무사에서 전시할 <end of the Rainbow>는 하나의 작품이지만 건물 안과 테니스 코트의 작품이 굉장히 다르게 느껴진다.

사실 1층, 2층의 작품이 다르다. 작품명이 <‘end of the Rainbow’>인 이유이기도 하다. 딱 봤을 때 시각적으로는 다르게 느껴지나 자세히 경험한다면 연결점을 느낄 수 있는. 작가 입장에서 다른 작품을 하고 싶었고, 한편으론 연결되는 작품을 하고 싶었다. 어쨌든 기본 아이디어는 같다. 이동성과 층위성, 대비성 등.

의미를 중시한다면 스케일의 크고 작음은 무의미할 수도 있을 듯하다. 십자가가 크기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지 않듯이.

주어진 상황이 중요하다. 어떤 맥락 속에 있느냐 하는. 십자가가 어디에 있는 건지. 목에 있느냐, 벌판에 있느냐에 따라 다른 것이다. 이번에 주어진 곳이 기무사라는 공간이고 그 공간과 융합될 수 있는 작품의 스케일이 필요한 것이다.

평면에서의 작업과 공간에서의 작업은 어떤 점이 다른가?

음… 다 똑같은 공간이다. 접근하는 방식은 모두 같다. 나에게는 스케일의 차이일 뿐이다.

종이에서 하던 작업이 공간으로 구현되면 더 큰 책임감이 뒤따를 것 같다.

나에게 그 책임은 같다. 작든 크든, 자기 아이디어니까. 어떻게 발전시키고 완성시키느냐가 중요하다. 오히려 그것보단 작품 사이의 관계에 대해 생각한다. 개인전을 하든 그룹전을 하든, 하나의 캔버스 옆에는 벽도 있을 것이고 다른 작품도 걸릴 텐데 관객은 그 모든 걸 다 보는 셈이니까. 평면적 작품이라도 갤러리 입구에서 들어오며 동선에 따라 그리고 빛에 따라 보이는 측면이 다르다. 이처럼 주변과의 조화를 고려해야 한다.

‘플랫폼 2009’의 또 다른 작품은 건축물(타임스스퀘어)의 겉면을 도화지로 삼았다.

아직 제목은 없다. 타임스스퀘어는 복합 문화 공간이다. 하나의 큰 마이크로 시티같이 느껴졌다. 몇 년 전부터 전시 공간을 벗어나는데 흥미를 느껴왔는데, 이것 같은 경우는 건축물의 한 면을 작품으로 만든다. 실내에서는 바닥과 천장만이 주된 공간이었는데 외부로 가니 정황상 스케일이 더 커졌다. 옆 건축물들과의 관계도 고려하게 되고….

마치 패턴 작업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패턴이라고 하면 일종의 암호적인 느낌을 받는다. 마치 모스 부호처럼 숨겨진 다른 의미가 있을 듯하다.

다른 작가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의 작품은 ‘딱 이거다’라는 정의는 없다. 당신의 의견도 굉장히 재미있는 해석이라고 생각한다.

작품으로 볼 때 임팩트를 전달해주는 역할에 있어서는 구체적인 작품에 비해 어려울 수 있겠다.

작가마다 다르다. 명백하고 정치적인 메시지가 강한 것도 있는 반면 감성적이고 개인적인 것도 있는 것이다. 다양성, 어찌 말하면 모호함을 줄 수 있는 게 내 작품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센세이션하지는 않지만 일상 속에서 어느 순간 깨닫고, 그게 호기심을 지속적으로 자극할 수 있는 것.

이번 ‘플랫폼 2009’의 주제가 공공 미술인데 지니 서가 생각하는 공공 미술은 무엇인지, 그 역할은 무엇인지 듣고 싶다.

공공 미술은 흥미로운 작업인 것 같다. 공공 미술은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하지만 산업디자인이나 인테리어 디자인처럼 기능적인 것이 아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생각이라든지 그들에게 나의 공간을 경험하게 한다든지 하는 것으로 그들로 하여금 끊임없는 질문을 유도하게 한다. 조금 전 당신이 한 질문 속의 ‘암호’에 관한 생각처럼 말이다. 사람들이 계속 머리에 물음표를 만들 수 있는 작용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사실 미술관이란 공간을 들어간다는 것은 작가 입장에서도 힘든 일이다. 모두 데드라인을 가지고 살아가는데 시간을 내 전시를 본다는 것은 쉽지 않다. 어마어마한 작품들이 전시된다고 해도 말이다. 공공 미술이라는 것은 공공의 공간 안에 있기 때문에 그 공간에 스며들어 일상생활과 함께하는 것이다. 작품이 자연스럽게 사람들과 생활하는 것. 피부처럼 항상 주변에 있어 작품이라고 안 느껴져도 되는 것. 그러나 문득 “어, 이게 언제부터 여기 있었지?”, “저건 뭘까?” 하는 것 말이다. 그걸 느낄 때는 또 사람들의 시점을 달라지게 할 수 있는 것이다.

공공 미술이기 때문에 포기해야 할 부분도 있었을 것 같다. 작품의 수위라든지 소재가 제한될 듯하다.

안전성, 보존에 관한 게 중요하다. 아무래도 나에겐 여러 가지 장애이긴 하다. 하지만 어떠한 면에서 문제 해결의 과정 자체도 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공공 미술뿐만 아니라 어느 작품을 하건 같다. 처음으로 생각하는 것이 주어진 한계가 무엇인가이다. 그리고 어떻게든 그 요소를 같이 이용하려 연구하게 된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같지만 미술과 디자인의 다른 점은 그 속의 의미라고 생각했다. 당신의 관점에서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어렵다. 딱 떠오르는 것은 불멸성이라고 생각한다. 마스터피스 작품들을 볼 때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들 말이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영원한 속성의 아름다움. 또 볼 때마다 새로움을 찾을 수 있고 대화를 계속 할 수 있고. 디자인은 클라이언트가 있고, 어찌 되었건 유행을 타니까.

그렇다면 미술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어떻게 보면 생물학 자체는 목적성이 명확한 데 비해 굉장히 추상적인 미술로 옮겨 왔기 때문에 궁금하다.

(웃음) 이전 질문보다도 굉장히 어렵다. 이번 전시를 통해 여러 가지 필요 없는 것들을 버리기 시작했다. 나중엔 진짜 뼈대만 남기는 것이 목표다. 이런 것을 보면 순수한 아름다움과 진실을 남기는 것이 미술의 역할 혹은 목표가 아닐까?

마지막은 단순한 궁금증이다. 흔히 작가들은 작품을 직접 제작하며 느끼는 ‘손맛’도 작품 활동의 중요한 요소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작품들은 스스로 다 만들 수 없는 작품이다. 당신은 어디에서 그 ‘손맛’을 느끼는가?

스케일이 커지면서부터 손이 가지 않은 작품들이 나오게 됐다. 그렇기 때문에 일종의 컨트롤에서 그런 맛을 얻는다. 이번 작품 같은 경우도 딱 두 사람이 제작했는데, 사실 그럴 필요가 없다. 하지만 그럼에 따라 나의 관여가 더욱 밀접하게 전달될 수 있었다. 뭐랄까, 현실화해나가는 과정에서 감동느낀다.

경계와 경계 사이의 지니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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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와 경계 사이의 지니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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