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워서 어쩔 수 없다. 지방이 쌓이면 그나마 덜 추우니까.’ 어쩜 이리 어설픈 자위에도 살은 무섭게 불어나는 걸까? 바지 단추를 잠글 수 없게 된 지금 정신이 번쩍 들었다.

Esquire Korea, 2014년 1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널브러지고 싶은 날이 있다. 성에 낀 창문 너머로 눈 내리는 모습을 바라보며 커피 머신 소리에 잠을 쫓는 날들. 보글보글, 와인 끓는 소리가 포근해 뱅쇼를 잔뜩 마시고는 나른함에 뒹굴게 되는 시간들. 마감을 끝내놓고 여유를 부리는 날들은 대개가 그랬다. 맥주냐 와인이냐 주종의 차이는 있지만 늘어지는 정도의 차이는 없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 거울을 보면 여지없이 살은 불어 있다. 밤마다 한 잔, 한 잔에서 두 잔 술이 는 대가다. 술맛을 알아차린 대가로 살덩어리를 짊어지고 살게 된 어느 남자 혹은 여느 남자들. 사실 별 불만도 없었다. 술이 넘어갈 땐 있던 살 걱정도 스르륵 없어지니까.

그러나 경각심은 불현듯 찾아왔다. “나는 아직도 젖살이 있어!” 하고 염치없는 자위를 입 밖으로 한 덕에 “나잇살은 안 빠진다”는 비수를 맞았다. 애써 외면했던 살이 턱, 허리, 엉덩이 할 것 없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옆구리 살을 보고 부쩍 러브핸들이 앙증맞네 어쩌네 할 땐 ‘난 아직 귀여운 수준이구나’ 했는데…. 그걸 잡고 좌회전, 우회전 할 땐 조금 빈정 상하기도 했지만 말속에 뼈가 있는 줄은 몰랐다.

서운한 생각이 들었다. 말속의 뼈를 발라내고 보니 지난달 캠핑장에서 ‘마른 장작이 잘 탄다’고 했던 말까지 다 나를 겨냥한 말 같았다. 그러니까 그녀는 내게 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 거다.

‘이 자식아! 마른 장작이 되라고!’

벼락치기가 필요했다. 마른 장작을 찾기 전에 내가 마른 장작이 돼야 하니까. 흔히 ‘헬스장’이라 부르는 피트니스 센터는 가지 않기로 했다. 작년에도 3개월짜리 회원권을 끊곤 세 번도 채 가지 않은 기억이 있다. 단둘이 하는 개인 트레이너도 흥이 나지 않았다. 성질만 버릴 게 뻔하다.

크로스핏에 도전하기로 했다. 사실 크로스핏이…

뭔지는 몰랐다. 크로스핏 센터 앞에서 사람들이 운동복 차림으로 땀을 뻘뻘 흘리며 뛰어다니는 모습이 떠올랐을 뿐이다. 처음에는 피트니스 센터 홍보 방식이 독특하다고 생각했다. 조금 무식해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들 중 아는 사람이 껴 있었다. 돈 받고 하는 게 아니라 자발적이라니! 그가 한창 크로스핏의 재미를 논할 때도 힘들어 보이기만 했다.

벼락치기 운동이 필요한 맘에 크로스핏 센터를 찾아 이근형 코치를 만났다. 국내 세 명뿐인 레벨2 자격증을 보유한 그는 우리나라 크로스핏계의 ‘조상님’으로 통한다.

“영화 〈300〉의 전사들이 단기간에 체력을 끌어올려 대중적으로 알려진 운동이 크로스핏이에요. ‘끊임없이 다양하게’, ‘고강도로’, ‘기능적인 동작’을 하며 몸의 ‘성능’을 향상시키는 운동이죠. 실생활에서 몸이 필요한 순간 중요한 건 ‘디자인’이 아니라 ‘성능’이거든요.” 몸의 성능 향상이라니 크로스핏을 잘 택했다 싶었다. 마른 장작이든 두꺼운 장작이든 장작은 ‘잘 타는’ 게 목적이니까!

이근형 코치가 이끄는 크로스핏 센터 ‘투혼’에서 다른 회원과 함께 한 시간 동안 진행되는 수업에 참여하기로 했다. 운동복으로 옷을 갈아입는데 어디선가 걱정 반 놀림 반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일 고생할 텐데….” 오기가 발동했다. 편집부에서 ‘코끼리 다리’로 통하는 하체가 기능 면에서도 코끼리 같은 성능을 냄을 증명하고 싶었다. 수업은 크로스핏 투혼 은평 센터의 이정훈 코치가 맡았다. 미끈하고 다부진 체격의 호남 코치여서 그런지 더욱 지고 싶지 않았다. 이정훈 코치에게 FM(Field Manual) 교육을 요청했다. 여자 남자 섞여서 진행된 수업은 매일 다른 프로그램이 마련된다. 언제 어떤 돌발 상황에 처할지 모르는 실생활에 대처하려면 월요일에는 어깨, 화요일에는 다리 위주의 운동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전신을 고루 운동할 수 있도록 매일 다른 프로그램이 준비된다. 크로스핏을 하는 사람들끼리는 WOD(Workout Of The Day)라고 부른다. 힘들어 죽을 것 같지만 내일이 기대되는 묘한 시스템이다.

잘 쓰지 않던 엉덩이 옆 근육 운동부터 시작했다. 발목에 두꺼운 고무 로프를 걸고 장력이 유지되도록 하며 게걸음으로 걸었다. 한 번도 쓰지 않았던 엉덩이 옆 근육이 고르게 자극됐다. FM은 둘째치고 단련된 여자 회원들을 따라가기에도 힘들었지만 창피한 마음에 몸을 움직였다.

크로스핏은 기록 운동이기도 하다. 횟수를 정해놓고 하는 피트니스와 달리 시간 안에 더 많은 양을 하도록 끊임없이 경쟁한다. 어제의 나와 경쟁하고 내일의 나를 자극한다. 그룹을 이루어 다른 회원과 경쟁하는 것도, 여자 회원 앞에서 창피당하지 않으려 한 번 더 몸을 움직이는 것도 크로스핏 운동 방식에 부합한다. 어깨 운동, 허리 운동, 다리 운동, 순발력 운동…. 자주 사용하던 근육은 더욱 민첩하게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던 근육은 골고루 사용했다. 그리고 쓸 수 있는 만큼 힘을 짜내 주어진 시간 동안 한 번이라도 더 움직이려 애썼다. 너무 힘들었다. 이러다 죽겠다 싶어 이정훈 코치에게 에둘러 어필했다. ‘이러다가 다치겠어요.’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똑같은 프로그램으로 운동해요. 프로그램은 같지만 자신의 신체에 맞는 무게와 강도는 코치가 결정해줘요. 과욕을 부려 갑자기 100킬로그램짜리 역기를 들겠다고 고집부리지 않으면 임산부에게도 적합한 방식이에요.” 무게와 강도를 재조정받긴 했지만 내 체력 안에서 한 번이라도 더 움직이려 애썼다. 좋은 기록을 내고 싶은 욕구와 몸을 움직이며 얻는 1차적 카타르시스가 골고루 작용했다. 오늘 내 기록은 칠판에 적었다. 고스란히 내일 내가 이겨내야 할 대상이 생긴 거다. 묘하게 승부욕이 자극됐다.

크로스핏을 한 다음 날 눈을 뜨자마자 “내일 고생할 텐데” 하는 말이 떠올랐다. 떠올랐다기보다는 몸으로 느껴졌다. 온몸이 쑤셨다. 그리고 ‘내일 고생할 텐데’가 아니라 ‘내일부터 한동안 고생할 텐데’라고 했어야 맞았다. 살면서 한 번도 아파본 적 없던 엉덩이 근육부터 자주 쓰는 허벅지 근육 할 것 없이 당기고 아팠다. 그런데 이상한 건 묘하게 단단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일주일에 다섯 번씩 해야 한다던데 또 참여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래서 크로스피터들이 WOD를 기대하는 건가?

크로스핏 단골 동작
크로스핏은 매일 다른 프로그램을 가지고 진행하는 게 중요 포인트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특정 동작이 주요 동작이라고 말할 순 없다. 다만 몇 동작을 경험해볼 순 있을 것이다.

키핑 풀업 상체 근육과 몸의 밸런스에 도움이 된다.
1 풀업 바에 매달려 가슴을 내밀며 스윙을 시작한다.
2 몸이 뒤로 올 때 다리를 재빨리 펴며 수평 방향의 힘을 수직 방향으로 전달한다.
3 턱이 풀업 바 위로 올라오도록 당기며, 두 번째 동작을 위해 풀업 바를 밀며 다시 스윙으로 전환한다.

박스 점프 하체 근육 및 민첩성을 증진시킨다.
1 양발을 동시에 점프하여 박스 위로 착지한다.
2 착지 후 박스 위에서 몸을 완전히 펴 일어선 뒤 다시 바닥으로 내려온다.
3 바닥에 머무르는 시간을 최소화하며 동작을 연속해서 반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