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바 기술로 팔을 부러뜨려서 어깨뼈를 감싸고 있는 힘줄을 꺼내요. 그걸 칼로 끊어야 쉽게 탈골시킬 수 있어요.” 이런 징그러운 말을 나긋나긋하게 하는 인물은 타번 38의 오너 셰프 고병욱이다. 우아한 요리 뒤에는 치열함이 숨어 있다. 요리뿐이겠는가마는. 중요한 건 이렇게 웃어넘기는 거다.

Esquire Korea, 2013년 12월
EDITOR 최태형 | CHEF 고병욱 | LOCATION 서초동 TAVERN 38 | DATE 2013년 10월 08일 오후 3시 | PHOTOGRAPHER PARK NAMKYU

남자답게 먹기? 남자다운 음식? 대체 남자다운 건 뭘까? 나는 제법 요리라면 흥미가 있는 남자고 주변에서도 나름 인정받고 있다(좋아요 클릭이 많은 정도). 마트에서 파는 통조림을 따지 않고도 파스타 두세 종류는 만들 수 있고 그럴듯한 스테이크도 종종 굽곤 하니까. 그렇지만 요리하는 남자를 ‘남자답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전형적인 가부장적 가정에서 자란 사내아이기에 요리는 남자의 몫이 아니었다. 곱씹어보면 남자답게 먹으라는 주문은 ‘아무거나 잘’ 먹으라던 말이었고, 무엇인가 먹고 ‘남자답네!’라는 말을 들었던 건 누나와는 다르게 파나 당근 따위를 골라내지 않고 먹었을 때가 전부다. 도통 ‘남자답게 먹는 법’이라는 주제에 맞는 음식이 떠오르지 않는 이유다. 정력에 좋은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는 건가?

내가 요리하는 이유는 뭘까? 회사를 마치고 긴 하루의 끝에 스스로를 위해 크림 스파게티를 만드는 남자? 생각만 해도 느끼하다. 그런데도 왜 핀란드에서 아라비아 식기들을 사겠다고 오버차지를 내고, 르크루제의 돌처럼 무거운 그릴을 들었다 놨다 했을까? 스톡홀름에서 겐세(Gense)의 커틀러리를 사고는 행복해 잠 못 이루던 그날은 또 어떻고…. 생각해보니 그 식기들을 사용한 건 여자 친구를 집으로 불렀을 때가 유일하다. 북유럽 식기들을 놓고 크림 스파게티와 등심 스테이크를 만들어 와인을 곁들인 그날. 어깨가 으쓱했었다. 나는 이런 것도 만들 수 있고, 저런 것도 갖춘 센스 있는 남자였으니까. 어쨌든 남자다웠는지는 모르겠지만 섹시했던 것만은 확실하다. 그렇다! 나는 섹시한 남자로 보이고 싶었던 거다. 섹시하게 요리하다가 여자도 같이 요리하는 뭐 그런 거….

생각이 정리되고 타번 38의 고병욱 셰프에게 전화를 걸었다. 타번 38은 분위기 잡고 싶을 때 종종 들렀던 곳이다. 몇 번 여자 친구와 함께 들러 만족을 이끌어내곤 했으니 여자에게 인기 있는 음식을 만드는 곳임이 틀림없다. ‘이거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 남자답게 먹는 법. 완전! 남자다운 음식이 있어요! 이건 완전 남자다!” 됐다 싶었다. 미국 존슨앤웨일스에서 공부한 고병욱 셰프는 내 기준에선 귀염받는 부잣집 아들 같았다. 피부도 뽀얗고 살도 적당히 오른 ‘잘 자란 유학파 인기남’. 이 남자가 나긋나긋하게 대박을 외친 음식이 뭔지 물었다. “통오리 속에 보리밥과 무화과 소스를 꽉 채워 오븐에 굽는 요리예요. 이거 남자 넷이 달라붙어도 다 못 먹는다니까요!” 아니 아니, 그런 거 말고요. “터프하게 통째로 뼈를 발라요. 이게 남자의 요리 아니고 뭐예요!?” 아니, 만들 때 섹시하고 그런 거 있잖아요. 느끼한데 여자들이 막 좋아하는 그런 게! 느끼해서 와인 마시다 훅 취하는 게! 눈에 하트가 ‘뿅뿅’ 나오는! “아니에요, 우선 와요. 이거라니까!”

고 셰프와 내 앞에는 커다란 오리가 한 마리씩 놓였다. “뼈를 발라야 해요. 칼로 등을 가른 다음 여기 이 날개를 꺾어요. 암바 기술 알죠? 오리가 기권 탭을 해도 놔주면 안 돼요~, 그런 다음 힘줄이 튀어나오면 칼로 잘라줘요. 여기서 또 마음 약해지면 안 돼요~.” 셰프는 뭐가 신 났는지 끊임없이 떠들었다. 그가 하는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렇게 커다란 살덩어리를 직접 본 것도, 붉은 살을 헤집고 뼈를 발라낸 것도 처음이었다. 잘 손질돼 ‘식재료’가 된 고기를 볼 때와는 사뭇 달랐다. 칼이 닿아 살 사이에 피가 맺힐 때는 두 손 들고 싶기도 했다. 무엇보다 내가 바란 건 이게 아니었다. 여자들이 좋아하기만 하면 되는 건데…. 멍하게 있다가 정신을 차린 건 고 셰프가 다시 시답잖은 농담을 던졌을 때다. 그는 주방에서 끊임없이 재잘댔다. 농담은 3할 정도의 승률로 빵 터졌다. 불퉁대며 내가 물었다. 드라마 〈파스타〉 보니까 셰프는 무섭고 주방은 군대 같던데 여긴 그런 규칙 없어요? 이왕 이렇게 터프한 음식을 만드는데 빡세게(?) 해보죠? “우린 원래 이래요. 농담하고 장난치고 그러면서 긴장을 푸는 거예요. 불과 칼이 있는 주방에서 긴장하면 오히려 다치거든요.” 터프한 게 남자의 요리라더니 이렇게 곰살맞아서야…. 잘 손질해 간을 하고 보리밥과 와인 리덕션에 절인 무화과로 속을 채운 오리를 오븐에 넣었다. 미리 위에 올릴 버섯 소스도 만들어 두었다. “180도로 맞춰진 오븐에 한 시간 정도 익혀요. 오리 속의 온도가 60도 정도가 되면 알맞게 익은 거예요.” 이제 한 시간 동안 무엇을 하나 생각하려는데 고 셰프가 다시 재잘대기 시작했다. 끊임없이 재잘대는 고 셰프 덕에 하는 게 없이도 시간은 빨리 갔다. 남자다웠는지는 모르겠지만, 덩치와 다르게 귀여운 구석이 있었다. 남자답기보단 소년 같은 느낌이었다. ‘땡!’ 하는 소리와 함께 요리는 완성됐다. 나무 도마 같은 접시에 오리를 올렸다. 노릇하고 달콤한 향이 코끝을 자극했다. “이렇게 10분간 기다려야 해요. 뭉쳐 있던 육즙이 몸에 퍼져야 하거든요.” 포크를 잡은 손이 파르르 떨렸다. 머리로는 이해가 돼도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이번 기사를 진행하는 내내 내 뜻과는 반대로 가는 고 셰프가 얄미웠다. 사료를 앞두고 ‘기다려’라는 명령을 들은 개가 된 것도 같았다. 물어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인 침이 흐를 때쯤 두툼하게 오리를 썰었다. 도마에 흥건히 육즙이 배어났다. 내 침이었을지도 모른다. 뜨끈하고 끈적했다. 무화과 향이 향긋하게 올라왔다. 욕심을 내 가장 두껍게 썰린 살점을 접시로 끌어당겼다. 위에 올린 버섯과 향긋한 무화과 보리밥 그리고 노릇한 오리 살을 적절히 잘라 입에 넣었다. 입안에 별이 터졌다. 맥주 한 잔씩을 따르고 셰프, 포토그래퍼, 에디터 이렇게 세 남자는 집중했다. 처음으로 고 셰프는 조용했다. 이제야 나는 고 셰프가 이해됐다. 포토그래퍼는 그저 미소 지을 뿐. 그렇게 셋은 행복하게 먹었다. 아직도 남자다운 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오랜만에 ‘남자답게 먹는 법’을 만족시키는 순간이었다. 남기지도 골라내지도 않고 접시 위에 놓인 모든 걸 먹어 치웠다. 모르긴 해도 엄마가 봤으면 “남자답다!”고는 했을 것이다.

[박스] CHEF WISDOM — CHEF 고병욱

1. 음식을 고정할 땐 이쑤시개만 한 게 없다.

2. 오리의 뼈와 살을 바를 때 날개를 암바로 꺾어 부러뜨린 후 관절을 빼낸다. 식재료를 잘 제압해야 좋은 요리가 나온다.

3. 주방에서 사고를 면하려면 긴장하는 것보다 긴장을 푸는 게 더 중요하다.

THE RECIPE

WILD WILD ROASTED DUCK

CHEF 고병욱

SERVES 4~6인분

INGREDIENTS
통오리 1마리, 마른 무화과 한 주먹, 보리밥 한 그릇, 청양고추 1스푼, 마늘종 1/4컵, 생무화과 2개, 새송이버섯, 양송이버섯, 느타리버섯, 닭 육수에 향료를 넣어 젤리처럼 조려 식힌 농축액, 브라인(brine): 레몬, 소금, 꿀, 타임, 로즈메리, 월계수, 파슬리, 흑통후추를 끓여 식힌 물, 레드 와인 리덕션: 레드 와인에 꿀, 타임, 월계수, 후추, 팔각 등을 넣어 조린 후 거른 농축액, 소금, 후추, 마늘 오일, 오리를 고정시킬 이쑤시개와 명주실.

• 내장을 손질한 통오리를 준비한다. 날 세운 칼로 목, 등, 꼬리까지 직선으로 가른 후 뼈를 빼낸다. 이때 형태가 유지될 수 있게 최대한 뼈 가까이 칼을 넣어야 한다. 그래야 뼈에 붙은 살을 남김없이 떼어낼 수 있으며 껍질이 칼에 베이거나 찢어지지 않는다. 살만 남긴 통오리는 브라인에 넣어 8시간 동안 재운다.

• 브라인은 소금물에 레몬, 소금, 다양한 향료를 넣어 확 끓였다가 식힌 물이다. 고기의 잡내를 잡고 살을 부드럽게 하며 밑간을 하는 효과가 있다. 오리를 숙성시키는 사이 오리 몸을 채울 속을 만들어야 한다. 마른 무화과 한 주먹을 레드 와인 리덕션에 자작하게 담가 조린다. 대략 30퍼센트 정도가 졸아 없어질 때까지 끓인 후 미리 준비한 보리밥에 닭 육수, 청양고추, 마늘종을 함께 넣고 잘 섞어 센 불에 볶아둔다. 이제 미리 브라인에 넣어두었던 오리 배 속에 보리밥 속을 넣을 차례다. 오리에 붙은 소금을 씻어내고 오리의 목, 다리, 날개가 있던 구멍을 막는다. 이때는 이쑤시개를 이용해 구멍들을 꿰맨다.

• 배에 속을 채워넣을 때는 오리 속이 너무 꽉 차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고기가 익으면 살이 줄어드는데 속이 너무 꽉 차 있으면 터지기 쉽다. 속을 채운 다음은 명주실로 형체가 잘 유지되도록 묶어주면 된다. 그 후 마늘 오일을 골고루 표면에 뿌려 180도로 예열된 오븐에 50분간 익힌다. 익히는 동안 오리 위에 얹을 소스를 만들어야 한다. 닭 육수를 향료와 함께 조려 푸딩 형태로 만든 육수에 다양한 버섯과 청양고추를 넣고 센 불에 조려 점도가 있게 만든 소스다. 소스에 따로 간은 하지 않는다. 이 소스는 기름기가 많아 느끼한 오리가 담백한 맛을 내는 역할을 한다. 오리 속의 온도를 측정해 60~65도 사이면 적당하게 익은 것이므로 오븐에서 꺼내둔다. 이제 먹기 좋은 두께로 썰어 버섯 소스를 얹어 내놓으면 되는데 하나 주의할 것이 있다. 열에서 꺼내 바로 썰지 않고 10분 정도 기다려야 한다. 그래야 뭉쳐 있던 맛과 향이 육즙과 함께 오리 전체에 퍼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