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성훈은 주로 자신의 주변을 그렸다. 이전에는 시골을 그리다가 도시로 이동하면서 자연스레 도시를 그리게 됐다. 이제부터 그는 아마도 세상을 그리지 않을까?

Esquire Korea, 2013년 10월

공성훈, 겨울 여행

‘올해의 작가상 2013’에 선정된 공성훈. 그는 한때 비닐하우스에 살았다. IMF 당시 가정 형편이 어려워져 방을 빼 부모님을 돕고 자신은 비닐하우스로 옮겼다. 집이라고 할 수도 없는 벽제의 그곳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던 용인대학교까지는 왕복 다섯 시간이 걸렸다. 새벽 일찍 나가서 다시 밤이 깊어야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작가 공성훈의 세상 속 오브젝트 역시 그 시간대에 존재했다. 그는 개를 그렸다. 새벽 일찍 문을 나서 만날 수 있는 건 동네 개들이었다. 그를 배웅하는 것도 반기는 것도 개들뿐이었다. 공성훈은 그동안 다양한 형식으로 작품 활동을 했다. 작품을 파는 자판기(〈예술작품 자판기〉, 1992)를 설치 작품으로 내놓기도 했고 먼지를 이용해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먼지 그림〉, 1996). 혹자는 그에게 일정한 전달 방식이 없다며 작가로서 일관된 입장을 보이지 못하는 것이 아니냐고 물었다. 하지만 그는 일관된 입장과 개념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형식을 취하는 것이라고 했다. 서울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고도 다시 서울산업대학교 전자공학과에서 공부한 것에 대해서도 물었다. 그가 미술보다는 먹고살 걱정 때문에 전자공학을 전공했다고 생각한다. “당시의 나는 철이 없어서 먹고사는 문제 같은 것은 생각지도 못했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고 싶은 작업의 기술적인 부분을 해결하려는 것, 그리고 보다 중요한 이유는 체질을 개선하고픈 마음이었다.” 체질 개선은 물질을 다루는 예술인 미술을 이해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서양화과 재학 시절을 돌이켜보면 지상에서 30센티미터쯤 떠서 살았던 것 같다고 했다. 화가가 되려는데, 어디에 발을 디디고 서야 할지 막막했다. 물질을 이해하기 위해 그는 다시 대학 생활을 했고 그 후 서울대 대학원 서양화과에 입학했다.

그는 개를 그렸다. 매일 그를 반기는 개에 대해서 이야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미디어라는 것은 대개 간접적이다. 우리가 미디어를 통해 표현하는 A라는 글자는 관념이다. 직접적이지 않다. A를 표현하기 위해서 우리는 키보드의 자판을 누를 뿐이다. B를 표현하기 위해서 누르는 자판도 똑같은 모양이다. 자판을 누르는 행위는 같지만 관념과 결과만 A와 B로 다를 뿐이다. 공성훈은 개를 직접적인 매체로…

[박스] ‘올해의 작가상’전

올해의 작가상 후보였던 공성훈, 신미경, 조해준, 함양아의 작품 110여 점을 전시 중이다. 작가 4인은 ‘올해의 작가상’을 위해 평소 구상하고 있었지만, 미처 실현하지 못한 새로운 아이디어의 작품을 선보이는 중이다. 네 명의 작가는 같은 공간에서 각자의 개인전을 열었고 최종 한 명인 공성훈이 올해의 작가로 선정됐다. 전시는 10월 20일까지 계속되며 네 명의 작품은 모두 그대로 전시된다. 최종 한 명이 누구인지 이미 알게 되었으니 편안한 마음으로 한국 현대미술의 흐름을 조망해보자.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볼 수 있다.

다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자신을 반겨주는 개에 대한 예의라고 믿었다. 그렇다면 회화다. 개라는 대상에 회화라는 방법까지 합쳐야 개념이 완성된다. 그림과 손, 캔버스가 직접 이어져 있다. 형식은 직접적이지만 작품은 그렇지 않다. 빛을 과장하는 방법으로 그림을 드라마틱하게 만든다. 그의 그림에서는 광원을 찾을 수 없다. 복합적인 위치에서 드러나는 빛은 그림의 상황과 시간을 비튼다.

기대하지 못한 공간에 등장하는 인물은 긴장감을 만든다. 웅장한 풍경 속에 느닷없이 등장한 인물은 작가의 사족이다.

밤처럼 보이기도, 새벽처럼 보이기도 한다. 익숙한 풍경은 실제와 상상 사이에 존재하게 된다. 그는 그것을 ‘버추얼’ 하다고 말한다. 그는 지금 일산에 산다. 그림 속 풍경도 점점 넓어진다. 그는 주변의 풍경들을 그린다. 집 마당만 그리던 시절에서 동네 교회, 모텔까지 넓어졌다. 이제 자연을 그린다. 풍경이지만 단순한 풍경이 아니다.

“최신 평면 TV를 보면 질투가 나요. 백화점에 전시되는 커다란 TV를 보면 그 자체가 빛을 내고 있어요. 예전 TV는 실제 있는 것을 재현하는 게 목적이었잖아요. 지금은 정말 선명하고 화질도 좋고…. 현실의 재현을 넘어서 예술로 보여요. 리얼리티와 재현의 문제가 아니라, 실제보다 더 멋지게 보여주는 거 같아요. 저기에 사진을 띄워놓으면 그냥 작품인 거예요.

작가는 무엇을 그려야 하나. 1초 만에 완성돼 TV에 보이는 웅장한 풍경들을 놔두고 작가는 어떤 풍경을 보여줘야 하나.

공성훈은 기존 풍경화에 관심이 없다. 그림도 목적이 그림에 있지 않다. 개념을 표현하는 방법일 뿐이다. 수십 번 덧칠하고 말리는 과정에서 촉감적 사실성을 부여하지만 낯설다. 그의 말을 빌리면 버추얼하다. 실제에 있지도 않고 판타지로 넘어가지 않는 그 모호한 중간이다. 그의 그림에는 인물이 등장한다. 화자가 그림자로 등장하기도 한다. 기대하지 못한 공간에 등장하는 인물은 긴장감을 만든다. 웅장한 풍경 속에 느닷없이 등장한 인물은 작가의 사족이다. 공성훈은 ‘수상한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풍경에서 눈에 띄지 않는 인물을 발견하면 그때부터 그림은 긴장감과 생명력을 가진다.

공성훈은 꾸준히 미술의 산화, 유명무실에 대해 이야기했다. 먼지로 표현하기도 하고, 인스턴트 자판기를 통해 얘기하기도 했다. 그는 지금까지 한 번도 미술상에 작품을 내본 적이 없다. 회화과 학생들의 의례와 같았던 국전도 마찬가지다. 출품할지 말지의 선택이 아니라 출품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는 스스로를 작가라 부르지 않는다. 미술 관계자라 지칭한다. 그는 계속 신화화되는 미술을 경계한다. 주변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는 미술. 방종이 미화하는 곳. 자유롭다는 것은 책임이 없다는 것이다. 책임이 없는 것은 권력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화가 되는 것은 신기루가 되는 것이며 사회 뒤편으로 밀려나는 것이다. 그는 일정한 형식으로 포장하는 작가가 되기를 거부한다. 미술 관계자가 되어 물질적으로 가장 적합한 형식을 찾아 발언하길 원한다. 미술에서 감각은 안고 가는 것이지 앞세울 게 아니다. 발언해야 한다. 미술의 신화화를 막고 생산적인 활동이 되도록 해야 한다.

미술 관계자라 본인을 지칭하며 현 미술을 경계하는 공성훈. 자신의 그림처럼 모호한 경계에 있던 그에게 아이러니하게도 세상은 ‘올해의 작가’라는 타이틀을 주었다. 자연스럽게 그의 세계가 다시 넓어졌다. 마당에서 동네로, 야외에서 자연으로 이제 그는 작가가 되어 새로운 세상을 맞닥뜨렸다. 더 넓어질 공성훈의 세상이 궁금하다.

올해의 작가상

국립현대미술관이 1년에 한 번 선정하는 ‘올해의 작가상’은 1995년부터 매년 진행되던 ‘올해의 작가’를 계승한 상이다. 매년 연령 및 장르를 불문하고 그해 가장 작품 활동이 두드러지고 창작욕이 왕성한 작가를 선정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주최할 수 있도록 후원해왔다.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나라의 예산으로 운영하는 국립현대미술관이 그해의 대표적인 작가를 선정한다는 것만으로도 상의 의미는 특별하다. 그러나 국립현대미술관의 이 상이 좋은 의도나 목적성과 달리 미술계를 넘어 대중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좋은 작가를 선발하는 것과 달리 작가를 지원하고 홍보하며 다양한 분야의 관심을 이끌어내는 것은 미술관만의 힘으론 부족하기 때문이다. 작년부터 ‘올해의 작가상’은 국립현대미술관과 SBS가 공동으로 주최한다. 국립현대미술관 내부 큐레이터만으로 이루어지던 작가 추천과 심사, 전시 과정도 외부 인사가 주축이 된 운영자문위원회가 맡는다. 이 위원회의 위원들이 작가의 추천단과 심사단을 위촉한다. 추천단의 추천을 받아 선정된 10여 명 전후의 작가 중 4배수 정도를 1차 선정하고, 전시를 통해 최종으로 ‘올해의 작가’를 뽑는다. 선정된 작가에 대해서는 국립현대미술관의 큐레이터가 전담해 1년간 지원 업무를 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