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밤 꿈을 기록하는 방식 중 단연 팀 버튼의 스타일은 독보적이다. 영화로 꿈을 기록하는 그는 지금 새로운 이야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준비하고 있다. 앨리스를 만나기 전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진행 중인 <팀 버튼>전을 통해 그의 지난 꿈 이야기를 들춰보았다.
Numéro, 2010년 1월
에디터 | 최태형 자료 사진 | 뉴욕 현대미술관
지난밤 꿈 이야기를 하는 것은 언제나 쉽지 않다. 또렷하게 생각나는 부분도 입 밖으로 꺼내려 하면 뿌옇게 흩어지고, 생각의 실마리는 풍선 끝에 달린 실처럼 손가락 사이로 달아나버린다. “감독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감독이 될 거라고 느꼈던 적도 없고요. 굳이 말하자면 어떤 아이디어를 가지고 그것을 통제하고 싶다는 생각과 관련이 있는 것 같은데, 저는 항상 아이디어를 통제해왔습니다. 영화감독이 된 것도 그런 충동 때문이었습니다.” 팀 버튼은 자유롭게 그의 상상을 통제하며 꿈 이야기를 해왔다. 실 끝을 잡힌 풍선처럼 상상은 그의 손안에서 얌전히 현실로 실현됐다. 영화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지만 감독을 꿈꾸지 않았다는 그의 말은 그의 소통 채널이 영화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림, 사진, 조각, 비디오, 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법을 통해 현실로 끄집어낸 그의 이야기는 너무도 방대하다.
뉴욕 현대미술관은 거의 모든 방법의 창조 활동을 통해 상상 이야기를 펼쳐온 팀 버튼의 작품을 한데 모아 전시를 열고 있다(4월 26일까지). 700여 점에 이르는 팀 버튼의 드로잉, 유화, 뮤직비디오, 비디오, 시 등은 입장객을 제한해야 할 만큼 인기다. 뉴욕 현대미술관은 이미 오래전부터 영화를 현대미술의 한 장르로 규정하고 다양한 전시를 소개해온 미술관이다. 영화 담당 부서가 생긴 이후 약 70여 년간 꾸준히 영화와 관련된 전시를 열어왔다. 그중에서도 이번 팀 버튼의 전시는 살아 있는 한 감독에게 초점을 맞춰 진행하는 이례적인 전시다. 얼마만큼 팀 버튼의 작업물이 창조적이고 다양한지를 단적으로 말해주는 예라고 하겠다. 전시는 막연히 애니메이터를 꿈꾸던 어린 시절에 그린 습작부터 오랜 견습 과정을 거쳐 월트디즈니사의 애니메이션 팀에 들어가 그린 카툰, 그가 아직 영화화하지 못한 <로미오와 줄리엣> 등의 아이디어 스케치를 포함해 그를 유명 감독의 반열에 올려준 성공작의 소품들까지 그의 모든 예술 세계를 장대하게 펼쳐놓았다.
이번 전시는 ‘Surviving Burbank’, ‘Beautifying Burbank’, ‘Beyond Burbank’의 세 섹션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첫 번째 섹션은 그의 고향이기도 한 버뱅크에서의 젊은 시절 이야기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 걸쳐 그가 습작한 캐릭터와 스케치들은 다듬어지지 않은 채 창조적 에너지가 분출되던 젊은 아티스트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가 한 낙서, 학교 프로젝트, 그리고 그가 처음 프로페셔널 아티스트로 상을 받게 해준 청소차 사인 ‘crush letter’도 이 섹션에서 볼 수 있다. 이 작품들은 답답한 작은 마을을 벗어나고 싶은 젊은 시절 팀 버튼의 마음을 대변하며 그가 얼마나 상상을 통해 스스로를 위로했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1970년대에 이웃 뒷마당에서 그의 8mm 비디오카메라로 찍은 어린 시절 친구들의 모습도 볼 수 있는데, 이때부터 그의 연출이 시작된 게 아닐까? 이 섹션을 잘 본다면 추후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구체화되고 발전했는지 유추해볼 수 있다.
두 번째 섹션은 그의 재능이 한창 성숙해지던 시절의 이야기다. 애니메이션 학교 캘아츠(CalArts)에서 2년간 공부하며 작업한 것들, 월트디즈니사에 입사해 4년간 애니메이터로 일하며 만든 작품들은 그의 창조력이 길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스케치북, 카툰, 드로잉, 그리고 그가 월트디즈니사에서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작업한 작품들은 그만의 모티브와 독특한 스타일의 특징, 그의 캐릭터가 지닌 독특한 시각, 그가 캐릭터의 몸을 표현하는 다양한 방법의 단초를 보여준다. 그중에서도 1980년부터 1986년까지 6년에 걸쳐 팀 버튼이 연필로 직접 그린 50개가 넘는 카툰은 단연 놀랍다. 월트디즈니사에서 했던 이 판에 박힌 작업들은 오히려 팀 버튼의 억눌린 에너지, 시니컬한 태도, 그만의 언어유희와 남다른 유머 감각을 분출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마지막 섹션인 ‘Beyond Burbank’는 이 전시의 하이라이트이며 낯익은 이야기다. 그의 커리어가 한창 주가를 올리기 시작한 시절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피위의 대모험>(1985), <비틀주스>(1988), <배트맨>(1989), 그리고 <가위손>(1990) 등 그의 히트 영화와 <크리스마스의 악몽>(1993) 등 그가 제작한 영화 등 이름만으로도 친숙한 영화들을 볼 수 있다. 이 시기에는 또 그가 함께 작업한 전문가들이 많은데, 의상 디자이너 콜린 앳우드, 특수 효과 전문가 스탠 윈스턴, 인형 제작자 이언 매키넌, 피터 손더스, 캐릭터 디자인 스튜디오 카를로스 그란젤 등의 작품도 함께 볼 수 있다. 이 외에 그가 만든 뮤직비디오 <Bones for the Killers>와 광고들도 볼 수 있다.
한 사람이 생을 다하기도 전에 만들어낸 창조물이 이토록 방대하다는 것이 놀랍다. 팀 버튼은 가장 멋지게 진실과 과장을 뒤섞을 줄 아는 인물이다. 앞으로도 그는 영화를 통해서든 다른 루트를 통해서든 꿈은 더욱 환상적으로, 악몽은 더욱 스릴 있게 그려낼 것이다. 그가 준비한 또 다른 꿈이 벌써부터 궁금한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