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40년간 머리를 맡긴 이발사가 있었다. 나도 이발사가 있었으면 좋겠다. 다행히 미용실에 자리를 뺏겼던 이발소가 다시 돌아오고 있다.
Esquire Korea
몇 년 전 노르웨이에서 거리를 걷다 눈을 떼지 못한 곳이 있다. 그곳은 다름 아닌 이발소였다. 빠듯한 기차 시간을 앞두고도 쉽게 발을 뗄 수 없었다. 클래식한 인테리어를 좋아하는 개인적인 기호도 작용했을 테지만, 그곳엔 이발소에서 기대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있었다. 어릴 적 아버지 손에 이끌려 따라갔던 이발소의 향수가 느껴졌다.
이발소의 커다란 창문에는 낮은 진열장이 마련되어 있었다. 그 속엔 그들이 과거에 사용했을 법한 낡은 이발 기구와 한 장의 사진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가게를 물려준 아버지 혹은 할아버지쯤 되어 보였다. 빛 바랜 사진은 말하지 않아도 많은 것을 시사했다. 대를 이어 뽐내는 가문의 손재주를 자랑스러워하는 듯했고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자리를 지킬 거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기술자만이 가질 수 있는 묘한 자부심이 소리 없이 드러났다.
이는 자신의 머리를 맡기는 손님들에게 안심을 주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처음 이곳을 찾는 사람들도 날카로운 면도칼에 턱수염을 맡길 수 있어 보였다. 반들반들 멋지게 낡아가는 나무 인테리어의 이발소는 나이를 먹어도 여전히 깔끔했다. 동시에 이곳처럼 깔끔하게 변신할 자신을 기대하게 하기도 했다.
아버지는 40년간 머리를 맡긴 이발사가 있었다. 의자에 앉아 눈을 감으면 말하지 않아도 스타일을 기억해 리드하는 이발사. 아버지가 의자에 앉아 눈을 감으면 덥수룩해진 머리만 보고도 정신 없이 바빴던 아버지를 위로했다. 평소보다 일찍 이발소를 찾을 때면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음을 직감하고 정성을 쏟는 이발사였다. 제사 같은 큰일을 앞두곤 어김없이 아버지 손을 잡고 이발소를 찾았다. 서걱서걱 면도칼을 갈아 사각사각 면도하는 모습을 혼자만 위태롭게 바…
라본 기억이 난다. 눈을 감고 턱을 맡기는 아버지는 편안하기만 한데 말이다.
나도 멋진 이발사가 있었으면 좋겠다. 파랑고 빨간 사인이 돌아가는 이발소처럼 귓속까지 정돈해주지 않아도, 수염에 하얀 거품을 묻혀 뽀얗게 면도해주지 않아도 좋다.
다른 사람들의 머리 모양을 담은 두꺼운 책자를 건네며 내 스타일을 지적하지 않는 곳이 필요하다. 수다 떠는 아가씨들 사이에 앉아 10대 아이돌 머리를 흉내 내고 싶지 않다. 완벽한 분업도 좋다지만 머리카락을 자르는 사람, 감겨주는 사람, 말려주는 사람이 제각기 있는 건 민망하다.
이발소에 들어서서 나가는 순간까지 온전히 나를 담당할 파트너가 필요하다. 귀 옆을 스치는 가위도, 생각보다 짧게 잡아채는 손길도 불안하게 느껴지지 않는 그런 이발사가 있었으면 좋겠다.
빳빳하게 마른 수건을 목 앞에서 뒤로 한 장, 뒤에서 앞으로 한 장 덮고 흰 가운 둘러 머리카락을 잘라주던 이발사가 그립다. 써도 써도 닳지 않던 동그란 비누로 박박 머리를 감겨주던 이발소가 그립다. 수건 한 장을 넓게 잡아 머리카락을 탈탈 털며 말려주던 그때가 그립다.
글·사진/최태형
돌아온 이발소. 아버지의 이발소처럼 온전히 머리를 맡길 이발소가 다시 늘고 있다.
HERR 헤아
위치 용산구 한남동 32-51
연락처 02-511-9464
영업시간 오전 11시부터 오후 9시까지
가격 첫 방문이거나 스타일을 바꿀 경우 7만원, 이후 방문 시 3만5000원
특이사항 이발소와 남성 소셜 클럽을 함께하는 느낌이다. 1900년대 초반 빈티지 가구와 인테리어로 속을 가득 채웠다. 테일러 숍과 연계해 이곳에서 옷을 맞추고 주문할 수도 있으며, 슈샤이너에게 구두 관리를 받을 수도 있다.
BOMBMME 밤므
위치 마포구 서교동 401-16 2층
연락처 02-322-8577
가격 커트 3만원, 스타일링&면도 2만원, 펌 13만5000원부터, 볼륨매직 17만원
영업시간 오전 10시부터 새벽 2시까지
특이사항 퇴근이 늦은 직장인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새벽까지 운영하는 세심함을 보인다. 머리 손질도 세심할 것 같아 믿음이 간다. 특이하게 자판기를 이용해 결제를 한다. 원하는 스타일을 자판기에서 먼저 결제한 후 진행하면 된다.
NOTHING N NOTHING 낫띵 엔 낫띵
위치 마포구 서교동 335-25
연락처 070-4067-2882
가격 커트 대표 도날드 4만5000원, 디자이너 다니엘 3만5000원
영업시간 오후 1시부터 밤 10시까지
특이사항 신사답고 매끈한 헤어스타일을 유지하도록 하는 게 이곳의 목적이다. 포마드를 발라 넘긴 리젠트 컷, 가르마를 만들지 않고 모두 넘긴 슬링백 언더 컷 등 매끈하게 빗어 넘긴 머리를 원하는 사람들이 자주 찾는다.
사진/조보근 어시스턴트/이제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