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quire Korea
글: 최태형 사진: 임채훈

“제발 내 맘대로 하게 좀 둬요!”

오랜만이었다. 이 말을 입 밖으로 꺼낸 게 말이다. 고등학교 내내 입에 달고 살던 말이었다. 물론 남들보다 독립심이 강해서 그런 건 아니다. 그저 하고 싶은 게 많았을 뿐이다. 아니, 어쩌면 하고 싶은 것만 하기 위해서였는지 모른다. 어쨌든 모든 게 구속처럼 느껴졌고 그럴 때마다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두라고 소리쳤다.

‘동의를 구하는 것보다 용서를 구하는 것이 더 낫다.’

20대 때 나의 모든 행동은 이 한 줄로 대변했다. ‘도덕은 못 지켜도 법만은 지키자’를 삶의 마지노선으로 삼으니 무서울 것도 없었다. 속이 든든했고 얼굴은 뻔뻔했다. 제법 그럴듯한 철학이라고 생각해서다. 그렇게 살았다. 불과 얼마 전까지도. 모든 게 틀어졌다. 제발 내 맘대로 하게 좀 두라고 할 수 없었다. 말은 목까지 차는데 나 몰라라 던지기에는 현실의 벽이 높았다. 정작 현실이 굽이굽이 파도쳐 밀고 들어오자 개똥철학부터 쓸려나갔다. 어른이라고 생각했는데 거울 속에는 애가 있었다. 앳된 모습을 잃고 선 ‘나이만 먹은 애’는 초라했다. 내 맘대로 하게 두라던 어린아이보다 곱절은 그랬다.

길을 잃은 곳은 완전한 독립 앞에서였다. 애써 모른 척했던 현실의 벽이 여기저기 솟아올랐다. 결정적인 순간 부모님께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혼자서 사는 일도, 가정을 꾸리는 일도 내 힘만으론 힘들었다. 내 자신이 초라했다. 누군가와 영원히 함께할 결심을 해놓곤 부모님만 바라보는 게 그랬다. 그때부터 내 맘은 없었다. 집을 고르는 일도, 식장을 고르는 일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주인공인 자리에 내 결정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만감이 교차했다. 혼란스럽기도 했다. 혼자만 잘났던 내 자신이 사실 미웠다. 동시에 이런 놈을 아들이라고 평생을 뚝 떼어주시는 부모님 볼 낯이 없었다. 도망가고 싶었다. 되도록 멀리 떠나고 싶었다.

남쪽으로 튀어

오쿠타 히데오의 소설 〈남쪽으로 튀어〉에서 중년의 아버지는 왜 남쪽으로 갔을까? 영화 〈남쪽으로 튀어〉의 김윤식은 남쪽에서 무엇을 발견하고 싶었을까? 세상이 싫고 내가 싫었던 그가 모든 걸 부정하고 싶어 떠났던 남쪽에 가면 뭐가 있을까? 떠나고 싶었다. 잠시라도 현실을 잊고 싶은 마음에서다. 스스로 먼지처럼 느껴져 먼지처럼 사라지고 싶었다. 남쪽 나라로….

코레일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남해로 떠나는 열차를 예약하기 위해서였다. 사실 유레일패스를 끊고 유럽 여행을 한 이후 한 번도 기차 여행은 생각해보지 않았다. 지방에 친척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코레일 홈페이지는 낯설었다. 이리저리 클릭하다가 멈춘 곳엔 독특한 열차 여행이 있었다. 콘셉트를 정해 지방의 특색에 맞게 이름 붙인 열차가 있었다. 남해로 떠나는 열차도 물론 있었다. ‘S트레인’이라고 이름 붙은 관광 열차였다. ‘남도해양열차’라는 부제가 달린 이 열차는 일종의 여행용 열차였다. 각 칸을 특별한 콘셉트로 새롭게 구성했는데 이는 이동마저 여행의 일부로 만들려는 시도로 보였다. 다과를 즐길 수 있는 열차 칸이 있다든지 가족끼리만 탈 수 있도록 한 특별한 칸이 존재하는 식이다. 열차 안에는 카페도 있고 음악 공연도 열린다는 설명이 있었다. 목적지인 여수까지 가는 길이 심심할 것 같지 않았다. 기차에는 어떤 이벤트가 더 있는지, 여수엑스포역에 도착해서는 무엇부터 할지 생각하며 결제 창을 열었다. 새로운 윈도가 ‘땡’ 소리를 내며 떴다. ‘땡’ 하는 소리가 단호하게 들렸다. 순간 정신이 들었다. ‘내가 뭐 하는 거지?’ 싶은 생각이 들었다. 현실이 싫어 남쪽으로 떠나는 혼자만의 여행에서 뭐 하고 놀지 생각하는 꼴이라니…. 휴 하고 나에게 한숨을 쉬곤 평범한 열차를 예약했다.

음식과 바다의 남쪽 나라

마음이 심란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스스로 감당할 수 있을지 막막했다. 지금까지 문제없다고 느낀 삶이 온통 문제투성이로 보였다. 오전 8시 반 열차를 타기 위해 한 시간 일찍 집을 나섰다.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내 마음 같은 날씨였다. 굵어졌다 가늘어지기를 반복하는 변덕스러운 빗줄기를 그대로 맞았다. 용산역 플랫폼에서 맥주 한 캔을 샀다. 심란한 마음을 좀 달래볼까 싶어서였다. 아니, 이 심란함을 좀 증폭시킬까 싶기도 했다. 추적거리는 빗방울을 바라보며 열차에 앉아 맥주 캔을 비웠다. 차창을 때리는 빗방울을 바라보다 잠시 눈을 감았다. 그러다 누군가 흔드는 바람에 잠을 깼다. 심란한 마음을 가눌 길 없는데 귀찮기까지 했다.

“왜요?”

“다 왔어요.”

“네?”

고개를 들어보니 여수엑스포역이었다. 멀게만 느껴지던 남쪽 나라는 생각보다 가까웠다. 잠시 졸았을 뿐인데 벌써 도착이라니, 아직 SNS에 올릴 인증샷도 못 찍었는데…. 심란할 틈도 없이 곯아떨어졌다. 이 와중에 넋을 놓고 자다니 부끄러웠다. 여수엑스포역을 나오니 이미 대학생들이 많았다. 자유 여행 티켓 ‘내일로’를 끊고 여행을 시작하는 대학생들이었다. 막 접어든 20대, 걱정 없이 들뜬 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나도 저렇게 자신감 넘치던 때가 있었는데….’ ‘나도 저렇게 파릇파릇했었는데….’ 빗줄기가 더 굵어졌다. 우산이 없는 나는 연신 얼굴을 훔쳤다. 역 앞에서 멀리 보이는 바다를 바라보다 택시를 잡았다.

“어디로 갈까요?”

남쪽 나라에선 마음속에 무엇을 담을 수 있을까? 택시 기사님에게 여수에서 꼭 가야 하는 곳이 어딘지 물었다. 택시 기사님은 내 삶의 길을 알려줄까?

“여수에 왔으면 우선 서대회를 먹어야 해요. 아니, 여수에 와서 이걸 안 먹으면 왔다고 하지 말라니까.”

“네?”라고 되묻는 동시에 차가 출발했다. 이건 아닌데 싶었다. 뭐라 말해야 했다. ‘그게 아니고요. 뻥 뚫린 여수 바다를 보며 사색에 잠기고 싶어요. 제 마음이 참 심란합니다.’ 입을 떼려는데 택시 기사님이 덧붙였다.

“그리고 게장도 먹어야 해. 게장 참 유명해. 돌게로 만들어서 아주 실해. 그리고 장어, 장어도 좋지. 서울 사람들 막 줄 서서 먹어요. 이 세 개는 먹어야 여수 온 거야.”

택시 기사님은 서대회를 파는 음식점 앞에 나를 내려놨다. 몇 대를 이어온 음식점의 역사를 들려주고는 갈치구이를 함께 시키라는 조언도 잊지 않았다. 사색이 필요했지만 기사님의 성의도 무시할 수 없었다. 여수 ‘개도 생막걸리’ 한 사발에 빨갛게 무친 서대회 한 접시, 그리고 갈치구이까지 한 상이 차려졌다. 막걸리 한 사발을 먼저 들이키고 검붉은 갓김치 한 점을 입에 넣었다. 향긋한 갓김치 특유의 향이 입안에 퍼질 때쯤 서대회가 나왔다. 빨갛게 무친 서대회가 입안에서 녹는 것 같았다. 갈치구이 한 점을 젓가락으로 잘라 입에 넣자 술이 따라붙었다. 입 속이 한가득 찼다. 문득 이 와중에도 먹는 게 입에 들어가는 내가 미웠다. 그러나 포만감은 금세 고민을 잊게 했다. 접시를 다 비우고 알딸딸한 정신으로 식당을 나왔다. 여전히 추적거리며 비가 내렸다.

여수는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년 전 전라좌수사로 부임해 왜적의 침입을 대비했던 곳이다. 거북선을 만들어 출정시킨 곳도 여수며 명량대첩, 한산도대첩 등 7년 전쟁에서 승리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곳이기도 하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지휘소로 사용한 진해루, 지금의 진남관에 올랐다. 국보 제302호인 진남관에 오르자 남해 바다가 멀지만 한눈에 들어왔다. 현존하는 가장 넓은 목조 건물. 진남관을 등에 지고 바다를 내려다봤다. 전쟁을 앞둔 이순신 장군의 마음은 어땠을까? 고작 몇 척의 배로 왜구와 싸우는 마음이 막연하게나마 이해가 됐다. 뻥 뚫린 시야에도 마음 한편이 답답했다. 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뭘까? 무엇을 찾고 싶었을까? 마음을 가볍게 하기 위해 바다로 가야 했다. 다시 택시에 올랐다.

“바다를 가장 가까이서 보고 싶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까요?”

“그렇다면 바다로 가야죠!”

택시 기사님은 차를 몰았다. 뭔가 이상했다. 택시는 자꾸 바다에서 멀어졌다. 도착한 곳은 언덕 위 공원이었다. 산을 벗어나야 산이 보인다는 선인의 말이 떠올랐다. 남도는 참 철학적인 곳이구나. 그때 기사님이 말했다.

“여수에 아시아에서 세 번째인 해양 케이블카가 있어요. 저걸 타면 바다 위를 건너가. 케이블카 바닥이 유리로 되어 있어 아찔하다니까.” 기사님은 흥분된 목소리로 케이블카 자랑을 했다. 케이블카를 탔다. 기사님 말처럼 케이블카 바닥이 유리였다.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빠져들 것 같았다. 그렇게 케이블카를 타고 여수 자산공원에서 돌산공원까지 건너갔다. 바다 위를 나는 기분이었다. 여수가 한눈에 들어왔다. 혼자만의 사색은 아니었지만 마음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아찔한 마음에 심장이 쫄깃하기도 했다. 심장이 쫄깃한 느낌은 배가 고픈 느낌과 비슷했다. 택시 기사님이 말해준 장어가 떠올랐다. 심란함을 배고픔이 누르고 있었다. 결국 장어를 먹었다. 가히 여수의 필수 요소라 할 만했다. 기사님의 추천에 신뢰가 생겼다. 여수에 왔다는 걸 증명하는 길은 먹는 거구나. 결국 손에는 여수 게장이 들려 있었다. 배가 터질 것 같은 포만감도 기사님의 추천을 거르게 하진 못했다. 게장은 서울로 가져가 먹기로 했다. 부모님 댁에 반 덜어드리리라 생각했다. 아직 어리기만 한 아들임을 인정하기로 했다. 대신 작게나마 효도로 보답하기로 결정했다. 게장의 3분의 2를 드려야겠다고 생각을 바꿨다.

〈남쪽으로 튀어〉의 주인공이 따듯한 남쪽에서 찾은 건 무엇일까? 내가 찾은 건 무엇일까? 집에서 양념 게장을 씹으며 생각했다. 여수에서 무엇을 찾았는지 모르겠지만 걱정은 두고 왔구나. 맛있는 음식에 정신을 놓고 탁 트인 바다에 걱정을 맡기는 곳이 여수다. 그때서야 미처 다 돌아보지 못한 풍물시장, 탈까 말까 고민했던 레일바이크가 생각났다. 청승은 그만 떨고 다시 여수로 향하고 싶었다. 날이 좀 좋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듯한 남쪽의 여수는 고민을 잊게 했다. 남도는 그런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