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quire Korea

됐어요, 관심 필요 없어요

정말 필요 없다. 하나도 외롭지 않다. 혼자서도 잘 산다. 휴… 한숨이 는다.

어려서는 엄마 품속에서만 살았다. 한 번씩 으스러질 것처럼 꽉 안아주는 게 좋았다. 떼어놓으면 돌아서서 다시 엄마 품으로 뛰어갔다. 엄마는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했다. 믿는다는 말도 그만큼 해줬다. 뭘 믿는지는 몰라도 으쓱했다. 무조건 내 편이라는 말을 듣곤 쓸데없이 누나에게 시비를 걸기도 했다. 세상이 엄마였고 엄마가 전부였다. 귀엽다고 예뻐해주는 고모를 따라 고모 집에 갔다가 상사병이 나서 밤중에 돌아올 정도였다. 엄마 얼굴을 보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생글거렸다. 버스를 탈 땐 항상 엄마 뒷자리에 앉았다. 눈앞에 엄마가 없으면 불안해서였다. 건너편에 자리가 생겨 떨어져 앉기라도 하면 내릴 때까지 안절부절못하고 발을 동동 굴렀다. 누나가 항상 마마보이라 놀렸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나에겐 엄마가 있으니 질투는 간단히 무시할 수 있었다. 아빠가 엄마 좀 놔두라고 해도 기어코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엄마는 아빠보다 내가 더 좋다고 했으니 엄마 뒤로 숨었다. 곧 있으면 초등학교 입학인데 학교는 어떻게 가야 할지 막막했다.

아빠는 무서웠다. 밖에서 놀다가 집에 돌아와 현관을 열면 단번에 알았다. 아빠가 있는 집의 공기는 무거웠다. 그럴 땐 잽싸지만 조용히 문을 닫고 나와 옷매무새를 살폈다. 놀이터에서 묻은 흙을 털고 주머니에 있는 과자 부스러기도 정리했다. 그래도 작은 숨소리만 나면 긴장했다. 내 숨소리에 내 심장이 덜컹거릴 때도 있었다.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아도 아빠는 압도적이었다. 그래서 불안했다. 아빠는 감정을 표현하는 법이 없었다. 도통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알지 못했다. 언제나 지적받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자꾸 스스로 되돌아봐야 했다. 어떻게 해야 아빠가 좋아할지 몰라 어려웠다. 아빠는 칭찬하는 법이 없었기에 뭐가 잘하는 건지 가늠할 수 없었다. 스스로 괜찮다고 믿음을 주는 게 최선이었다. 놀이터에서 무릎이 깨져도 괜찮다고 스스로 말했다. 엄마에겐 아빠에게는 말하지 말라는 신신당부도 잊지 않았다. 해외 출장이 잦았던 아빠가 트렁크를 꺼내야 비로소 마음이 편했다. 그럼 마음대로 어리광을 부릴 수 있으니까.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돌아오는 날을 역순으로 셌다. 숫자가 작아지면 작아질수록 진정이 안 됐다.

이렇게 엄마와 아빠의 온도 차이는 컸다. 뜨거운 물과 찬물을 오가는 것 같았다. ‘해야 되는 것’과 ‘해도 되는 것’처럼 비슷하게 보이지만 완전히 다른 커뮤니케이션이었다.

못된 사춘기였다. 반항의 시작은 빨랐고 끝은 없었다. 고등학교 때는 누나보다 열 배쯤 예민했다. 어머니의 품을 찾지도 아버지가 무섭지도 않았다. 그저 정신적으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는 뭐든 괜찮다고 말하는 것 같아서, 아버지는 뭐든 안 된다고 말하는 것 같아서 믿을 수 없었다. 중심은 내가 잡아야 했다. 듣지 않았다. 뭐든 혼자서 해결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누가 뭐래도 내가 판단해야 했다. 의심했다. 괜찮다고 해도, 안 된다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부딪치고 깨지고 나서야 믿었다. 언제부턴가 어머니의 충고도 아버지의 칭찬도 의미가 없어졌다. 결국 스스로 풀어야 하는 문제들만 남았다. 아무도 의지하지 않겠다고 생각하니 속은 외로웠다. 누군가 날 위로한다고 해도 마음속 깊이 믿지 못하니 위로받을 수 없었다.

아마도 어머니와 아버지의 극심한 온도 차 때문인 것 같았다. 자꾸 애정 결핍이라는 주변의 말이 농담이 아니라고 느낄 때 그랬다. 내가 애정 결핍이라면 문제를 일으켰을 거라 의심되는 건 이것뿐이었다. 어디서 주워들은 말에 의하면 애정 결핍 증상은 애정이 과해서 생기는 문제와 똑같다고 했다. 그러니까 나는 정확하게 애정이 과한 엄마와 애정이 결여된 아빠 사이에서 앞뒤로 딱 맞아 떨어지는 애정 결핍 증상을 얻은 것이라고 느꼈다. 그런데 왜 내가 애정 결핍이지? 난 지금도 사랑받고 있는데? 난 인기도 많은데…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 증상이 어떻길래 이러나 선배들에게 물어봤다. 독하게 말해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독했다.

“넌 너무 관심받고 싶어 해.” 난 관심받고 싶은 게 아니라 관심받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넌 뭐라고 하면 듣질 않아.” 그 선배는 젊고 인기 있는 날 시기하는 게 분명했다.

“넌 뭐든지 네 얘기로 흘러가지 않으면 집중을 안 하잖아.” 하긴 SNS를 하면서도 타임라인 대신 내 글만 보니까. 그렇다고 애정 결핍이랑 무슨 상관이 있지? 어쨌든 더 물었다.

“넌 관심병이야. SNS에 별걸 다 올리잖아!” SNS를 잘 사용하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어차피 SNS는 인생의 낭비인걸….

“넌 네가 잘생겼다고 생각해. 사실은 별로야.” 점점 애정 결핍하고 상관없는 단순 디스로 변모했다. 이게 아닌데 싶었지만 그래도 계속 들었다.

“넌 모두가 널 좋아해야 한다고 생각해.” “넌 아무한테나 잘해.” “넌 아무한테나 집적대.” “넌 거긴 왜 또 가서 쓸데없는 얘길 하니?” “거기서 또 자랑하니?” “그 얘긴 몇 번을 더 할 거니?” “걔랑은 왜 친한 거야?” “그 얘기는 아까 했다니까.”

선배들의 말에 없던 정신병도 생길 것 같았다. 선배들은 냉혹했다. 더 많은 증상을 들었지만 잊었다. 선배들은 이미 답변의 객관성을 잃은 것 같았다.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후배들에게 묻기로 했다.

“선배는 자기애가 너무 강해요.” “선배는 자존감이 너무 세요.” 이것들은 칭찬을 하고 있다. 그래도 후배들은 날 좋아하는 것 같았다. 기분이 금세 좋아져서 조금 더 물었다. “근데, 또 뭐 자랑하시려고요?” “선배, 인터뷰할 때 너무 쓸데없는 얘기 좀 하지 마세요. 녹취 풀 때 힘들어요.” “선배는 화나면 일부러 못되게 말하는 경향이 있어요.” 후배들은 건의를 하고 있다. 이젠 비난이 나올 차례인 것 같아서 말을 끊었다. 문득 이 말들이 진짜라면 왜 나와 일하나 싶었다. 그러다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일해야 하는 이유가 있겠지’ 하고 말았다.

아무래도 애정 결핍이란 게 뭔지 잘 모르겠다. 그냥 손톱을 물어뜯고 혼자 있으면 다른 사람들처럼 외롭다. 그렇다고 연애는 잘 안되고…. 누굴 만나도 쉽게 마음을 주지 못한다. 상처를 말하는 대상은 고등학교 친구가 전부다. 물론 다른 친구들과 속 깊은 대화를 하지만 아쉬운 소리를 하기 싫을 뿐이다. 사람이 다가오면 먼저 경계가 앞서고 나중에 후회하는 경우가 많다. 영영 떠나길 원해서 그러는 건 아니다. 오히려 기대하게 될까 걱정돼서다. 그런데 이게 문제인가? 애정과 관심을 원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상처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정신과 전문의를 찾았다. ‘생각과 마음 의원’을 운영하는 가수 겸 의사인 김창기 의원이었다. 그를 선택한 것은 그가 소아 청소년 발달 센터를 함께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정신적인 문제는 어릴 적 경험과 트라우마에 실마리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그가 TV에서 노래 부르는 모습을 본 적이 있기에 어색함도 덜할 것 같았다. 누군가에게 속 얘기를 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

의사와 마주 앉아 꺼낸 첫 이야기는 동료들이 해준 말이었다. 가감 없이 전했다. 되돌아온 질문은 그런 증상들이 사회생활에 지장을 주느냐는 물음이었다. 남들은 몰라도 난 느끼지 않았다.

“그렇다면 정신병은 아닙니다. 하지만 개선하고자 하는 게 있다면 어떤 문제 때문인지 함께 얘기하고 서로 노력하면 고칠 수 있습니다.”

정신병을 자가 진단하는 최소한의 방법은 어떤 문제로 인해 사회생활에 지장을 받느냐다. 그걸 알면서도 멈추지 못한다면 상담이 필요하다. 사회활동에 지장을 주지 않아도 스스로 개선하고자 하는 동기가 확실하다면 그 역시 상담을 통해 변화할 수 있다고 했다.

일단 내가 정신병은 아니라니 안심이 됐다. 정신적 문제일지라도 상담을 통해 개선할 수 있다는 것도 다행스러웠다. 무엇보다 따뜻한 목소리로 내 얘기를 듣고 싶다는 사람을 마주 대하니 마음이 편했다.

물론 나에게도 고치고 싶은 게 있었다. 사람들과 쉽게 친해지지만 결코 속을 보이고 싶지 않은 나의 모습이 그랬다. 남들이 어떻게 말할진 모르지만 스스로 느끼는 바였다.

“애정 결핍이라는 용어는 정신과에서 사용하는 병명은 아닙니다. 다만 누군가에게 의존하지 않으려는 ‘강박증’이 있는 것 같습니다. 참… 외롭겠네요.”

‘외롭겠네요’라는 말이 가슴을 건드렸다.

겉으로는 친밀하지만 속 깊은 곳에서 정서적 친밀감을 거부하고 있는 것 같다는 얘기도 했다. 그래서 독립적이려 애쓰고 다른 사람의 지적에도 태연히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이다. 방어적인 모습을 보이고 외로운 것이다. 경우에 따라 사회생활의 장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스스로 고치고 싶은 동기가 있다면 상담을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했다.

상담에서 내가 기대한 것은 사실 병명이 아니었다. 얘기를 나누며 나 스스로 내 마음속 깊은 곳으로 가보고 싶었다. 누군가 질문과 위로로 길을 알려줬으면 했다. 스스로도 어디에서 온 건지 모르는 감정들이 시작되는 곳으로 인도할 질문 말이다. 김창기 의원은 그 지점을 적절히 짚었다. 한 시간 동안 그의 질문이 내 마음을 끌어당겼다. 그의 손에 이끌려 어린 시절의 감정들에 닿기도 했고 한 번도 열지 않았던 마음의 문고리를 잡아당기기도 했다. 그사이에 속에 품은 강박이 마음속 어느 방에 있는지, 언제 숨었는지 조금은 느낄 수 있었다.

처음 만난 성인 남자가 고작 한 시간의 대화로 서로에 대해 알아낼 수 있는 게 얼마나 될까? 물론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짧은 그 시간 동안 내 마음속으로 가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속 안의 얘기들을 들어주고 개선의 의지와 방향을 알려주는 게 위로였다. 그와 몇 번 더 만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몇 번 더 내 마음에 닿고 싶은 생각에서였다. 마음속에 닫힌 방의 문을 열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엇이 들어 있는지 모를 그 방문 앞에 서도 나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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