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배철수의 음악캠프>가 이루어놓은 업적을 유난스레 떠드는 사이에도 그는 묵묵히 ‘방송 중’이다. 7000회 방송을 넘긴, 여전히 팝의 최전선에 서 있는 배철수를 잠시 짚어본다. 추억하거나 되돌아볼 생각은 없다. 그는 여전히 진행형이기 때문에.
Numéro, 2009년 7월
에디터 | 최태형 포토그래퍼 | 안지훈
가늘고 길게 가는 음악 인생
나는 1994년에 데뷔한 이후 이렇다 할 성과가 없었던 대중 가수 활동을 접고 2000년 홍대 앞 인디 신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때 불독맨션이라는 밴드를 결성해 클럽 공연을 다니곤 했다. 그러다 우연히 <배철수의 음악캠프> 라이브 코너에 출연하게 되었다. 그때가 2001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에 불독맨션 멤버들과 참 많은 연습과 준비를 했다. 그러나 절실함이 너무 컸던 탓인지 오히려 연주와 노래에 힘이 너무 들어갔고 결과는 부담스러운 연주가 되어버렸다. 분위기는 순식간에 싸늘해졌다. 그때 1994년 <MBC 대학가요제>에서부터 나를 지켜봐주었던 배철수 선배님이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이한철 씨처럼 가늘고 길게 음악 하는 것이 좋아요. 그러다가 한번 굵어질 때 제대로 누리고 다시 가늘지만 오래도록 음악 하는 것이 좋죠.” 비록 그날 연주는 맘에 들지 않았지만 ‘아, 나처럼 음악 하는 것이 나쁜 건 아니구나’라는 ‘적절한’ 위안을 얻었던 것 같다.
내가 틀린 건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고 곡을 만들고 음반을 내며 조바심과 위기감에서 벗어나 조금은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운 좋게 팬도 늘어나고 ‘슈퍼스타’가 꽤 많은 사랑을 받아 이렇게 배철수 선배님을 오래도록 뵙고 있다. 최근 <배철수의 음악캠프>가 7000회를 넘겼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람마다 자신의 인생에 최선을 다하는 방법이 조금씩 다를 텐데 ‘가늘고 길게’라는 배철수 선배님의 철학 덕에 오늘날 7000회를 맞이할 수 있었던 건 아닐까? 힘을 빼고 가늘고 길게, 그렇지만 완벽하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는 것이 멋진 인생임을 증명한 것을 보며 나도 언젠간 ‘나만의 방법으로 누군가에게 지울 수 없는 무엇인가를 남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설렘을 가져본다. -이한철(뮤지션)
평화를 사랑하는 ‘소심남’, 주관이 뚜렷한 ‘소신남’
<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로 일을 시작한 지 어느덧 1년 반이 지났다. 배철수 선배님을 처음 봤을 때 호칭을 ‘선생님’으로 정하고 예의를 차렸다. 그 순간, 다음과 같은 답변을 들은 기억이 떠오른다. “내가 너한테 가르쳐준 게 뭐 있냐? 그냥 선배님이라고 해.” 이처럼 그는 대접받기보다는 남을 먼저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다. 방송에서는 농담조로 “내 취미는 미녀들에게 밥 사는 것”이라고 밝히곤 하는데, 물론 나는 남자라 그 빈도수가 상대적으로 적었다. 그러나 그와 함께 밥을 먹었던 순간들을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다. 전혀 불편하지 않고, 유머와 웃음이 끊이질 않았으며 때로는 삶의 철학이 오가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삶의 철학. 이게 우리에게 실망만 안겨주는 대다수 어른들과 그의 차이점이라고 생각한다. 그에게서는 인생을 오래 산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은은한 향기가 풍긴다. 방송에서도 마찬가지. 그래서 그의 방송은 단지 밖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큰 공부가 되는데, 요즘 젊은이들이 도통 팝 음악에 관심이 없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어떤 표현을 써야 그에 대해 적확하게 설명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먼저 ‘소심’, ‘평화’ 같은 단어들이 떠오른다. 그는 자신을 소심남이라고 정의하면서, 분쟁을 싫어하고 평화를 바란다고 얘기한다. 그러나 소심하다고 해서 자기만의 소신이 없다거나, 남의 눈치를 본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뚜렷한 주관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걸 타인에게 강요하지 않는 사람. 젊은 시절에는 1960년대 히피들의 낭만을 동경했고, 지금도 그것을 꿈꾸는 로맨티시스트. 그는 세상이 결국 더불어 살아가는 것임을 잘 알고 있는 우리 시대의 몇 안 되는 현명한 어른이다. 그래서 조심스레 남을 먼저 배려하고 자신의 생각을 과격하지 않은 말투로 전달한다.
그는 언제나 방송 1시간 전에 어김없이 나타나서 그날 선곡할 CD를 쭉 들어본다. 녹음 때도 마찬가지다. 파일을 사용하면 금방 녹음을 끝낼 수 있는데도 고집스럽게 CD로 모든 음악을 다 듣고 진행한다. 듣지도 않은 음악을 틀 순 없다는 생각에서다. 이렇듯 방송과 청취자들에 대한 기본적 배려도 잊지 않는 그는 내 인생의 멘토 중 한 명으로 앞으로도 많은 가르침을 줄 것이다. 그의 가르침에 감사했고, 앞으로도 오랫동안 감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배순탁(<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
여전히 최전선에 위치한 배철수
빈 심포닉 오케스트라의 ‘새티스팩션(Satisfaction)’과 함께 오프닝을 시작하는 <배철수의 음악캠프>는 근 20년이란 엄청나게 긴 시간동안 묵묵하게 달려왔고 여전히 같은 시간,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 중심에 DJ 배철수가 있고 그를 구심점으로 한 한국의 팝, 록 음악 키드들은 그와 같이 나이를 먹고 자라 어엿한 성인이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필연적으로 한국의 음악 신 저변에 건강히 자리 잡았다.
‘누가 더 빠르게 기타를 치는가?’ 혹은 ‘더 높은 음을 내느냐’가 더 이상 좋은 음악의 기준이 아닌 시대에도 배철수와 그의 ‘음악캠프’는 여전히 중심을 지키고 있다. 그리고 아이들은 그의 방송을 들으며 자라난다. 요즘의 아이들에게도 그는 ‘형님’ 혹은 ‘아저씨’ 정도의 호칭으로 친근하게 존재하고 있다. ‘헌정’이나 ‘추억’하기엔 그는 너무도 현실감 있는 존재이고 여전히 최전선에 있다는 얘기다.
<배철수의 음악캠프>가 모든 세대의 지지를 얻는 것은 편협하지 않은 그의 취향과 진심으로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이 청취자들에게 전달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예전과는 달라진 환경 덕분에(?) 그의 프로그램이 전하는 음악과 소식이 더 이상 최신의 것이 아닐 수 있다. 다운로드와 몇 번의 클릭으로 언제라도 새로운 소식과 음악을 접할 수 있는 세상이 아닌가?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그의 방송에서 즐거움을 찾는다. 사람들이 그와 그의 프로그램에 원하는 것은 단순한 정보의 전달이 아닌 음악에 대한 진심의 공유일 것이다. 얼마 전 그룹 딥 퍼플의 키보디스트였던 거장 존 로드가 내한 공연을 앞두고 <배철수의 음악캠프>에 출연한 적이 있었다. 그는 노뮤지션에게 차분한 목소리로 질문을 이어갔고 방송이 끝날 무렵 진심 어린 말투로 “함께 방송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라는 얘기를 전했다. 배철수 역시도 진심으로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고 뮤지션에 대한 존경을 가슴 깊이 간직하고 있는 사람이기에 가능한 인사였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러한 배철수의 진심에 감동하고 동감한다.
그의 방송을 듣고 자란 중학생이 어엿한 30대의 디자이너가 되었다. 아쉽게도 음악이 아니라 옷을 만들고 있지만, 그에게서 전해 받은 음악에 대한 진심은 사라지지 않는 것이기에 10여 년 만에 다시 아마추어 밴드를 시작했다. 많은 부분이 서툴고 어설프지만 누구보다도 음악을 가까이 두고 지내는 요즘은 너무 행복하다. 음악을 즐길 줄 아는 멋진 디자이너로 키워준 그와 그의 방송에 무한한 감사의 말을 전하지만,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라는 인사는 부디 나중으로 미뤄두고 싶다. -지일근(인스탄톨로지 디자이너)
기본에 충실한 진정한 전문 DJ 배철수
“요즘 젊은 세대들은 팝송을 너무 안 듣는 것 같아요.” 이 말의 주인공은 직배 음반사 직원도 레코드점 사장도 아닌 바로 배철수가 MBC <황금어장> ‘무릎팍 도사’에 출연해 토로한 고민거리다. “사람들이 저를 너무 지저분한 이미지로 생각해요”라든지 “이외수 선생과 자주 혼동해요” 같은 방송용 고민거리가 아닌, 팝 전문 DJ 배철수의 직업과 팝 음악에 대한 애정이 담긴 스스로의 가치관을 표현한 것이라 생각된다.
록 밴드 ‘활주로’의 노래하는 드러머로 기억되던 배철수와의 첫 만남은 그의 부인이 된 <배철수의 음악캠프>의 첫 프로듀서 박혜영 PD의 섭외로 이루어졌다. 당시 나는 유일한 팝 전문지 <핫뮤직>의 편집장 자격으로 출연했다. 이후에도 종종 게스트와 DJ 자격으로 만났고 록 밴드의 추천과 섭외를 돕는 입장으로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도 하며 인연을 쌓았다. 팝 칼럼니스트, 음악평론가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기에 누구보다 ‘배철수’와 ‘음악캠프’에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그는 사람들이 흔히 그를 보고 가지는 선입견과는 다른 점이 많다. 일례로 배철수는 근 20년간 7000회의 방송을 진행해오는 동안 단 한 번도 펑크를 내지 않은(심지어 방송 몇 시간 전부터 준비한다) 성실파다. 누군가 그에게 “록 뮤지션이 무슨 팝 DJ를 해?”라고 묻는다면 내가 나서 구구절절 옹호하고 싶은 실력파이기도 하다.
잘 알려진 대로 배철수는 직업을 묻는 질문에 당연히 ‘디스크 자키’라고 스스로를 소개한다. 록 밴드의 리더였기에 후배 뮤지션에게 따끔한 충고와 진실된 조언을 아끼지 않으며 프로그램뿐 아니라 음악 신을 이끈다. 그는 플레이하는 음악의 음질에서부터 뮤지션들의 발음까지 정확히 챙기는 DJ이기도 하다. 한번은 그가 스튜디오에서 영어 사전을 펼치고 꼼꼼하게 발음을 체크하는 모습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DJ에게는 기본이라 할 수 있지만 20년간 꾸준히 실천하기는 어려운 ‘진실된 직업관’이 몸에 밴 것이다. 나는 그를 유일한 팝 전문 DJ로 기억한다. 늘 여름이 되면 휴가를 떠난 배철수의 빈자리를 메우는 ‘대타 DJ’의 노력이 있지만, 그의 공백이 크게 다가오는 것은 비단 나만이 아닐 것이다. -성우진(음악평론가, 방송 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