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quire Korea, 2014년 11월
글/최태형 사진/JTBC

처음 ‘종편’이 문을 열었을 때다. 종편의 탄생을 경계하며 바짝 긴장했던 공중파들은 뚜껑을 열자 김이 빠졌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비웃기도 했다. 공중파의 채널 조정 시간보다 시청률이 낮다는 말이 거짓말이나 조롱만은 아니었다.

고작 2년 만이다. 얘기는 달라졌다. 종편 프로그램이 공중파를 위협하고 있다. ‘무플보다 악플이 낫다던’ 노이즈 마케팅을 비난하는 목소리도 사그라들었다.

물론 처음부터 종편이 좋은 모습을 보였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채널별로 서로 다른 진영 논리와 편 가르기, 프로그램 자체의 매력이 아닌 자극적인 소재가 판을 쳤다. 풀밭의 토끼를 인터뷰하겠다며 메인 뉴스 시간마저 꼴사나운 코미디로 만들 지경이었으니까.

그런데 달라졌다. 출범 처음 낮은 채널 접근성을 만회하기 위해 자극적인 이슈로 진흙탕 싸움을 했다면 이젠 아니다. 1퍼센트도 되지 않는 채널 접근성을 장점으로 승화시켰다. 공중파는 할 수 없는 다양한 시도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신선한 포맷과 다양한 소재, 스타에 의존하지 않는 적극적이면서도 모험적인 섭외가 주특기가 됐다. 공중파의 드라마와 예능이 스타에 의존해 철 지난 영웅들을 끌어내 몰락을 지켜보게 할 때 종편은 새로운 인물을 발굴했다.

그중에서도 JTBC는 토크쇼를 파고들었다. 슈퍼스타 진행자는 없었다. 신인에 가까운 인물들을 발굴해 카메라 앞에 앉히더니 다양한 소재와 의견으로 사람들이 채널을 멈추게끔 했다. 〈썰전〉이나 〈마녀사냥〉 같은 프로그램은 그동안의 공중파와는 달랐다. 공중파가 건드리지 못한 영역, 덮어두고 지나친 부분을 여지없이 건드렸다. 퇴물 정치인부터 무명의 칼럼니스트 들이 다양한 이슈에 의견을 내고 공감을 샀다. 젊은이들의 성문화도 눈 가리고 아웅하기가 아닌 솔직하지만 구질구질하지 않게 들려줬다. 공중파가 스타들의 신변잡기나 눈물 짜기에 몰두할 동안 말이다. 그런 사이 몇몇 무명의 패널은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시청률이 요동치기 시작한 건 물론이다.

드디어 결정판이 등장했다. 이름은 〈비정상회담〉. 프로그램의 메인 연출을 담당하는 김희정 PD는 열한 명의 외국인을 모았다. 한국어에 능통하지만 자국 문화를 잊지 않은 젊은이들이다. 외국의 게스트하우스에서 각국의 청년들과 둘러앉아 떠들던 기억이 프로그램의 모티프가 됐다. 게스트하우스에서 국적이 다른 청년들이 얼굴을 마주 보며 나누는 대화는 재미있었다. 때론 농담이었고 때론 논쟁이었다. 일순간 각 나라의 대표가 됐다가 어쩔 땐 그냥 20살짜리 꼬맹이들처럼 굴었다. 민감한 얘기도 진지하지만 밉지 않았고 젊은이들의 열린 마음은 타협이나 거래 없이도 이해를 이끌어냈다.

“〈미녀들의 수다〉와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들은 적이 있어요. 그런데 전혀 걱정하지 않았어요. 외국인이 등장하는 건 비슷할지 모르지만 프로그램의 뿌리부터 달랐거든요.”

〈미녀들의 수다〉는 외국인 여성들이 모두 카메라를 향해 앉아 있다. 토론이라기보다 발표에 가깝다. 소통한다기보다 ‘우린 이렇게 해요’라며 다름을 비교한다. 〈비정상회담〉의 게스트는 둘러앉는다. 작은 차이지만 결정적이다. 카메라도 모두 보이지 않게 치웠다. 그저 11명의 각자의 문화를 산 젊은이들이 하나의 언어로 소통한다. 마치 정상들이 모인 토론장인 듯 으스대며 문을 열지만 이내 메인 MC들이 ‘전유성이에요(전현무, 유세윤, 성시경의 앞글자)’를 외친다. 실없이 ‘피식’ 하게 만든다. 프로그램 성격을 잘 대변하는 부분이다.

〈비정상회담〉은 논쟁하지만 전쟁하지 않는다. 농담하지만 조롱은 없다. 게스트하우스의 주방 테이블로 돌아가게 만든다.

프로그램의 방향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11명의 청년들과 만나 첫 방송부터 터졌다. 피부색에 따른 선입견의 크기만큼 반전을 거듭했다. 11명의 청년들이 서로에게 가진 선입견부터 시청자가 11명의 청년을 보며 예상한 흐름까지 모두 엎치락뒤치락하며 흥미를 이끌었다. 이른바 ‘케미’가 폭발했다.

“의도하지 못했던 문화 간 대립이 재미 요소가 됐다. 맥주를 두곤 벨기에와 이탈리아가, 문화재를 놓곤 영국과 프랑스가 이야깃거리를 쏟아냈다. 중국과 일본 거기에다 한국 MC들은 말할 것도 없다.”

김희정 PD의 말처럼 알아서 된 것만은 아니다. 사전 인터뷰에서 철저하게 출연진의 캐릭터를 예상한 게 주효했다. 줄리안은 항상 밝고 에너지가 넘치며 기욤은 순둥이고 타일러는 똑똑한 캐릭터다. 터키에서 온 에네스는 한국인보다 더 보수적인 면이 있다. 이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한 게 프로그램의 길목마다 폭발을 일으켰다. 그동안 보지 못한 대립과 화해, 소통과 농담이 난무했다. 문화에는 정답이 없듯 이들의 말에는 정답이 없었다. 흑과 백 진영 논리 혹은 양비론뿐인 지금 사회에 더욱 독특한 프로그램이 됐다.

얼마 전 한국갤럽은 한국인이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을 조사해 발표했다. 〈무한도전〉, 〈왔다! 장보리〉에 이어 3등을 차지한 프로그램은 〈비정상회담〉이다. 종편 출범 2년, 프로그램 15회 만의 결과다. 〈비정상회담〉이 한국의 토론 프로그램과 종편의 흐름을 바꿨다. 비정상의 정상화다. 전유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