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든 몰두할 수 있는 곳은 모두 그의 작업실이다. 어떤 곳은 시끌벅적 정신이 없고, 또 어떤 곳은 조용하고 차분하다. 최정화는 모든 곳에 작업실을 만들어놓았다.
Numéro, 2010년 1월
에디터 | 최태형 포토그래퍼 | 유안
얼마 전 최정화는 1년간 진행한 ‘라운지 프로젝트’를 끝마쳤다. 영화, 건축, 미술 등의 영역을 넘나들며 활동해온 그가 아트선재센터의 1층 로비를 라운지로 변화시킨 작업이었다. 이 프로젝트는 카페와 서점을 포함한 1층 라운지 전체를 또 다른 맥락의 예술적 공간으로 변모시켰다. 그가 만든 가구와 세계 여러 나라의 독립 출판물을 모은 서재, 소쿠리로 된 파티션. 그곳에는 갤러리 안에 있던 그의 작품이 고스란히 옮겨와 있었다. 로비는 그렇게 작품을 전시하는 갤러리가 됐고, 동시에 사람들이 쉬어 가는 라운지가 되었다. 누군가는 그가 만든 소파에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도 그를 인지하지 못했고, 누군가는 소쿠리 파티션을 만지며 즐거워했다. 작품을 의식한 사람에게도, 의식하지 못한 사람에게도 그곳은 새로운 에너지를 발산하는 살아 있는 공간이었다. 대중은 그렇게 공간을 채우고 누리는 동시에 작품이 되었다. 최정화는 그런 식으로 공간의 개념을 허물고 확장해 갤러리와 실생활의 영역을 하나로 만들었다.
설치미술을 하는 작가에게 공간이란 동물원의 안과 밖 같은 것이다. 유리창 안 동물이 구경거리인지 유리창 밖 사람들이 구경거리인지, 유리창의 안과 밖은 어떻게 나눌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고스란히 설치 작품에 적용된다. 공간을 채우는 것이 작품인지, 작품이 채워진 공간 자체가 작품인지. <누메로 코리아>는 1년간의 ‘라운지 프로젝트’를 마친 최정화에게 프로젝트의 결과와 공간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그가 작업실이라고 소개한 곳은 자신이 직접 인테리어를 맡은 오름 다이닝의 카페였고, 첫 질문에 그는 공간의 개념을 나누려는 것부터가 오류의 시작이라고 답변했다. 이후 질문과 답변을 따로 나눌 수 없는 이야기가 오고 갔고 그의 아틀리에는 그렇게 존재하지 않으면서도 모든 곳으로 확장되었다.
[ Numéro ] <누메로 코리아>의 ‘아틀리에’는 작가의 공간에서 작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코너다. 당신은 항상 공간을 채워왔고 1년간 진행한 ‘라운지 프로젝트’를 끝낸 시점이라 더욱 최정화의 공간에 대한 생각이 궁금하다.
[최정화] 작업실도 결국 공간이니까. 그런데 지금 나는 작업실이 없다. 그리고 작업실이 필요 없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래도 작업을 진행할 중심이 되는 공간은 필요할 것 같다. 그리고 물리적 공간보다 공간을 대하는 시각에 대해 듣고 싶다.
시장이 작업실이고, 클럽이 작업실이다. 건물 옥상도 내 작업실이고, 뒷산도 작업실이다. 그런 식이다. 지금 인터뷰하는 이 오름 다이닝의 카페도 내 작업실이라고 볼 수 있다. 모든 인테리어는 내 손을 거쳤고 여기 있는 모든 것이 내 작품이다. 그럼 이곳이 내 작업실이지. 모든 것은 흩어져 있다. 중심이 하나라고 생각하는 것, 중심이 하나여야 한다는 생각은 잘못이다.
다시 라운지 프로젝트 얘기로 돌아가겠다. 공간을 변화시켜 얻고자 한 것은 무엇이었고 그 결과는 어땠는지, 1년이 지난 지금 자체 평가를 한다면 어떤가?
1년이 지난 지금 돌아보면 아쉬운 생각이 든다. 좀 더 다각도로 공간에 접근하고 다양하게 그 공간을 사용했어야 했다. 공간이 라운지로 변화되었지만 제대로 사용한 적이 몇 번 안 됐다. 그런 점이 아쉬웠다.
처음에는 전시를 부탁했는데 직접 택한 장소가 1층 로비였다. 왜 그곳을 택했나?
원래 기획은 뉴욕 뮤지엄에 있는 주은지라는 디렉터가 기본 기획을 세우고 나서 나에게 디자인을 의뢰했다. ‘어떤 재원’이라는 프로그램인데 라운지에 있던 책 모두 전 세계의 미술 기관과 단체에서 기증한 것이고, 작가들이 만든 것이다. 그렇게 모인 책들의 정보와 용도를 다시 여러 사람들과 나누자는 것이었다. 이런 것들이 미술관에 들어가면 안 되고 밖에 있어야 한다. 공간도 마찬가지다. 로비에 그런 장소를 조성한 것은 더 다양한 만남을 만들고 더 다양한 용도로 쓰이길 기대했기 때문이다.
항상 공간을 먼저 생각하는 것 같다. 그렇게 외부로 나온 작품들은 보통 공공 예술이라는 범주에 속하지 않나? 기무사에서 했던 <신호탄>전에서도 ‘총, 균, 쇠 2009’라는 작품으로 또다시 옥상 외부를 전시 공간으로 택했다.
모든 설치 작품이 공공 미술이 되는 것은 아니고 공공 미술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신호탄>전에서 옥상에 설치한 작품은 ‘총, 균, 쇠 2009’는 재러드 다이아몬드 작가의 <총, 균, 쇠>라는 책에서 따왔다. 문화 생태학, 문화 인류학, 문화 기호학이 다 섞여 있는 책이다. 옥상을 택한 이유는 기무사의 모든 장소가 그렇지만 민간에 공개되지 않은 장소이면서 시야가 넓은 곳이기 때문이다. 그곳에 플라스틱 바구니로 미로와 감옥을 만들었다. 그 미로와 감옥이 폐허처럼 보이길 원했다. 작품 설치 공사에 두 달 걸렸는데 중간에 태풍이 와서 쓰러진 것들이 있었다. 그렇지만 그걸 새로 세우지 않고 그대로 전시했다. 미래의 유적을 만들었다고 보면 된다.
회화로 ‘중앙미술대전’에서 상을 탈 정도의 엘리트 코스에서 돌연 회화를 하지 않고 인테리어부터 설치 미술까지 다른 길을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모든 게 캔버스다. 평면과 공간의 구별은 무의미하다. 평면에 했던 것들은 일러스트, 베끼기, 남한테 잘 보이려는 그림일 뿐이었다. 그래서 그걸 다 포기하자고 마음먹었다. 어떤 룰에서 빠져나온 것이다. 그림을 포기했기 때문인 것 같다. 나의 모토는 ‘즐겁게 하자’다.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인 벽에 부딪히면 즐기기가 쉽지 않다. 창원 시청에서 설치 작품 ‘축하합니다’가 강제 철거당한 일도 다른 종류의 벽을 실감한 것이 아닌가?
그건 제도적인 문제다. 정치 권력의 폭력 문제라고도 볼 수 있다. 나는 즐거웠고 보는 사람도 즐거웠다. 그리고 그 작업 덕분에 다음 작품이 잘 풀렸다. 작품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은 무시되고 일부의 생각으로 작품을 철거한다는 것은 아직 성숙하지 못했다는 증거다.
그런 점 역시 공공 미술이 고려해야 할 점이기도 하지 않나? 공공 미술이기에 필연적으로 많은 것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제약이 될 수도 있을 테고. 일차적 예를 들자면 위험성이 없다든지, 거부감을 만들지 않는다든지.
안전도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공공 미술이라고 하면 딱딱한 것만 생각한다. 돌, 쇠 등의 소재만 말이다. 그렇지만 그런 게 아닐 수도 있다. 그건 영구적인 것을 공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곳에 영구적으로 존재하는 것. 그런데 어느 한순간도 공공일 수 있다. 한순간 ‘번쩍’하는 것도 공공 미술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공공이라는 개념을 시간으로도 쪼개고 공간으로도 쪼갤 줄 알아야 한다. 이렇게 다양한 접근이 필요하지만 아직은 여전히 딱딱하다.
그렇다면 물리적이 아닌 표현 방식에서 누구나 볼 수 있다든지, 교육적으로 문제가 없어야 한다는 것도 고려해야 할 듯하다. 그런데 그걸 누가 정하나?
사회적으로 암묵적인 약속이 있을 것 같다. 예를 들어 노출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외설과 예술의 경계를 어떻게 나눌 것인지의 문제부터 시작한다. ‘공’이라는 글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일 ‘공’자도 있고 함께할 ‘공’자도 있고 나눌 ‘공’자도 있는데, 이 모든 ‘공’을 먼저 생각해야지 기준부터 나누어버리면 안 된다. 억지로 풍속에 반하는 것을 공공장소에 가져다놓지도 않겠지만, 다만 그게 기준이 되어선 안 된다. 공공은 시간과 장소에 따라 달라진다. 물속, 산 위에 있을 때 다 다르다. 건물 안과 밖에 있을 때도 공공은 다 다른 것이다. 장소와 시간, 대상에 맞는 분석이 필요하다.
그럼 작업하기 전에 가장 먼저 고려하는 것은 무엇인가?
일시적인 것이냐 영구적인 것이냐 하는 문제다. 영구적인 것은 최소 90년 계약이다. 그것과 하루짜리 전시, 일주일짜리 전시는 다르다. 소재도 다르고 누구와 함께하는가도, 대상도 다르다. 공공 미술은 쉽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따라서 작업이 쉽게 정의되지도 않는다. 나는 작업실도 없다. 모든 곳이 작업실이 될 수 있듯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다. 질문은 많지만 내 답변은 없다. 내가 정답을 모르는데 어떻게 답변을 하겠나. 모든 것은 혼란스럽고 결론도 없는 일들이다.
그러면 공공 미술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공공 미술을 창조하는 주체가 가지고 있는 태도. 그걸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대한민국 곳곳에 있는 벽화다. 아무 의미도 없고 내용도 없고 그냥 잘못된 화장 같은 거다. 좀 더 근본적인 출발을 만들면서 해야 한다. 이게 없으면 큰일 난 거다.
사람들이 최정화를 정의하는 몇몇 단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키치적이라든지.
그건 잘못된 정의다. 난 고급 예술을 한다. 싼 재료를 쓴다고 키치가 아니다. 좋은 재료를 쓴다. 나는 매우 조형적인 작업을 한다. 미술을 공부하는 친구들이 많은 생각을 해야 할 부분이다. 불법 현수막을 가지고 작품을 만들고 그 불법 현수막이 외국 미술관에 컬렉션으로 소장된다. 이런 것을 통해 작품의 출발 과정과 결과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는 걸 느낀다. 생활예술가라고 이름 붙일 수는 있어도 키치라고 할 수는 없다.
어떤 작업을 할 때 가장 즐겁나?
기획 단계와 마지막 대중의 반응을 볼 때 즐겁다. 일본에서 한 ‘<OK>’ 전시의 경우 폐막식을 3박 4일간 했다. 4만 명 이상의 관객이 뜨겁게 호응해줘 마을 주민들이 다시 전시를 요청할 정도였다.
앞으로의 계획과 준비하는 작품은 무엇인가?
꽤 많은 프로젝트가 있다. 2월에는 일본 가부시마에서 워크숍, 3월에는 롯폰기에서 아티나이트, 4월에는 도와다 아트센터, 5월에는 시드니 비엔날레, 6월에는 중국. 이렇게 스케줄이 줄줄이 짜여 있다. 이렇게 세계를 돌면서 느끼는 건 원시 문명은 다 똑같다는 점이다. 동남아뿐 아니라 인디아, 마야, 잉카, 아프리카의 원시 문명은 다 똑같다. 심지어 북유럽까지. 색깔의 강함과 화려함과 원칙 없는 쓰임. 그런 것에 영향을 받고, 느끼고, 그런 다음에 그것을 공부해서 아는 것이 아니라 본능적으로 알게 되는 것. 앞으로 내가 할 일이다. 지금도 원시 미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더욱 깊게 들어가볼 것이다.
원시 미술이라면 어떤 것인가?
지금 까지 보여준 것들이 더욱 심화될 것이다. 아직 내가 나의 세계를 다 보여주지 못했다는 뜻일 수도 있다.
명확히 이해하긴 어렵다.
어려울 거다. 내가 하는 게 답이 아닌데 어떻게 다 명확히 이해하나. 그래서 맨정신엔 인터뷰가 안 된다. 술 한잔하면서 다시 이야기하자. 인터뷰로는 이 혼란스러움과 답이 없다는 사실을 다 전달하기 힘들다. 내 전시나 웹사이트(www.choijeonghwa.com)를 통해 사람들이 직접 보고 느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