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quire Korea, 2016년 2월
에디터_최태형 / 글_함인선(건축가, 현 BHW 대표)

[박스] 필자 소개

함인선, 〈정의와 비용 그리고 도시와 건축〉, 마티, 2014

서울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를 마쳤다. 처녀작 성락교회로 주요 건축상을 받아 주목 받았다. 2014년 초까지 10년 동안 선진엔지니어링과 건원건축에서 CEO로 재직했으며, 한양대 교수로 재직하기도 했다. 〈정의와 비용 그리고 도시와 건축〉 〈구조의 구조〉 등 여섯 권의 저서가 있다.

디자인은 사회의 ‘상태’이다

동대문운동장 터에 들어선 DDP에 대한 논란은 현재 진행형이다. 서울을 대표하는 랜드마크로 떠올랐다니 세계 최대의 비정형 건물을 우리 기술로 완성했으니 장하지 않느냐는 식의 ‘자뻑류’가 있는가 하면, 일대의 역사·문화 환경을 무시했으며 우주선 같고 위압적이라는 ‘인상 비난(평)’도 있다. 정작 설계자인 자하 하디드는 이 형태는 한국의 전통 건축과 수묵화에서 실마리를 얻은 ‘건축적 풍경’이라 하고 성벽 등 역사 유산 보존이 중요한 참고점이 되었노라고 설명한다.

어떻게 하나를 놓고 이렇게 딴 별에서 온 사람들처럼 입장이 다를까? 그런데 이것이 건축의 본질적인 속성이다. 에펠탑이 지어진 후 건설을 극렬히 반대하던 모파상은 항상 에펠탑 테라스에 있는 카페에 나앉았다. 이유는 파리 시내에서 이 흉물을 안 볼 수 있는 유일한 장소여서였다. 공공 건축은 사람들에게 ‘강제적인 관람과 이용’을 시킨다. 대체재가 없는 도시의 장소에 막대한 공공 비용을 들여 지었건만 내 취향이 아닌 건축이 독서를 강요한다면 실망을 넘어 모파상처럼 분노하는 것은 당연한 노릇이다. 문화재 심의와 서울시의 오락가락이 합쳐져 빚어낸 ‘유리 쓰나미’ 서울시 신청사의 건축가 유걸이 애먼 욕을 잡수시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신청사, DDP뿐 아니라 세빛둥둥섬, 노들섬 오페라하우스의 발주자인 동시에 공동 저자이다. 그는 미래의 먹거리는 지식 산업의 정수인 디자인에서 나온다고 보고 ‘디자인 수도, 서울’이라는 거창한 구호를 내세우며 여러 프로젝트를 실행에 옮겼다. 판단도 옳고 시의적절했으나 성과는 적어도 지금까지는 실망스럽다. 둥둥섬은 한강 오리알이 되었고 오페라하우스는 박원순표 텃밭으로 상상불허의 존재 변이를 한다. 신청사는 언론에 의해 최악의 현대 건축물로 지목되었고, DDP는 공공성과 상업성 사이에서 줄타기하고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한마디로 디자인을 외쳤으되 디자인이 무엇인지를 몰랐기 때문이다. 디자인은 최종적인 생산물을 편리하면서도 아름답게 만드는 ‘기예’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당대의 사회, 문화가 번안된 어떤 ‘상태’를 얘기한다. ‘기예’가 아니므로 ‘계발’이 불가능하고 ‘상태’이므로 관제적이고 하향적인 ‘육성’이 안 통한다. 런던이나 밀라노 같은 디자인으로 먹고사는 도시를 지향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아울러 예리하게 보아야 할 지점은 그들의 어떤 역사와 배경이 그 디자인을 자아냈을까이다.

오세훈의 철학 없는 디자인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가 광화문광장이다. 국가의 상징 가로를 광장으로 만들어 시민에게 돌려주겠다는 취지도 좋고, 교통의 효율성 따위를 하위 문제로 내린 용기도 훌륭하다. 문제는 이 광장이 박람회장이 되었다는 것이다. 당시 시의 발표다. “당선작은 전통과 첨단을 조화 (중략) 육조 거리 등을 재현해 역사성 (중략) 디지털 등 첨단 기술을 조합 (중략) LED, 레이저, 투광기, 볼라드 조명 (중략) 분수, 수로, 벽천, 연못 (중략) 선큰광장, 지하 광장 등 아이디어가 많았다.” 온갖 아이디어로 당선된 계획안은 온갖 비난 속에 대부분 철회된다. 완성된 지 수년이 지난 지금 서울시는 누더기가 되어버린 석재 도로 포장 때문에 골머리를 썩고 있고 한쪽 차로를 없애 광장을 세종문화회관 쪽으로 붙이는 안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다.

대비되는 다른 광장을 하나 보자. 베를린의 홀로코스트 기념관이다. 피터 아이젠만이 설계했는데 기념관은 지하에 있다. 지상에는 가로세로 간격이 일정한 돌덩이가 2711개 늘어서 있다. “이게 무슨 설계야?”라고 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렇다. 건축가가 한 일이라고는 땅을 울렁울렁하게 해서 이 돌덩어리의 높이를 다르게 한 것 말고는 없다. 그러나 그곳에서 일어나는 사람들의 행위를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어떤 노인은 추모를 하며 비석 사이를 순례한다. 낮은 돌은 아이들의 징검다리 놀이터이거나 행인들의 벤치가 된다. 높은 돌이 만든 미로는 연인들의 키스 장소이거나 숨바꼭질 장소다. 수없는 액티비티가 일어나지만 건축은 단 한 가지다. 하나의 재료, 하나의 구법. 단순한 비움이 무한한 자발적 행위를 견인한다. 여전히 번잡한 광화문광장에서는 집회든 구경이든 나는 손님이다.

왜 베를린에서는 이런 광장이 만들어지는 반면 서울에는 저런 광장이 조성되는가? 이것이 과연 건축가의 문제인가? 오세훈은 자하 하디드, 장 누벨 등을 부른 바 있으므로 아이젠만이라 못 왔을 리 없다. 그렇다. 이는 건축가의 문제가 아니라 건축주의 문제, 더 나아가 광화문 ‘엑스포 광장’ 계획안에 표를 던지는 우리 모두의 문제인 것이다. 이렇듯 디자인은 디자이너의 문제도 아니고 디자인 자체의 문제도 아니며 그 디자인을 요청하고 생성하는 사회의 문제, 품격인 것이다.

런던과 베를린에서 세계적인 디자인이 출현하는 것은 그 디자이너와 더불어 그러한 것을 요구할 줄 아는 시민과 정부, 그 디자인을 냉혹하게 평가하는 담론 세계가 있기 때문이다. 수백 년을 거쳐 형성된 이 생태계와 환경을 보지 못하고 그 결과물에만 주목하여 수입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오세훈의 기념비들이 가르쳐준다.

DDP는 과연 새 시대의 건축인가

자하 하디드는 DDP에 대한 소개를 하면서 이런 매끄러운 연속체가 21세기의 삶, 즉 유동성과 복합성으로 특징되는 현재와 미래의 삶을 표현하는 수단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유명 건축가들에게서 상투적으로 들을 수 있는 “나는 스타일리스트가 아니라 시대정신의 표현자”라는 얘기다. 이러한 용감함에 감명을 받은 건지, 최초의 여성 프리츠커상 수상자라는 브랜드 파워가 힘을 발휘하는지 그녀는 근래에 가장 모시기 힘든 건축가 중 하나이다.

그러나 그녀의 일감 없던 시절의 ‘날 선 건축’을 기억하는 나 같은 사람은 이 ‘대변신’도 이해가 되지 않을뿐더러 여기에 ‘시대 건축’을 연결하는 대목에서는 이런 의문조차 든다. ‘그러면 그녀는 30년 동안은 다른 시대 건축을 했단 말인가?’ 1993년 가구 공장 구내 소방서 건물을 소유주의 은전으로 맡기 전까지 그녀는 계획안만 전시, 출판하는 페이퍼 아키텍트(Paper Architect)의 대표 선수였고, 이때의 계획안은 하나같이 1920년대 러시아 아방가르드의 전통선상에 있는 매끄러움이란 전혀 없는 날카로운 것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자하 하디드는 노먼 포스터와 더불어 영국과 런던이 탄생시킨 최고의 문화 상품이라고 생각한다. 런던은 그러한 인프라를 가지고 있다. 산업혁명의 시발지로서의 자부심이 흥건한 기술주의적 전통, 수많은 식민 통치를 통해 습득한 문화적 다양성을 녹여내는 사회 저변의 능력, 그리고 기술과 실험적 예술을 건축화하는 AA(Architectural Association)를 비롯한 아카데미즘적 전통 등이 혼화되어 아무도 쉽게 따라오지 못하는 건축을 생산해내고 있다.

실제로 자하 하디드의 곡면을 만들어내려면 3차원 파라메트릭 기법을 통달한 설계자와 이를 실물화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진 엔지니어가 필요한데 미국의 프랭크 게리나 영국의 포스터 사무실 오브 아럽(Ove-Arup) 정도가 가능하다. 그러므로 자하 하디드의 건축 철학의 일관성을 별개의 논의로 친다면 분명 그녀는 이 시대가 열렬히 원하는 유동적인 이미지를 첨단의 기술을 동원해서 구현시키는 ‘시대적 건축가’라는 표현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그녀는 당대의 환호를 받는 ‘시대적 건축가’를 넘어 시대정신을 대표하는 ‘시대의 건축가’로 나아갈 수 있을까? 이에 답하기 위해서는 건축에 있어서 ‘현대가 근대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시대인가’부터 물어야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건축에 관해서만 본다면, 그리고 건축의 본질이라는 잣대에서만 본다면 지금 우리 시대의 건축은 근대건축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런 맥락에서 자하 하디드와 프랭크 게리 등이 분명 근대건축의 전형적 형태를 극복한 유동적 형태를 보임으로써 현대건축의 표현 가능성의 지평을 넓혔음은 인정하면서도 근대와 근대 이전을 가르는 정도의 본질적 차이를 보이지는 못한다는 것이 나의 입장이다. 유동적인 건축은 100년 전 아르누보 건축에…

서도 자하 하디드와 같은 논리를 배경으로 등장했다. 철 구조라는 시대가 요구하는 재료를 쓰면서도 직선의 부자연스러움을 극복하기 위해 아르누보는 유기체적인 곡선을 자연이라는 이름으로 가져왔다.

건축에서의 근대가 그 이전과 궤를 달리하는 것은 세 가지 측면에서 본질적인 변화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첫째는 건축 재료와 기술의 혁명적인 변화이다. 수천 년 동안 주인 자리를 차지했던 나무와 돌, 벽돌 대신 철과 철근 콘크리트가 등장했다. 구축 방법뿐 아니라 공간과 형태 모두가 바뀌어야 했음은 물론이다. 둘째는 도시와 시민의 탄생이다. 산업혁명에 의한 대도시의 출현, 노동자 계급과 시민의 탄생은 건축의 점유, 사용자가 원천적으로 바뀜을 의미한다. 이에 ‘공공성’이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셋째는 포괄적인 상업화이다. 이제 건축 또한 사용가치만큼 교환가치를 따져야 하고 건축가의 수고 역시 상품이 된다. 후기자본주의가 되면 건축의 공간뿐 아니라 이미지 자체가 가치를 지닌 상업적 소비의 대상이 된다.

내가 현대건축이 새로운 시대의 건축일 수 없다고 보는 까닭은 이 중 단 하나도 근대 이후 지금까지 변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새 ‘시대’가 아직 오지 않았는데 새 ‘시대 건축’이 나타났을 리 만무하다.

셀러브리티 건축가들

건축에서 근대를 이전 시대와 구별시키는 특징이 ‘테크놀로지’, ‘공공성’, ‘상업화’라고 언급했거니와 20세기 후반부터 가속화된 세계 자본주의는 이를 더욱 강화시키는 듯하다. 특히 자본 집약적인 IT 기술과 결합한 테크놀로지는 더 이상 기술이 건축에 종속된 분야가 아니라 건축을 규정하는 역할까지 점하게 만든다.

예컨대 파라메트릭 설계 기법은 당초 자동차, 항공기에서 쓰던 도구인데 게리, 하디드가 그들 미학 구현의 필수 도구로 만들면서 이를 구사할 기술 자본이 없는 건축가들에게는 일종의 장벽으로 작용한다. 더구나 이들은 미디어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하여 독보성과 차별성을 더욱 강화시킨다.

이들의 흉내 못 낼 디자인을 구매하는 것은 에르메스의 버킨백을 사는 것만큼이나 영광스러운 일이 된다. 샤넬이 하디드에게 파빌리온을 의뢰하고 프라다가 공사비의 열 배인 설계비를 주면서까지 렘 콜하스에게 플래그십 스토어 설계를 맡기는 이유는 그로 인해 몇백 배의 광고 효과가 창출되기 때문이다. 이들은 더 이상 건축가가 아니라 셀러브리티이다.

당초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일에 복무하던 아방가르드가 상업주의의 아이콘이 되는 이 경악스러운 아이러니가 처음은 아니다. 20세기 초에도 많은 아방가르드가 미술 시장에서 ‘팔팔한 것’으로 고가 매입당한 적이 있었다. 한때 저항 세력이었다는 레전드까지 있으니 상품성은 물을 필요도 없다.

후기자본주의는 건축가 직능에 대한 고전적인 정의와 공공성의 개념도 해체한다. 근대주의 거장들이 근대건축과 근대도시를 부르짖은 명분은 공공성 때문이었다. 비록 그 공공이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보편적이어서 나중에 비판의 대상이 되기는 하지만 그들의 유토피아 사상의 근저에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은 전근대적 질서와 무의미한 노동에서 해방되는 대중의 삶이었다.

그리고 권력과 자본의 힘으로부터 이러한 공공의 이익을 지켜주는 것이 건축가의 책무라고 여겼다. 물론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이는 과대망상이거나 난센스이다. 1930년대를 거치며 국가가 이 공공성을 책임지게 되었고, 건축가는 이를 위한 물리적 환경을 다루는 사람으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건축가에게는 공공성의 공간적 구현자라는 사명감이 따라다녔다.

그러나 20세기 후반에 이르러서는 공공성조차 상업 자본이 떠안게 된다. 건축가 렘 콜하스의 말마따나 모든 건축은 쇼핑센터가 되었다. 사람들은 이제 극장까지 갖춘 안락한 쇼핑몰과 놀이공원에서 휴일을 보낸다. 도시 재생, 신도시 건설을 공공 부문에서 추진하려 할 때 성패의 관건은 CGV나 이마트를 테넌트로 유치하느냐 못 하느냐에 달려 있다. 알량한 시 예산으로 만든 쌈지공원보다는 쇼핑센터가 훨씬 공공적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이제 사업 주체는 시그너처 아키텍트(Signature Architect)를 고용한다. 그들이 보유한 상징 자본은 계획안에 엄청난 문화 자본을 안겨다주며 경쟁 사업을 누를 힘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단군 이래 최대 도시개발 사업이었던 용산 철도 부지 프로젝트는 마스터플랜을 맡은 다니엘 리베스킨트부터 시작하여 렌초 피아노, 헬무트 얀, KPF, SOM, BIG, MVRDB 등 세계 톱 10 건축가들이 초청된 꿈의 향연이라고 법석을 떨었다.

오세훈의 엑스포 개념이 하이라이트를 보여줄 뻔했으나, 아니나 다를까 제풀에 주저앉는다. 실자본이 없이 가상 자본의 힘을 빌려 버텨보려 한 무모함의 결과이다. 뒤치다꺼리를 맡은 국내 건축가들은 분노했지만 저들은 비싼 설계비를 어김없이 다 챙겼다. 어쨌건 우리나라는 이 일로 세계 건축계의 봉임을 다시 한 번 과시했다.

세계 자본주의의 건축

이 시대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잘 설명해주는 일화가 있다.

“호텔 사업의 본질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1980년대 후반 이건희 회장이 신라호텔의 한 임원에게 넌지시 물었다. 그 임원은 서비스업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이 회장은 이에 수긍하지 않았다. “다시 제대로 한번 잘 생각해보세요”라고 말할 뿐이었다. 이 회장은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해답은 경영진 스스로가 연구하고 찾아내기를 원했다. 그것이 바로 자율 경영의 실체이기도 했다.
그 임원은 해답을 얻기 위해 일본 등지로 출장을 나가서 해외 유명 호텔을 벤치마킹하면서 호텔 사업의 본질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돌아와 이 회장에게 호텔 사업은 ‘장치 산업과 부동산업’에 가깝다는 보고를 했다. 입점지에 따라 사업의 성패가 갈리고, 새로운 시설로 손님을 끌어야 한다는 얘기였다. 그제야 이 회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장치 산업이자 부동산업으로서 호텔의 발전 방향에 대해 구체적인 전략을 논의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조선일보〉 2014. 3. 3)

이건희 회장의 혜안과 리더십 얘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호텔업은 더 이상 서비스업이 아니라 목을 잘 잡아야 하는 부동산업이자 새로운 시설이 끊임없이 필요한 장치 산업이라는 말에 주목해야 한다. 순진한 건축가는 호텔업의 승부처는 기능적이며 아름다운 실내외 공간과 고품격 서비스라고 하고 싶겠지만 이 회장은 그보다는 대지의 ‘위치’와 늘 ‘새로운’ 시설이라 한다. 보는 시각이 하늘과 땅 차이이다.

여기에서 건축가가 할 일은 없다. 부동산 소개업자가 목을 잘 잡아주면 되고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한 해 건너 내부를 바꿔주면 된다. 이것이 우리가 처해 있는 후기자본주의 건축의 실상이다. 한때 사업이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좋은 건축이 필요했다. 1990년대까지의 상황이다.

그다음 2000년대에 들어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사업이 활성화되자 상품 기획(MD)이 더 중요해진다. 이제 그것도 지나 자본 그 자체인 부동산 입지가 중요한 시대가 된 것이다. 나머지는 별책 부록 같은 것이다. 이 중에서도 건축은 골조와 인허가를 처리하는 일을 하는, 누구에게나 맡겨도 되는 직능으로 바뀌었다.

이 시대 스타 건축가의 덕목은 근대의 주요 특징을 빠짐없이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그들은 차별화된 테크놀로지를 구사하여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낼 줄 안다. 그것이 자하 하디드의 비선형 형태이든 안도 다다오의 대리석같이 매끈한 노출 콘크리트이든 노먼 포스터의 탁월한 통합적 기술이든 첨단의 테크놀로지로 자신의 건축을 차별화한다.

다음으로 이들은 대중에게 감탄을 자아내게 만드는 스펙터클과 공공적 이미지를 구현할 능력이 있다. 이것이 이 시대의 공공성이다. 과거처럼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의 인터페이스에서 공공성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의 공간 내에서 소비 공간과 뒤섞여 있는 ‘내재화된 공공성’이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마지막으로 이들은 상업 자본에 대항하기보다는 그들에게 적극적으로 포섭당함으로써 상업주의에 대응한다. 그들이 자신의 명성을 바탕으로 후한 보수를 받으면서도 의뢰자의 즉물적인 요구에 휘둘리지 않는다는 이미지는 건축가의 ‘저항성’이 아직 남아 있다는 환상을 준다.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 굴에 들어간다는 논리 말이다.

이러한 근거로 나는 이들의 건축이 새롭지만 새롭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후기자본주의의 전략은 재고율을 낮추고 판매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모든 재화를 의도적으로 진부화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새’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이 필요한바 이들의 새로운 형태야말로 이에 적합하다.

반면 이들은 여전히 근대의 특징이 살아 있는, 아니 더 강화된 맥락에서 작업을 하고 있으며 저항의 흔적조차 가치를 높이는 요소가 되고 있기 때문에 철저하게 ‘근대적’이다. 근대적 구축 방식, 근대적 공간이 온전히 보전되어 있는 상태에서 형태가 백색 큐브를 벗어났다 하여 ‘새 시대의 건축’이라 부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건설에서 건축으로

대한민국, 그중에서도 서울은 왜곡된 자본주의적 도시 발전의 전시장에 다름 아니다. 600년 역사 도시의 소중한 문화적 자산과 장소는 한낱 부동산적 가치만 지닌 ‘대지’로 취급되었다. 오랜 역사를 품고 있었던 길들은 교통의 효율과 속도의 논리에 의해 직선화되고 길 주변의 풍경이 초토화되었다.

그러면서 들어서는 건물들이 영혼이 없는 ‘디자인 상품’인 것은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새로 생성된 땅의 화폐적 가치에 상응하는 상품이어야 할 터이기 때문이다. 대규모 자본은 그들의 구매 능력에 상응하는 세계적 셀러브리티 건축가의 설계를 사 오고 그보다 못한 건축주들은 그들을 선망하는 아류 건축가들의 것을 구입하는 것이 다를 뿐. 공공이라도 이 놀음에서 자유로웠어야 했는데 개념 없는 역대 시장들은 오히려 앞장서서 큰손이 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박원순 시장이 ‘건설의 시대에서 건축의 시대로’라고 선언한 것은 매우 의미심장한 일이다. 건설이 경제적 가치를 우선으로 보는 개념이라면 건축은 정신적 가치를 앞에 두는 개념이다. 즉 이 선언은 부동산적 가치가 잣대가 되던 도시의 기본 질서를 인간과 역사를 우선시하는 잣대로 교체하겠다는 뜻이다.

그가 추진하고 있는 세운상가 재생 사업, 서울역 고가 재생 사업 등은 이 철학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경제와 효율 측면으로만 친다면 철거 후 세계적 작가들에 의한 신축이 더 마땅했을 터이다. 실제로 전임 시장들은 그렇게 추진했다. 그러나 그는 보존과 재활용이라는 전략을 제시한다. 도시의 유산(Urban Heritage)이란 고고학적 유산과는 달리 매 시대의 현재성이 중첩되어 만들어지는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이 경향이 옳은 방향임에도 불구하고 지속 가능하려면 많은 난관이 예상된다. 예컨대 이 두 사업을 포함하여 북촌과 서촌의 한옥 권장 및 개발 억제 정책은 거센 저항에 직면하고 있다. 바로 지난 개발연대의 부동산적 가치에 이미 중독되어 있는 우리 모두의 습관이 하루아침에 바뀔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서울이 사람을 위한 도시가 될 것인지 돈을 위한 도시로 남을 것인지는 전적으로 서울 시민의 의식에 달려 있다. 다시 처음에 말한 명제를 언급하고자 한다. “디자인은 사회의 상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