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quire Korea, 2013년
BY 최태형 (2013 WHAT IT FEELS LIKE 스탬프)
군기가 바짝 들어 있었다. 감색의 전경복을 입던 이경 시절 얘기다. 강원도 경찰서에서의 전경 생활은 8할이 군기였다. 매일 맞았다. 잘해도 맞고 못해도 맞았다. 구타에는 시위대보다 고참이 무서워야 한다는 명분이 깔려 있었다. 쇠 파이프를 휘두르는 시위대보다 고참이 무서워야 물러서지 않는다고 했다. 사실 시골 읍내에 쇠 파이프를 든 시위대는 없었다. 근거가 빈약한 폭력은 예상할 수 없어 더 무서웠다.
나머지 2할 중 반은 무지였다. 훈련이 없으니 제대로 아는 것도 없었다. 112 신고가 접수되면 타격대의 역할은 출동이다. 사이렌이 울리면 3분 내에 장비를 갖춰 진압 차에 승차해야 했다. 타격대는 5분 대기대의 다른 이름이었지만 5분 만에 하는 건 없었다. 나머지 반은 ‘구라’였다. 고참들은 허세가 대단했다. A급 수배자를 잡다가 격투를 벌일 때 대처하는 방법을 알려주기도 했고 수배자가 차를 돌려 달아날 때 다치지 않고 차에 매달리는 법을 설명해주기도 했다.
사이렌이 울렸다. 자살 의심이다. 관내에 위치한 산 밑에서 자살 의심자의 차량이 발견됐다. 서울 넘버였다. 서장님은 단단히 화가 났다. 죽기 전에 찾아내라고 했다. 노발대발했다. 사망 사고가 나면 서장님 인사고과는 나빠진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지만 대원들에겐 남의 사정이었다. 차 주인이 어디서 자다 나타날 거라고 생각했다. 대부분 불법 주차 스티커를 발부하는 선에서 마무리됐던 경험에서다. 날이 갈수록 서장님의 성화는 커졌다. 대원들은 산을 올랐다. 두릅이 있는 길을 따라갔다. 허무한 수색 대신 두릅이나 따다 먹자는 고참의 명령이었다. 하루 이틀 두릅이 늘어갔다. 다들 힘들고 더웠다. 고참의 변덕과 짜증도 늘어갔다. FM으로 수색하라고 했다. 시체를 찾으면 부패가 되어 냄새가 날 거라고 했다. 해결책은 코에 치약을 바르는 것이라고 해서 그날부터 치약을 챙겼다. 귀신 얘기도 했다. 시체를 찾았을 땐 절대 얼굴을 보지 말라고 했다. 초소 근무를 설 때마다 얼굴이 떠오른다는 얘기부터 귀신이 씌인다는 얘기까지 별 얘길 다 했다.
어둑어둑해졌다. 밤에 산을 내려올 땐 무서웠다. 일주일간 다니며 두릅을 다 따서 험한 루트를 고른 탓이다. 소변을 누러 숲으로 들어간 고참이 소리를 질렀다. “악!” 갑작스럽게 큰 소리가 나니 겁이 덜컥 났다. 고참이 허겁지겁 뛰어나왔다. 시체를 본 것 같다고 했다. 얼굴이 파랗게 질려 있었다. 그곳에 가야 했다. 실전 투입이다.
저 뒤에 죽은 사람이 누워 있다고 생각하니 무서웠다. 모두 치약을 꺼내 코에 발랐다. 숲으로 들어가니 낭떠러지였다. 충격이었다. 시체는 누워 있지 않았다. 발끝이 눈 위치에서 보였다. 낭떠러지로 난 나뭇가지 끝에 목을 맸다. 얼굴은 보지 않았다. 난감했다. 시체를 수습할 수가 없었다. 낭떠러지 아래에서 보면 시체는 높이 있었고 위에서 보면 너무 낮았다. 방법은 위에서 줄을 내리고 아래에서 받는 것뿐이었다. 두 조로 나눴다. 한 조는 나무 위로 올라가서 천천히 줄을 풀고 나머지는 아래에서 시체를 받기로 했다. 짬밥 순이었다. 나는 시체를 받았다.
눈물이 났다. 코가 아팠다. 땀과 열에 범벅이 된 치약이 눈에 들어갔다. 눈이 안 떠졌다. 숲의 밤은 더 깜깜했다. 옆에선 플래시를 꺼내 시체를 비춰줬다. 불빛이 시체의 몸을 흐를 때 무서웠다. 얼굴 근처로 갈 때 두려웠다. 눈이 잘 안 떠지니 더욱 공포스러웠다. 얼굴은 보지 말자, 눈은 마주치지 말자고 되뇌었다. 다행히 뒤통수 쪽에 자리 잡았다. 외침이 들렸다.
[박스] 필로폰 투약자의 자수를 받았을 때
또 전경 때 얘기다. 새벽 근무였다. 제대를 두어 달 남기고 까마득한 후임과 함께 있을 때였다. 강원도 횡성의 밤은 유독 심심했다. 새벽 4시에 졸다 깨다를 반복했다. 졸다가 초소 창문을 동전으로 치는 소리에 잠이 깼다. 날카로운 소리가 기분 나쁜 동시에, 고참 따라 자고 있는 후임에게 어이없었다.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들었는데 초소 창문에 20대 젊은 여자가 서 있었다. 화들짝 놀랐다. 다행히 귀신은 아니었다. 머리를 밝은 갈색으로 염색한 여자는 무척 멍해 보였다. 횡성에서 이렇게 치장한 20대 여자는 처음 보는 것 같았다. 심심했다. 궁금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술 취한 여자일 거라 생각했는데 조용하고 냄새도 안 났다. 초소로 들어오라고 했다. 심심한데 하소연이나 들어줄 생각이었다. 후임은 커피를 탔다. 나는 왜 왔느냐고 물었다.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자수하려고요” “네?” “마…마….”
“뭐라고요?” “마약이오.”
머리가 띵했다. 겁이 났다. 물러나 앉았다. 그제야 멍든 팔뚝과 퀭한 눈이 보였다. 다시 보니 귀신 같았다. 소름이 돋았다. 여자 앞에 두었던 커피를 쓰레기통에 버렸다. 의자도 밀어 넣었다. 후임에게 문 앞에 서 있으라고 눈치를 주고 초소 밖에서 형사계에 전화를 걸었다. 마약 사범이 자수하러 왔다고 말하고부터 일사천리였다. 여자는 힘이 없어 보였다. 형사들은 화가 난 듯 보였다. 자수라도 자비는 없었다. 여자를 체포했다. 경찰서 안에서 체포는 처음 봤다. 체포의 광경은 민망했다. 윽박지르고 혼도 냈다. 자수한 사람에게 왜 저러나 싶었다. 여자는 수치스러울 것 같았다. 형사계로 들어간 여자는 새벽 5시에 마약 반응 검사를 받았다. 여자 경찰이 에스코트를 했지만 남자 경찰 사이에서 검사를 받는 게 힘들 것 같았다. 첫 관문은 소변검사였다. 과정은 인도적이었는지 모르지만 결코 인간적이진 않았다. 죄는 안 짓는 게 상책이구나 생각했다.
“푼다!” 줄을 풀겠다는 뜻이다. 행여 시체가 떨어질까, 몸에 닿을까 집중했다. 시체의 뒤통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줄을 풀었다. 방심했다. 어느새 시체가 나를 바라봤다. 놀라서 눈이 마주쳤다. 줄을 내리자 줄 하나에 의지한 시체가 뱅그르르 돌았던 것이다. 당황했다. 눈을 피할 틈도 없었다. 시체는 그렇게 360도를 돌며 대원 모두와 눈을 맞췄다. 눈의 흰자까지 온통 빨갰다. 눈 전체가 커다란 눈동자였다. 어느 위치에서든 눈이 마주치는 것 같았다. 피할 곳이 없었다. 입은 온통 파랬다. 턱까지 멍이었다. 목에 맨 줄이 보이지 않았다. 붕 떠 있는 귀신이다. 자세히 보니 얇은 빨랫줄이 살 깊게 파고 들어가 있었다. 또 눈물이 났다. 치약이 매웠다. 옆을 봤다. 고참부터 후임까지 모두 얼굴이 퉁퉁 부어 있었다. 눈물도 범벅이었다. 치약 독이다. 눈을 마주치지 말라던 고참은 말이 없었다. 줄을 천천히 내려 시체와 마주 보고 섰다. 시체의 어깨를 잡았다. 딱딱했다. 이상했다. 마주 보고 서 있으니 살아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무릎은 굽혀지지 않았다.
컴퍼스로 원을 그리는 궤적으로 시체를 눕혔다. 눈을 감았다. 치약이 따가워서였다. 내무반으로 돌아왔다. 얼굴은 심하게 부었다. 치약을 바르라던 고참이 제일 심했다. 진물이 날 정도였다. 한동안 시체 얘기는 꺼내지 않았다. 치약 독이 다 빠질 때까진 구타도 없었다.
응급치료를 위해 병원을 전전했을 때
동호대교 남단에서 북단으로 내달렸다. 이상하게 다리 위는 뻥 뚫려 있었다. 스로틀을 끝까지 당겨 붙였다. 쏜살같이 동호대교 위에서 압구정 역으로 빠지는 1차선 내리막 도로에 진입했다. 동시에 아차 싶었다. 내리막이라 보이지 않았던 도로에 차들이 꽉 차 있었다.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았다. 바퀴가 심하게 요동쳤다. 덜컹 가슴이 내려앉았다. 브레이크를 더 잡으면 다리 난간 밖으로 고꾸라질 것 같았다. 앞은 재규어XJ였다. 자포자기의 심정이었다. 멈추고 싶다는 생각도 그만뒀다. 잠깐 기억이 없었다. 다음은 입이 얼얼했다. 벌떡 일어났다. 팔다리는 붙어 있었다. 날아간 사이드미러를 집어 들었다. 겁이 나서 천천히 얼굴을 비췄다. 입이 피범벅이었다. 무서웠다. 윗니와 아랫니를 붙였다. 이가 시렸다. 피 때문에 어느 정돈지 분간이 안 됐다. 침을 뱉고 다시 보려 했는데 침이 찍 흘러버렸다. 앞니가 없었다. 정신이 멍했다. 두리번거렸다. 앞니가 필요했다. 이가 없으면 평생을 그렇게 살아야 하는 줄 알았다. 그제야 누가 말을 걸었다. 사고가 크게 났다며 병원에 가자고 했다. 번뜩 화가 났다. 차 수리비도 물어내고 이도 잃어버렸다는 억울함에 피해자에게 소리쳤다. “이빨 찾을 거라고요!” 고개를 들어 뒤를 봤다. 301번 버스였다. 그 뒤로도 차가 가득했다. 나를 보는 눈이 족히 100개는 되는 것 같았다. 속이 꼬였다. ‘어쩌라고’ 싶었다. 그렇게 10분을 더 찾았다. 놀랍게도 파편을 찾았다. 병원으로 달렸다. 운전자는 나를 안심시키려 자꾸 말을 걸었다. 대꾸하지 않고 치과를 찾아달라고 했다. 주말이었다. 압구정동에 있는 치과는 문을 닫았다. 차를 돌려 또 다른 치과를 갔다. 마찬가지였다. 어디든 병원부터 가자는 재규어 운전자에게 치과 아니면 안 된다고 했다. 여기저기 전화를 걸었다. 강남 세브란스에서 치과 응급치료가 가능하다고 했다. 달렸다. 다섯 번째 병원이었다. 허무했다. 이가 부러진 것은 응급치료 대상이 아니라고 했다. 갑자기 온몸이 아팠다. 머리가 띵해 잠깐 의자에 앉아 눈을 감았다. 눈을 뜨니 침대였다. 그렇게 입원했다. 문자가 왔다. 재규어 운전자였다. 이상한 얘기를 했다. 멜론 사이트에 댓글을 달아달라는 문자였다. 이해가 안 됐다. 다시 읽었다. 자신이 비빅 브라더스라는 듀엣으로 앨범을 냈다는 요지였다. 멜론 사이트에 나왔단다. 브루스 브라더스를 카피한 듀엣이었다. 이게 다 뭔 일인가 싶어 웃었다. 이 사이로 바람이 샜다.
친구의 섹스를 목격했을 때
대학 신입생이었다. 마음 맞는 친구들과 함께 살기로 결정했다. 원룸 단칸방을 잡았다. 복도 쪽으로 생색만 낸 창문이 높게 난 방이어도 맘에 들었다. 젊은 남자 셋이 사는 방엔 사람이 끊이지 않았다. 단순했다. 남자가 오면 함께 놀았고 여자가 오면 자리를 비켜줬다. 불만은 없었다. 순순히 비워줘야 내 차례도 오니까. 무언의 약속도 있었다. 문자 부킹과 저녁 설거지는 필수. 즐거웠다. 빨래를 마치고 자취방에 도착해 현관문 손잡이를 돌렸다. 잠겨 있었다. 문자를 확인했다. 부킹은 없었다. 친구가 잠든 게 분명했다. 그런데 안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옆집 화분을 끌어다 놓고 올라갔다. 높게 난 창문을 배꼼히 열었다. 후끈 열기가 빠져나왔다. 집중했다. 살이 보였다. 라인이 달랐다. 나체의 여자다. 숨을 참았다. 친구와 나체의 여자가 뒤섞이다 합쳐졌다. 라이브였다. 이상했다. 아는 남자와 아는 남자의 여자 친구였다. 친구의 표정이 다급할 때 어떻게 변하는 줄은 알아도 달아오를 때 어떻게 변하는지 처음 알게 됐다. 화낼 때 짓는 표정에서 입꼬리를 올리곤 부르르 떨었다. 허리가 날랜 줄은 몰랐다. 강약 조절에 능했다. 친구의 여자 친구가 애교를 부릴 때 어떻게 하는 줄은 알았지만 애무를 받을 때 그렇게 하는 줄은 몰랐다. 머리가 지끈거릴 때 짓는 표정에 숨소리를 더했다. 가슴을 저렇게 움켜쥐어도 터지지 않는 게 신기했다. 야동과는 체감이 달랐다. 2미터 앞이었다. 기대한 광경은 아니었다. 이상했다. 한동안 얼굴을 못 봤다. 친구가 인상을 쓰면 떠올랐다. 친구의 여자 친구가 숨소리만 내도 뜨끔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