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quire Korea, 2015년 (추정)
글/최태형 사진/PR

소재 파악
시계를 무엇으로 만들었는가? 소재가 관건이다. 기능을 위해서도, 브랜드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기 위해서도 말이다. 시계에 담긴 상반되는 두 지향점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스마트워치 때문이었다. 시계에서 소재의 차이가 어마어마한 결과를 낳는다는 걸 몸소 느낀 게 말이다. 똑같이 생긴 애플워치의 가격이 몇 십 만원에서 많게는 1000만원 이상의 차이를 보였기 때문이다. 시계 내부에 들어가는 CPU 혹은 배터리의 차이도 없었다. 스마트워치의 핵심인 OS 역시 같았다. 핵심은 시계를 만드는 소재에 있었다. 같은 기능에 똑같은 모양의 시계를 구매하면서 1000만원에 달하는 가격 차이를 감수하게 만드는 요소 말이다. 애플워치를 구매하러 들어간 숍에서 한참을 고민했다. 저렴한 무광의 알루미늄 버전을 살 것인가, 빛나는 스틸 버전을 살 것인가….

디지털시계보다 환경에 예민한 오토매틱 시계라면 소재의 중요성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시계의 본질 자체를 좌우하는 요소기 때문이다. 처음 시계 제조사가 새로운 소재에 열을 올린 건 정확한 시간을 표시하고 싶어서였다. 수백 개의 미세한 기어가 맞물려 돌아가는 무브먼트는 작은 차이만으로도 오차를 만들었다. 자기장은 시계를 빨리 가게 만들고 습기는 내부 부품을 부식시켰다. 작은 충격에도 시계의 유리는 깨지기 일쑤였고 케이스는 쉽게 긁히고 말았다. 소재는 결국 시계 본연의 가치를 찾는 방법이었다. 정확성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시계 제조사가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 건 당연한 일이니까. 자기장은 언제나 가장 큰 적이었다. 아무리 애지중지해도 지구상에 살고 있는 한 자기장은 피할 수 없는 복병이다. 시계의 무브먼트를 이루는 요소의 대부분이 스틸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스틸 소재는 자성이 생기기 쉬운데 자성이 생긴 부품은 서로 달라붙으려는 성질을 띤다. 시계를 정확하게 움직이도록 하는 건 시계의 심장이라고 하는 밸런스 휠이다. 시계 안에서 항상 같은 시간에 같은 동작을 반복하며 시간을 측정한다. 밸런스 휠은 매우 얇고 예민한 헤어스프링에 의해 움직이는데, 헤어스프링이 자성에 노출되면 문제가 커진다. 헤어스프링과 맞물려 도는 톱니에 자성이 전달되면 결국 시간의 오차가 생긴다. 최악의 경우 시곗바늘에도 자성이 전달돼 시침과 초침이 붙어버리기도 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새로운 소재를 사용했다. 시계 내부 케이스를 자성을 띠지 않는 연철 소재로 만들어 자성의 영향을 받지 않게 했다. 시계의 글라스가 깨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유리 대신 사파이어 크리스털을 이용했다. 무른 성질로 상처가 나기 쉬운 골드 소재를 대신해선 화이트 골드나 로즈 골드를 사용해 더욱 단단하고 빛나게 만들었다. 물에 강하게 만들기 위해 스트랩을 고무로 만드는 것도 소재를 통해 시계의 본질에 충실하게 한 시도다. 사실 이런 소재의 사용은 이제는 너무 당연해졌다. 최근에는 브랜드마다 주기율표를 떠올리게 할 정도로 다양한 신소재 개발과 사용에 힘쓰고 있다.

오메가의 씨마스터 아쿠아테라 15000가우스 시계 안의 부품을 스틸이 아닌 실리콘으로 만들어 자기장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했다. 시계를 더욱 가볍고 강도 높게 만들기 위해 티타늄을 사용하는 시계 제조사도 많다. 티타늄은 스틸보다 45퍼센트 이상 가벼우면서도 철보다 강하며 고온에서도 변형이 없다. 게다가 독성이 없어 몸에 직접 닿았을 때 트러블을 일으키지 않는다. 벨앤로스를 비롯한 많은 시계 제조사들이 티타늄을 사랑하는 이유다.

물론 기능적인 면을 위해서만 소재의 다양성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시계 제조사마다 독창성을 부여하고 희소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방법, 기술력을 과시하고 브랜드가 원하는 이미지를 더욱 확고히 하기 위한 방법으로 새로운 소재를 사용하기도 한다.

파르미지아니는 나무를 시계 제조에 사용했다. 나무 판을 평평한 조각으로 자르고 덧붙여 모양을 내는 전통적인 방식인 마케트리 기법을 이용해 시계 다이얼을 만들었다. 이 기법은 주로 가구 장인들에게 전수되어온 방법인데 가구에 비해 훨씬 작은 시계 다이얼을 이 기법으로 만든 것이다. 이를 통해 파르미지아니의 장인 정신과 정확성을 위한 기술력을 자랑했다. IWC는 브론즈를 최초로 시계에 사용하기도 했다. 자연학자로 유명한 찰스 다윈이 해군 측량선인 비글호에 승선해 첫 갈라파고스 제도 기행을 추억하는 의미의 스페셜 에디션을 제작하기 위해서였다. 브론즈는 마모와 부식에 대한 저항성이 높아 항해 기구와 부속 제작에 널리 사용한다는 데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이로써 소재 자체만으로 브랜드의 지향점을 드러냈다.

소재는 이제 시계의 본질과 이상향을 동시에 나타내는 지표다. 시계 자체의 정확성을 높이고 아이덴티티를 확고히 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시계란 고도의 기술과 정밀성을 바탕으로 한 예술 작품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