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quire Korea, 2013년 11월
글/최태형 사진/JTBC
돌아왔다. 지난 5월 10일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을 마지막으로 방송을 떠났던 그다. 그리고 다시 데스크에 앉았다.
의아했다. 그가 모습을 보인 곳은 지난 정권의 특혜의 산물로 갑론을박이 많은 종합편성채널(이하 종편) JTBC였기 때문이다. 그가 MBC에 사표를 내고 성신여대로 적을 옮긴 건 2006년이다. 그러나 그가 진짜 MBC를 떠난 건 지난 5월이다. 13년을 이어온 〈손석희의 시선집중〉의 마지막 방송에서 그는 울먹였다. MBC 파업에 참여한 인물들이 방송에 복귀하지 못하고 퇴사를 선택한 그때다. 사실 손석희에 대한 기대는 그보다 훨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2년 우루과이라운드 타결로 농촌 경제가 붕괴할 것이라는 우려를 담은 〈PD수첩〉이 결방되었을 때다. 예고편까지 방영되었던 방송은 당시 최창봉 MBC 사장의 지시로 세상에 나오지 못했다. 정치적 이유로 이루어진 외압에 그들은 파업을 선택했다. 손석희는 그때도 상징적 인물이었다. 1984년 MBC 입사 후 최초로 아나운서와 기자를 겸하는 인물이 되었고 3년 만에 주말 〈뉴스데스크〉의 앵커가 됐다. 탄탄대로였다. 그런 그가 굳이 선봉에 섰다. 그리고 주동자로 몰려 구속됐다. 아직도 그에게서 파란 수의를 입고 맑게 웃는 청년의 모습을 보는 사람들이 많다. 그때부터 그에게는 정당한 비판과 감시를 위해 구속도 마다치 않는 이미지가 각인되었다.
손석희는 〈시사저널〉이 해마다 실시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 조사에서 올해까지 9년 연속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언론인으로서 손석희가 갖는 대중적 이미지다. 그런 그가 JTBC를 택했다. 손석희는 알고 있다. “나의 선택에 반론이 있다는 걸 안다. 그러나 고민해왔던 것을 풀어낼 수 있는 여지를 남겨주었으면 좋겠다. 최선을 다해 정론의 저널리즘을 실천하겠다.” 공중파 마지막 방송에서 그가 남긴 말이다. 삼성에 대해서도 말했다. “팩트를 놓치는 일은 없을 거다. 문제가 있다면 보도하겠다”라고 말했다. 정치와 권력의 중심 혹은 그 아래 손석희가 위치하는 것에 대한 걱정에 정론의 저널리즘으로 맞서겠다는 것이다. 그가 1위를 한 시점은 이미 JTBC에 몸담은 이후다. 사람들은 여전히 그에게 무엇인가 기대하고 있다.
우려의 지점이다. 손석희를 이용해 JTBC가 공정 방송 코스프레를 하려 한다거나 손석희를 통해 반감을 낮추려 한다는 우려다. 대선이 끝난 시점에서 한동안은 그런 코스프레도 JTBC 입장에서는 손해날 게 없다. 그를 통해 종편에 대한 반감을 낮추며 공정한 이미지를 잘 만들어나가든, 혼자 무너지는 모습을 보이든 JTBC로서는 남는 장사다. 그가 사장에 머무르지 않고 〈뉴스 9〉의 앵커를 맡았기 때문에 더 그렇다. 처음 손석희는 JTBC에서 마이크를 잡지 않을 거라 했다. 그러나 그는 독이 든 사과를 베어 물었다. 저널리즘에 대한 평가에 앞서 시청률이 그를 재단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반짝했다. 그가 처음 〈뉴스 9〉를 진행한 날의 시청률은 전날(0.8%)보다 두 배 가까이 오른 1.49퍼센트를 기록했다. 네 개의 종편 뉴스 중 가장 낮은 수준에서 단숨에 1위로 올라섰다. 14년 만의 앵커 귀환은 아름다운 듯했다. 그러나 꾸준히 떨어져 10월 초 시청률은 다시 종편 뉴스 꼴찌 자리를 다투고 있다. 미디어들은 어김없이 흔든다. 손석희 효과는 애초에 과장됐다는 프레임이다. 저널리즘의 측면에서 진지한 논의는 뒷전이다. JTBC 관계자는 사측이 손석희에게 얼마간의 시간을 보장할 것으로 본다고 했다. 1년 정도다. 손석희의 진행만은 내부적으로 좋은 평가를 이끌어내고 있다고도 했다. 시청률이 낮은 문제는 손석희를 지지하는 주요 연령대인 20~40대가 9시에 TV 앞에 있지 않은 탓으로 돌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편에 없던 새로운 시청자층을 끌어들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또 포맷을 완성해줄 기자의 역량 부족을 꼽았다. 공중파 뉴스와는 달리 JTBC의 〈뉴스 9〉은 기자의 보도를 단순히 전달하는 것을 넘어 앵커와 기자의 질문이 이어지는데 손석희와 담론을 나눌 만한 역량의 기자가 없는 탓이라는 거다. 반대로 보자면 이미 내부에서도 시청률이 문제로 작용하고 있다는 얘기다.
9월 기준 종편의 시청률 1위 뉴스는 TV조선의 〈뉴스쇼 판〉이다. 좋고 나쁨을 떠나 노골적일 정도로 우 편향적 성격을 보이고 있다. 진행자는 야당 관련 뉴스나 인물에 개인적인 비판을 드러내길 서슴지 않는다. 보는 사람에 따라 빈정대거나 비아냥댄다고 느끼는 경우도 많다. 철저히 종편 뉴스를 보는 시청자가 기대하는 곳을 긁는다. 양쪽을 다 만족시키지는 못하더라도 어느 한 쪽은 확실히 만족시킨다는 얘기다. 눈치를 보거나 여건을 탓하지 않는다. 맘이 맞는 사람 입장에선 볼 맛이 난다.
방송은 냉정하다. 16부작 드라마를 기획했다가도 아니다 싶으면 조기 종영을 서슴지 않는다. 소수 시청자가 반발해도 다수를 위하는 길이다. 하나를 보면 열이 보인다. 시청자는 그렇다. 손석희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또는 주어진 시간 동안 해내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얼마 전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손석희는 누구나 저널리스트라면 자신이 구현해보고 싶은 게 있다고 했다. 자신이 제시하는 정론의 저널리즘, 저널리즘의 기본이라는 것이 구성원의 동의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만약 실패한다면?’이라는 물음에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냥 실패한 언론인이 되는 것이다. 실패한 언론인이 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인데, 정말 내 뜻과 달리 내가 여기서 생각한 것을 못하고 실패하면 나는 그냥 실패한 언론인으로 기억될 것이다. (중략) 만약 실패한다면 그것도 감수해야 한다고 본다.”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뉴스는 드라마나 예능과는 다르다. 어떤 이슈가 터졌냐에 따라 이슈 파이팅으로 충분히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다. 그러나 이슈 파이팅은 전적으로 가려운 곳을 긁어야 한다. 화두를 먼저 던졌다고 해도 중립에 서면 밀린다. 지금 종편들은 그렇게 싸우지 않기 때문이다.
MBC 김재철 사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사장이 올 때 손석희는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며 회사를 나왔다. 그리고 그 자신도 새 부대에 몸을 담았다. JTBC라는 부대다. 누구도 〈뉴스 9〉을 ‘뉴스 나인’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손석희 뉴스’로 부른다. 중요한 건 손석희다. 그 스스로를 새 부대인 종편에 맞추든 종편이 싸우는 방식대로 자신의 성향을 명확히 드러내든 해야 한다. 그래야 시청자를 만족시킬 수 있다. 손석희가 풀어야 한다. 어느 경우든 그를 지지했던 사람들에겐 실패로 보일 수 있겠지만 혼자 무너지진 않을 것이다. 손석희가 그렇지 못하면 그의 말대로 그는 실패로 기억될 것이다. 노력은 금방 잊혀질 것이다. 길게 봐야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일 년일지 모른다. 이미 일 년도 더 지난 것 같이 느껴지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