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을 빚고 구워 빛을 만든다. 작가 신상호는 흙에서 색을 뽑아낸다. 그를 통해 흙은 다채로워진다.

Numéro, 2009년 11월
에디터 | 최태형 포토그래퍼 | 안지훈

소재는 흙이다. 작가 신상호는 언제나 흙에서 시작했다. 40여 년 전 도자기를 만들며 흙을 처음 만졌을 때, 아프리카에 매료되었을 때, 더 이상 분청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을 때도 그의 소재는 흙이었다. 그가 1983년 콩고를 시작으로 10여 년 동안 원시 자연을 찾아 아프리카를 헤맨 후에도 그는 흙을 빚어 인간의 원초적인 꿈을 표현했다(Dream of Africa). 불에 그림을 구워내면서도 역시 그는 흙을 이용해 빚고 그렸다(Fired Painting). 그리고 불에 구운 그림은 건물의 외벽을 만나 건축으로 태어났다. 이렇게 그의 흙은 도기에서 조각으로, 조각에서 건축으로 진화했다(Clay Arch). 닥스의 탄생을 기념해 LG아트센터에서 개최하는 그의 작품전에서는 패션과 미술의 이종교배를 주제로 또 한번 그가 만든 흙이 색으로, 색이 패션으로 거듭났다. 그는 흙을 만지지만 편안하고 안주하는 흙의 기운은 아니다. 오히려 흙을 구워 색을 토해내게 만드는 불의 기운에 가깝다. 그가 40여 년 동안 안주하지 않고 흙을 괴롭히며 보여주고 들려준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Numéro ] 어느 순간 도예를 벗어나 흙을 통해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클레이 아크 김해 미술관의 관장을 맡기도 할 정도로 흙을 통한 건축, 파이어드 페인팅, 패션…. 흙이 새로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신상호] 내가 처음 흙을 접한 건 대학에서 현대 도예를 공부하면서부터다. 우리나라 전통 도기를 공부했고 분청이라든지 도기 작품들은 현재를 위한 과정이 되었다. 40년이라는 시간을 도예로 보낸 내가 주장하고 싶은 것은 도예가 건축, 패션 등 다른 분야와의 만남으로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움에 대한 목마름을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닥스에서 이번 전시 작가를 선정하는 데 1년 이상 고민했다고 들었다. 패션계는 어느 분야보다 경쟁이 치열하다. 패션 브랜드에서 도기를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내가 보여주는 색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만들어내는 파이어드 페인팅은 흙을 여러 번 구워 만든 색이다. 색이 우러나고 배어 나오는 동시에 침투하며 어디에도 없는 오묘한 느낌을 낸다. 흙을 통해 새롭게 만들어내는 것이 있고 내가 만들어낸 내 것이 필요하다. 분청은 내 것을 찾는 과정에 있었던 거고.

오랜 시간 작품 활동을 해오면서도 여전히 새로운 것을 찾고 있다.

무엇인가를 연구해서 파고 들어가면 깊어지는 만큼 깨닫는 것이 있다. 학문이든 미술이든 깊이 심취하다 보면 계속 깨닫게 된다. 깨닫는다는 것은 곧 또 다른 것을 찾아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깨달음에서 새로운 것이 탄생한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으로 만들고, 다시 만들고. 나는 그것이 자기 복제라고 생각한다. 크게 그렸다가 작게 그리고 비트는 것을 가지고 새롭다고 말할 수는 없다. 나의 경우 작품을 완성하기도 전에 다른 것을 만들어내려는 성급함이 문제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도예라는 것이 생각보다 다양하고 변화의 폭이 크다는 이야기도 될 수 있다.

그럼 변하지 않는 소재, 흙에 대해 말해달라.

우리는 어릴 때 모두 ‘흙장난’을 했다. 모든 사람에게 흙이란 굉장히 친밀감 있는 재료라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나 역시 흙이라는 재료에 대해 흥미롭고 친밀감을 느껴서 만지게 되었다. 그러나 사실 흙은 친밀한 만큼 쉽고 편안한 재료는 아니다. 흙은 알면 알수록 어렵고 힘들고 조심스럽다. 나는 흙에 대해 이렇게 생각한다. 가까우면서도 감히 막 대하기 어려운 존재라고.

그럼 흙이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다른 소재에도 흥미가 있다. 동이라든가 유리라든가. 이런 소재도 다루어보았는데, 처음에 선택한 흙이 더 잘 맞는 것 같다. 어렵긴 하지만 그만큼 연구할 만한 가치도 크고 발전의 여지도 있는 것 같아서 흙을 선택한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

도자를 떠올리면 신축성이 있는 것도 아니고 쉽게 깨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다양한 가능성보다 오히려 타협해야 할 것이 많게 느껴지기도 한다.

질문에 대한 답이 될지는 모르겠는데 도예라는 학문에서 가장 큰 축이 되는 것은 그릇과 용기다. 이것들을 바탕으로 역사적으로 발전해왔다. 물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런데 우리 시대에 과학이 지속적으로 발전하듯 흙도 발전한다. 도예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보면 과학이 도예와 만났을 때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예측불허의 가능성을 보여줄 거라고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앞으로 얼마나 큰 변화가 있을까 흥미롭다.

클레이 아크를 통해 건축으로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것도 비슷한 맥락인 듯하다.

보통 건축 하면 형태와 크기에 다양한 변화를 주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어느 도시의 건축물이나 큰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 이유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싫증 나지 않는 디자인이나 미술을 접목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클레이 아크와 함께 요즘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래핑(wrapping)이다. 말 그대로 포장하는 거다. 기무사에서 개최한 전시의 주제도 래핑이다. 단순한 건물의 단조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다. 파이어드 페인팅으로 건물을 포장하면 언제든 옷을 갈아입듯이 변할 수 있다. 건물은 한번 만들어놓으면 수십 년간 그 자리에 있다. 그런데 파이어드 페인팅으로 포장하면 필요에 따라 옷을 갈아입을 수 있으며 새로운 것이 될 수 있다. 일종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변신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외벽을 파이어드 페인팅으로 포장하는 것은 단순히 타일로 바꾸는 것과 다른 점이 있을 것 같다.

크게 보면 타일일 수 있다. 그러나 타일과는 다르다. 색을 내는 기술이 다르고 흙을 여러 번 구워 우러난 색은 대량생산된 타일 혹은 그림이 따라갈 수 없다. 백이면 백 모두 다른 색이 나온다. 그래서 모두 독립된 작품이다. 명화를 실제로 보면 같은 색이어도 아주 다양한 표현이 가능하다. 파란색도 다양한 파란 계열이 레이어드되어 표현된다. 기술적으로도 한두 번 굽는 타일과 7~8회 이상 굽는 파이어드 페인팅은 다르며, 자연에서 비롯된 색은 아무리 원색이라도 자연과 주변에 동화된다. 빨간 꽃이 자연의 녹색과 어우러지는 것처럼. 이렇게 전혀 다른 색감을 낼 수 있다. 패션이나 건축에 접목했을 때의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거다. 나는 그게 흥미로워서 혼자 연구 중이다.

작품 활동은 실용과는 거리가 멀다. 그런데 건축과 의상은 실용과 가장 가까이 맞닿은 분야다. 그 사이에 갭은 없나?

물론 있다. 그런데 내가 ‘건축이다’, ‘패션이다’ 하는 것은 작품 활동의 부산물이다. 패션을 하는 것도, 건축을 위해 작품을 만드는 것도 아니다. 작품 활동에 따라오는 것이라는 얘기다. 파이어드 페인팅은 집 안이 아닌 외부에 그림을 둘 수 있게 해준다. 그런 과정에서 아파트나 건물에 내 작품이 진출하는 거다. 그런 걸 신경 쓰다가 작품에 영향을 받지 않을까 하는 문제도 생각해볼 수 있는데, 작가도 경제적인 것이 해결되지 않으면 작품 활동을 할 수 없다. 오히려 그런 것들이 순수하게 작품에 몰두할 수 있게 돕는다.

그러면 작품을 건물 외부에 둘 수 있다는 것은 결국 퍼블릭 아트에 대한 관심일 수도 있겠다. 또 가장 적합한 소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광화문 금호아시아나 본사에 4층 높이의 그림을 파이어드 페인팅으로 붙였다. 또 서초동 삼성타워 삼성전자 빌딩 로비에도 파이어드 페인팅 작품이 있다. 이런 게 실제 공공 미술로 여겨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것을 배워서 파급시키면 공공 미술이 가볍고 쉽게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2006년에 클레이 아크 김해 미술관 초대 관장을 맡았는데 아크 센터를 만들게 된 계기와 목표가 있었을 듯하다. 그 후 3년이 지났는데 그것을 통해 어떤 발전을 이루었는가?

김해시가 도예 미술관을 지으려는 계획을 세웠는데 짓는 과정에 그 계획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새로운 대안을 찾는다며 나한테 부탁을 해왔다. 그래서 건축 도자에 대한 내 제안이 받아들여졌고, 2006년 3월에 개관하게 되었다. 첫째, 클레이 아크 미술관을 세계 최초로 선보였다는 것, 선점했다는 것은 획기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둘째, 중소기업과 공장들이 주로 모여 있는 김해시가 클레이 아크 미술관을 통해 세계에 많이 알려졌다. 다른 나라들이 건축 도자 미술관이라는 것을 어떻게 만들면 좋을까 하는 찰나에 김해시가 먼저 선보이니 더 주목받을 수밖에 없었을 거다. 영국에서도 그렇고 네덜란드에서도 그렇고. 다들 건축 도자와 미술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시기에 김해시가 선보인 거다. 앞으로 그것이 어떻게 발전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차기 관장들이 어떻게 끌고 나가느냐에 달려 있고, 그게 앞으로의 과제일 것이다.

다시 작품 이야기로 가서, 클레이 아크를 하면서 건축의 구조적인 면에도 관심을 갖고 있나?

내가 건물을 설계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그 부분에 깊게 접근하고 싶지는 않다. 그런데 어느 정도는 알아야 거기에 포장을 할 수 있다. 그래서 더 연구해야 한다.

자택에도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다.

처음 하는 이야기지만 곧 내 집을 하나 더 지을 예정이다. 설계가 다 끝나서 지금 예산 문제를 이야기하는 중이다. 실제 내가 직접 지어보려고 한다. 설계에도 직접 관여했다.

평면에서 공간으로 캔버스가 바뀌니 책임도 달라졌을 것 같다.

그건 당연하다. 그런데 다행히 컴퓨터 덕에 모니터상에서 평면을 입체로 만들고 그것을 3D로 바꾸는 것이 가능하니 접근하기 편해졌다. 공간 때문에 가능성도 많아졌다. 안과 밖이 있으니 더 다양하게 변화할 수 있다.

그럼 앞으로 집을 지으면서 작품 활동이 다른 방향으로 펼쳐질 수도 있겠다.

나도 더 바꾸지 않고 하나만 하다 죽었으면 좋겠는데. 색상을 상대하다 보면 끝이 없다. 화려한 색을 다루다 보면 갑자기 무채색이 좋아질 때도 있고 감정도 출렁인다. 이랬다저랬다 하는 거다. 음식도 한 가지만 먹으라고 하면 못 먹는다. 세끼 다 달라야 한다. 똑같으면 막 짜증 내고 화내고…. 그러니 작업이라고 같겠는가. 나 같은 사람은 내 감정을 컨트롤하기가 어렵다. 변하는 것을 막기 힘들다. 새로운 것을 생각하고 변화하는 것이 힘들지만 안 변하는 것 보다 변하는 게 편한 거다. 그게 습관이 돼서. 벽에도 저렇게 화려한 것들을 걸어놓고 다른 쪽에는 또 모노톤의 이미지를 걸어놨다. 저게 다음 방향이다. 다른 방향이기도 하고.

마지막으로 40년 동안 예술을 해온 사람으로서 아쉬움이 있는지 묻고 싶다.

내가 도예를 직업으로 선택한 이후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 간혹 어떤 시기마다 잘 안 풀려 좌절하고 힘들었던 적은 여러 번 있지만, 일생을 살면서 그런 고비를 넘기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따라서 내가 도예를 선택한 것은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내가 학교의 선생이 된 거다. 가르치는 일을 30년 가까이 했는데, 한 10년만 하고 내 작품을 더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이미 지나간 일이기 때문에 크게 미련을 갖지는 않는다. 나 같은 사람은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보다는 그냥 솔로로 있는 것이 더 역할에 맞는 것 같다. 지금도 하고 싶은 게 많기도 하고.

흙에서 빛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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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에서 빛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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