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 PD, 38세, 서울

Esquire Korea, 2014년 2월
INTERVIEWED JANUARY 14 2014 / PHOTOGRAPHS BY JO BOKEON

# 1분도 지루하면 안 된다. 강박이다, 신원호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 PD, 38세, 서울

INTERVIEWED JANUARY 14 2014
PHOTOGRAPHS BY JO BOKEON

여전히 나는 예능 PD다. ‘원래 예능 PD였는데 드라마 PD가 됐다’는 건 맞지 않다. 다큐멘터리와 드라마 사이에 있는 건 다 예능이다. 드라마를 닮은 〈사랑과 전쟁〉도 예능이고 다큐를 닮은 관찰 프로그램도 예능이다. 운 좋게 회사에서 예능 PD가 드라마를 찍어도 된다는 ‘그린 라이트(허가)’가 떨어졌다. 그냥 재미있는 60분을 만들자 하는 생각으로 〈응답하라〉 시리즈를 찍었다.

예능 PD는 단 1분도 지루하면 안 된다. 강박이다. 리얼 버라이어티든 퀴즈쇼든 상관없다. 무조건 웃기고 재미있어야 한다. 지루하지 않게 할 수 있는 요소는 많다. 제작진이 프로그램 안에 넣은 복선도, 음악도 그런 역할을 한다. 자막, 효과음 등도 시청자를 지루하게 하지 않는다. 〈응답하라〉 시리즈 만들 때 유용하게 쓴 예능의 기술이다.

영화나 드라마 보면서 농담으로 하는 말이 있다. “저거 내가 편집했으면 30분은 덜어냈겠는데?”

어떻게든 타이트하게 만들어 긴장을 유지한다. 영상의 매 순간 다 목적이 있다. 웃음을 주거나 살짝 미소 짓게 한다거나 감동을 주거나 정보를 준다. 캐릭터의 히스토리를 만드는 역할을 하거나 반전의 밑밥이 돼야 한다.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면 웃기기라도 해야 한다. 최소한 한 가지 역할 이상은 해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다 쳐낸다.

〈응답하라 1994〉에서 전 회를 관통해 시청자를 끌고 갔던 힘은 물음표다. 끝까지 누가 성나정의 남편인지 궁금증을 가지고 가는 거다. 늘 하는 말이지만 ‘과연?’이라는 단어를 못 쓰게 하면 예능 못 만들었을 것 같다. 화면에 자막이 쾅 박히면서 ‘과연? 오늘의 승리팀은?!’이라고 궁금증을 유발해 60분을 끌고 가는 거다. 장사꾼의 낚시라면 낚시가 맞다. 이걸 〈응답하라 1994〉에 도입한 거다. 한 회마다 완결된 내용이 있는 〈응답하라 1994〉에 기둥이 필요했다. 전체를 꿰뚫어 같은 골조로 보이게 하기 위해서다.

〈응답하라〉 시리즈가 성공한 이유는 예능의 방식대로 찍었기 때문이다. 드라마 PD는 어떻게 찍나 하고 기웃거리거나 드라마 스태프를 데리고 왔다면 이도 저도 안 됐을 거다.

원래는 TV를 좀 우습게 봤다. ‘무슨 방송이야 방송은….’이라고 생각했다. 세속적인 매체라고 생각해서 그랬다.

내 꿈은 영화를 만드는 거였다. 영화만이 현대의 유일한 예술 장르라고 생각했다.

화학 공학을 전공했다. 아버지 뜻에 따라 선택했다. 20대에는 반항할 용기가 없었다. 재수하는 것도 겁나서 그냥 시키는 대로 대학에 들어갔다. 그때 내 인생은 여기서 끝났다고 생각했다. 사실 할 마음이 있는 애들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들 잘 찾아다니는데 나는 그렇지 못했다. 만날 술만 처먹으면서 세상이 어떻고 삶이 어떻고 헛소리만 하고 다녔다.

제대하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영화판에 못 가겠더라. 겉으론 집안의 반대와 장남이라는 책임감에 번듯한 회사에 다녀야 한다고 했지만 사실 고생할 용기가 없었다. 고생한다고 성공할 자신감도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방송국에 들어왔다.

영화 한두 편 말아먹어도 먹고살 수 있는 정도의 돈이 모이면 방송국을 나오려고 했다. 그런데 엉덩이가 무거워져 오래 다니게 됐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일이 영화만큼이나 재미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꿈이 오래되면 굳은살 같아진다. 하도 영화하고 싶다는 말을 하고 다녀서 정말 내가 하고 싶은 건지 말이 그런 건지 모르겠는 때가 있다. 그걸 해소하기 위해 언젠간 꼭 영화를 찍을 거다. PD를 그만두고 모든 걸 영화계에 투신해서 만들 건 아니다. 그런다고 영화계에서 받아줄 것 같지도 않다.

방송을 만든다는 게 결과물이 없는 것 같아서 묘한 죄책감이 있었다. 볼펜이나 라이터 같은 유형의 물건을 만드는 것도 아니고. 이런 거 만들고 월급 받아도 되나 싶었다. 지금은 무형의 콘텐츠가 엄청난 부가가치를 만들고 있고 제조업보다 더 좋은 대우를 받고 있는 것 같다. 그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다.

옛날에는 TV가 바보상자였고 킬링타임용 매체였지만 지금은 의미 있는 콘텐츠가 많다. 영화 못지않다. 거기에 조금은 일조했다는 생각이 있다. 지금 PD라는 직업은 만족스럽다.

예능이든 드라마든 내가 방송을 만드는 것에는 체계가 없다. 좋게 말해 브레인스토밍이라고 하는데 그냥 밤새 죽치고 앉아서 회의하고 떠든다. 누군가 내게 프로그램을 만드는 방법에 대해 논문을 쓰라고 한다면 못 쓸 것 같다. 워낙 체계 없이 일하기 때문에 정리할 수가 없다.

내가 만든 프로그램들이 왜 이렇게 잘되지? 하고 생각해본 적이 있다. 원칙이 없는 것의 미덕 때문인 것 같다. 어떤 룰을 만들어놓지 않는다. 사실 생활에서 룰이 있는 건 훨씬 편한 거다 고민할 필요 없이 룰을 따르면 되니까. 그런데 프로그램에선 독이 된다. 회의하다가 좋은 아이디어나 제안이 있으면 가져다 쓴다. 누가 한 얘긴지도 기억이 안 나는 경우가 있다. 편하게 말하고 편하게 쓴다.

한 명의 머리에서 나올 수 있는 건 다 나왔다. 머리를 맞대고 힘을 합쳐야 한다.

한 직장에서 10년 넘게 일하다 보니 인생의 새로운 단계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KBS를 그만뒀다. 시장에서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에 대한 궁금함도 있었다. 교양 PD는 국장이나 본부장으로 올라갈 수 있는 야망을 품을 수 있다. 기자도 마찬가지로 정치에 뜻을 둘 수 있는 자리다. 그러나 예능 PD는 그렇지 않다. 기껏해야 일선에서 오래 일하고 싶다는 소박한 꿈밖에 꿀 수 없다. 그래서 다른 방송국으로 팔려나가는 게 자신의 가치를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어떤 조직이 좋고 나쁘고 해서 옮긴 게 아니다. 돈에 민감하고 셈에 밝아서 그런 것도 아니다. 예능 PD들은 다들 바보 같아서 돈 관리도 잘 못한다. 멍청이들 같아서 다 털어먹고 잘 간수하지도 못한다. 그냥 내가 이만큼 가치가 있는 사람이구나 하고 중간 점검하는 마음으로 옮겼다. 새로운 환경과 거기에 따른 부담감으로 안 했던 것 좀 해보자 하는 마음이었다. 인생을 환기시키는 계기로 삼은 거다.

PD를 하면서 삶에 적용할 만큼 대단한 걸 배운 건 없다. 세상이 많이 바뀌고 있구나 하는 것 정도?

세상을 협소하게 살고 있다. 당장 내일 술 약속, 편집해야 할 것들만 보인다. 이런 것만 생각하고 살고 있다. 멀리 보는 사람이 아니라 크게 배우거나 깨닫는 게 별로 없다.

한 번뿐인 인생 막 살자 생각했을 때도 있었는데 딸들이 생기고 나서부터 달라졌다. 내가 죽고 나서 사람들이 어떻게 기억할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산다. ‘그거 한 번 참는다고 뭐 달라지겠어?’ 하면서 나쁜 일은 자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