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quire Korea, 2014년 3월
INTERVIEWD FEBRUARY 4 2014 / PHOTOGRAPH BY JO BOKEON
그를 처음 만난 건 2009년이다. 아트선재 갤러리 1층 로비에서 1년간 진행한 라운지 프로젝트를 막 끝낸 시점이었다. 라운지 프로젝트는 갤러리의 로비를 그가 만든 가구, 동상, 소쿠리로 만든 벽 등으로 가득 채워 라운지로 만드는 프로젝트였다. 사실 목적은 로비마저 전시 공간으로 변모시키는 데 있었다. 그리고 전시의 결과는 예술과 일상의 경계를 무너뜨렸다. 사람들은 갤러리로 걸어 들어가지 않고도 작품을 만났다. 누구는 작품 위에 앉아 있으면서도 알아차리지 못했고 누군가는 소쿠리 묶음만 보고도 대번에 최정화를 떠올렸다. 그와는 강남의 한 고급 카페에서 만났다. 그가 그의 작품으로 인테리어 작업을 한 곳이었다. 만나자마자 와인을 건넨 그와 공간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그가 싫어할 법한 정의로 그를 설명하자면 최정화는 1980년대부터 활발히 활동해온 현대미술 작가다. 그는 홍익대학교 회화과를 1987년에 졸업했다. 이미 두 번의 ‘중앙미술대전’ 수상 경력도 고작 학부 졸업 즈음이었다. 대상 없는 장려상 한 번, 대상 한 번. 화가로 살기에 적합한 엘리트 코스였다. 그러나 그는 곧 그림 그리기를 때려치웠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 하던 것’을 그만둔 것뿐이다. 그러곤 술집을 차렸다.
“1990년도부터 술집을 했다. 가고 싶은 술집이 없어 직접 디자인했다. 공간도 내 작업에 큰 의미를 차지하게 된 거다. 그때 만든 ‘오존’이라는 술집은 아직도 남아 있다. 이렇게 오래된 술집이 없다.”
그는 이대 앞에 ‘올로올로’, 종로에 ‘오존’, 대학로에 ‘살’ 같은 술집을 만들고 전시와 공연을 함께했다. 그때가 최정화를 만드는 결정적인 전환점이었다. 그는 그냥 ‘히트’ 쳤다고 말한다.
촉망받는 회화 작가에서 돌연 술집 사장, 혹은 인테리어 업자 또는 가고 싶은 술집을 만드는 사람이 됐다. 뭐가 예술이고 뭐가 장사꾼이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세상에는 양아치도 있고, 학생도 있고, 스님도 있다. 그건 그냥 그것대로 있는 거다. 뭐가 예술이고 장사고 어느 누가 잘난 게 아니고 그냥 그거다. 나는 그냥 나고.”
2005년에는 일민예술상을 받았다. 파격이었다. 마흔네 살이었다. 아무리 적어도 50대 초반 대개 60~70대 수상자를 낸 일민예술상은 공로상 성격이 강했다. 일민예술상 심사위원장은 최정화를 선정하며 미래지향적 관점에서 발전 방향을 설정하며 그에게 상을 주었다고 했다. 사실 이미 그는 해외에서 먼저 인정받고 있는 작가였다. 2000년 초반부터 꾸준히 리옹 비엔날레, 베니스 비엔날레 등에 참가했고 일본 중학교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2006년에는 ‘올해의 예술상’을 받았다.
2009년 아트선재에서 만난 이후 그와 만난 건 대략 1년 후 이태원에서였다. 복합예술 공간이라 이름 붙인 ‘꿀’에서였다. 커피 마시고, 전시도 보며 술을 마실 수 있는 곳이다. 그곳은 그의 새로운 작업실이었다.
“내가 만든 말인데 난 AAA다. ‘Always Almost Artist, 항상 거의 예술가’ 정도 될 거다.” 그는 미술과 일상의 경계, 작품과 상품의 경계를 깨뜨려 혼란을 줘야 한다고 했다. 날조에 날림을 더하면 완성이라고도 했고, 가져다 누가 더 잘 베끼는가가 아트라고도 했다. 그런 걸 다 교란시켜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회화도 그만둔 것이다.
이번 〈에스콰이어〉의 괴짜 특집을 위해 오랜만에 그를 만났다. 새로 이사한 종로의 작업실에서였다. 평범하지 않은 괴짜라고 생각했기에 그를 보자고 했다. 첫 질문은 평범하다는 건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었다.
“노멀과 위어드, 평범과 괴짜의 기준은 없다. 모두가 똑같다. 기준이 없으니까. 그러니까 모든 건 평범하다는 거겠지. 그리고 반대로 모든 게 다 ‘위어드’한 거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
그가 작업실에 놓인 색색의 장신구들을 들며 말했다.
“여기 이게 쓰레기들이고 이건 진짜 샤넬이다. 그런데 여기서 얘네들끼리 조화를 이룰 수 있게 하는 게 내가 하는 일이다. 그러니까 다 평범한 것이기도 다 괴짜이기도 한 거지.”
다시 질문했다. 보통 사람들은 특별해지고 싶어서 진짜를 사잖아요. 저도 진짜가 좋아요.
“특별해지고 싶어서, ‘위어드’해지고 싶어서 진짜를 사는 사람들은 없다. ‘노멀’ 그러니까 평범해지기 위해서 진짜를 사는 거지. 아무 특화된 게 없는 거. 브랜드가 주는 의미가 바로 그거 아닌가? 가짜 명예와 허상, 허울을 만들어주니까 그 속에서 평범해질 수 있는 거”
그는 스스로 아티스트가 아니라고 한다. 꾸준히 갤러리에서 전시를 하고 비엔날레에 초청받지만 굳이 전시 공간을 벗어나길 원한다. 그가 만든 작품들을 시장에 가져다 두기도 하고 시장에서 산 상품을 쌓고 엮어 갤러리에 전시하기도 한다. 그는 그들만의 리그를 없애야 한다고 했다. 자꾸 혼란을 주고 룰을 깨야 소통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림도, 설치미술도 그가 하는 일이 아니라고 했다. 그가 하는 일은 소통을 만드는 일이다.
“재작년 구로 공단에서 〈당신은 꽃입니다〉라는 전시를 했다. 꽃 모양의 뼈대만 내가 만들고 공장 단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모아온 쇳덩이, 기계 찌꺼기를 모아서 붙이도록 했다. 그렇게 꽃이 만들어졌다. 그 작품은 내 것이 아니다. 내가 만든 것도 아니고. 그런데 그걸 보고 소통이 이루어진다. 모두가 꽃이 되고 서로 쇳덩이를 붙이면서 모두의 작품이 되는 거다.”
그의 말을 따르자면 그는 작품을 만들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를 작가의 경지에 올렸다.
“남들이 뭐라고 부르든지 그건 난 모르겠고, 난 내가 하고 싶은 걸 해. 그게 미술이라고 부르든 아니든”
글/최태형
← 유희열, 뮤지션
서울대 작곡과를 14년 만에 졸업했다. 수재 같기도 하고 아닌 것도 같다. 현재는 프로젝트 음악 그룹 토이의 리더다. 활발한 방송 활동을 하는 방송인이기도 하다. 자신만의 거부할 수 없는 변태 코드로 여심을 녹인다. 대중들이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야한 ‘섹드립’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다.
이재웅, 기업인 →
이재웅은 다음 커뮤니케이션의 창업주다. 한메일로 한국에 이메일 시대를 열었고 다음카페로 인터넷 커뮤니티 왕국을 만든 장본인이다. 그런 그가 돌연 회사의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한동안은 다음의 평사원으로 근무하기까지 했다. 지금은 다음의 대주주로 있으며, 사회적 가치가 있는 벤처 기업을 발굴해 지원하는 ‘소풍(sopoong.net)’이라는 회사를 운영 중이다. 주변에서 꾸준히 정치에 대한 그의 의중을 궁금해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정치에 뜻을 두고 있지 않음을 밝히고 있음에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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