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한 차림의 그녀가 하얀 옷으로 갈아입었다. 햇과일 같던 그녀는 잘 익은 열대 과일처럼 농염해졌다. 카메라 앞에서 그녀의 몸은 노래 불렀고 표정은 춤췄다.
Esquire Korea, 2014년 1월
Photographs by KIM TAESUN / 글 최태형 · 스타일리스트 원세영 · 헤어&메이크업 구현미

그녀를 알아차린 건 영화 〈코리아〉에서 북한 탁구 선수 류순복을 연기했을 때다. 여기서 ‘알아차렸다’는 건 매력을 뜻한다. 〈코리아〉에서의 첫인상은 이름처럼 순하고 복스러웠다. 예쁘진 않았다. 키 작고 고불대는 머리를 가진 악착같은 북한 선수. 그러나 별안간 매력이 터졌다. 큰 경기를 앞두고 주눅 들어 있던 그녀가 ‘이기고 싶다’고 말했을 때다. 막힌 숨이 트이듯 탁!, 그녀의 매력도 트였다.
무용수가 되겠다던 김예리는 그렇게 영화배우 한예리가 됐다. 세 살부터 춤추기 시작해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한국무용을 전공할 때까지 한 번도 다른 꿈을 꾸지 않았던 그녀. 독립영화에 출연하게 된 건 우연이었다. 안무가가 필요했던 독립영화 제작사 측에서 학교에 추천을 요청했고, 그녀가 담당하게 되면서 영화에 입문했다. 단역이 주어진 건 일종의 덤이었다.
그런 그녀는 점차 독립영화에서 사랑받는 배우가 됐다. 독립영화제에서 그녀의 특별전이 열렸을 정도다. 그러나 무용수가 될 거라는 생각은 바뀐 적이 없었다.
“서른까지만 할 생각이었어요. 배우가 되면 무용을 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으니까요. 혹시라도 유명해지면 많은 제약이 있을까 봐 싫었어요. 그러다 지금 소속사 대표님을 만나며 바뀌었어요. 이 일을 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러고 나서 처음 맡은 역할이 류순복이에요.”

그녀는 영화 〈해무〉의 촬영 막바지에 있다. 봉준호 감독이 제작하고 〈살인의 추억〉 촬영감독인 심성보가 연출을 맡았다. 뷰파인더를 지켜보던 심성보 감독이 직접 칼을 차고 세상에 나서는 첫 영화다. 이미 한국영화에 획을 그은 봉준호가 지지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일명 ‘선수’들의 기대작이다. 그녀는 김윤석, 김상호 등 연기파 배우와 인기 스타 박유천과 함께 연기한다. 유일한 홍일점이다. 오래 여주인공을 찾지 못했던 기대작이 그녀를 낙점했다.
“왜 제가 낙점됐는지는 저도 잘…. 급하게 시나리오를 받아서 어떻게 하지, 걱정만 했었던 거 같아요.”
그녀는 지금 본인이 어떤 배우인지 모른다. 여전히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다니며 아직도 춤추고 공연한다.
“아직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늘 좋은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누군가 열 손가락에 좋은 배우를 꼽아보라 했을 때 제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녀는 여전히 춤춘다. 얼마 전까지 정신혜 무용단의 공연에서 주역 무용수로 출연했다. 대극장 공연까지 마쳤다. 〈해무〉의 촬영이 끝나고 한숨 돌릴 수 있게 되면 또 무용수로 무대에 오를 계획도 갖고 있다.

“무용하면서 콤플렉스가 많았어요. 우선 키도 작고요. 중학교 때부터 고민이었죠. 예쁘지 않다는 말도 너무 많이 들었어요. 안 예뻐서 대학 입시에 떨어질까 봐 걱정이 많았죠. 선생님도 걱정돼서 성형을 해보면 어떨까 했을 정도예요. 엄마와 함께 병원에 가기도 했어요. 그런데 눈 수술을 하면 코도 해야 하고, 코를 하면 턱도 함께 해야 할 것 같다고 해서 포기했어요.”
미운 오리였던 그녀는 영화를 하면서 백조가 됐다.
“영상원 친구들을 만났을 때 제게 너무 예쁘다는 말을 많이 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 사람들이 왜 이러지? 나한테 뭘 바라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했었죠. 그때는 제 미적 기준이 매우 편협한 상태였었거든요. 그때 처음으로 아름답다는 건 되게 다양한 기준이 있구나 생각했어요. 그때 수술하지 않은 게 정말 다행이죠.”
배우가 된 그녀는 이제 연기를 위해 그리고 자신을 위해 춤을 춘다. 춤만 춰야 한다고 생각했던 마음도 조금은 여유로워졌다.
“배우가 뮤지컬을 하는 것, 영화도 하고 드라마도 하는 것과 비슷해요. 제가 무용수로 무대 위에 서는 것도요. 춤추기 위해 배우가 되지 않겠다던 제게 대표님이 하신 얘기가 있어요. 배우는 몸을 잘 알아야 한다. 춤을 추는 게 연기에도 혹은 너 자신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도 도움이 될 거다. 게다가 게을러지지도 않을 거라고요. 제가 너무 좁게 생각한 건 아닌가, 돌아보게 됐죠.”
춤출 때 불리한 신체 조건이 콤플렉스였던 한예리. 춤을 못 추게 될까 걱정이던 그녀는 배우가 되어 진정 원하는 춤을 추게 됐다. 배우가 좋아 춤추고 춤추는 게 좋아 배우가 된 그녀.
“지금 저는 배우라고 생각해요. 잘하고 싶어요. 마음이 급하진 않아요. 유명해지고 싶은 게 아니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