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20대는 필연적 실패로 점철되어 있다. 세상에 갓 나온 20대 남자가 할 수 있는 건 하나도 없다. 이상은 높은데 현실은 시궁창이다. 20대는 그래서 힘든 시기다.

Esquire Korea, 2013년 10월
by 최태형 / PHOTOGRAPHS BY PARK NAMKYU

남자의 20대는 관문이다. 10대가 ‘남자’ 대신 ‘애’로 통칭되던 시기였기에 20대는 비로소 남자가 되어야 하는 시점이다. 그러나 세상은 20대 남자를 호락호락하게 남자로 인정하지 않는다. 이미 남자로 태어났음에도 인정받아야 하기에 20대의 남자는 늘 괴롭다. 언제는 ‘군대를 갔다 와야 남자’라고 했다가 ‘돈을 벌어봐야 남자’가 된다고 말을 바꾼다. 그러곤 다시 ‘결혼을 해야 남자가 될 수 있다’며 슬쩍 뒤로 물러나버린다. 세상은 그들에게 ‘남자가 되려면 멀었다’고 평가 절하하고 ‘남자가 되지 못했다’고 비난한다.

20대는 뭐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자신은 완벽하다고 생각한다. 세상을 다 아는 것 같고 세상의 중심에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마음이 급하다. TV를 틀면 온통 세상의 주인은 20대다. 메이저리그를 주름잡았던 박찬호도, EPL을 호령한 박지성도 모두 20대였으니까. 어서 빨리 성공하겠다고 다짐한다. 저들 사이에 내가 있어야 하고 넘어서야 한다. 서른 전에 완성하고 싶어 한다. 갈 길이 멀고 마음이 급하다.

세상은 마음 급한 20대의 발목을 번번이 붙잡는다. 균형감을 잃었다고 말하고 중심에서 벗어났다고 훈계한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타이르고 사람이 되어야 한다며 달랜다. 아직 뭘 몰라서 그렇다는 무시도 덧붙인다.

20대 남자는 화로 가득 차 있다. 세상은 초·중·고 12년, 그중 가장 어두운 터널인 고3만 지나면 된다고 했다. 대학의 문턱만 넘으면 여자가 줄을 서는 내 세상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정작 뒤에 따라붙은 건 입영 통지서였다. 세상이 무엇을 해줬다고 2년을 뺏어 가나 싶다. 2년이 통째로 없어지는 느낌이 들고 실제로도 그렇다. 누가 인생의 2년을 담보 잡나 싶어 화를 냈다. 무엇보다 달리고 싶은데 잡아두는 게 답답해서 더 그렇다.

남자의 20대는 필연적 실패로 점철되어 있다. 세상에 갓 나온 20대 남자가 할 수 있는 건 하나도 없다. 가진 게 없고, 가질 수도 없다. 믿을 것도 없고, 믿음을 줄 수도 없다. 무엇보다 힘이 없다. 이상은 높은데 현실은 시궁창이다. 20대는 그래서 가장 힘든 시기다. 신은 20대에게 자의식을 주지 말았어야 한다. 20대는 언제나 자의식 과잉 상태다. 자의식 과잉에 따라붙는 건 열등감, 강박감, 분열감 따위뿐이다.

남자라서 슬퍼질 때

아버지처럼 살기 싫다고 대들었을 때
아직 아버지한테 힘으로도 안 된다는 걸 확인한 순간.

여자 친구가 없을 때
얼마 전까지 여자 친구는 생각도 못하게 하더니 이제 와 남자가 연애 하나 못하느냐고 면박을 들어야 한다.

처음 여자 친구가 생긴 걸 부모님이 알았을 때
결혼할 상대도 아닌데 며느리 면접이 시작된다.

여자 친구와 여행 갔다 부모님께 걸렸을 때
잘못한 것도 아닌데 불결한 아들인 양 취급받는다.

[강조] 첫 섹스를 했을 때
나도 처음인데 뭘 책임지라는 거니?

섹스하고 싶을 때
너도 좋으면서 왜 그렇게 생색을 내?

‘오빠 나 이러려고 만나?’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
왜 여자는 남자를 거짓말쟁이로 만드는가.

안 된다고 해서 손만 잡고 잤는데 뭔가 잘못된 것 같을 때
왜 기분이 나쁜 건데? 어쩌란 말이니?

모텔 값은 무조건 남자가 내야 할 때
모텔 값이 없어서 입성하지 못할 때만큼 우울할 때도 없지

[강조] 야동 보다 걸렸을 때
같이 찍자는 것도 아닌데 뭘 그리 이상한 취급을 하는가.

야동을 봤을 때
남자는 왜 싸고 나면 항상 허무해지는가.

입영 통지서를 받았을 때
2년은 누가 보상해주는가. 보상은커녕 알아주기만 해도 감지덕지긴 하지.

[강조] 군대 갈 사람이라고 아무 여자도 관심을 보이지 않을 때
왜 여자들은 사랑이 아닌 조건을 보는가.

입대했는데 고참의 나이가 나보다 어릴 때
피는 끓는데 2년간 참아야 한다. 말이 2년이지….

군대에서 후임이 들어왔는데 나보다 나이가 한참이나 많을 때
세상의 이치를 가르치자니 시간이 모자란데 나이까지 많아서야….

휴가 나왔는데 군바리라고 아무도 안 놀아줄 때
까만 피부, 건빵 바지가 군대에선 유행인데….

커플링 값을 모두 남자가 계산해야 할 때
커플링도 하기 싫고 돈도 없는데 여자의 욕심을 왜 남자가 계산해야 하나.

여자 친구랑 헤어지고 쓰레기 취급받을 때
왜 헤어진 여자는 남자를 욕해도 되고 남자가 욕하면 못난 놈이 되나.

면회 온 여자 친구가 “얼굴 보고 헤어지려고 왔다”고 했을 때
왜 여자는 2년도 못 참으면서 남자에게는 평생 참으라고 하는가.

군 복무 면제된 국회의원 아들을 볼 때
군대 때문에 부모님까지 원망해야 하는가.

재미있는 얘기를 하려는데 떠오르는 얘기가 군대 얘기밖에 없을 때
꿈에서도 나오는 얘긴데 어떻게 막니?

소개팅에 못생긴 여자가 나왔을 때
밥값 계산할 생각을 하니 눈물이 나는구나.

소개팅에서 밥값 계산할 때
내 시급도 5000원, 네 시급도 5000원인데….

커피는 여자가 산다더니 지갑 꺼내는 나를 제지하지 않을 때
둘 다 돈이 없어도 계산은 남자가 하는 걸로 약속한 세상이 밉다.

남자 후배들과 맥주 한잔할 때
맥주값을 내야 하는 것도 결국은 나구나.

몸매 좋고 맵씨 좋고 유머도 있는데 돈이 없어 여자를 뺏길 때
왜 여자는 사람의 매력 체크에 돈이라는 항목을 상위 랭크 시키나.

입사했는데 동갑인 여자들이 선배일 때
고참 눈치를 2년간 봤는데 이제 어린 여자 눈치까지 봐야 하는가.

사내 연애하다 헤어진 여자 선배가 나보다 나이가 어릴 때
여자들과 같은 방식으로 싸울 줄 알아야 한다. 싸울 때는 여자가 남자들보다 더 잔인하다.

여자 친구에게 따귀를 맞았을 때
똑같이 때리고 사회에서 매장되느냐, 하나도 안 아픈 척하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여자 친구에게 맞고 안 아픈 척했는데 피가 날 때
아픈 것도 서러운데 자연스럽게 유머로 승화시킬 방법까지 고민해야 하다니.

염색했는데 자장면 배달부냐는 소리를 들었을 때
세상은 왜 20대 남자의 패션을 이해해주지 않나.

멋지게 입었는데 좋은 브랜드가 아니라고 무시당할 때
세상은 왜 20대 남자의 패션을 센스보다 가격으로 평가하는가.

축구 하러 가는데 여자 친구 눈치를 봐야 할 때
남자는 왜 운동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가.

TV 속 남자의 빨래판 복근을 보며 내게서 왕(王) 자를 찾을 때.
내가 TV 속 여자 가슴만 봐도 변태라고 면박을 주더니.

[강조] 급한 마음에 한 손으로 여자 친구의 브라를 풀었는데 과거를 의심할 때
잘해도 뭐라고 하고, 못하면 더 뭐라고 하고….

여자 친구가 바람피우는 장면을 목격했는데 그게 하필 그놈 차에서 내리는 모습일 때
잘못은 여자가 하고 열등감은 왜 남자가 느껴야 하는가.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대머리인 걸 알았을 때
내 힘만으론 안 되는 게 있다는 세상의 이치를 깨닫게 된다. 나는 대머리구나.

어떻게든 머리가 벗겨지기 전에 결혼해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결혼 계획을 나이도 경제력도 아닌 대머리 되기 전으로 급히 수정해야 한다니.

[강조] 여자 친구를 데려다 주고 다시 그 길을 되돌아올 때
서로의 집 중간에서 만나고 헤어지는 게 합리적이라는 판단은 남자만 가능하다.

여자 친구가 “오빤 내가 왜 화난지 몰라?” 하고 물어볼 때
알면서도 그런 사람이냐고 욕먹을지, 그런 것도 모르느냐고 욕먹을지 선택해야 한다.

여자 친구에게 실수했는데 기분 나쁘니 말 걸지 말라고 할 때
미안하다.

여자 친구가 실수해놓고 자긴 뭐 기분 좋은 줄 아느냐며 말 걸지 말라고 할 때
이상하게 미안하다.

아버지의 눈물을 보았을 때
큰 산도 때로는 무너질 수 있음에 대비해야 한다.

어머니의 눈물을 보았을 때
어머니를 위로할 수 있는 건 아버지가 아니라 아들뿐이라는 부담을 느껴야 한다.

어머니가 여자 친구를 못마땅해할 때
부모님 집에 얹혀사는 입장에서 여자 친구 편만 들 수는 없다.

집 나간다고 큰소리쳤는데 아무도 잡지 않을 때
20대의 자존심과 현실은 왜 반비례하는가.

공대 남자가 아니라며 여자들이 무시할 때
여자는 먹고살 걱정을 왜 스스로 하지 않고 남자를 통해 하려고 하나.

뚱뚱하다고 놀리는데 수치스럽지만 웃어 넘길 때
남자의 몸매 지적은 왜 농담으로 치부되는가.

대머리 될 것 같다고 걱정해주는 척할 때
머리 숱이 많건 적건 남자는 모두 대머리 불안감을 안고 살아야 하나.

그래서 취직이나 하겠느냐는 핀잔을 들을 때
졸업도 제대도 이제 막 했는데 또 취업 걱정부터 해야 하나.

바이크 못 사게 할 때
바이크 타면 죽는다고 차 사라고 하는데 누군 차 사기 싫어서 안 사나.

누나 많다고 여자 친구에게 핀잔 들을 때
남자는 왜 가족을 부끄러워 해야 하나.

가족 여행 가자고 할 때
엄마, 아빠, 누나는 다 잘 노는데 왜 가족인데도 나는 동화되기 힘든가.

아빠가 어색할 때
누나랑은 친한 거 같은데 왜 나는 아직도 어색한가.

엄마랑 친하다고 마마보이 취급할 때
아빠랑 친한 딸은 예쁨 받고 엄마랑 친한 아들은 왜 지탄받나.

취업하지 못하고 스물아홉이 되었을 때
왜 남자의 서른은 무엇인가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하나.

커피숍에서 스탬프 카드를 꺼냈는데 여자 친구가 ‘쪼잔하다’고 할 때
도장 다 찍으면 이 커피는 자기가 먹을 거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