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버스를 반으로 나누는 것은 안 돼!” 미술 시간에 배운 신성불가침의 교리다. 그러나 여기 캔버스를 반으로 나누어 작업하는 미술 선생님이 있다. 40년간 현대미술을 이끌어온 영국의 국민 작가 폴 헉슬리(Paul Huxley). 그는 현대미술의 창조적 선생님이다.

Numéro, 2009년 3월
에디터 | 최태형 포토그래퍼 | 이상엽

[Numéro] 당신의 작품을 보면 양분된 캔버스에 확연히 드러나는 동일한 요소가 있다. 이를테면 나선형 줄무늬와 면으로 이루어진 도형들말이다. 이것들이 의미하는 것은?

[Paul Huxley] 각각의 줄무늬와 도형의 형태가 의미하는 것은 딱히 없다. 그러나 그것들의 존재 형태가 의미하는 것은 있다. 어떻게 볼지 모르겠지만, 반복적으로 보이는 요소들은 서 있는 모양을 나타낸다. 다시 말해 요소 하나하나가 모두 인간처럼 서 있다. 여기서 ‘서 있다’는 것은 일종의 인간성을 상징한다. 그러면서도 ‘인간성’과는 모순되게 지극히 공학적이고 기계적인 면모를 보인다. 나는 관람객들이 깊은 의식을 통해 기계적 면모 너머의 인간성을 발견하길 기대한다.

그렇다면 ‘Anima, Animus’, ‘Mutatis Mutandis’, ‘Proteus’라는 타이틀의 다른 시리즈에 같은 요소가 반복되는 이유는?

동일한 메시지 폼을 함축하려고 노력한다. 따라서 작품마다 이루어지는 외형의 변환 속에서 일정한 규칙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을 것이다. 일종의 나와 작품의 ‘진화’라고도 볼 수 있다. 그래서 내 생각이 급격하게 변화하지 않는 한 작품의 변화폭에도 크지 않다. 작품에 라틴어 제목을 붙인 것은 그 언어가 가진 뜻보다는 이미 ‘죽은 언어’인 라틴어로 일종의 시퀀스를 부여하기 위해서다.

중국 방문 후 당신은 한자에서 영감을 받아 ‘Chinese letter’시리즈를 선보였다. 이번 한국 방문에서도 영감을 불러일으킨 이미지를 찾았는가?

아직 한국을 둘러볼 기회가 없었다. 그리고 언제나 작업의 원천을 얻기 위해 여행하는 것은 아니기에 당장 어떤 이미지를 떠올리긴 힘들다. 영감을 받는다면 나도 모르게 어느 순간 캔버스에 표현될 것이다. 중국의 경우 사회주의 이념이 팽배한 국가를 예상했다. 하지만 굉장한 수준의 상업화에 놀랐고, 특유의 거대함이 나를 자극했다.

어느 순간 표현되는 영감은 원래 의도보다 확장되거나 전혀 다른 것이 되기도 할 것 같다. 당신 자신의 작품이 본인에게 또 다른 영감을 줄 듯하다.

나의 작품 세계를 잘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질문에 대한 대답은 ‘예스’다. 말했듯이 나의 작업 방식은 일종의 진화 과정을 거친다. 따라서 완성품은 처음의 의도와 다른 경우가 흔하다. 잊고 있던 것만 같은 어린 시절의 기억, 혹은 대가의 훌륭한 작품에서 받은 감동이 작업 과정에서 무의식적으로 반영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여러 인센티브들이 다음 작품의 영감이 되는 것이! 바로 내 작업이 진행되는 방법이다.

장르를 불문하고 요즘 가장 흥미를 가지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최근에는 음악에 큰 흥미를 느끼고 있다. 특히 인도 음악의 복합적인 구조에서 느끼는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마치 재즈처럼, 주어진 테마 안에서 즉흥성이 전달하는 감정의 쌍곡선은 정말 환상적이다. 미묘하게 느낄 수 있는 섬세한 변화가 강렬한 클라이맥스를 만들어내는 과정! 게다가 놀랍게도 이 클라이맥스는 40분에서 1시간가량 지속된다. 이 의외성을 통해 얻는 경험의 확장은 대단하다.

그렇다면 당신의 작품에 있어 변화나 새로운 흥미거리는 무엇인가?

조각을 새롭게 시작했다. 인간을 비롯한 모든 것이 ‘서 있는 모습’은 그림에서 표현할 땐 물리적 어려움이 없다. 하지만 실재하는 조각은 만지고 느낄 수 있다. 철학적 문제를 넘어선 기술적 딜레마 때문에 처음부터 문제가 속출했다. 너무나 바보스럽지만, ‘어떻게 세울 것인가’부터가 문제였다. 피라미드같은 경우, 크기 때문에 고민하기도 했다. 피라미드는 굉장히 크지 않은가? 이것을 전시와 체험이 동시에 이루어질 수 있는 사이즈로 구현하려 노력했다. 문을 통해 사람들이 드나들 수 없는 문제점은 결국 해결하지 못했지만.(웃음) 실재하는 존재를 고스란히 전달하는 과정에서 기술적 균형을 찾는 것은 여전히 어렵고 흥미롭다.

간결하게 기호화한 작품은 삶의 철학을 말해주는 듯하다.

캔버스를 양분해서 표현한 작품을 보고 삶의 철학을 얘기하는 것을 보니 당신은 나를 이중적인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물론 사실일 수도 있지만.(웃음) 내 철학은 교감이다. 그리고 그 교감을 통해 타인의 삶에 도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교감이라는 당신의 철학적 측면에서 그림을 보는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나는 작품을 아주 정교하게 만든다. 아주 작은 부분까지도 세세히 비율을 생각한다. 그렇지만 관람객들에게 단일적인 해석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작품을 보고 의문을 품는 그 순간에 내 의도가 전달된다. 그게 교감이다.

당신의 생애가 현대미술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현재 미술 작품이 가치의 척도로 작용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론 미술 시장은 과거에도 존재했다. 훌륭한 작품이 높은 가격에 거래되는 것도 좋다. 하지만 지금은 왠지 주객이 전도된 듯한 느낌이다. 작가들이 미술 시장을 통해 스스로에게 걸맞은 부와 명예를 얻었는가? 아티스트 사이에도 부의 양극화 현상이 일어난다. 따라서 미술 시장은 꼭 필요하지만 양날의 검과 같다.

로열 칼리지 오브 아트의 교수로 제직하며 영 브리티시 아티스트(yBa)의 멤버 트레이시 에민, 크리스 오필리 등의 제자들을 배출했다. 당신에게 영향을 받은 작가들이 반대로 당신에게 영향을 주지는 않는가?

나는 학생들과 작품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당신이 지목한 제자들과 많은 논쟁을 벌인 것도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비슷해졌다는 뜻은 아니다. 그보다는 자신들만의 표현 방법으로 승화되어 작품에 녹아 있을 것이다.

그들과 어떤 논쟁을 벌였는가?

트레이시 에민은 그림을 그리라고 하면 항상 이것저것 가져다놓거나 글씨를 써넣곤 했다. “넌 전공이 회화이니 그림을 좀 그려라”라고 말한 기억이 있다. 그런데 지금은 유명한 설치 미술가가 되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아, 그녀에겐 그녀만의 방식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크리스 오필리는 학생 시절 술을 마시고 학교 담벼락에 온통 낙서를 한 적이 있다. 그를 불러 벌로 낙서를 모조리 지우라고 한 기억이 떠오른다. 지우지 않았다면 지금쯤 아주 비싼 벽이 되었겠지만.(웃음) 논쟁이라기보다는 재미있는 일화들이다.

한국의 미술가 중 당신을 감동시킨 작가는?

아쉽게도 정확한 이름을 기억할 수는 없지만 한국 작가들은 추상과 개념 미술을 접목하는 능력이 아주 뛰어나다. 그런 작품들은 나의 작품관 하고도 노선이 비슷하다. 아! 예전에 독일에서 접한 백남준의 자동차 설치 작품이 생각난다. 아주 멋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