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승우

Go go, Cha Cha!

Go go, Cha Cha!

굳이 ‘청춘 98’을 부르짖던 왕년의 영광을 들먹이지 않아도 차승우는 여전히 밴드 음악의 보증수표다. 조선 펑크 ‘노브레인’에서 로큰롤의 ‘문사이너스’로, 그리고 이제는 음악 영화의 주인공으로까지 스펙트럼을 넓힌 그는 지금 두 번째 청춘, ‘청춘 08’을 맞았다.

[Numero] 인디 음악의 아이콘이 가장 상업적인 예술인 영화에 출연하게 됐어요. 그만큼 이 영화의 매력이 크다는 의미겠죠?

[차승우] 영화의 기본을 이루는 요소가 음악이잖아요. 1970년대 문화가 배경인데, 신중현을 비롯해 그 당시 문화가 제가 좋아하는 문화예요. 또 <고고 70>은 진정한 의미에서 대한민국 첫 음악 영화이기도 하고요. 영화라기보다 음악 애기니까 제가 할 수 있겠다 생각했고, 하고 싶기도 했어요. 1970년대라는 억압된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사람들의 청춘 그 지체가 좋아요. 그때랑 지금이랑 크게 바뀐 것 같지도 않고요.

무대 위의 밴드로서 느끼는 점과 무대 아래 관객의 입장에서 느끼는 것은 다르잖아요. 표현에 있어서도 감독은 관객의 입장에서 요구를 했을 텐데, 그 중 ‘이건 아닌데’ 하는 건 없었나요?

공연할 때는 무대에 올라가기 전까지 제가 무엇을 할지 몰라요. 월 해야지 생각하고 올라가지도 않고요. 감독님도 미리 ‘어떻게 해라’ 하고 주문하지 않으셨어요. 단지 “차차 네가 그냥 하던 대로 해” 라는 말씀뿐이었죠. 전 연기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기 때문에 그냥 공연하는 것과 다름없었어요. 그럼 감독님도 그냥 그걸로 ‘OK’였죠. 오히려 주문이 많았다면 트러블이 생겼을지 모르죠.

음악적으로는요?

방준석 음악감독님 스타일이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아이디어를 내는 방식이에요. 우선 많은 얘기를 함께 하면서 진행했어요. 또 드럼 역할의 손경호 씨나 저나 음악감독님과 잘 아는 사이라 기본적으로 서로가 가지고 있는 게 무엇인지 알았어요. 그래서 서로에 대한 간섭이 없었죠.

음악적으로 어떤 얘기를 많이 했나요?

우선 실제로 존재한 밴드니까 대부분 그 당시 곡들을 사용했어요. 그래서 우리는 음색이라든지 기타의 톤, 연주하는 스타일에 대해 생각을 많이 했죠. 아무래도 사운드 시스템이 발전하지 않았던 때라 좀 거칠고 정리되지 않은 음색을 만들기 위해 실제 그 당시 사용하던 앰프인 펜더사의 1959년형 베이스 맨’ 모델과 이팩터를 구해다가 연주했어요. 기타도 1950년대 펜더 기타를 썼어요. 또 노래도 스튜디오에서 녹음해 덮어쓴 게 아니라 현장에서 녹음한 라이브로 100% 진행했고요.

그럼 연주하다 틀리거나 연기하다 틀리면요?

관객에게 음악 영화를 보여주지’가 아니라 ‘공연을 보고 나온 것처럼 느끼게 하자’가 영화의 시작이었어요. 제가 생각할 때 록의 가장 큰 속성은 우연성이라고 생각해요. 그게 록의 진면목이고요. 실수로든 혹은 어떤 해프닝이 생기든 그 모든 게 로큰롤이에요. 앨범을 똑같이 재현하려고 무대에 선다면, 그건 록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 틀린 거죠. 이 영화는 그걸 잘 살렸어요. 록을 고스란히 영화로 보여주는 거죠. 그래서 음악 장면에서는 NG라는 게 없었어요. 그게 원래 로큰롤이니까. 미스가 나더라도, 실수를 하더라도 그 자체가 바로 로큰롤이고, 그것을 영화로 보여주면 되니까..

밴드 음악을 하다 보면 단체 생활이라 자주 싸우잖아요. 합주하면서 싸우지는 않았나요?

우리 모두가 시한부 밴드라는 걸 알고 있었어요. 크램크인 전에 홍대 클럽 드럭’에서 공연을 했어요. 정말 너무 즐거웠죠. 조승우 씨나 저나 감독님께 한 번 더 공연을 하자고 졸랐을 정도로요. 매일 하는 거였다면 그렇지 않았겠죠. 시한부니까 다 받아들일 수 있더라고요.

롤링 스톤스의 일대가를 담은 영화 〈샤인 어 라이트> 봤나요? 다큐 영화를 찍는 건 어때요? 뮤지션으로서의 모습과 록을 더 생생하게 보여줄 수도 있잖아요.

저도 얼마 전에 봤습니다. 정말 광분하면서. 좋아하는 밴드의 공연을 보기 전에 떨리는 기대감 있잖아요. 영화 시작 전에 제가 그랬어요. 롤링 스톤스의 광팬이가에 노래를 따라 부르며 봤죠. 기회가 된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어요. 그 전에 제가 롤링 스톤스처럼 돼야죠.

많은 뮤자션이 영화음악 작업을 통해 음악 프로듀서로 변신하기도 하잖아요. <고고 70>에서 음악감독을 한 방준석 감독처럼 영화음악에 더 깊이 참여하고 싶은 생각은 없나요?

저는 그런 게 너무 골치 아파 보이더라고요. 시간에 쫓겨야 하고, 다른 사람들 입맛에 맞춰야 하는 거니까. 전 제 스스로 준비가 되기 전까지는 저에게서 음악이 나오지 않는다는 걸 잘 알거든요. 하지만 프로듀서로서 원가를 만들고 싶은 생각은 분명 있어요 신중현도 밴드를 하면서 김추자, 펄 시스터즈 등의 음악을 프로듀싱했잖아요. 신중현과 김추자, 김정미, 펄 시스터즈의 작업과 같은 경우인데, 세르주 갱스부르가 프로듀싱한 프랑스 갈(France Gall)처럼 여자 보컬과 함께 작업해보고 싶어요. 여기서 모티브를 얻은 복고적인 사운드를 만들어보고도 싶고요. 1960년대의 무겁지 않은 록 음악, 이른바 ‘버블껌 사운드를 베이스로 모던한 음악을 하는 여자 가수를 만드는 거죠. 물론 작곡과 연주는 제가 하고요. 상당히 복고적인 거요.

1960년대면 모즈 밴드 더 후(The Who) 같은 느낌을 말하는 건가요?

맞아요. 제가 좋아하는 것들이 그때 당시에 다 몰려 있어요. 더 후, 스몰 페이시스(Small Fases), 더 킹크스(The Kinks) 같은 사운드가 지금 제 음악의 모태이기도 하죠. 그래서 영화에서도 의상이며 스타일이며 그냥 제가 평소에 하고 다니던 모습대로 했고요. 제가 입는 옷들을 의상팀에서 가져다 쓰기도 했어요.

10년 넘게 자유롭다는 록 음악을 하면서 아이러니하게 펑크니 특이니 하는 수식어가 오히려 당신을 구속한 적은 없나요?

처음에는 장르에 대한 집착이 심했어요. 펑크는 어떻고, 어떤 애티튜드를 가져야 하고, 마인드는 또 이래야 하고••• 그런데 오래 하다 보니 다 싫더라고요. 그래서 한 단어로 집약한 게 로큰롤’. 장르로서가 아니라 라이프스타일, 태도로서요. 인생에 있어서의 로큰롤요. 그래서 전 펑크도 버렸어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려고요. 쓸데없는 고민 하지 않고, 이렇게 영화로 보여줄 수도 있는 것처럼요. 영화에 데블스의 마지막 리사이틀 피날레 장면이 있는데, 영화가 정점으로 치닫으면서 마치 그 상황처럼 공연의 희열과 데블스의 억압된 감정을 직접 느꼈어요. 제가 꼽은 최고의 신이기도 한데, 이렇게 여러 방면으로 희열을 느끼는 거죠. 또 그게 음악을 하는 데 영감을 주기도 하고요.

에디터 | 최태형 Photographed by Jang Wonse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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